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끝 마음_The mind on reflection

송유정展 / SONGEUJEONG / 宋侑貞 / painting   2008_1001 ▶︎ 2008_1007

송유정_약간의 푸름_한지에 채색_110×100cm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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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월~금_10:00am~06:30pm / 주말, 공휴일_10:00am~06:00pm

공화랑_GONG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23-2번지 Tel. +82.2.735.9938 gonggallery.com

자기차용과 자기반성적인 경향성의 회화 ● 작가들의 작업을 보면 전작과 근작이 뚜렷하게 구별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일관성을 유지하는 경우가 있다. 큰 틀에서 보면 전자의 경우 역시 후자와 마찬가지로 결국에는 일관성이라는 범주로 귀결되기 마련이지만, 적어도 외관상으론 서로 다른 계기와 동인에 의해 변화와 차이를 보인다. 송유정의 작업은 이 중 후자의 경우에 속한다. 근작은 전작과의 연속적인 관계를 견지하고 있으며, 일관성이라는 큰 틀 내에서 일정한 차이를 파생시키고 있다. ● 그런 만큼 송유정의 근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작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듯싶다. 전작을 보건대 작가의 작업이 순수한 회화 즉 그린다는 행위만으로 성립돼 있지는 않다. 예컨대 오브제를 차용한다거나, 종이를 찢어 붙인다거나, 나아가 화면에 바느질을 하는 등의 여러 이질적인 기법과 방법들이 동원되고 있으며, 여기에 담채를 연상시키는 엷은 채색이 어우러져 있다. 그 과정이 일관되게 적용되기보다는 그때그때의 기분과 감흥에 따라 여러 방식이 교차하며, 때로는 일종의 의도된 우연성이 개입돼 예기치 못한 화면효과를 연출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화면 위에 거즈 같은 천 조각이나 한지 조각 그리고 가녀린 실을 붙여 고정시킨 연후에 그림을 그린다. 이외에도 바느질이나 박음질 기법을 통해 그 흔적이 실과 함께 화면에 드러나 있다. 때로는 이렇게 오브제를 붙이거나 박음질한 화면 위에 한지를 덧붙여 그 반투명한 층 위로 은근한 색감과 질감 그리고 자연스런 요철효과가 두드러져 보인다. 이렇듯 천조각과 실 등의 평면 오브제와 함께 그 위에 덧그린 그림이 상호 내통하면서 유기적인 조화를 일궈내고 있다. ● 이로써 송유정의 전작은 그 실체를 가늠할 수 있는 형태들, 이를테면 나무나 산의 능선, 집이나 자동차 등의 형상과 함께 비정형의 얼룩과 흔적이 서로 어우러진 중층화된 화면을 보여준다. 이로부터 오브제에 의한 비정형의 요철효과와 함께 이로 인한 물질감이 두드러져 보이며, 투명한 담채와 박음질한 흔적이 어우러져 일정정도 여성(주의)적 감성이 느껴진다. 개인사(예컨대 가족여행 같은)를 재구성한 서사가 색 바랜 기억의 편린들을 불러일으키는가 하면, 마치 들풀이나 들꽃의 정념과 분위기 그대로를 화면에 옮겨 놓은 것 같은 자연스럽고 은근한 감흥을 자아낸다.

송유정_섬의 섬_한지에 채색_110×100cm_2008
송유정_도로 끝 강냄새_한지에 채색_130×162cm_2008

송유정의 근작이 전작과 갖는 관계는 좀 특별하다. 일반적으론 그 관계가 암시적인데 반해, 작가의 경우에는 그 관계가 보다 직접적이다. 그러니까 전작을 근작의 모태로 삼고 있다. 다시 말해, 전작의 부분 이미지를 확대 복사한 후 이를 화면에다 전사한 연후에 그 본을 그대로 덧그리는 식이다. 그림을 이렇게 마무리하기도 하지만, 때론 여기에 자의적인 색채나 형태를 부가해 변형시키기도 한다. 여하튼 그 기본적인 형태가 전작에서 유래한 만큼 전작과의 유기적인 관계(이를테면 전체와 부분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근작만의 변별성을 갖는다. ● 무엇보다도 전작과 근작과의 차이는 전체 이미지 중 일부를 차용해 확대 복사한 클로즈업 기법에서 비롯된다. 상식적으로 사물은 다른 사물과의 그리고 배경화면과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감지되지만, 클로즈업된 사물은 그 유기적인 관계를 상실할 뿐만 아니라 시각적인 면에서 추상적인 패턴을 띠게 된다. 그러니까 클로즈업은 현실과 실재를 추상화시키는 한 방법인 것이다. 이는 현대회화가 특히 사진의 등장 이후 그 영향을 받음으로써 널리 보편화된 것으로서(현대회화가 사진으로부터 받은 영향은 크게 사실적 재현과 시점의 문제로 집약되며, 클로즈업은 이 중 시점의 문제와 관련이 깊다), 작가의 작업에서도 그 영향의 일면이 확인된다. ● 이외에 전작과의 두드러진 차이는 색채의 자의적인 사용을 들 수 있다. 담채에 바탕을 둔 전작의 색채감정이 투명하고 은근한 기분을 자아냈다면, 근작에서는 현란한 원색대비가 강조되면서 상대적으로 더 불투명하고 강렬한 느낌을 준다.

송유정_멀리 짐작의 바다_한지에 채색_130×162cm_2008
송유정_생각 끝 마음_한지에 채색_130×162cm_2008

이처럼 송유정의 작업은 대략 투명한 화면에서 불투명한 화면으로, 그 표면의 요철이 만져지는 물질적인 화면에서 비물질적이고 편평한 화면으로, 일정한 형상들을 변형시킨 (반)구상적인 화면에서 추상적인 화면으로 변화했음이 감지된다. 특히 형상성과 관련해서, 비록 여러 비정형의 얼룩이나 흔적 등의 추상적인 형태가 전작에서도 확인되고는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사를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를테면 흐릿해진 기억이나 어떤 분위기를 재현하는 등의)으로서, 그 자체 추상적인 형태로는 볼 수 없다. ● 한편, 근작은 전작의 부분 이미지를 확대 복사함으로써 일종의 자기차용의 한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차용(패러디)은 기존의 이미지를 숙주 삼아, 이를 자기화하는 일종의 기생의 논리이다. 이로부터 오마주(전통적으로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서사를 현대적인 서사 또는 개인적인 서사와 결부시키는)와 알레고리(기왕의 결정적인 의미를 풀어 헤쳐 이를 재해석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같은 현대미술의 주요한 키워드가 유래한다. 현대미술과 관련해서 차용이 그 진정한 의미를 발휘하는 지점은 다름 아닌 세계를 변혁시키는 힘 때문이다. 즉 이미지는 사실상 세계에 대한 인식을 재현한 것이며, 따라서 차용을 통해 기존의 이미지를 변형하는 행위는 결국 세계(혹은 세계에 대한 인식)를 변혁시키는 행위와 동격인 것이다. ● 문제는 대개 차용의 계기가 자기 외적인 장(이를테면 미술사나 대중문화와 같은)에서 찾아지기 마련인데, 작가의 경우는 특이하게도 자신의 전작을 차용한다. 아마도 이런 자기차용에 대해서는 그 자체 자기반성적인 경향성의 한 사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여하튼 차용이 단순한 차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궁극적으론 차용된 이미지를 변형하고 재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겨냥한 것처럼, 작가 역시 자기차용을 통해 자신의 작업에 대한 또 다른 독해 가능성을 발견한다. 그러니까 자신의 작업을 전용하고 대상화하는 과정을 통해 일종의 상호 텍스트성을 실현하며, 더불어 창작과 함께 비평기능이 중첩된 중의적 의미구조를 실현하며, 무엇보다도 이런 여러 이질적인 계기들이 투사되고 포개진 이중적이고 다중적인 존재의 결을 드러낸 것이다.

송유정_끝이 맞닿아_한지에 채색_110×100cm_2008
송유정_숨소리_한지에 채색_160×100cm_2008

이로써 송유정의 근작은 추상적이고 회화적인 화면효과가 두드러져 보인다. 차용된 오브제를 확대 복사하는 과정을 통해 처음의 물질감이 상실되고 해체되면서 의외의 이미지를 파생시키는데, 그 이미지가 여전히 바느질한 흔적을 암시하는가 하면, 화면에 부착된 조각천이 평면적 이미지로 전이되고, 클로즈업된 거즈 천의 복사 이미지가 흡사 드리핑 즉 일종의 흘리기 기법을 연상시킨다. 오브제의 차용과 판법에 의한 변형 그리고 여기에 회화적인 과정이 중첩된 작가의 작업은 구상적이고 서사적인 형태와 추상적인 평면, 여성주의와 추상, 재현적인 형상과 암시적인 형상이 그 경계를 허물고 서로 삼투되는 어떤 지점을 드러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차용의 과정을 매개로 해서 자기반성적인 경향성의 한 사례를 예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 고충환

Vol.20081002d | 송유정展 / SONGEUJEONG / 宋侑貞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