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그리고 보여지다

박시찬展 / PARKSICHAN / 朴時贊 / photography   2008_0820 ▶ 2008_0902

박시찬_ohne Title_디지털 프린트_80×160cm_2006

초대일시 / 2008_0820_수요일_05:20pm

서울시립미술관 SeMA 신진작가 전시지원 프로그램

관람시간 / 10:30am~06:30pm

관훈갤러리 KWANHOON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11(관훈동 195번지) 신관 2층 Tel. +82.(0)2.733.6469 www.kwanhoongallery.com

충돌하는 구조_건물의 증명사진 ● 박시찬은 건물의 사진을 찍는다. 인물은 배제된 체, 공간과 그를 둘러싼 풍경만이 눈에 들어온다. 그것은 건물을 웅장하게 보이면서 공간을 다시 읽기가 가능한 텍스트로 보이도록 한다. 작가는 건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증명사진'을 찍는다. 증명사진은 대상의 공적인 신분과 존재를 증명하는 기능을 한다. 그러나 건물 내부의 구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정면 시점의 파사드를 찍는 그의 사진은 단순히 건물의 존재를 기록하기 위한 자료사진이 아니다. 증명사진은 신분을 투명하게 보여줄 뿐 아니라, 사회적 산물로서의 가치판단의 문제와 취향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적인 존재증명으로서의 증명사진은 대상의 존재, 즉 흔적을 찍어내 지표로서 기능하는 사진의 객관적 속성과 맞닿아 있을 뿐 아니라, 사회문화적 취향이 개입된 주관적 요소 또한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작가는 건축물 내부 구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건물의 표피를 통해 그 속에 코드화된 사회구조와 상반된 논리들을 미세한 시선으로 읽어내고자 한다.

박시찬_ohne Title_디지털 프린트_80×160cm_2006

은폐된 건물의 기능 ● 건물의 구조를 보여주지 않고 파사드 만을 찍는 것은 건물의 기능을 드러내지 않겠다는 속내이다. 즉, 그는 대상으로 삼고 있는 건물의 기능을 은폐한다. 무슨 용도로 사용되는 건물인지 어디에 있는지의 단서를 주지 않은 채 낯설어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 작품 제목에서 건물이 위치했던 장소, 촬영날짜, 혹은 건물의 기능과 같은 정보가 없다는 것은 사진 속에서 건물의 기능이 제거되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것은 대상에 사뭇 거리를 둔 채 중성적으로 접근하는 그의 사진적 태도를 말해준다. 객관적이면서도 낯설어 보이는 정면시선의 구도, 건물과 눈높이를 마주하고 있는 듯한 낮은 시점, 탈색된 색채와 같은 요소들로 그는 중성적 접근법을 강화한다. 낮은 눈높이에서 본 건물정면의 풍경은 건물의 구조나 깊이감이 결여된 폐쇄된 평면처럼 보이기도 한다. 개방적인 구조로 깊이감을 그대로 드러내는 공사 중인 건물조차도 오히려 정면 시점의 앵글을 통해 그 구조를 유추할 수 있을 정도로만 드러난다. 그것은 앞면과 뒷면의 개념, 정문과 뒷문의 개념도 확실치 않다. 즉, 하늘과 같은 배경 요소들을 흐리게 해 건물의 표면에 시선을 집중하게 할 뿐 아니라, 건물과 마주보는 듯한 시선, 앞면인지 뒷면인지 모를 모호한 구도는 그것을 풍경 이상의 텍스트로 인식하게 하며 수수께끼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박시찬_ohne Title_디지털 프린트_80×160cm_2006

보다 그리고 보여지다 ● 한편, 전시의 제목에서 보이듯 작가는 재현의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 즉, '보다'와 '보여지다'의 차이는 재현과 재현된 것을 재현하는 것의 차이이다. 그는 이 같은 재현방식의 차이를 통해 일상에 대한 우리의 익숙함과 낯설음의 의미관계에 대한 비평적 접근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은 필연적으로 이미지와 그것이 찍은 실제 세계간의 연관성을 배태하고 있기에 재현의 문제를 수반한다. 건물의 재현 단계와 그것의 시리즈적 구성을 통해 작가는 의미를 구성하고 메시지를 해독해나가는 것이다. 이처럼 건물 외관의 사진작업을 연작형태로 지속하는 방식은 유형학적 사진과 닮아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맨얼굴을 드러내듯, 건물 표면의 아주 미세한 부분까지 세밀하게 드러난 화면과 녹색 잔디, 탈색된 원경의 대조는 기록의 분류학적 냉정함이 아니라 오히려 아득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작가는 이처럼 완전한 객관주의적 유형학 사진도, 그렇다고 디지털 조작과 영화적 어법으로 판타지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주관적 사진도 아닌 독특한 시선을 보여준다. 너무 냉정하거나 차갑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따뜻하지도 않은 중간적 어법을 따르며, 선명한 건물 사진을 통해 유용한 정보 보다는 감각적 전이를 제공한다.

박시찬_ohne Title_디지털 프린트_60×120cm_2006

탈맥락과 재문맥의 변증법 ● 그는 건물 주변의 불필요한 요소들을 지우는 과정을 행한다. 말하자면 건물 주변에 놓여있던 컨테이너 박스, 짐, 사람들과 같은 요소들을 지우며 건물이 놓인 사회적인 문맥에 거리를 두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제시하는 탈맥락화는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 그가 탈맥락화한 건물들은 일차적으로 사진의 객관성과 투명성의 신화 속에서 절대 사실과 같은 존재로서 보이지만, 그것의 외피에 새겨진 시간의 층들과 건물이 지닌 기능과는 어울리지 않거나 전혀 상관없는 문맥의 상충된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중성적 어법에도 불구하고, 삶의 문맥은 사진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다. 기계적이고 객관적인 표면과 상충되는 비대칭인 형태, 울퉁불퉁 건물 옆으로 난 길, 열려진 상태가 다른 창문들, 출입구, 각기 다른 개체로서의 분절된 파편들이 저마다 차이를 드러내며 튀어 오른다. 탈색된 배경으로 인해 건물의 디테일은 더욱 살아나며, 하나의 완전한 연속체로 보이는 건물 사진은 오히려 불연속적인 분절들 간의 미세한 차이를 더욱 두드러져 보이게 만든다. 그의 사진에 등장하는 건물들이 랜드 마크로 기능하는 독특한 건축물이 아님에도, 어딘지 모르게 독특하고 낯설어 보이는 이유이다. 이 지점에서 그는 다시 우리의 시선이 건물과 풍경을 비평적 시선으로 읽기를 기다린다. 그럼으로써 기능에 따른 사용에 길들여진 사회적 신화와 산물들 이면에 숨겨진 것들을 읽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박시찬_ohne Title_디지털 프린트_80×160cm_2006

중성적으로 보이는 그의 사진 속 건물과 풍경에서 작가가 읽어낸 미세한 차이의 연쇄들을 우리 또한 읽을 수 있다. 유사한 건물들의 틈새에 놓인 미묘한 차이에 주목하며 하나의 건물을 뒤덮은 미세한 색감과 패턴의 차이, 배경과 건물 사이의 미세한 차이와 경계지점,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건물사진들 간의 차이들로서 "공간을 재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언뜻 보면 기념비적으로 보이는 경직된 건물표피 속에 녹아있는 미세한 시간차를 발견하게 한다. 건물 이외의 불필요한 요소들의 삭제와 세밀하게 드러난 건물 표면 속 미세한 차이의 연쇄작용은 박시찬의 작업이 재조합의 과정을 거치도록 한다. 이는 이전부터 그가 건물 내부 사진작업을 지속해 왔다는 사실과도 연관된다. 그것은 작가가 공간의 외부와 내부를 사회적 기능으로부터 탈맥락화하고 다시 재문맥화하는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충돌하는 구조들을 상충시킴을 말해준다. 어찌 보면 근대 이후로 건물의 외관은 그것의 기능과 전혀 다른 문맥에서 불거져 나온다. 이같이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우리 삶속의 편린들이 재조합되어 객관적인 시선에 균열을 가한다. 표면과 이면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듯 보이는 건물의 증명사진 속에서 우리는 그 이면에 숨겨진 구조와 불협화음들을 읽을 수 있다. 그것이 박시찬의 사진에 숨겨진 충돌하는 구조들이다.

박시찬_ohne Title_디지털 프린트_60×120cm_2006

사진은 지표적 이미지로서, 대상의 존재와 흔적을 그대로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박시찬의 작품에서 건물은 그곳에 존재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존재감은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순간의 명백한 존재가 아닌, 지속되는 일상 속에서 은밀히 드러나는 존재들이다. 그럼으로 일상과 우리가 머물고 이용하는 건축공간에 대한 중립적이고 중성적인 사진적 시선을 드러낸다. 이렇게 구축된 건물 사진은 도시적, 건축적, 역사적, 수리학적 지식의 복합체로서, 아름다움이나 시적인 감수성과 같은 피상적 감정을 넘어서게 한다. 따라서 건물 표면에 드러나는 구조와 균형, 맥락, 배경이 되는 풍경과의 접합지점과 불현듯 보여지는 이질적인 요소들을 세세하게 따라다니며 디테일의 발견에 따른 즐거움을 획득하게 된다. 이렇게 우리의 감각은 사진 속 건물의 표피와 닮아간다. ■ 김우임

서울시립미술관 SeMA 신진작가전시지원프로그램 본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시행중인 2008 SeMA 신진작가전시지원프로그램 선정작가 전시입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전시장 임대료(500만원 이내), 도록, 엽서 등 인쇄물 제작, 온-오프라인 광고를 통한 홍보, 전시 컨설팅 및 도록 서문, 워크숍 개최 등 신진작가의 전시전반을 지원하는 SeMA 신진작가전시지원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Vol.20080820e | 박시찬展 / PARKSICHAN / 朴時贊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