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S 9th

홍익대학교 회화과 대학원 9번째 그룹展   2008_0908 ▶︎ 2008_0912

초대일시_2008_0908_월요일_04:00pm

참여작가 강효진_구영웅_권성운_김성호_김수향_김영지_김은_신소영_안가영 양소정_염광필_용관_우상희_유혜원_김준모_김지영_김지윤_김현주 김혜원_다이아_라지현_이동조_이민경_이윤_이은정_이지선_전영진 정보경_문미영_박경작_박미경_박수형_박영희_백종훈_서웅주 조미예_조세진_최명숙_최선희_최윤정_한정원_함영희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HONGIK UNIVERSITY 서울 마포구 상수동 72-1번지 문헌관 4층 Tel. +82.2.320.1206

작은 차이가 생성하는 무한한 미술의 상상력 ● 홍익대학교 대학원 회화과 석사과정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꾸리는 연례 기획전 『G.P.S(Graduate School of Hongik University Department Painting Second Semester)』에 대해 논하고자 하는 이 글의 서두를 20세기 초반 독일의 한 뛰어난 문예비평가가 정의한 '상상력'으로 시작해 보자. ● "상상력이란 무한히 작은 것 속으로 파고들어갈 줄 아는 능력이고, 모든 집약된 것 속으로도 새로운, 압축된 내용을 풍부하게 부여할 줄 아는 능력이다. 요컨대 상상력은 어떤 이미지이든 접어놓은 부채로 여길 줄 아는 능력, 그 부채가 펼쳐져야 비로소 숨을 쉬게 되고 또 새로이 펼쳐진 그 폭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특성들을 내부에서 연출해 보이는 그러한 능력이다." (발터 벤야민_김영옥, 윤미애, 최성만 역_『발터 벤야민 선집 1』_길_p. 116.)

강효진_구영웅 권성운_김성호

매우 아름답게 우리의 사고를 자극하는 위 문장의 진의가 무엇일까? 아니 꼭 정해진 진짜 뜻은 아닐지라도 여기서 우리는 어떤 생각을 피워 올릴 수 있을까? 우리는 흔히 상상력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거창하고, 전무후무하게 새로운 어떤 것을 창출하는 능력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위 문장을 쓴 벤야민에 따르면, 오히려 상상력은 이미 극단적으로 세분화된 것 .정교한 것.완성된 것 속으로 '침투'하는 능력이자 기존의 세계로부터 또 다른 새로움을 '전개'해내는 능력, 그 세계가 가진 생명력과 특수성을 '발현'시키는 능력이다. 이것이 요컨대, '부채'의 비유를 통해서, 그 부채의 접음과 펼침에 따라 생명 활동의 본원인 '숨 쉼'이 결정된다는 말을 통해서, 또한 그 부채의 폭으로부터 숨겨져 있던 '사랑의 속성'이 나타난다는 수사학을 통해서, 벤야민이 말하고자 한 다른 차원의 상상력일 것이다. 특히 그는 이와 같은 상상력의 매개로 '모든 이미지'를 지목하고 있는데, 우리는 여기서 새삼 상상력과 이미지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깨닫는다.

김수향_김영지 김은_김준모

이미 너무나 많은 새로움이 출현했고, 때문에 어찌 보면 이미 지나칠 정도로 완숙해진 문화의 시대를 사는 21세기 우리에게, '무(無)로부터의 창조'라든가 '절대적으로 획기적이고 혁명적인 실험이나 시도'는 불가능해 보인다. 미술 분야에서도 이는 예외가 아닌데, 그런 인식을 배경으로 포스트모더니즘 미술 이후 '패러디', '혼성모방', '해체' 등이 미술의 주요한 문법 내지는 방법론으로 채택되고 심지어 남용된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지점에서 그런 경향에 대해 '창조성과 상상력의 부재'라고 비판적으로 단죄만 할 것이 아니라, 벤야민이 논한 맥락에서의 상상력으로 다시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요컨대 이미 있는 것을 쪼개고, 비틀고, 뒤집고, 재구성하는 이차적 상상력의 무한한 가능성.

김지영_김지윤 김현주_김혜원

G.P.S의 풍경 ● 서두가 조금 길어졌는데, 우리시대, 지금 여기서 미술을 하고 작가의 꿈을 키워가고 있는 이들에게 사람들이 어떤 예술의 상상력을 기대할 수 있다면, 그 상상력에서 특수성을 발견할 수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위와 같은 맥락에 있을 것이라는 점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뜻이다. 홍대 대학원 석사과정 학생들의 작업공간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그들의 학교 내 실기실에서 우리는 거대 서사가 아니라 무한히 잘게 나눠지는 이야기, 위대한 천재의 면모보다는 범속한 삶의 단면들, 선이 굵은 실험이 아니라 파편적이고 재생산적인 미술의 시도들을 마주한다. 가령 그 이야기는 자신의 일상에 대한 기록이거나 사물에 대한 기호(taste), 생활의 경험과 추억 등등 지극히 개인적이고 잡다하며 소박한 내용으로 채워진다. 또 가령 자신의 어질러진 방이나 자기가 사는 동네에서 일어난 대수롭지 않은 사건, 온갖 곳에 널려있는 대중문화의 레디메이드 이미지(ready-made image) 등등 누구나 살면서 겪는 일과 익숙해진 대상들을 모티브로 다룬다. 물론 그런 내용과 모티브를 요즈음의 젊은 작가들은 때로는 기술의 힘을 빌려서, 때로는 자신의 이차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또 때로는 대중문화의 유행 코드에 영향을 받아 다채롭게 '변용'한다.

다이아_라지현 문미영_박경작

이렇게 현재 한국의 젊은 예비 작가들, 즉 『G.P.S』에 참여하는 이들의-물론 그 중에는 이미 작가로서 이름을 걸고 활동하는 이도 꽤 있다-미술을 뭉뚱그려 얘기하기는 쉽다. 하지만 이 경우, 사실 개별 작품들의 특수한 면모를 간과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좀 더 세밀하게 그 각각의 작품들과 그들의 상상력이 발현하는 이미지의 특이성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박미경_박수형 박영희_백종훈
서웅주_신소영_안가영

일반명사 '회화'를 파고들기 ● 일견 모두 비슷하게 사각형 평면 위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홍대 대학원 회화과 실기실의 풍경은 전형적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그 풍경은, 서구 회화사에서 선조 격에 속하는 14세기 화가 지오토(Giotto di Bondone)에서부터 근대 회화의 거장 쿠르베(Gustave Courbet)와 세잔(Paul Cezanne)을 거쳐, 20세기 모더니즘 회화의 대표작가 폴록(Jackson Pollock)이나 로드코(Mark Rothko)에 이르기까지, 깨지지 않은 전제 조건인 '평평한 표면에 이미지 그리기'를 여전히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것이다. 그 전제가 회화의 축적된 역사과정에서 '일반명사로서의 회화'를 만들어냈으므로, 오늘 회화과 실기실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작품이 '그림'이라는 사실이 딱히 놀랍지는 않다. 하지만 그들의 그림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서, 우리는 새삼스럽게 회화가 여전히 한정된 범위 너머 다양한 소재를 다룰 수 있고, 고갈되지 않는 표현 방법론을 개발할 수 있는 미술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양소정_염광필 용관_우상희

『G.P.S』전에 참여하는 이들의 그림은 현재 한국현대미술계와 국제 미술 상황(international art scene)에서 유행하는 코드와 어느 정도 일치하는 동시에 차이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유행 코드는 대략, 사진이미지를 바탕으로 극사실적인 묘사에 치중하는 그림, 팝아트의 계보에 속하는 그림-구체적으로 그래픽과 유사한 미감의 그림이나 내용이 쉽고 정서적으로 가벼움을 지향하는 그림들-, 현실의 이미지와 상상의 이미지를 적절히 배합한 그림 등이다. 가령 구겨진 사진을 다시 유화물감으로 캔버스에 하이퍼 리얼(hyper real)로 재현하는 서웅주가 첫 번째 경우에 속한다면, 미키마우스의 귀에 푸른 눈의 귀여운 소녀를 만화 캐릭터처럼 그리는 김혜원은 즉각적으로 일본작가 요시토모 나라의 팝아트 취향과 연결된다. 또 천진무구한 얼굴의 아이들을 기이한 배경과 조합시켜 독특한 분위기의 삽화로 정교하게 그려내는 신소영의 경우는 좀 전에 말한 유행 경향이 헤쳐 모여 재구성되는 면모를 보여준다.

유혜원_이동조 이민경_이윤

그러나 이들의 그림이 단순히 주류 미술의 유행을 좇는다고는 말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가시적으로든 내용상으로든 이들 작품에는 그 유행 경향과 변별되는 '미세한 차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차이에 대해 작품을 미적으로 수용하는 감상자의 입장에서 정의해 보자면, '이미지의 소박성'과 '이야기의 구체성'이 될 것이다. 『G.P.S』참여 작가들 그림에서는 서구 현대 회화나 근래 전세계적으로 엄청나게 각광받고 있는 중국 현대 회화에서 감지하는 허장성세한 스펙터클, 창백한 개념, 거창한 수사, 과장된 회화적 제스처, 화려한 표면 효과를 찾기 어렵다. 예컨대 이들에게는, 사진을 차용해 씀으로써 회화 자체의 존재론적 본질을 물었던 리히터(Gerhard Richter)의 작업 개념보다는 우리 주변에 질리도록 흔하게 널려있는 기술복제 이미지를 그림으로 패러프레이즈 한다는 태도가 더 강하다. 또 왕광이, 위에민준, 장샤오강 등 현재 중국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의 그림들이 정치색의 패턴화, 감정의 과장, 대량 생산품처럼 균일화된 작품 수준을 보여준다면, 『G.P.S』작가들의 그림은 어떤 내용을 다루든 노골적이지 않고, 선정적인 자극보다는 서정적인 분위기를 지향하며, 한 작가의 작품들 간에도 편차가 존재한다. 물론 이를 두고 현재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국제 미술계의 수준을 따라 잡지 못하고 있다거나 아직 학생이기 때문에 작품의 내적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이라 폄하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러한 차이들은 어떤 수준의 차이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지금 여기의 젊은 작가들 회화가 잠재하고 있는 특이성으로 재고할 문제이다. 그러니까 이들의 그림은 일반명사로 고착된 회화, 특히 서구 중심이나 중국과 같이 신흥 지역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세계 주류미술의 획일화를 파고들 수 있는, 그 유행 코드의 폭력성과 획일성을 깨뜨릴 수 있는 '차이'를 가진 것으로 봐야 하는 것이다.

이은정_이지선 전영진_정보경

앞서 언급한 작가들의 그림들 이외에도 우리는 그 차이를 또 다른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친구들과 찍은 스티커 사진을 키치 회화(일명 이발소 그림 류)로 옮겨온 김영지의 경우는 이미 전형적이 된 팝아트의 모티브 범주와 도상학을 깨뜨린다. 어린 시절 갖고 놀던 딱지 형태에 '페라리'나 '테리우스'를 새겨 넣은 함영희의 원형 캔버스 그림은, 왕광이가 중국 인민의 혁명 장면 위에 'Ferrari'를 써 넣은 그림에 견주면 극히 사적(私的)이지만 후자보다 덜 도식적으로 보인다. 자신의 셀프 포트레이트를 장난감 같은 소품과 결합하여 이미지의 무대를 연출한 권성운의 사진, 자신을 신화 속 여신 또는 영화 속 팜므 파탈로 분장해 찍는 최은영의 사진은, 규모도 소박하고 개념적으로 정교하지도 않다. 하지만 그들의 작품 이미지는 요즘 세계 사진의 대세인 즉물적 사진과는 다른 이미지의 환영적 즐김을 선사하고, 신디 셔먼(Cindy Sherman) 류의 자기 연출 사진과는 다른 맥락에서 정체성의 정치학을 전개할 가능성을 보인다. 또 정보경의 붓 터치가 강조된 반(半)추상회화나 최선희의 목탄 드로잉은 폴록이나 리히터의 '추상회화(abstract painting)' 같은 서구 모더니즘 회화의 자기 지시성(self-referentiality)과는 큰 상관없이, 그리기의 현재성을 즐기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조미예_조세진 최명숙_최선희
최윤정_한정원 함영희

『G.P.S』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의 작품 전부를 언급할 수는 없었지만, 이상에서 논한 내 말이 어느 정도 타당성을 갖는다면, 우리는 이제 이쯤에서 홍대 대학원 회화과 석사과정 학생들 다수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익숙해진 일반명사 회화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작은 차이라도 만들어내려는 새로운 상상력의 시도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나는 『G.P.S』참여 작가들뿐만 아니라 미술 현장, 그리고 미술 교육에 관계된 우리 모두가 그 '차이'를 발견해야 한다고 본다. 더 나아가 기꺼이 그것을 새로운 한국현대미술의 가능성으로 채택할 때, 그리고 그로부터 의미를 만들어낼 때, 미술의 생명력이 보다 활기차게 불 지펴지리라 생각한다. ■ 강수미

Vol.20080905d | GPS 9th-홍익대학교 회화과 대학원 9번째 그룹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