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08_0828_목요일_07:00pm
참여작가 / 김신령_이경주_이혜진
관람시간 / 11:00am~07:00pm
제로원디자인센터 ZERO/ONE DESIGN CENTER 서울 종로구 동숭길 122-6(동숭동 1-1번지) Tel. +82.(0)2.745.2490~3 www.zeroonecenter.com
최근에 본 지아장커 감독의 다큐멘터리 『무용Useless』은 중국 의류 산업계에서 옷과 옷을 제조하는 사람들이 어떤 위치에 놓여있는지를 보여준다. 소위 잘 팔리는 옷을 디자인했던 중국의 패션 디자이너 마커는 쓸모없는 옷을 디자인함으로써 옷의 기능성보다는 옷에 담겨진 역사적 의미와 감성을 기록한다. 대량생산의 논리에 따라 제작된 기능적인 옷들에 환멸을 느낀 그녀는 이런 제도적 장치에 대한 저항이자 비판으로 옷의 무용성을 토로하며, 옷의 본질에 접근하고 있다. 옷에 대한 다양한 시선의 유형을 담고 있는 이 영화는 요즘 디자인 필드에서 감지되는 소소한 징후들을 떠올리게 한다. ● 제로원 스팟 2008 작가공모전에서 선정된 세 명의 작가들은 산업 디자인, 금속 공예, 제품 디자인의 개별 영역 안에서 통념적으로 인식되었던 사물에 대해, 다양한 시선의 유형들을 보여주고 있다. 동일한 사물에 대한 해석과 재현의 방식이 다르듯, 디자이너가 사회 혹은 물질을 바라보는 태도에도 저마다의 고유한 관점이 있다. 디자이너의 시각은 항상 재현방식에 있어 기능성과 효율성의 논리를 전제로 하는데, 대부분 가상 혹은 미래의 사용자와의 관계를 최적화시킬 수 있는 디자인을 제안하도록 설정되었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 참가하는 작가들은 그다지 실용적인 것을 주조하는데 관심을 두기보다는 자신의 시각 논리를 정제화시키며, 다소 무용의 실험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예외적이며 흥미롭다.
이경주의 「시선을 되돌려주는 도구」를 묘사하자면, 다소 위압적인 형태의 검은 의자에 구멍이 뚫린 덮개가 씌워져 있고 그 위로 카메라 두 대가 장착되어있다. 고문기구를 방불케 하는 투박한 이 정체불명의 도구는 감시의 대상에서 감시의 주체로 피사체의 위치를 전환시키는 장치이다. "의식적(혹은 무의식적)시선들에 포획되기를 거부하고 싶다"는 이경주의 의도는 단지 종묘공원에 앉아있는 할아버지에만 해당되지는 않는 듯하다. 자그마한 체구에 여린 작가를 억압했던 기제들에 대한 거부이자 저항의 소리처럼 들린다. 작가는 이 문제를 단순히 의자에 카메라를 장착함으로써 끝내지는 않는다. 여기에는 작가의 트릭이 숨어있다. 카메라 두 대중 한 대는 작동을 가장한 페이크 카메라이고 다른 한 대는 실제 작동되는 감시 카메라이다. 사람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카메라는 그저 시선을 교란시키는 가짜 오브제에 불과하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왜 불안할까. 비록 불능일지라도 인지적으로 작동되기 때문이다. 작가는 관객들로 하여금 이 도구를 적극적으로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아니 직접 만들어 볼 것을 제안한다. 현실세계를 온전하게 바라볼 수 있는 다른 방법의 시선으로 말이다.
이경주가 작가가 기존의 시선에 역행하는 방식을 택했다면, 김신령은 금속 공예작업을 통해서 2D와 3D의 세계가 일치하다는 가설을 전제로, 기하학적인 패턴의 반복을 통해서 시각적인 교란을 과감하게 보여준다. 그녀의 작업들은 일상에서 만나던 기존 공예작품들과는 다른 소리를 내고 있다. 애초부터 쓰임새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주조해낸 장신구는 조형적이고 미학적인 치장의 도구로써 사용될 수 없는 것들이다. 팔찌는 헐겁고, 귀걸이는 무거워서 착용이 불가능하다. 은이라는 질료는 작가가 강박적으로 취하는 패턴이 그려지는 캔버스로써,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사라진 작가의 시각적인 유토피아가 담겨진 곳이다. 동시에 작가가 설정한 가설들을 명제화시키기 위한 실험소이다. 은 큐브에 그려진 패턴을 보고 있자면, 반복적인 패턴으로 이해 현실세계까지 확장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작은 크기이지만 그 속에서는 작가의 완고한 세계관이 고스란히 반영된, 무한한 팽창의 가능성이 응축된 덩어리로 존재하는 듯하다.
이혜진은 이번 작가공모전에서 가장 젊은 작가로서 지금까지는 모델링 작업만을 하다가 처음으로 실물 작업을 보여준다. 책을 다루는 태도에 따라 다양한 호칭이 사용자에게 부가되듯이, 책을 사물로 전유하는 사용자들에 의해서 책은 새로운 기능이 생성될 수 있다. 작가는 책의 인터페이스를 다른 사물로 전이시키는 연작 시리즈를 제작하였는데, 책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다양한 실험들을 재치 있게 풀어내고 있다. 그런 까닭에 이혜진의 책들은 때로는 수면제이자 접시받침이 되며, 쌓아올려진 책들은 의자로써 기능하게 된다.
이처럼 『시선의 해석』은 발전 가능성이 열려있는 젊은 디자이너 세 명이 주변을 바라보는 시선의 유형들과 그에 대한 해석을 담은 전시이다. 이경주가 의자에 장착된 카메라로 카메라의 주체와 피사체의 위치를 교란시킨다면, 김신령은 기하학적인 패턴의 반복과 착시현상을 이용하여 2D와 3D의 세계가 일치된다는 가설을 금속에 새겨 넣는다. 반면 이혜진은 책의 원 기능에서 벗어나 조형적인 특성에 천착하며, 일상 생활 속에서 책이 어떻게 전용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 전시기간에는 작품에 대한 개별 작가의 프리젠테이션이 있으며 각각의 작업들을 모은 아티스트 북이 함께 발간될 예정이다. 제로원디자인센터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공모전의 첫 결과물을 제시하는 자리로서 이번 전시는 국내 젊은 디자이너들의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장으로 작동될 수 있을 것이다. ■ 제로원디자인센터
Vol.20080824a | 시선의 해석-제로원 스팟 2008 작가공모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