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팅 floating

정지영展 / JUNGJIYOUNG / 鄭智英 / photography   2008_0828 ▶ 2008_0917 / 일요일 휴관

정지영_flaoting#4_디지털 프린트_80×100cm_2008

초대일시 / 2008_0828_목요일_06:00pm

갤러리 보다 기획 공모작가展

관람시간 / 10:00am~09:30pm / 토요일_10:00am~04:4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보다 GALLERY BODA 서울 서초구 서초동 1461-1번지 한라기산빌딩 2층 Tel. +82.(0)2.3474.0013 www.bodaphoto.co.kr

『플로팅(floating)』은 사전적으로 "떠있는, 떠다니는, 고정되어 있지 않은, 유동하는"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 즉, 『플로팅(floating)』이 재현한 일상의 사물들은 나의 기억과 경험, 감정을 그대로 반영하면서 부유하고 있다."나는 어디에 있는 걸까?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들은 항상 스스로를 불안하게 하거나 때론 우울하게 만들기도 하며 세상에 대한 강박신경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일상은 소비적이고 정신은 혼란스러우며 존재는 불안하다. 나는 어디에도 고정되어 있지 않고 세상이라는 공기 안에 떠 다니는 듯하다. 여기가 어디인지 인지할 수 없고 무언가의 경계에서 부유하는 느낌이다. ● 나의 이러한 혼란스러움은 일상의 사물들과 연결되어 내면의 의식과 부유하는 불안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 즉, 『플로팅(floating)』은 일상 속에서 나의 기억과 경험, 감정을 반영한 사물들의 재현이며 무료한 일상이 아주 새롭고 낯설게 보이는 순간의 재현이다. 이러한 일상과 일상의 사물이 재창조되는 순간의 기록이며 재현인 『플로팅(floating)』은 현실을 초월한 또 다른 의미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정지영_flaoting#5_디지털 프린트_80×100cm_2008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길거리를 지나가면 많은 사람들과 부딪힌다. 어떤 때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물건들 속에서 불안하기도 하며 어지럽다. 며칠에 한번씩은 앞 동의 아파트에서는 이사를 가고 이사를 들어오고, 지나가는 차 소리는 소음에 가깝다. 도시는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이다. 우리는 그 일부분으로서 생산과 소비를 담당한다. 어떤 이들은 하나의 완제품을 위해 일부분을 기여한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완제품을 소비한다. 그만큼 이 이상한 유기체 속에서 자신이 느끼는 생산은 작을지 몰라도 소비는 더욱 크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소비를 함으로 인해서 느끼는 존재감이 더 크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 15여 년간 서울에 거주하면서 20대 초반에 아주 단출했던 살림은 조금씩 늘어나 이제는 웬만한 한 가족의 그것만큼은 되는 것 같다. 이것들은 필요에 의해서 혹은 욕구에서 의해서 소비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들이 없으면 곧 불편함을 느낀다. "나는 소비한다. 고정되어 있지 않고 세상이라는 공기 안에 떠 다니는 듯하다. 여기가 어디인지 인지할 수 없고 무언가의 경계에서 부유하는 느낌이다."

정지영_flaoting#7_디지털 프린트_80×100cm_2008

사물에 대한 지속적인 관찰과 사유는 사물과의 관계를 통해 나의 존재를 확인하며 존재의 본질을 지각하고 인식하는 과정이다. 나는 일상적 공간 안에서 주변의 사물들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그 사물들을 사용하면서 관계를 맺는다. 사물들의 존재와 가치는 내 개인의 기억과 경험, 사유를 반영하면서 새롭게 재현되고 해석된다. 부유하는 내면의 의식과 불안, 일상이 사물과의 관계 속에서 적극 개입되면서 자아와 존재의 본질을 성찰한다. ● 쉽게 지나치기 쉬운 개인의 일상과 내면의 기억은 무료할 수 있지만 때론 매혹적인 삶의 본질로 다가올 수 있다. 작고 소소한 일상의 사물들은 깨지고 고장이 나면 버려 질 수 있는 하찮은 것들이지만 내게는 "애틋하고 소중한" 나의 일부가 된 것들로, 나라는 존재와 행위를 성찰할 수 있는 사물들이다. 본인의 작업은 이러한 일상과 내면의 기억을 기록하듯 재현한 일상의 작은 사물들을 통해 나를 이해하고 나아가 타자와 세상을 바라보고 그들과의 소통을 시도한다. ● 촬영된 오브제들은 나의 영역 안에서, 통제 안에서 현재 사용하거나 이미 나로 인해 소비된 제품들이다. 그리고 누구나 흔히 접할 수 있는 아주 일상적인 것들이다. 아주 사소한 물건이라도 단지 내가 소비하고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것은 나를 지시하며 그것을 통해 나의 존재에 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있다. ● 거의 20여 년 전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존 버거 (John Berger)는 미술과 대중문화, 이데올로기에 대해 「보는 방법 Ways of Seeing」이라는 TV 프로그램을 진행하였고 동명의 책을 펴냈다. 그 프로그램과 저작이 제기한 문제는 이 책이 다루는 의문들과도 거의 동일하다. ● 사진이나, 책, 텔레비전, 엽서와 같은 매체를 통해 미술작품이 재생산 되는 방식은 현실이 문화적 제도의 중재에 의해서 비로소 '존재하게 되는' 방식과 유사하다. ... (중략) ... 그것을 인식하기 위해, 또 그것을 느끼기 위해-어떤 의미에서, 존재하거나, 나 자신으로 실존하기 위해-사람은 문화 속으로 들어가야만 하며 문화적 코드 (code)와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개인의 정체성은 자신의 바깥에 존재하는 것을 그 기반으로 두고 있다. ( 박이소(역) 인용,『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정지영_flaoting#12_디지털 프린트_80×100cm_2008

우리는 인간이 아닌 사물, 그 중에서도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인 물건을 그냥 흘겨 보거나 시선의 주변부로 내치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물건의 예술적 어휘 내에서 신뢰할 만한 시각적 주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사진들은 대상의 물성을 가지고 있지만, 사진으로 재현되는 방식으로 인해 개념적으로 변모한다. 나의 눈을 통해, 사진을 통해 사소한 물건들은 일상성 객관성에서 벗어나 시각적 상상력을 부여 받는다. 즉 "인덱스화된 단편"으로써의 의미를 갖게 된다. ● 이러한 평범한 사물들을-시선의 주변부로 내쳐진- 바라보고, 그것들의 주위를 다시 둘러보는 행위 속에서 새로운 이미지가 출현한다. 본인의 작업에서 잘려나간 사물의 이미지는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부분을 상상함으로써 또 다른 관계를 형성한다. ● 프레임은 존재하지만 사각형의 모양으로 잘려있다라고 규정지을 수 없으며, 'out of focus'를 통한 흐림의 효과와 하이키의 톤으로 인해 이미지는 확장되어 인간의 불완전한 시각적 인상으로 비쳐진 것처럼 보인다. ● 나는 지금 내가 타이핑을 하면서 스크린에 집중을 하는 동시에 눈과 뇌는 주변을 모니터링하고 있다.-눈동자는 컴퓨터를 향하고 있지만 마치 흘겨 보듯이 왼 편의 스탠드를 보고 있기도 하다. 이것은 우리의 무의식적이며 본능적인 봄 (seeing)이다. 즉 의미가 부여된 틀 안이 아닌 'around frame', 혹은 틀 주변에서 서성거리고 있고 이미지는 마치 공기중의 깃털처럼 떠다닌다. 프레임 안으로 들어온 이미지는 나와 소통하고 그것의 인식적 단편들은 나만의 방법으로 개념적 이동을 한다. 확장되고 발산되는 새로운 추상적 물성을 지는 사진으로 재창조되는 것이다. ● 이번 작업에서 본인은 250mm 망원렌즈와 4x5 카메라를 사용하였다. 일반적으로 망원렌즈는 분명한 이미지를 얻기 위해 원경에 정확히 초점을 맞추고 조리개를 꽉 조여 활용된다.

정지영_flaoting#16_디지털 프린트_80×100cm_2008

그러나 여기서는 작은 사물들을 최대한 다가가서 촬영-접사-했는데, 카메라에서는 주름막을 되도록이면 길게 늘려야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그 만큼, 심도는 얕아지기 마련이다. 이것은 아주 일부분만 초점이 맞고 다른 부분은 흐려지는 효과를 주게 되는데 아주 짧아진 심도 덕분에 배경의 자세한 부분을 흐리게 할 수 있고 또한 전체적으로 그윽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었다. 이러한 촬영 방식은 서로 다른 공간적인 투시들을 납작하게 만들면서 낭만적이고 시적이며 몽환적이며 추상적인 느낌을 주게 된다. ■ 정지영

Vol.20080828b | 정지영展 / JUNGJIYOUNG / 鄭智英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