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위한 소통

이긍희展 / LEEGUENGHEE / 李兢熙 / painting   2008_1002 ▶︎ 2008_1009 / 전시중 무휴

이긍희_생명을 위한 소통 4_종이에 아크릴채색_76×86cm_2008

초대일시_2008_1002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8:00pm / 특별전으로 전시중 무휴

샘터갤러리_SAMTOH GALLERY 서울 종로구 동숭동 1-115번지 샘터사옥 Tel. +82.2.3675.3737 www.isamtoh.com

자기 안에 잠든 거인을 발견한 사람 ● 몇 년 전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다. 아침 이슬과도 같은 인생(人生如朝露), 과연 내 안에 어떤 거인(巨人)이 잠자고 있고, 난 그를 어떻게 깨워야 하는 것일까. 혹시 그것이 내가 이 세상에 오게 된 소명(召命)은 아닐까. ● 「잠자는 집시(Sleeping Gypsy)」, 「뱀을 부리는 여인」으로 유명한 화가 앙리 루소(1844~1910)는 원래 세관원이었다.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것도 우리 나이 50세부터다. 또 80세를 내다보지만 현역 최고의 소설가로 활동하는 박완서 선생이 등단한 것도 40세가 넘어서였다.

이긍희_시간 속의 생명 2_종이에 아크릴채색_76×86cm_2008

살면서 누구나 겪는 생로병사生老病死, 희로애락喜怒哀樂의 탄탄한 경험 속에서 깊은 예술은 태어나고 완성된다. 어느 날 문득 매일 오르던 산에서 마주친 평범한 바위에 얼굴이 그려지고, 부러진 나뭇가지에서 말의 머리가 형상화되는 것을 체험하게 되는 이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말을 종종 들으면서 산다. 하지만 그 말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위에서 언급한 앙리 루소에 비견할 만한 작가가 있다. 그는 바로 MBC 사장, 한국방송협회 회장 등을 역임한 이긍희 작가다. ● 이긍희 작가는 1970년 문화방송에 입사해 25년이 넘게 「장학퀴즈」, 「웃으면 복이 와요」, 휴먼 다큐멘터리 「인간시대」 등 사람들의 기억 속에 깊이 남아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 제작한 방송 PD다. 1996년부터는 현장을 떠나 방송 경영에서 자신의 능력을 펼쳤다. 대한민국 방송대상 특별상, ABU(아세아, 태평양 지역 방송연맹) TV부문 특별상, 호암상 언론상을 수상하고 대통령 표창을 받았던 그는 후배 방송인들에게 귀감이 되는 스승이기도 하다.

이긍희_생명을 위한 소통 2_종이에 아크릴채색_86×76cm_2008
이긍희_생명의 순환 2_종이에 아크릴채색_76×86cm_2008

예술은 기술이 아니라 철학이다 ● 40여 년 동안 오로지 회사를 위해 살았던 전형적인 '회사맨'이었던 그가 어느 날 돌연 그림을 그리겠다고 나섰다. 4년 전, 그러니까 그의 나이 만 59세 때의 일이다. 故 정채봉 작가의 소개로 인연을 맺었던 조광호 신부(화가, 인천가톨릭대학교 조형예술대학 학장)가 그에게 그림을 그려볼 것을 권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사전 준비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장르가 미술이다"라는 말에 설득 당한 데에는 그가 그간 쌓아온 미술관 순례 등의 내공이 한 몫을 톡톡히 한 것으로 보인다. ● 그 후 지금까지 그는 가톨릭조형예술연구소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이젤을 펼쳐놓고 묵묵히 그림을 그렸다. 조광호 신부는 그에게 그림 그리는 기술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대신 그는 이런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고 한다. "아트는 기술이 아니라 철학이다." "그림에는 묘사하는 그림과 표현하는 그림이 있다. 당신이 그릴 그림은 표현하는 그림이다." ● 원시인들이 그림 그리는 법을 배우지 않고도 그림을 그렸듯, 이긍희 작가는 그렇게 자기 안에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캔버스 위로 옮겨놓기 시작했다. 기술적인 부분들은 조형예술연구소 직원들에게 묻고 눈동냥을 하며 익혀 나갔다. 때로는 캔버스 앞에 앉아 있는 것이 사방이 막힌 캄캄한 벽 속에 갇힌 것처럼 느껴져 붓을 들지 못했던 때도 있었다. 창작에서 오는 고민 때문에 퇴직한 후의 상실감이나 나이 먹어가는 데에 따르는 증후군 같은 것들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이긍희_시간 속의 생명 1_종이에 아크릴채색_76×86cm_2008
이긍희_생명을 위한 소통 3_종이에 아크릴채색_76×86cm_2008

사생대회에서 상을 받아본 적도, 학교를 졸업한 이후로는 붓을 잡아본 적도 없었던 그의 그림은 시간이 흐르면서 놀라울 정도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타고난 색채감각과 미적 감수성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서두름 없이 지속적으로 작업에 매진한 결과였다. ● "아직도 북아프리카의 도시, 페즈의 미로 같은 골목을 헤매는 기분이다. 나는 늘 내면의 항아리에서 무언가를 꺼낼 뿐이다. 하얀 화폭, 빈 공간은 두렵지만 일단 작업을 시작하면 '끊임없이 캔버스와의 대화'에 빠지게 된다. 캔버스에 몰입하면 온 세상이 그 면적으로 축약되고 그 속에 드라마가 있고, 쇼가 있고, 다큐멘터리도 있다."_작가의 말 중에서 ● 화면에서 대상을 보는 그의 시각은 추상적 언어에 의존하고 있지만, 재현적 표현의 관습에 충실하고 있다. 따라서 자유분방한 표현과 색채의 유희에도 불구하고 시점이 흩어지지 않고 어느 한곳에 머무른다. 결국 작가와 작품이 교감하게 되고, 그림과 관객이 소통하게 되는 즐거움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 이긍희 작가는 "아트는 펀(fun)"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그의 그림을 통해 즐거워지기를 희망한다. 인생의 2막, 예술 행위에서 또 다른 삶, 진정한 행복을 찾은 작가 이긍희의 전시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 홍종선

Vol.20081003i | 이긍희展 / LEEGUENGHEE / 李兢熙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