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풍경

김철규展 / KIMCHULKYU / 金澈圭 / painting   2008_0820 ▶︎ 2008_0826

김철규_인체풍경-머물 수 없는 계곡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0×160cm_2008

초대일시_2008_0820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3층 Tel. +82.2.736.1020 www.ganaart.com

「인체풍경」을 통해 표현된 호기심과 상상의 세계 ● 숨 가쁘게 돌아가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느 누구나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어느 분야에 종사를 하든지 그들 나름대로의 고민과 방황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 중 대부분의 고민이 각자의 이상과 현실사이의 괴리로부터 비롯된다. 작업을 하는 작가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작가들에게 있어, 더욱이 젊은 작가들에게 있어 현실로서의 세상은 언제나 싸워서 이겨내야 하는 영원한 경쟁자로서 존재한다. 결코 만만한 싸움이 아닌 것이다. 그들에게 세상은 매우 힘겨워 보인다. 많은 젊은 작가들이 꿈을 접고 현실과 타협하는 모습을 수없이 지켜봤다. 그래서 작업만을 고집하는 젊은 작가들의 영혼이 고귀하고 순수해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생각일 것이다. 그들의 작업과 영혼은 값진 것이다.

김철규_인체풍경-낙원인 듯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140cm_2008

4번째의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는 작가 김철규 역시 마찬가지이다. 작가는 모든 것을 작품으로 대변하듯,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작품만큼이나 진지하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작가였다. 이번에 그가 선보이게 되는 「인체풍경」은 기존에 그가 선보였던 작품들의 연속선상에 놓여있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한층 더 성숙하고 발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김철규가 이전의 작품인 「Whole - Part, Look」시리즈에서 분할된 공간속에서 시선과 응시를 통해 통합공간과의 상호관계를 통한 '관계성'에 주목했다고 한다면, 이번 「인체풍경」에서는 외형적으로 구상과 반추상적인 작품성향에서 극사실주의 기법으로의 전환이 가장 먼저 눈에 띄며, 그가 작품의 주요 모티브로 삼고 있는 인간의 신체 역시 기존의 작품에서처럼 클로즈업되어 왜곡되어 보이거나 과장되지 않고 오히려 인간의 욕망 중 하나인 관음증을 연상시킬 정도로 극사실적인 표현기법을 보이고 있다. 아울러 이전의 작품들에서 종종 엿보이던 기호(Sign)는 달(月), 해(日), 산(山) 사슴과 학, 송아지와 돼지, 물고기와 코끼리 등 다양한 사물과 동물들로 대체되고 있다.

김철규_인체풍경-아침을 기다리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0×160cm_2008

그렇다면 김철규가 그의 「인체풍경」에서 표현하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인간의 신체(육체)를 통해 드러낸 인간의 욕망과 이중성이다. 관음증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세밀하고 신비롭게 표현된 여체는 이런 인간의 욕망과 이중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김철규의 「인체풍경」에서 보이는 인간의 육체는 '인간의 욕망'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몸짓과 생로병사를 통한 '생성과 소멸'의 반복적인 과정, 육체와 정신과의 공존 역시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근본적으로 인간을 육체적인 존재보다는 정신적인 주체로 파악했던 것은 비단 서양의 철학과 예술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문인화가들이 화원화가들을 단지 좋은 손재주를 가진 장인(匠人)정도로만 치부해버렸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동양과 서양 모두 인간의 중심을 이루고 있었던 것은 언제나 정신(情神)이었다. 하지만 현대철학에서 인간의 육체와 정신은 서로 구분된 개념이 아니요 이것은 현대예술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주장했던 데카르트의 형이상학적인 사유 방식은 이제는 더 이상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정신만 가지고서는 인간의 사유체계가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육체가 없는 정신은 불완전하고 육체가 없으면 외부 세계와 무한히 연결되어 있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다른 사람들이 들여다 볼 수 없게 된다. 마찬가지로 극사실적으로 표현된 김철규의 「인체풍경」 속에서는, 역설적으로 육체와 정신과의 경계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작품 속에서 육체와 정신은 서로 상반되고 대치되는 이분법적인 개념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작용을 나누어 가지며 서로를 위해 상생(相生)하는 것, 즉 서로의 상호 작용을 부추키고 있는 것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러한 과정은 그의 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환원되고 있다.

김철규_인체풍경-그 계곡의 그 나무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0×160cm_2008

아울러 그의 이번 작품에서는 서양화의 극사실주의 기법(hyper-realism)뿐만이 아니라 동양화에서나 볼 수 있는 소재와 표현방법 등이 등장하고 있다. 동양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일월오악도(日月五嶽圖)뿐만이 아니라 송아지나 돼지이외에도 물고기와 코끼리 등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것은 서양의 초현실주의(Surrealism) 작품에서 보이는 것처럼 감상자들로 하여금 호기심을 자극시키면서 무한한 상상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의 「인체풍경」속에 등장하고 있는 동물들의 표정은 마치 인간의 욕망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이것은 세심한 감상자만이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김철규_인체풍경-바라만 보는 폭포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7×91cm_2008

김철규의 「인체풍경」은 샌드페이퍼를 통한 수없이 많은 반복 작업과 붓질, 지워냄과 드러냄의 반복적인 과정을 거치는, 손이 아주 많이 가는 작업으로 이런 작업과정은 작가의 노력과 그에 동반된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얼핏 외형적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그의 「인체풍경」에서 작품의 깊이와 내공이 엿보이는 이유는 그만큼 그의 작품 속에는 작가만의 시간의 흔적과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김철규는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수백 번의 붓질을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다시 문지르고 지우는 작업을 반복한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그의 작품 속 색채는 말 그대로 작가내면의 깊이만큼이나 심연(深淵)의 깊이를 간직하고 있다. 드러냄과 지워냄, 채움과 비움의 반복과정을 통해 얻어진 색채의 중첩은 그의 이전 작품들에서 보이는 것처럼, 마티에르가 두껍지는 않지만 여전히 수고로운 과정을 거친 작가의 노력과 이미지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게 된다.

김철규_인체풍경-그 곳에 머물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6×170cm_2008
김철규_인체풍경-풍요와 빈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6×170cm_2008

「인체풍경」에서는 표면적으로 보이는 형태와 색채의 명료함과는 반대로 작가가 작품 속에 담아내고 있는 의미가 더욱 깊고 풍부해졌다. 왜냐하면 이런 명확함, 명료함 속에는 '비움의 미학'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한 작가가 자신의 감정을 정열적으로 모두 쏟아내어 표현하는 것도 좋지만, 그렇게 고조된 감정을 억제하고 절제하면서 이미 표현된 감정의 찌꺼기들을 지우고 그 흔적들을 비워나가는 과정이야말로 더욱 더 중요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김철규의 작품에서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은 깊이감을 엿볼 수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감상자들을 호기심어린 상상의 세계로 이끌면서 작품 속으로 빨려들게 하는 묘한 매력이 깃들어 있다. 현대미술에서는 예술작품이 본질적으로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감상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제시하고 드러내는 방식이 아니라 서로 호흡하고 공감하는 과정을 통해 다양하고 무한한 의미와 새로운 생명력을 창출해내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김철규의 작품 속에서 직접 경험하게 된다. ■ 이태호

Vol.20080820b | 김철규展 / KIMCHULKYU / 金澈圭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