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의 그림자

박민규展 / PARKMINGYU / 朴民奎 / sculpture   2008_0827 ▶ 2008_0902

박민규_두개의 달_스테인리스, 알루미늄, 현무암_430×700×150cm_2008

초대일시 / 2008_0827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토포하우스 TOPOHAUS 서울 종로구 인사동11길 6(관훈동 184번지) Tel. +82.(0)2.734.7555 www.topohaus.com

상황 속의 조각 ● 이제 조각 앞에서 거리를 유지하고 느긋이 바라보기만 하는 것은 멋진 일이 아니다. 작품은 직접적인 호응을 원한다. 관람자가 작품을 바라보는 전통적인 관조자(beholder)로 머물기는 어렵게 되었다. 작품의 일부로 함께 참여하는 관객(audience)이 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작품이 그 자체로 존재하고 작가가 부여하는 의미대로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과 호흡하면서 상황과 역사 속에 던져진 채로 끊임없이 의미를 만들어가는 존재인 것이다. 로잘린드 크라우스의 말대로 "화자의 목소리에 구속받지 않고 세계에 던져진 문장과 같은" 것, 현대조각은 무엇보다도 그런 의미와 함께 우리 곁에 있다.

박민규_오아시스_스테인리스, 알루미늄, 오석_500×500×120cm_2008
박민규_이면의 그림자1_스테인리스, 알루미늄, 오석_500×500×120cm_2008

박민규의 작품세계는 이런 현대적 조각 경향에 잘 어울리고 있다. 그의 작품을 보면 반짝반짝 빛나는 표면이 특징적이다. 그 빛나는 금속은 언제나 반영상을 포함할 수밖에 없다. 물론 그 반영은 오목하고 고르지 못한 표면으로 인해 크게 왜곡되어 보인다. 그 왜곡 영상조차 한가지로 결정적이지 않다. 보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미동하면 그 형상에는 변화가 생긴다. 테두리 쪽에는 주름까지 있다. 그만큼 비친 모양은 변화가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한한 변화가 있는 화면과 같이 빛나는 조각품. 그래서 작품 자체의 완결성을 위해 극단의 제한과 엄격을 요구하던 모더니티의 이상은 이 작품들에서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박민규_이면의 그림자_스테인리스, 알루미늄, 오석_500×500×120cm_2008
박민규_이면의 그림자_스테인리스, 알루미늄, 오석_500×500×120cm_2008

작가가 끊임없이 추적한 자연의 형상은 작고 섬세한 것이었다. 작품 한가운데서는 조개나 소라, 달팽이 같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 형상 자체, 즉 형상의 이미지를 탐구한 것은 아니다. 형상 자체보다는 그 형상 속에 있는 수많은 무늬, 그 형상이 만드는 파장과 여운을 보려했다. 작가는 그 속에서 무한히 많은 것, 이 세상 모두를 담을 수 있을 만큼 다양하고 넓고 큰 것이 담겨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을 담고 있는 조각, 거기서는 형상 자체의 내적 구조가 진정한 조각의 의미가 아니라, 그것이 경험되는 '상이성'이 조각의 의미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의미는 형태들이 경험의 공간과 맺는 '관계'에 의해서 발생된다. 그 양상의 일단을 우리는 그 형상을 뒤에서 감싸고 비춰주는 반사 영상으로 경험해 볼 수 있었다. 작품들은 공간에 나타나서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이미 존재하는 내적인 틀이나 구조로 이해하는 전통 조각의 방식은 거부된다. 결정적인 형태가 아니라 시간 속에서 스스로를 나타내는 조각이다. 전적으로 긴장된 표면에서만 의미가 발생하고 있다. 작가의 심리적 공간도 그다지 중시되지 않는다. 사적인 특성을 기반으로 하지 않고 공간이라는 전시 상황에 조각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박민규_Eclipse_스테인리스, 알루미늄_지름 750×180cm_2008
박민규_Eclipse_스테인리스, 알루미늄_지름 750×180cm_2008

박민규의 작품은 유일성이나 사적(私的) 측면의 상당부분을 제거하고 있다는 점에서 예술의 엘리트주의나 예술가의 독점 행태에 대한 반성을 보여준다. 사적인 공간보다 공적인 공간에서 의미가 발생한다는 새로운 가치관의 제안이라 볼 수 있다. 들뢰즈(G. Deleuze)의 유명한 개념, 의미 발생 장소로서의 '표면'이나 의미 발생의 중요 계기로서의 '사건'은 이에 대한 적절한 응답처럼 보인다. 작품의 반짝이는 표면이나 작은 형태의 세부들, 작은 모양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구성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표면에 대한 경도라 할 수 있다. 또한 작품의 내적 구성보다 공적 공간을 중시하는 것도 작품이 경험되는 곳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주목하는 것으로 이해되기에 충분하다. 이와 같이 드넓은 외부와 만나 살아 숨 쉬는 조각, 거기에서라야 우리도 작가의 심리 공간을 넘어 무한한 예술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 ■ 최형순

Vol.20080827b | 박민규展 / PARKMINGYU / 朴民奎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