물(物)을 만나다

이장우_손파_김기수展   2008_0812 ▶ 2008_0831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08_0812_화요일_07:00pm

기획 / 김옥렬

관람시간 / 10:30am~07:00pm / 월요일 휴관

MJ갤러리 MJ GALLERY 대구시 중구 남산동 924-5번지 Tel. +82.(0)53.256.2111 mjgallery.kr

현대 미술가는 이미지로 철학하는 이미지 사상가일 것이다. 그렇기에 동시대 미술가는 자신이 살아가면서 경험한 세계상을 바르게 인식하고, 그것을 다양한 이미지 속에 담아가며 새로운 시각을 열어가는 삶을 사는 사람이다. 그러나 대가들조차 그렇게 사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눈을 멀게 하는 유혹은 늘 그림자처럼 가까이에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각이든 유혹이든 대부분의 미술가들은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작품을 그리거나 만들고 싶어 할 것이다. 하지만 모두를 만족시킬 만한 보편타당한 작품이 과연 있을까. ● 어쩌면 현대미술은 누구나 좋아하는 것을 추구한다기보다는 창작의 주체가 확신하는 시대정신과 미의식을 바탕으로 닫힌 생각을 열어가는 선구적 입장에 서 있는 사람이 아닐까. 현대라는 한없이 혼란스러운 시대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은 온갖 유혹과 혼란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어느 시대나 혼돈 속에서 예민한 안테나를 가지고 미래에 대한 방향을 감지하며, 시대의 우울을 인식하고 삶의 새로운 방향을 가장 먼저 느끼는 사람이 바로 예술가일 것이다. ● MJ갤러리 기획展인 『물(物)을 만나다』에 참여한 작가들은 현대미술이 추구해야 할 새로운 방향을 물성(material quality)을 통해 각자의 시대정신과 예술적 비전을 찾아가는 실험적인 작가들이다. 과학적 탐구방법과 달리 미술에 있어 물성에 대한 탐구는 어쩌면 필연적으로 매체의 초월성 내지 재료의 혼용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회화의 평면성이나 시각성이 강조되었던 모더니즘 미술의 반발이자, "회화가 시각성의 감옥에서 자유로워지는 것뿐만 아니라, 회화와 그 매체의 논리를 넘어 주제를 회복하는 것(Stephen Melville)"을 의미하기도 한다. ● 물체가 지닌 특성에 개입하는 작가적 방식에는 자신의 예술적 비전과 재료가 만나는 접점에서 사유의 깊이가 발생한다. '물(物)을 만나다'에서 보여지는 세 명의 작가적 비전은 일상 속에서 발견된 오브제가 아닌, 물성과 그 물성이 지닌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회화적 일루전과 실체의 반영(reflection)-김기수-을 제시하거나 혹은 물성 자체의 변주(variation)-손파-나 물성의 변환(transformation)-이장우-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일련의 시도에서 보여지는 물성에 대한 태도나 탐구방식은 질성(quality)의 변화를 통해 혹은 그것을 넘어서기 위한 각자의 시각적 비전과 시대정신이 담긴 알레고리(allegory)다. ● 김기수는 스테인레스 미러(stainless mirror)의 표면에 그려진 회화적 일루전(illusion)과 물성 자체에 반영된 이미지와의 간격을 제시함으로써 회화적 방법의 확장을 자기 감수성으로 풀어가고 있다. 두 개의 세계인 고정된 일루전(그림 안)과 변화하는 일루전(그림 밖), 이를테면 환영 속의 환영을 선행하는 것의 재현(representation)과 실체의 반영이라는 두 가지의 의미로 계기화하고 있다. 이처럼 그는 스테인레스 미러에 반영되는 이미지를 조절해가며 시공간을 담아가는 방식으로 회화적 확장을 시도한다. 이러한 그의 회화적 확장은 흐르는 물처럼 정지된 시간을 갖지 않고 열린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 손파는 액체 상태의 고무성분(latex)을 통해 풍부한 색과 형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유기적인 변주를 시도하는 그의 작품에선 강렬한 색채의 배합으로 시각적 효과뿐 아니라, 미끈미끈하고 끈적끈적한 고무의 질감으로 촉각적인 부분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서 보여지는 이런 일련의 시도는 이전의 오브제 설치에서 볼 수 없었던 물성의 변화가 다채롭게 나타난다. 마치 빛과 그림자의 놀이처럼, 형과 색이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는 가능한 열린 형태를 전제하고 있다. 그것은 작품 자체뿐 아니라, 작품과 작품 사이에서 발생하는 형과 색의 탄력적 관계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이장우는 테크놀로지가 이루어갈 세계상에 대한 메시지를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상징적인 도상을 넘나들며 정신과 몸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질문하고 있다. 이런 시도는 마치 퍼즐게임을 하듯 현실 속의 가상, 가상 속의 현실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세계를 넘나들며 몸의 정체성을 사유하는 그의 작업방식으로 나타난다. 그의 근작들인 인간과 기계장치의 결합인 사이보그(cyborg)는 현대인의 알레고리로 몸에 대한 그의 사유방식이 담겨지는 초월적 시공간이다. 그것은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몸에 대한 알레고리로 몸의 연장인 동시에 몸의 죽음이라는 이중성을 담고 있다. ● 이번 전시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형과 색 그리고 재료의 다양성 속에서 현대미술이 주는 열린 시각을 제시하는 의미 있는 기획이다. 그것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게 되는 물질을 바라보고 사유하는 작가적 태도와 시대정신이 어떻게 물성과 만나 새로운 빛을 발하는지를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物)을 만나다'는 다양한 재료를 통해 물성이 갖는 특성과 그 특성의 변화에 개입하는 작가적 비전과 만나는 의미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이장우_갑옷_컴퓨터 바디, 디지털 영상_66×23×109cm_2008
이장우_Cynus_컴퓨터 바디, 디지털영상_가변설치_2008

이장우의 작업 - 경계를 담는 알레고리 ● 청도 화산리의 한적한 곳에서 살며 작업을 하고 있는 이장우의 집을 찾아갔다. 그의 집 뒤쪽엔 키가 큰 대나무 숲이 우거져 있다. 마당 한쪽에는 집안으로 들어온 새들 목이라도 축이라는 듯 손바닥만한 크기의 연못이 있다. 연못보다 크지도 않은 텃밭에는 상추며 고추도 심어져 있다. 친구 몇 명 불러 직접 지었다는 집과 작업장은 손때 묻은 장비들이 이번 전시에 내보낼 작품들과 이웃하며 반긴다. 시원한 물 한 잔 나누고 나니 작가도 작품도 보인다. ● 이장우의 작업은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꿈과 현실, 인간과 사이보그 등 두 세계의 경계를 담거나 시공간의 경계 너머와 만나는 알레고리에 관한 것이다. 집안 곳곳에는 상징적인 도상이나 혹은 디지털 도인들이 한데 어울려 그 심연의 깊이를 들여다보고자 했던 렌즈들로 가득하다. 특히 근작들에 많이 보여지는 컴퓨터 바디를 이용한 신화 속의 인물과 사이보그 인간이라는 결합은 현대인을 상징하는 하나의 중요한 알레고리로 읽혀진다. ● 이장우가 전통과 현대, 가상과 실재를 해석하는 기본적인 구조인 알레고리는 역사적 자료와 관습화된 이미지의 상징들에 근거하고 있다. 이 같은 시도는 기존의 텍스트에 새로운 텍스트의 의미를 투사시키는 방식으로 정신적 유산과 현실적인 몸이 만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현대인인 동시에 자기 자신이기도 한 모호한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자 답이다. 정답이 없기도 할 테지만 기대하지도 않으면서 지속적으로 실재와 가상, 전통과 현대를 상징하는 이미지를 확대, 재생산해가는 것은 마치 벗어날 수 없는 일상 속에서 반복되는 현대인의 삶과도 닮아있다. 그는 그런 현실을 벗어나는 방법으로 마치 자기 도그마(dogma) 속에서 신비적인 밀의(密儀)를 만들어가며 경계를 넘나든다. 이장우가 실재와 가상, 전통과 현대라는 경계 너머를 보는 것은 경계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몸에 대한 사유에서 출발한다. ● 그는 "컴퓨터 바디는 내장을 싸고 있는 가볍지만 견고한 소재의 부품이다. 이 부품을 두들기고 구부리고 조립하면서 나는 인체를 만든다. 이 만들어진 몸은, 지금은 잊혀져가는 신화의 인물들이다. 거칠고 단단한 사이보그 바디는 말 그대로 껍데기일 뿐이다. 여기에 생명력을 더해주는 것은 영상작업이다. 테크놀로지가 발전하면 할수록 인간은 자연을 중시하며 그것을 그리워한다. 내가 사이보그 바디의 배에 자연풍경을 넣는 이유가 그것이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새로운 작업을 하나 더 했다. 부드럽고 향기로운 것으로 차가운 부품들을 감싼 「진달래」 작업이 그것이다. 내게 있어 진달래는 어머니의 이미지다."라고 말한다. ●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진달래 빛 한복을 입은 모습으로 폴리카보네이트나 아크릴판 위에 그려진 진달래와 그 너머 영상과 겹친다. 무사의 꿈이자 강인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갑옷이 되어 컴퓨터 바디와 디지털 영상으로 만나고 있다. 그것은 투명한 경계의 유리나 아크릴처럼, 볼 수는 있어도 갈 수는 없는 것과 같이 그 어떤 경계 위에 놓여있는 그리움이다. ● 이런 경계를 넘나드는 이장우의 알레고리는 암수가 한 몸으로 우주와 생명의 춤을 추는 시바여신을 통해 하나의 알레고리가 된다. 그것은 컴퓨터 바디에 생명의 불을 켜고 태고의 신화를 통해 일상과 신화, 현실과 가상,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몸의 탄생이자, 몸을 해석하는 이장우의 알레고리이고, 나비의 꿈이다.

손파_Black Stroke_패널에 고무_61×122×18cm_2008
손파_무제_고무_45×54cm_2008

손파의 작업-물성을 통해 느끼는 몸성 ● 칠곡에서 왜관 방면으로 인적 드문 동네의 폐교에 작업장을 마련하고 있는 손파의 작업실을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더운 열기와 함께 고무냄새가 먼저 반긴다. 발 디딜 틈 없이 들어차 있는 도구들과 다양한 실험을 위한 재료들 사이에서 전시 준비로 분주한 모습의 흔적들이 가득했다. 전시를 위해 바삐 가야할 시간이지만 재료 실험에서 작품으로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 손파의 작업은 액체 상태의 고무성분(latex)이 어떤 틀이나 모양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유기적인 변주를 보여준다. 그의 작업에서 느끼는 유기적인 변주는 물성의 변화가 갖는 요소뿐 아니라, 어떤 형태가 만들어진 결과물 속에서도 잠재적 변화가 탄력적으로 작용하게 한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완성된 작품이 주는 시각적인 요소에 촉각적인 작용이 강하게 발생하기 때문일 것이다. ● 작업하는 과정을 여러 번 보면서 몹시 즐기는 듯, 행복해 보이는 모습만을 보아왔던 터라 평소에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작업실은 나의 행복충전 공간이다. 하루하루가 즐겁고 오늘은 또 어떤 이미지들을 만날 수 있을까, 설레고 기대에 부풀어 매일 작업실로 출발한다. 고무란 소재는 '힘'을 상징하는 것 같다. 잡아당기면 당길수록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고자 하는 고무의 탄력적인 성격도 있지만, 내가 작업과정에서 고무라는 물성을 통해 느끼는 힘은 원초적 자아로 돌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과 맞물려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 이전의 고무 오브제와 라텍스를 이용한 지금의 작업에는 피부나 몸의 문제를 상징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사한 점이 있지만, 이전의 작업에서 보여졌던 몸의 단상이 매우 거칠고 어두웠다면, 최근의 작업에서 보여지는 시각은 밝고 경쾌한 분위기가 강하다. 이점에 대해서 손파는 "맨 처음 고무 작업의 시작이었던 타이어튜브로 작업을 할 땐 물성과 한바탕 결투라도 벌이듯 고무를 당기고 찢고 꼬는 힘과 힘의 속성에 대한 표현 과정이었다면, 이번에 새로 선보이는 작업은 고무 원액이 마르면서 변형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탄력과 그것을 조절하고자 하는 힘과의 싸움"이라고 한다. 이전 작업은 확실히 인간의 표피 혹은 껍질에 대한 작가적 사유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부재를 통해 존재를 인식하는 것처럼. ● 근작들에 나타나는 작가적 비전은 인간의 육체, 그 속에 포함된 정서적이거나 심리적인 혹은 몸 자체의 특성에 대한 관계를 표현하고 있다. 그가 재료로 선택한 고무액체는 색과 형의 변화를 다양하게 연출할 수 있어 심리적이거나 정서적인 요소뿐 아니라, 고무 자체의 질감이 주는 촉각적인 요소가 몸의 부분과 전체간의 관계를 표현하는 데 매우 직접적인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이것은 작가가 고무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몸과의 대화 혹은 몸과 몸의 관계성에 탄력을 부여하는 시각적 담론이 되고 있다. ● 물성을 통해 느끼는 몸성에 대해 작가는 말한다. "고무를 통해 인간의 장기나 피부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표현방식이 너무 사실적이거나 구체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작업을 통해 두 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다. 물성 자체의 형과 색의 변주에 충실하는 것과 현대인의 몸에 대한 단상을 개념적으로 생각하고 싶다." 건조된 상태에서 늘어나는 고무의 탄성이 주는 촉각적인 요소를 탐닉하는 작가는 인체의 부분과 조형적 요소라는 두 마리의 토끼 사이에서 나와 타자를 연결하는 몸을 만나고 있다.

김기수_Moon_스테인레스 미러에 혼합재료_100×100cm_2008
김기수_Moon_스테인레스 미러에 혼합재료_63×220cm_2008

김기수의 작업-물성과 일루전(illusion) 사이 ● 경산과 인접한 곳에 있는 청도의 한 폐교에서 작업하는 김기수의 작업장을 찾았다. 말수가 적고 소탈한 모습의 그는 다른 작가들의 작업실과 달리 매우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아마도 작업의 성격상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던진 질문에 손님을 위한 배려라고 답한다. 평소엔 지저분하다며 싱긋 웃는다. 에어컨이 있어 시원한 그의 작업실에서 그동안 풀어 놓았던 작업의 방향과 새롭게 시도하고 있는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 작업실에 앉아 차 한 모금 마시자 말문을 연다. "대학을 졸업하고 작업을 하면서 내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존재에 관한 것이었다. 거울을 통해 보이는 나의 모습, 그 존재감이 매우 낯설고 부담스럽게 다가왔었다. 그래서 화면에 흰 천을 덮어 존재감을 약화시키기 위한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는 존재감이라는 테마로 꾸준히 캔버스에 작업하다가 좀 더 이상적인 재료를 찾기 시작했다. 캔버스에서 거울로, 거울에서 스텐으로 재료를 바꾸어가면서. ● 처음 거울 작업을 시작한 이유를 물었다. "내가 처음 거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던 것은 심각하고 진지했던 시기에 가진 억압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었다. 그래서 발이나 손을 흰 천으로 싸고 다시 결박하는 모습을 그렸는데, 그것은 지켜지기 어려운 질서나 약속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이었다. 그러다가 깨지기 쉬운 거울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선택했던 재료가 스테인레스 미러다. 재료가 바뀌면서 그동안 생각했던 내용도 바뀌었다. 견고하고 차가운 느낌의 미러 판에 그림을 그리는 일은 쉽지가 않았었다. 그래서 거울에서 시도했던 주제를 조금씩 다르게 그리기 시작했다. 사람과 함께 표현되었던 천과 억압을 상징하는 요소는 버리고 점차 흰 천만을 표현하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되었던 흰 천, 한쪽 끝과 다른 한쪽 끝으로 묶은 이 흰 천은 이제 김기수의 그림 전체를 상징하는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다. 흰 천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물었더니, "그것은 이전에는 그림 속에서 사람을 싸고 있던 천이었지만, 지금은 프레임 밖에서 그림의 안까지 싸고 있는 것이다."고 말한다. 이제 그것은 억압이 아니라 소중한 것을 마음으로 간직하는 상징으로 변화한다. 뿐만 아니라 이곳과 저곳의 연결고리로써의 매듭이고 억압이 아니라 화합을, 냉소가 아니라 조화를 상징하는 것이다. 이처럼 김기수의 작업에 상징적 의미가 되고 있는 흰 천은 그림의 밖에서 안까지 포장하듯 공간적인 깊이를 끌어안는 시각이자, 실재와 환영의 연결고리다. ● 우연성을 줄여가고 싶다는 작가는 최근작들을 통해 반영되는 이미지의 왜곡과 단절시켜 공간을 설정하는 방식에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스텐 위에 천이나 달 그리고 소나무나 연밥의 형태를 스크래치 기법으로 그려 놓았던 풍경을 표현한 드로잉에서 최근작 중에는 인물의 형태를 새롭게 시도하고 있다. 김기수의 작품은 확실히 그림의 안과 그림의 밖에서 만나는 '환영 속의 환영'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그림과 만나게 한다. 그러한 작가적 시각은 바로 스테인레스 미러라는 물성이 지닌 차갑고 반사되는 요소를 적극적으로 열어놓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무엇보다 작가의 시각적 비전은 전통적인 회화가 오랜 시간 이룩한 환영의 역사를 스텐 표면에 그려진 회화적 일루전과 물성 자체에 반영된 이미지 사이에 중첩된 이중의 환영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이런 작가적 시도는 그림의 안과 밖을 연결하거나 혹은 와해하는 지점으로 스테인레스 미러에 반영되는 이미지를 조절해가며 회화적 확장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처럼 김기수의 회화적 확장은 흐르는 물처럼 고정되지 않고 열린 세계를 지향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 김옥렬

Vol.20080812a | 물(物)을 만나다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