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ween Red

이세현展 / LEESEAHYUN / 李世賢 / painting   2008_0821 ▶ 2008_0920

이세현_Between Red-33_리넨에 유채_250×400cm_200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80506d | 이세현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08_0821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원앤제이 갤러리 ONE AND J. GALLERY 서울 종로구 북촌로12길 6(가회동 11-9번지) Tel. +82.(0)2.745.1644 www.oneandj.com

I. 흔히 우리가 DMZ라고 부르는 비무장지대는 남북한의 완충지대 역할을 하며 한반도를 가로지른다. 간혹 냉전의 최전선이라고도 일컬어지는 이곳의 풍경은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다. 그러나 문명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산악지대처럼 보이는 이 지역은 또한 전 세계에서 가장 묵직한 상징적 의미가 내포된 풍경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DMZ는 가장 자연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탈자연화된 풍경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정치 이데올로기를 상징하는 흔한 표식들-지난, 또는 현 정권을 나타내는 기념물, 정치 지도자들의 동상-은 발견할 수 없지만, 대신 어느 의미에서 풍경 전체가 우리 시대의 가장 엄중한 이데올로기 내러티브 중 하나의 막강한 위력을 암암리에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세현_Between Red 57_리넨에 유채_130×90cm_2008

한국인 작가 이세현의 작업은 바로 이 같은 배경에 위치해 있다. 그의 회화작업은 DMZ의 풍경을 재구성하고 재조립한다. 지형의 편린들, 땅과 강의 토막 단위들을 재작업하면서 이세현은 자체적인 논리에 따라 기능하는 하나의 세계를 창조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것은 철저히 불가지적인 세계이다. 그리고 작가가 묘사한 영토가 철옹성 같이 단단한 경계들로 특징지어진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 콜라주와 유사한 작업방식을 택한 이세현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편린들을 계속해서 섞어놓는다. 그래서 「Between Red」연작은 언뜻 지나치게 단순해 보이기까지 하다. 이 풍경 연작은 엷게 펴 발린 붉은색 물감의 흔적으로 화면을 가득 채운다. 사이사이 물감이 칠해지지 않는 면적은 마치 하얗고 거대한 띠처럼 심홍색 섬들 사이를 구불거리며 지나고, 이 공백들은 섬세하게 묘사된 불그레한 형상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하지만 이 요소들은 각 화면마다 흠잡을 데 없이 구현된 통일성과 총체성 속으로 스며들어 하나가 된다. 그러나 이세현의 풍경화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이 총체성 이면의 단편화이다. 단순하게만 보이는 풍경들이 복합적인 이중성, 모순과 균열의 거대한 산사태를 상기시키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억지로 틈새를 벌리는 이 제스처는 화면의 단단한 총체성과 대조를 이루지만, 동시에 그것에 활기를 부여한다. 그리고 개념적인 수준과 순수하게 심미적인 수준 모두에서 그의 풍경화에 힘을 싣는다. 작가는 진행 중인 「Between Red」연작과 관련하여 여러 면에서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 군복무시절, 나는 군사분계선 근처 전략지대에서 야간 보초를 서곤 했다. 그 때마다 야간 투시경을 썼는데, 세상이 온통 붉게 보였다. 나무와 숲이 그렇게 멋지고 아름답게 보일 수가 없었다. 두려움과 공포가 가득 한 비현실적인 풍경이었다. 하지만 절대 그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는 풍경이었다. (이세현)

이세현_Between Red 58_리넨에 유채_200×200cm_2008

그의 풍경화에서 재창조된 것은 바로 이 시절 작가가 받았던 인상이다. 야간투시경은 시야 전체를 붉게 물들이면서 그것을 과장하고 탈자연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작가가 받은 느낌의 실체는 아름다움, 소격감, 그리고 낯설고 일시적인 전치-역사 또는 현재에서 벗어나 상이한 시간적 연장 속으로 들어선다는 의미의-이다. 감각과 사고의 이 복잡한 연결은 거의 아무 무리 없이 이세현의 풍경화 속으로 옮겨져 본능적이고 직접적인 소통을 이룬다. 그러나 그 직접적인-사실, 거의 육체적인- 효과를 넘어, 작가가 야간투시경을 재활용했다는 사실은 그가 정치적인 것을 미적인 것에 어떠한 방식으로 통합시키는가를 보여준다. 작품의 주제와 방식을 고려할 때 이것은 중요한 주제가 아닐 수 없다. 이세현의 작품 속에서 정치적인 것은 봉합의 흔적을 남기지 않은 채 교묘하게 미적인 것 안으로 스며들어가 포착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그가 언급한 이데올로기는 도처에 있으되, 동시에 어디에도 없다. 물론 더 큰 메시지는 이것이다. 군사적 함의를 띤 붉은 색의 형상들은 정치 이데올로기가 그의 풍경화뿐만 아니라 그 너머의 세계 안에서도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미묘하지만 화면 곳곳에 퍼져있는 붉은 색처럼, 그리고 형상의 구체적인 요소 내부와 외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지만 동시에 그것들을 모두 관통하는 문자 그대로의 필터처럼, 이데올로기는 그렇게 작동한다. ● 이데올로기는 풍경-이세현은 그 풍경이 무수한 단편들의 섞임이라고 말한다-의 특정한 부분이나 그 내부에서 벌어지는 사건 속에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 자신의 시각 속에서 가시화된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우리의 시각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바로 그 이유로 인해 도무지 떨쳐내기 힘든 무엇이 된다. 이데올로기는 그것을 통해 세계를 지각하는 스크린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정치 이데올로기는 반드시 구체적인 메시지 속에만 들어있지 않으며, 대신 사물을 보는 방식을 통해 특징지어진다. 이세현의 회화는 어째서 회화-그리고 좀 더 일반화시키자면 예술-가 정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적격인지, 또는 최소한 정치적인 것이 작동하는 방식을 통찰하는 데 적절한지를 예시해준다. 그는 정치와 미학을 둘로 가르지 않으며, 미학이 시각 방식을 구축하는 데 대한 것이라면 정치 역시 마찬가지라고 이해한다. ● 이런 의미에서, 이세현의 풍경화를 이루는 핵심 요소들의 많은 부분-전부는 아닐지라도-은 정치적인 층위와 미학적인 층위 모두에서 작동한다. 작가가 사용한 상징들-엷게 발린 붉은 물감이든, 그가 상상한 풍경이 남북한 산악지대의 요소들을 결합하는 방식이든-은 풍경화의 시각적 조건을 설정하는 동시에 간결한 정치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리고 이 때 발휘되는 것은 약간의 실용성, 그리고 고도의 예술적 효율성이다.

이세현_Between Red 59_리넨에 유채_200×250cm_2008

II. 하지만 관객들이 그의 풍경화에서 정치적 진술이나 미적인 계산을 발견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실제로 그의 작품은 어느 쪽도 아니며, 간단히 말해 둘 다 아니다. 기본적으로 이세현의 그림은 지극히 개인적인 성격의 것들로, 과거 그리고 그에 관련된 상실에 대한 작가 자신의 감정을 참조로 한다. 여기서 그는 노스탤지어와 유토피아라는 두 가지 친숙한 관념을 끌어들인다. 그러나 이 두 개념에 대해 단순하거나 회의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경계한다. 그래서 그의 풍경화를 채운 것은 정교화된 노스탤지어 개념과 뒤틀린 유토피아 개념이다. 물론 이세현은 사라지는 것들에 관심이 많다. 그의 풍경화는 잃어버린 과거, 사라져가는 풍경, 그리고 잠식당하는 기억에 대한 것이다."더 이상 풍경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래서 나는 그것을 그려야 했다"고 작가는 설명한다. 그럼에도 그의 회화들은 단순히 과거를 회복하고자 갈망하지 않는다. 차라리 회복의 과정 자체에 대한 그림이라고 말하는 편이 옳다. 다시 말해, 비단 과거뿐만 아니라 그 과거를 재탈환하려는 끝없는 시도 속에도 상주하는 트라우마를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 하지만 바로 이 점 때문에 「Between Red」연작은 노스탤지어의 성격을 짙게 품으면서 한편으로는 철저히 현대적인 작업이 된다. 또한 유토피아의 가능성을 암시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생각보다 훨씬 모호한 개념이라는 메시지도 전달한다. 그리하여 이세현의 풍경화는 통일과 치유의 이미지라기보다는 균열과 파열의 이미지가 된다. 모순과 차이의 복잡한 지형도를 그려내면서, 외견상 드러난 이 통일성은 언제 무너질지 모를 것이라며 우리를 위협한다.

이세현_Between Red 60_리넨에 유채_200×250cm_2008

과거를 이상적으로 복원해내는 기억의 메커니즘 이면에는 무수히 화해 불가능한 것들이 존재한다. 「Between Red」연작은 바로 그 저변에 깔린 모순들의 재현이다. 이세현의 풍경화를 보는 관객들은 강렬한 시각적 화려함 앞에 거의 수동적인 최면상태에 빠져들게 된다. 그러나 이 완벽성은 점차 시각의 분열, 다중 원근법, 그리고 거의 충격적인 수준의 시각적, 심리적 왜곡에 자리를 내주며 물러난다. 모순과 비논리적 반복이 등장하고, 눈은 이 시각적 간극을 메우고자 발버둥 치게 된다. 「Between Red」연작이 눈을 떼기 힘들 만큼의 매력이 있다면 이것은 바로 그 같은 효과 때문이다. 특히 이것은 물리적 효과, 원근법의 조작을 통해 획득된다. 이세현은 평면적인 전통 동양화의 시점과 서양의 원근법을 자주 결합한다. 그리고 이 둘의 한 데 어울림은 기묘한 낯설음을 자아낸다. 서양식 원근법에 입각하여 그려진 개별 풍경들이 평면적이고 비원근법적인 좀 더 큰 풍경을 배경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 최근 작가가 런던 첼시 대학에서 수학했다는 점, 그리고 자신이 한국에서 사라졌다고 여기는 것에 대한 향수를 자주 언급한다는 점 등을 특히 감안할 때, 두 가지 원근법의 이 같은 절묘한 조합은 많은 해석의 여지를 낳는다. 하지만 이중 원근법이 화면 위에서 생산한 효과는 사실 의미와 무관하다-또는 아마도 그 너머에 있다-. 다시 말해, 작가는 그 안에 함축된 문화적 충돌보다는 이질적인 두 요소의 섞임이 주는 충격효과, 그림에 묘사된 심리적 불일치에 더 큰 흥미를 보이는 것이다.

이세현_Between Red 62_리넨에 유채_40×200cm_2008

그 불일치와 모순이 유독 두드러지게 부각된 곳은 「Between Red 45」이다. 이 작품은 길쭉한 반도 풍경들이 수직으로 차곡차곡 쌓여있는 대형 풍경화이다. 각각의 육지 풍경들은 원근법에 입각하여 묘사되어 있지만 그것들의 전체적인 배열은 원근법을 따르지 않음으로써, 최종적으로 화면은 평면화되는 결과를 맞는다. 화면 이곳저곳을 오가는 관객의 시선은 각 부분들을 하나로 조화시키지 못하고, 어느덧 극도로 불안한 느낌에 봉착해버리는 것이다. ● 하지만 그 뒤 「Between Red」연작의 다른 작품들에서는 사정이 달라진다. 풍경의 부분들이 자칫 인공적으로 보이리만치 명증하게 구축된 단일한 총체성 속으로 녹아 들어가는 것이다. 「Between Red 44」에서는 풍경의 이미지가 둥근 달의 선명한 외곽선 속으로 자연스레 흡수되며, 달은 섬세한 주름처럼 구름의 형상을 주위에 드리우고 있다. 작품은 이제 풍경화의 책략으로, 그리고 풍경의 부분들이 조작되고, 형상화되고, 배치되는 방식으로 관심의 축을 이동한다. 물론 이것은 우리가 스스로의 존재론적 경험을 구성하는 방식-총체성을 지각하는 순간과, 세계에 관하여 구축해 놓은 의미에 다양한 균열이 생기며 파열되는 순간 사이를 오가는-과 많은 부분 닮아있다. 이세현의 회화들은 그 각각이, 그러나 무엇보다 하나의 작품으로서, 총체성과 단편화 사이의 기묘한 공간 속에 존재한다. 이런 식으로, 그의 그림들은 우리의 현실감을 훼손하는 분열과 모순, 그리고 이와 함께 그 무질서를 쫓아내기 위해 애써 상기하는 총체성을 드러낸다. 이것이 이세현의 회화가 지닌 정서적인 힘이다. 트라우마의 표현뿐 아니라, 트라우마 자체와 그것의 증거를 반박하기 위해 우리가 애용하는 장치들의 묘사 속에도 그 힘은 존재한다. 작가는 전체성과 총체성 내러티브를 향한 인간의 충동, 그것의 무익함에 대한 통렬한 인식, 그리고 조금이나마 자비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을 나란히 버무린다. 단편화의 풍경과 복원되고 완전해진 풍경을 동일한 수준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 (「Between ed 44」의 경우처럼) 때로는 복원을 향한 시도가 지나치게 과도해지기도 한다는 사실은 작가 이세현의 풍경화를 보는 것을 즐겁게 만드는 이유 가운데 일부이다. 그의 그림들은 보기에 매우 유쾌하다. 노스탤지어가 가득하고, 시각적으로 풍성하며, 한눈에 관객을 매혹시킨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좀 더 미묘하게 복잡한 무엇에 대해 말하고 있다. 아마도 그것은, 우리의 쾌락이란 그 자체가 이미 단편들 속에 뿌리내린 것이며 본질적으로 변덕스럽다는 사실, 그리고 총체성과 단편화, 쾌락과 트라우마는 서로 분리 불가능하게 엮여있다는 사실일지 모른다. 이세현의 유토피아는 직접적이되 매우 세련되고 정교한 방식으로 그려진다. 그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가 서로 몇 발자국 떨어져 있지 않으며 욕망을 추동하는 주된 동인이 부재와 불가능성임을 한시도 잊지 않는다.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그의 회화가 공포와 갈망 등의 정서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한편으로 어쩌면 이세현은 자신의 작업에 기름을 붓는 욕망의 역학을 잘 이해하고 있을지 모르며, 그래서 그 역학의 매혹에 여전히 굴복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절대 아이러니나 냉소에 빠지지 않는, 그럼으로써 결코 그 마력을 잃지 않는, 날카로우리만치 자의식적인 작품이다. ■ Katie Kitamura

이세현_Between Red 63_리넨에 유채_40×200cm_2008

I. The Demilitarized Zone - known as the DMZ - cuts across the Korean Peninsula, acting as a buffer zone between North and South Korea. Sometimes referred to as the last front of the Cold War, it is a supremely ghostly landscape - a mountainous range that is seemingly untouched by civilization, and yet is also one of the most symbolically loaded landscapes in the world. It could be described as the most natural and the most denaturalized landscape imaginable. While it is devoid of the usual markers of political ideology - monuments to present and past regimes, the likenesses of political leaders - the whole of the landscape is, in a sense, subtle testament to the pervasive power of one of the most stringent ideological narratives of our time. ● Korean artist Sea Hyun Lee locates his work in this setting. In his paintings, Lee endlessly reconstructs and reconstitutes the landscape of the DMZ. Reworking fragments of terrain, blocks of land and water, he creates a world that functions according to the logic of its own terms. In this sense, it is a world that is entirely hermetic - appropriately so, considering that the territory Lee depicts is defined by the very impregnability of its borders. ● Lee works by using a manner of construction that is akin to collage, a constant shuffling of recurring fragments. And indeed, the series Between Red is at first glance overwhelmingly simple. A series of landscape paintings is rendered in delicate washes of red. Large swaths of unmarked white meander between islands of crimson land. The blank spaces are harshly set against the carefully detailed fragments in red - nonetheless, they cohere into the flawless totality that is created by each painting. ● It is the fragmentation behind the landscape's seeming totality that is operating at the core of Lee's paintings. It is due to that fragmentation that these seemingly simple landscapes are able to evoke multiple dualities, a vast landslide of inconsistencies and fissures. This fundamental gesture of splitting, alongside its contrasting totality, is the uncanny tension that animates Lee's paintings, and that makes them compelling both on a conceptual and a purely aesthetic level. Lee tells a story that is in many ways lodged at the core of his ongoing Between Red series ● When I was serving my mandatory military service, I would be in a tactical area at night, close to the border. I would wear night vision goggles, which coated everything in red. The forests and trees felt so fantastic and beautiful. It was unrealistic scenery filled with horror and fear, and with no possibility of entering. (Seahyun Lee) ● What Lee describes is an effect that is recreated in his paintings. The night vision goggles alter the whole of the vision, creating a hypertrophied, denaturalized effect. The effect is one of beauty and alienation, and uncanny temporal displacement - a sense of stepping into a different temporal continuum that is apart from history or the present. That complex nexus of sensations and ideas is almost effortlessly carried in each of these paintings, and is communicated in a visceral and immediate manner. But beyond that immediate - indeed, almost physical - effect, Lee's reuse of the visual effect of military night vision goggles indicates the way in which he integrates the political into the aesthetic, a key theme given the subject and manner of his work. In Lee's paintings, the political is so seamlessly embedded into the aesthetic that it is difficult to perceive; the referenced ideologies are everywhere and nowhere at once. This, of course, is the larger message of these paintings. The wash of military red illustrates the manner in which political ideology functions, not simply within the logic of Lee's paintings, but also in the world beyond it: as a subtle but pervasive wash of color, one that exists neither outside nor inside the concrete elements of each image, but as a literal filter across it. ● Ideology is visible not in the specifics of the landscape and what happens in it - that landscape is, Lee suggests, so many shuffled fragments - but rather is located in the vision of those who find themselves inhabiting it. It is so difficult to shake off precisely because it is already lodged in our very vision, like a screen through which we perceive the world. Political ideology is not necessarily located in a concrete message; instead it can be characterized as a way of seeing. Lee's paintings illustrate the reasons why painting - and art more universally speaking - is perfectly poised to deliver a political message, or at least an insight into the manner in which the political functions. Lee makes no separation between politics and aesthetics, and understands that if aesthetics is about constructing a way of looking, then so too is politics. ● In this sense, many - if not all - of the key elements in Lee's paintings function both on a political and an aesthetic level. The symbols employed in his work - whether it is the wash of red or the way his imagined landscapes combine elements of both the North and South Korean mountain ranges - set the visual terms of his paintings, while also delivering a concise political message. It is a kind of sparse utility, and a virtuoso efficiency, that is at work here. ● II. But Lee's paintings are unlikely to strike the viewer as either political statements or aesthetic calculations - and indeed, they are neither and not even simply both. They are primarily deeply personal works that reference Lee's own sense of the past and its losses. Here, Lee tarries with two familiar ideas: nostalgia and utopia. But he avoids approaching either with mere simplicity or mere skepticism. Instead, his paintings are infused with a sophisticated sense of nostalgia, and a wry idea of utopia. Lee is of course concerned with vanishings; these are paintings of a lost past, of disappearing landscapes and eroding memories. "The landscape no longer exists, and so I have to paint it," Lee explains. But his paintings are never simply about the longing to recover the past. They are, instead, about the very process of reconstitution itself. They are concerned with a trauma that is not necessarily located in the past, but that is perhaps instead located in the endless attempt to recapitulate the past. ● This is, of course, what makes the Between Red paintings at once deeply nostalgic, and also acutely contemporary. And while they seem to hint at the possibilities of utopia, they in fact deliver a message that is far more ambiguous. Rather than images of union and healing, these are images of fissure and rupture. They chart a complex territory of contradiction and variation, and their seeming totality is always threatening to give way. ● Beyond memory's mechanism of ideal reconstitution, there are countless irreconcilables. The Between Red paintings are representations of that underlying inconsistency. Lee's paintings lull the viewer into a state of near passive hypnosis with their compelling visual flourishes. But gradually their perfection gives way to schisms of vision, multiple perspectives and an almost jarring level of visual and psychological distortion. Inconsistencies and illogical repetitions occur, and the eye struggles to resolve those visual gaps. That effect is operating at the very heart of what fascinates in the Between Red paintings. It is a distinctly physical effect, one that is achieved through the manipulation of perspective. The paintings often incorporate two perspectives - one that is in the Asian tradition of flat landscape painting, and another that employs traditional Western perspective. Often these are mixed together to uncanny effect, with individual patches of perspective landscape set against a larger stretch of flat, non-perspective landscape. ● There are any number of interpretations to be drawn from the elegant blending of these two perspectives, particularly given Lee's recent tenure at London's Chelsea College of Art, and the fact that Lee often refers to his nostalgia for what he perceives to be a lost Korea. But that dual perspective illustrated in Lee's paintings produces an effect that is separate to - or perhaps simply beyond - meaning. It is of less interest for the cultural clash it implies, and more interesting simply for the startling effect it creates, and the psychic inconsistency it depicts. ● That inconsistency is brought to particularly strong effect in Between Red 45, a large painting in which rows of peninsular landscape are stacked, one atop the other. Each individual fragment of land is painted in perspective, but the painting as a whole is flattened, with the fragments organized without regard for perspective. The eye travels across the painting and is unable to reconcile the fragments; the effect is one of profound destabilization. But then in other paintings in the series, the fragments cohere into a single totality that is so definitely posited that it becomes in itself artificial. In Between Red 44, the image resolves into the clear outline of a circular moon, with what might be a delicate ruffle of clouds; the painting implicitly draws attention to the artifice of the landscape, and the manner in which its fragments have been manipulated, shaped, and situated. This is, of course, much the manner in which we constitute our own ontological experience, and in particular our sense of the past - alternating between moments of perceived totality, and moments where various cracks appear to rupture that constructed sense of the world. Individually, but particularly as a body of work, Lee's paintings inhabit a curious space between wholeness and fragmentation. In this way they reveal both the disruptions and inconsistencies that mar our sense of reality, as well as the totality we evoke in order to keep that disorder at bay. This is where the emotional power of Lee's paintings resides - in their depiction of trauma, but also in their depiction of the devices we use to refute the fact and the evidence of that trauma. The human compulsion towards narratives of wholeness and totality is rendered with an acute awareness of its futility, as well as its potential to achieve a kind of grace. Lee represents both the landscape of fragmentation and the restored landscape of completion in equal measure. ● That those attempts at restoration are often extravagant (as in the case of Between Red 44) is simply part of what makes these paintings so pleasurable. And these are deeply pleasurable images - deeply nostalgic, visually lush and instantly mesmerizing. But Lee's work points out something more subtly complex, which is the possibility that our pleasure is itself rooted in fragments and essentially inconstant, and that totality and fragmentation, pleasure and trauma, are inextricably linked. Lee's utopia is one conceived in a direct, but remarkably sophisticated manner. He is constantly aware of the fact that utopia is never more than several paces from dystopia, and that desire is chiefly fuelled by absence and impossibility. What is remarkable is the paintings' ability to nonetheless produce such affect of dread and longing; while Lee may understand the mechanics of the desire that fuels his work, he remains more than capable of succumbing to their fascination. The result is keenly self-aware work that never lapses into irony or cynicism - and as such never loses its magic. ■ KATIE KITAMURA

Vol.20080821c | 이세현展 / LEESEAHYUN / 李世賢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