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연展 / CHUNGKYOUNGYEON / 鄭璟娟 / mixed media   2008_1002 ▶︎ 2008_1030 / 일요일 휴관

정경연_블랙홀08-20_캔버스에 혼합재료_80.3×100cm_2008

초대일시_2008_1002_목요일_05:00pm

2008 세오 5th 개관기념 초대 '정경연, 작가30년 기념展'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요일 휴관

세오갤러리_SEO GALLERY 서울 서초구 서초1동 1666-12번지 꿈을 꾸는 세오빌딩 2층 Tel. +82.2.583.5612 www.seogallery.com

'장갑'의 파노라마와 블랙홀의 파장 ● 2008년 작업을 만나기 위해서 정경연의 작업실을 찾았을 때 새로운 패턴의 작업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블랙홀시리즈들이 인상적이었지만 그 카테고리는 여전히 '장갑' 이었다. 그녀와 '장갑'은 30여년 동안 일체화된 이미지로 인식될 만큼 대표적인 상징이 되어버렸다. ● 1979년 미국에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에 귀국하여 정경연이 선보인 것들은 매우 생경한 탈영역의 작업들로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 「Untitled 79」로부터 시작되는 당시 「무제」시리즈는 그의 전공이었던 섬유미술을 근간으로하는 염색기법을 활용하면서도 강렬한 컬러와 스틱으로 창출된 오브제를 만들어갔다. 당시 공예와 회화의 영역을 넘나들었던 작업들은 「Untitled 80-8」,「Untitled 80-9」등으로 잇달아 실험적인 작업들을 발표했고 1976년경 처음 선보였던 장갑시리즈가 발표되면서 「Untitled 81」이 제작된다.

정경연_블랙홀08-47_캔버스에 혼합재료_60×130cm_2008
정경연_블랙홀08-48_캔버스에 혼합재료_60×130cm_2008

침염(浸染)기법과 원형의 신비 ● 이후 1985년경까지 「Untitled 83」과 같이 강렬한 컬러를 사용하면서 섬유조형을 넘어서 설치작업과 오브제의 형태를 자유롭게 포괄하였고, 미니멀적 관념 추상의 세계와 구상성을 다양하게 체험하게 된다. ●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것은 「Untitled 84-3」등에서 볼 수 있는 늘어뜨린 섬유막대들이다. 치렁치렁 각기 층을 이루면서 늘어져있는 이 원시정글의 넝쿨과도 같은 이미지들은 천으로 일일이 제작된 스틱들로서 당시 미니멀리즘의 트렌드와 연결되면서 원형의 신비를 세례했다. 그의 이 원시적 시리즈는 침염(浸染)기법으로서 염액(染液)을 끓인 후 천을 넣어 염색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 물론 이외에도 파라핀을 사용하거나, 먹물, 물감 등을 직접 칠하고 염색하는 과정을 거치지만 이러한 과정들은 평소 자신이 수학했던 염색기법과 동서양화의 회화적 수학경험을 적용한 것으로 당시 화단에서는 신선한 실험의식으로 평가받았다. ● 정경연의 작업에서 다른 하나의 커다란 변화는 이와 같은 샤먼적 표출과 함께 1983년부터는 보다 강력한 단색주의가 등장한다. 거의 흑백만으로 작업된 검은 장갑이나 손끝만을 여백으로 남겨놓은 작업들, 「Untitled 1988」에서 보여준 타피스트리나 섬유작업들의 형식과 연계되면서도 단색화된 작은 스틱들이 늘어져 있는 새로운 국면들을 연출한다. ● 당시 모노크롬의 현상을 보여주는 단색조에 대하여 그는 '불가(佛家) 인연'과 매우 밀접하다는 것을 언급한 적이 있다. 수백개의 장갑이 뒤엉켜 입체를 이루는 설치작업이나 화려한 색상이 혼재된 장갑들은 단순히 장갑의 의미를 넘어 어느 곳에서도 편재되지 않은 '평등'을 표현한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실제로 작품 제목을 '중생'으로 정한바 있으며, 색채나 전체 작업의 근간에 있어서도 막대한 영향을 받게 된다.

정경연_어울림06-09_캔버스에 혼합재료_72.7×60.6cm_2006
정경연_어울림07-74_M캔버스에 혼합재료_72.7×60.6cm_2007

색즉시공(色卽是空) ● 그녀의 작업은 평면과 입체, 강렬한 색채와 흑백, 형상과 비형상을 넘나들면서 '장갑'에서 '손'으로, '손'에서 인간의 단상으로, 대중과 구원, 염원, 화합, 평화, 소통, 희망, 평등, 관조 등의 다양한 언어로 변환해 왔다. ● 모태신앙이기도 했지만 1980년대 중반부터 더욱 몰입하기 시작한 불가의 인연은 이러한 다의적 작업내용과 함께 무색계열의 절제, 강렬한 색채와 조형적 요소를 넘나들면서 정경연의 심상을 유지해온 중요한 키워드이기도 하였다. ● 그 중에서도 『반야심경(般若心經)』의 한구절인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의 사상은 작가에게 적지않은 영향을 미친듯하다. 「Untitled 87」에서 「Untitled 90-D」「Untitled 90-0」「Untitled 90-L」까지 이어지는 모노톤의 변화도 그렇지만 "삼천배를 하고 산을 내려오면 작업이 많이 달라집니다. 색인지 무색인지 그 경계도 모호하구요..." 그녀 스스로도 즐겨 사용하는 불교적 용어들 중 바로 이 용어는 핵심적으로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 2003년에서 2005년 사이 제작된 바 있는 '중생'종이작업시리즈는 실과 박음질 등으로 만들어진 독특한 작업이다. 꼴라주처럼 덧붙여 박음질을 해가면서 염색된 종이 조각들을 하나씩 이어나가는 작업은 '인연'과 '인연'으로 이어진 인간들의 '연기설'을 조형적으로 말해주는 듯한 연관성을 지닌다. ● 한편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렌티큘러(Lenticula)'가 가미된 「블랙홀」시리즈들은 전혀 색다른 패턴으로 와 닿는다. 가운데의 렌티큘러를 중심으로 장갑들이 나선형으로 원을 이루면서 마치 우주의 블랙홀, 기의 파장 등을 연상케하는 시리즈들이 새롭게 탄생하고 있다. 바탕은 흑과 백으로 선택되고, 다시 마티에르를 추가하거나 역시 침염기법을 이용한 염색작업이 마치 수묵화의 발묵(潑墨)현상을 연상케 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선염을 이루고 있다. ● 작가와의 대화에서도 확인된 것이지만 이 시리즈의 해석에서 '기(氣)'의 의미를 전제할 수도 있으나 귀결되는 '원'이나 여백, 선염기법 등을 비롯하여 거대한 불교미술의 '혜안' '천수관음'을 연상케하는 많은 손 시리즈들은 불가적 인연과도 멀지않다.

정경연_어울림08-2_캔버스에 혼합재료_162.6×130.3cm_2008

'함몰'과 '확산'의 경계에서 ● 정경연의 작업은 지난 30년 동안 '장갑'이라는 일관된 메디움(medium)이 중심이 되었지만 그가 던지려고 하는 메시지나 형식은 다양했다. 여러 형태와 재료, 1차원에서 3차원을 넘나드는 유형을 구사했으며, 1990년대 초반부터는 이상에서 언급한 시리즈 이외에도 모놀리스(Monolith)처럼 거대한 입방체 작업이나 병풍처럼 입체화된 「Untitled 87」, 「Untitled92-A」를 제작하였고, 2004년 종이작업을 선보이면서 구멍이 뚫린 입체시리즈를 제작한다. ● 도조(陶造)작업을 통한 브론즈제작을 시도하고 타피스트리, 판화, 유화, 테라코다를 제작하기도 한다. 백남준을 기리기 위하여 자신이 직접 연희하는 장면이 삽입된 「Harmony」시리즈의 비디오 설치 등이 선보이기도 한다. ● 나의 작업 속에서 나타난 갖가지의 매재-섬유, 흙, 금속, 종이 등-는 섬유에 의했던 장갑을 단순히 다른 재료에의 번안이라는 논리에서가 아니라 작품자체에 내재하고 있는 생성의 적극적인 구현을 위해 확산될 수밖에 없었던 결과이다. 또한 그러한 확산 속에서 장갑이라는 기본단위는 나를 매재에 함몰시키거나 무모한 실험으로 끝나버리는 와중으로부터 나의 조형언어를 정제시켜주는 하나의 단서로 계속되고 있다.(정경연) ● 그렇다. 정경연의 작업은 '장갑'이라는 오브제를 통한 '함몰'과 '확산'의 경계를 반복하는 특수성이 있다. 매재, 즉 메디움 자체의 사용이 소재이자 주제적 성격을 동시에 수반하게 되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이와 같은 단일코드만으로 30년간의 미술계 흐름과 연결하는 과정에서 더욱 강하게 요구되었던 것이 바로 '다의성'의 해석이다. ● 이번 블랙홀작업에서 보여주는 장갑의 새로운 변신이나 백남준을 위한 「Harmony」시리즈 역시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정경연_Harmony installation_영상설치_가변크기_2007~8

'바느질의 미학'과 부드러운 조각 ● 많은 사람들은 그가 다루는 장갑이나 일체의 재료들이 기성제품을 사용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사용하는 장갑을 비롯한 스틱 등 일체의 메디움들은 직접 디자인하고 생산라인에 주문하게 된다. 제작과정 역시 실의 짜임이나 마감 때문에 직접 참여하는 경우가 많아서 사실상 구상에서부터 완성에 이르기까지 전과정이 작가의 노력이 없이는 어렵게 된다. ● 보존문제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장갑이라 하더라도 재료가 '실'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완전한 보존이 어렵다. 이러한 문제가 보완되지 못했던 과거의 작업들과는 달리 최근에 들어서는 바니쉬(Varnish)처리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상당히 오랫동안 보존될 수 있는 방식으로 전 작업과정을 변환하고 있다. ● 이와 같은 제작과정과 재료를 살펴보면서 간과할 수 없는 다른 하나의 정경연이 발견된다. 즉 '여성성'의 논의이다. 그의 작업은 외형적으로 보면 물질성이 강하면서도 역동적이다. 그러나 그 역동성의 배면에서는 '실' 과 '바늘'로 한땀 한땀 바느질, 박음질해가는 섬세함과 매재와 매재간의 끌고 당기는 조율이 있다. 여기에 침염 등의 반복과정 역시 '부드러운 조각(Soft Sculpture)'이라 말했던 바대로 여성적 감성을 빼놓을 수 없다. ● 30여 년간의 작업들을 되돌아보고 중간정리의 의미를 갖는 정경연의 이번 전시는 신작들과 함께 과거 작품들이 동시에 출품되고 있다. 1970-80년대 만해도 그녀는 미술계에 '일대사건'들을 저질러왔다. 이러한 1970년대 후반 시절부터 여정을 되짚어보는 이번전시를 통하여 그가 횡단해온 아방가르드 정신과 일관된 실험의식, 여성적 감수성 등을 읽을 수 있는 새로운 계기가 되고 있다. ● 그리고 중요한 것은 정경연의 선언과 열정이 현재도 진행형이라는 점이다. 새롭게 구상되는 여러 시리즈들이 또 하나의 거대한 파장을 형성하는 '블랙홀'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 최병식

Vol.20081005d | 정경연展 / CHUNGKYOUNGYEON / 鄭璟娟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