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성의 예술

최병소展 / CHOIBYUNGSO / 崔秉昭 / painting   2008_1007 ▶︎ 2008_1108 / 일,월요일 휴관

최병소_Untitled, 책(폐허의 붓다)_볼펜, 상자_20×31×23cm_2006

초대일시_2008_1007_화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일, 월요일 휴관

가인갤러리_GAAIN GALLERY 서울 종로구 평창동 512-2번지 Tel. +82.2.394.3631 www.gaainart.com

섬약하고도 강건한 검은 화면, 그 "애매성의 예술" ● "훌륭한 소설이나 시, 그림 혹은 영화에 접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무엇인가와 접촉이 이루어졌다는 느낌, 인간이 무엇인가를 획득하게 되었다는 것, 즉 예술 작품이 하나의 끊임없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감지하게 된다. 그러나 예술작품의 의미는 작가에게 있어서나 감상자에게 있어서나, 작품 그 자체에 의해서가 아니고서는 설명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을 창조한 사고도, 또한 그것을 수용한 사고도 결코 완전한 지배자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 예술작품이나 하나의 이론에 있어서의 의미는 감각적인 것에서와 마찬가지로 기호와 분리될 수 없으며, 바로 이러한 연유로 의미는 결코 완전하게 표현되지 않는 것이다. 즉 최상의 형태의 이성은 비이성과 근접해 있다."_메를로퐁티, 「의미와 무의미」 서문 중에서. ● 정신과 신체, 주관과 객관, 사유와 지각, 자아와 타자, 이성과 비이성,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의미와 무의미 등 철학의 역사에서 대립항으로 여겨져 온 모든 것의 양면을 동시에 보고자 한 프랑스 철학자 메를로퐁티의 사상은 "애매성의 철학"_메를로퐁티의 철학이 "애매성의 철학"이라 불려온 것은 벨기에 철학자 드 발렌스(De Waelhens)의 저서 『애매성의 철학: 모리스 메를로퐁티의 실존주의』(1951) 이후부터다._이라 불리며 후대의 여러 철학자와 예술가에게 영감을 제시해 왔다. 1970년대 이후 한국 현대미술 역사의 한 편에서 "침묵의 목소리"_메를로퐁티는 앙드레 말로의 『침묵의 목소리』로부터 영감을 받아 자신의 저서 제목을 『간접적인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라 하였다._로 자신만의 길을 걸어온 작가 최병소의 예술은 메를로퐁티의 철학과 닮았다. 예술의 역사에서 결코 섞일 수 없었던 독립항의 경계선 상에서 각각의 특징을 가지면서도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자신만의 고유한 작품세계를 오랜 시간 묵묵히 펼쳐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최병소의 작업을 "애매성의 예술"이라 칭해도 좋을 것이다. 여기저기가 찢기고 갈라진 새까맣고 얇은 표면의 최병소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사람은 "이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다소 의아한 생각이 들 것이다. 전시장의 흰 벽에 걸린 그것은 검정 물감이 칠해진 캔버스나 종이와는 전혀 다르며 오히려 연소된 얇은 나무 판이나 금속성의 광물질에 가까운 느낌이다. 그러나 그 둘 모두도 아닌 듯 하다. 다 타버린 재와 같이 금새 바스러질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오랜 시련에 더 단단해진 철판과 같은, 섬약하고도 강건한 이 물질의 정체는 무엇인가? ● 그것은 작가가 종이가 얇아지다 못해 찢어질 때까지 볼펜과 연필로 선을 긋고 또 그어 만들어 낸 시간과 노동 집약의 독창적인 표면이다. 이 고유한 표면은 주로 신문지나 잡지와 같은 일상의 오브제 위에 볼펜과 연필 같은 문구를 매체로 시작되지만, 작가의 극대화된 반복적 행위를 통해 마침내 독특한 감성이 느껴지는 미적 산물로 변모된 것이다. 재현된 어떠한 형상이나 색채와 붓 자국도 없는, 회화라는 호칭이 어색한 이 인공물은 시각적이기보다는 촉각적이며 우리에게 여느 회화에서도 느낄 수 없는 차갑고 저릿저릿한 느낌을 준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미술사의 주요 개념과 경향들 사이에서 부유하며 새로운 해석을 가능케 한다.

최병소_Untitled_신문용지, 볼펜, 연필_110×240×2cm_2007~8

지지체와 안료 ● 최병소의 검은 표면은 회화인가? 그것은 분명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적인 의미의 회화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신문지에 수없이 볼펜으로 선을 긋고 그 위에 연필로 다시 선을 그어 만들어 내는 그것은 "여러 가지 선이나 색채로 평면 상에 형상을 그려 내는 조형미술" 이라는 회화의 사전적 정의를 벗어나지 않는다. 마침내 전면화(全面化)되어 묻히지만 수없이 반복되는 '선', 사실상 색으로 느껴지지 않지만 작가가 선택한 볼펜과 연필의 검은 '색', 미술의 재료는 아니지만 신문지라는 확실한 2차원의 '평면', 의도적으로 그려낸 것은 아니지만 반복되는 선 긋기에 의해 드러나는 갈라지고 찢긴 무정형의 '형상'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병소의 검은 표면은 일체의 묘사와 재현을 배제하고 캔버스와 물감이라는 회화의 기본적인 재료를 떠났지만 분명 회화인 셈이다. 화면이 검은 색 한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는 이유로 최병소의 회화는 그간 미술사의 모노크롬 페인팅 혹은 한국의 단색조 회화_1970년대 초 중반 무렵, 주로 흑백색의 단색조 계열 물감을 사용하여 한지나 마포 위에 반복적 행위를 통해 제작한 물성 위주의 평면회화 경향을 단색조 회화라 칭한다. 1975년 5월 일본 동경화랑에서 열린 「한국 5인 작가-5개의 흰 색 전」(박서보, 권영우, 허황, 이동엽, 서승원)을 계기로 백색회화라고 불리기도 했다._로 분류되어 왔다. 그러나 이 독특한 회화의 표면은 그들 전통회화의 평면과는 재료와 느낌상으로뿐 아니라 구조적으로 완전히 상이하다. 그것은 캔버스 위에 물감이 얹혀지는 전통적인 지지체와 안료의 관계를 완전히 탈피한 새로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지지체와 안료의 관계는 아주 오래 전부터 최병소에게 중요한 화두였다. 안료가 칠해진 지지체를 '찢는' 루치오 폰타나, 지지체를 완전히 뒤덮도록 안료를 '칠하는' 바넷 뉴먼, 지지체를 안료로 '적시는' 이브 클랭 등의 회화에 관심을 갖던 그는 종이 위에 아크릴 물감을 두껍게 칠한 후 뒤집어 종이를 사포로 밀어버림으로써 물감덩어리만을 남기는 지지체의 '소거'를 시도하기도 했다. 이렇듯 지지체와 안료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던 최병소는 마침내 신문지 작업을 통해 지지체를 소거하지 않으면서 안료와 일체화하는 방법으로 향하게 된다. 신문지 화면 가득 가느다란 볼펜 선을 그어 메우고 다시 연필 선을 그어 사이를 메우는 그의 신문지 회화에서는 캔버스 위에 물감을 올리는 면의 축적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선의 축적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선의 축적은 신문지 위에 볼펜과 연필이 얹혀지기 보다는 지지체 안으로 안료가 파고 들어가 양자가 거의 일체가 되는 구조를 만들어 내고, 이러한 지지체와 안료의 일체로 인해 그의 회화는 본래 물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물질로 변모하는 신비로운 경지에 다다른다. 신문지, 볼펜과 연필이라는 본래의 재료가 가진 정체성은 사라지고 금속성의 얇고 견고한 새로운 물질로 변모하는 이 놀라운 과정은 그야말로 "사라짐으로부터의 탄생"_2006년 대구 갤러리M에서 열린 최병소 개인전 부제는 「소멸하며 태어나다(Birth from disappearance)」였다._이라 부를 만 하다.

최병소_Untitled_신문지, 용기, 볼펜, 연필, 흑연_ø45×12cm_2007

과정과 결과물 ● 최병소의 회화가 이렇듯 "소멸하며 태어나"도록 하는 근원적인 동력은 지지체 위에 끊임없이 사선을 긋는 작가의 반복적인 행위로부터 비롯된다. 그는 신문지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뿐 아니라 전혀 다른 물질로 변화하는 그 극단의 지점까지 "긋기"라는 반복적 행위를 가한다. 학창시절 볼펜이나 연필로 연습장을 까맣게 메워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 작은 공간을 빈틈없이 메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기억할 것이다. 하물며 신문지 크기의 종이를 -때로는 앞 뒷면으로- 전면(全面)이 까매지다 못해 찢겨질 정도까지 볼펜으로, 또 그 위에 연필로 선을 긋는 그 행위는 그야말로 보통 사람은 할 수 없을 정도의 극단적인 인내와 시간을 필요로 함을 짐작할 수 있다. 작가는 그야말로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선을 긋고 또 그으며 그러한 작가의 "긋기"는 그 자체 자율성을 가지고 확장되어 나간다. 그리고 이러한 작가의 반복적 행위는 마침내 물질 자체가 한계에 달하는 지점에서 멈춰진다. ● 이렇듯 최병소의 회화는 어떠한 결과물을 내기 위해 붓을 움직이는 전통적인 회화와 달리 행위 자체가 우선시되며, 결과물로서의 화면은 과정으로서의 행위를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종이의 지질(紙質), 기온과 습도 같은 물질적 한계와 종이를 격자로 선을 긋거나 접어서 구획을 나누고 시작하느냐 아니냐, 밑바탕을 볼펜으로 메우느냐 먹물로 칠하느냐와 같은 단순한 방식의 차이가 어느 정도 반영되지만, 최병소의 회화는 그의 반복적인 행위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선을 긋는 그의 손이 멈추는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물질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렇게 완성된 나뭇결 같기도 하고 광물질 같기도 한 그 화면은 물성이 강조된다는 점에서 미술사의 몇몇 경향들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들과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작품의 물성이 애초의 재료로부터 달라진다는 점에서 그것은 가공하지 않은 산업재료의 물성을 강조하는 미니멀리즘 조각이나 물감을 흩뿌리거나 두껍게 얹어 만들어내는 추상표현주의 회화의 그 자체 재료가 가지고 있는 물성과는 완전히 다르며, 작가의 엄청난 노동이 그 과정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작가의 최소한의 개입으로 인한 우연적인 변화를 중시하는 아르테포베라_아트레포베라(arte povera)는 1967년 무렵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전위 미술 운동으로 흙, 석면, 흑연, 얼음, 왁스, 타르, 철사 등의 반미학적인 재료의 물질적인 본성을 탐구함으로써 기존의 예술 개념을 해체하여 삶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자 하였다._의 물성변화와도 다른 것이다. 최병소의 회화는 이렇듯 미니멀리즘과는 형태의 최소화와 날것의 질감이라는 표면적 연관성을, 추상표현주의와는 작가의 행위(gesture)를 중시한다는 물리적 공통점을, 아르테포베라와는 본래의 하찮은 재료를 미적인 물질로 변화시킨다는 과정의 중요성을 함께 하고 있지만 그 어느 경향과도 본질적으로 일치하지 않는 고유함이 있다. ● 개념과 노동, 예술과 일상 경계선 상에서 양자의 영역을 확장하며 본인만의 고유함을 자리매김하는 이러한 최병소 회화의 특징을 무엇보다 잘 드러내는 것은 그의 재료 선택과 그것의 변용에 있을 것이다. 최병소가 신문지를 본인 작품의 주된 재료로 선택한 데는 물론 그 의미적, 형태적 이유 때문도 있겠으나, 가장 크게는 그것이 "돈도 안 들고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라는 일차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최근에는 신문용지를 구입해 쓰기도 하지만 그가 주로 사용해 온 지지체는 신문지와 잡지이며, 때로는 비행기표나 지폐 등 일상의 오브제였고, 그가 사용하는 매체는 물감을 묻힌 붓(화구)이 아니라 책상 옆에 굴러다니는 볼펜과 연필(문구)이다. 물론 미술사 내에서 많은 예술가들이 일상의 오브제를 예술의 소재로 사용하였다. 피카소와 브라크 등 입체파 화가들은 신문과 잡지의 일부를 오려서 화면에 콜라주 했으며, 뒤샹을 비롯한 초현실주의와 다다이즘 작가들은 일상의 사물을 선택해 전시장에 설치함으로써 예술의 새로운 맥락을 제시하였고, 그밖에 팝 아트를 선도한 라우센버그와 같은 작가는 널빤지에 베개와 이불을 부착하고 페인트칠을 하는 아상블라주 기법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술사에서 작품에 오브제가 사용될 때 그것들 대부분은 그 재료가 가진 물질성에도 불구하고 어디까지나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개념적 측면이 강했다. 그러나 최병소가 사용하는 일상의 오브제는 단지 용도와 의미를 변경하는 "관념"의 차원이 아니라, 작가의 극단의 반복적 행위를 통해 전혀 새로운 물질로 변모되는 "실재"의 차원에서의 변화가 이루어진다. 언제 어디에나 존재하는 재료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선 긋기라는 행위를 통해 전혀 새로운 형태의 미적 산물을 만들어내는 최병소의 회화야 말로 진정한 의미의 일상과 예술의 경계 흐리기일지 모른다. 사실상 이러한 최병소의 일상과 예술의 혼재는 삶과 밀착된 그의 작업 태도에서도 엿볼 수 있다. 집에 딸린 작은 골방에서 잠자고 밥 먹는 시간 외에 음악을 들으며 끊임없이 손을 움직이는 그에게 일상과 예술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읽을 수 없는 신문 한편, 최병소가 사용하는 신문지라는 재료는 단지 일상의 오브제라는 측면에서만 고찰하기에 다소 미흡함이 있다. 그것은 '신문'이 지닌 상징적 함의 때문일 것이다. 매일 새로운 기사를 담아내는 신문은 그 시대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사건들을 자세히 보여주는 소통의 매체이면서도 온전히 객관적인 사실만을 드러내지 않는다. 때로는 편향된 시선으로 사실을 왜곡하며 외부의 압력에 의해 현실을 은폐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최병소가 미대를 졸업하던 1974년은 박정희 정권이 유신체제를 공표한 지 1년 남짓한 정치사회적 격동기로서 일부에서는 유신철폐운동 등 반항의 목소리가 있었으나, 대체로 언론과 발언의 자유가 억압된 침체적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특히 미술계는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고 자연으로 회귀하려는 백색 위주의 단색조 회화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것은 정신적으로 황폐해지고 사회로부터 소외된 작가들이 자신의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의도적으로 은폐하려는 자연스러운 반응이었을 지 모른다. ●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소위 한국의 실험미술로 칭해지며 1960년대 후반부터 지속되어 온 일련의 움직임 가운데 있던 일부 작가들은 현실을 그대로 외면하기보다는 간접적으로나마 예술의 범위 안에서 자신의 발언을 표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신문으로 행위예술을 시도한 성능경과 같은 작가다. 성능경은 1974년 「제3회 ST전」_AG(한국 아방가르드 협회, 1969-1975)에 이은 대표적인 한국 실험미술 그룹으로 "Space&Time"의 약자인 그룹명에서 알 수 있듯이 개념 위주의 공간 설치미술을 주로 행하였으며 이건용, 김구림, 성능경, 황현욱, 박원준, 김문자, 한정문, 여운 등이 활동했다._에서 한 달 여의 전시기간 동안 매일같이 8쪽의 신문지면 가운데 기사란 만을 오려 내어 나머지 사진이나 여백 부분과 분리해 다른 두 개의 아크릴 박스에 담음으로써 신문의 편집에 따라 사실이 달라지는 언론의 편파성을 간접적으로 비판하였으며, 1977년에는 8면의 신문을 1면당 32면씩 총 256면으로 잘라 무작위적으로 섞어 다시 8면의 신문을 만드는 작업을 통해 신문의 문맥과 의미를 말소시키려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_김미경 『한국의 실험미술』, 시공아트, pp.190-194 참고. ● 최병소의 신문지 작업 역시 성능경의 그것처럼 1970년대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서 신문이 지니는 상징적 의미와 무관할 수 없다. 당시 그는 매일 날아드는 신문을 읽으면서 답답하고 침통한 마음을 참다못해 신문의 내용을 지워나가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결국 읽을 수 없도록 지워지고 애초에 무엇이었는지 흔적조차 사라졌지만 그것은 70년대 현실을 보여주던 바로 그 신문이었으며, 그는 성능경처럼 직접적인 방식은 아니지만 당시의 사회상을 자신의 작업에 적극 반영했던 셈이다. 이후에도 그는 줄곧 애초의 화면을 뒤덮어 지움으로써 읽을 수 없는 신문, 내용을 알 수 없는 잡지, 탈 수 없는 비행기표, 쓸 수 없는 지폐 등 의도적으로 용도를 폐기하고 예술적 맥락에서 새롭게 탄생하도록 하는 일련의 작업들을 발표해왔다.

최병소_Untitled_신문지, 혼합매체, 볼펜, 연필_가변크기_2006~8

단색조 회화와 실험미술 ● 사실상 최병소는 작품의 고유함과 미술사적 중요도에 비해 그간 제대로 된 평가나 논의가 거의 없었다. 그나마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거론될 때는 1970년대 주류 미술경향인 단색조 회화 작가 중 한 사람으로서였다._최병소는 단색조 회화의 주요 전시인 동경 센트럴미술관에서 열린「한국 현대미술의 단면전」(1977)과 국립현대미술관의 「에꼴 드 서울」(1976-79) 등에 참여하게 되면서 단색파 화가로 각인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최병소 작업에 대한 전체적인 고찰이 부재한 데서 오는 단편적인 구분에 지나지 않는다. 미술사의 모든 경향과 사조를 명확히 구분할 수 없겠지만, 최병소의 작업은 단색조 회화로만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최병소의 신문작업은 단색조 회화이기 이전에 신문이라는 사회적 함의를 담지한 일상의 오브제로부터 비롯되었으며, 그가 신문작업 이전에 행했거나 이후 선보인 일부 작업을 볼 때 그는 상당 부분 실험미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1974년 처음 참여한 전시인 「한국 실험작가전」과 1974년부터 5년간 참여한 「대구 현대미술제」 등의 일부 전시에서 그는 화병에 꽂아놓은 꽃을 툭 쳐서 바닥에 떨어진 꽃잎 중 몇 개만 분필로 표시를 해둔다거나 여름철에 전시장에 생선을 가져와 도마에 난도질하여 놔둠으로써 냄새가 진동하도록 하는 행위 위주의 해프닝 작업과 특정한 장면의 사진 옆에 그 사진을 설명하는 단어를 나열해 놓은 개념 작업_허공 위에 두 마리 새가 뒤엉켜 있는 모습의 사진 옆에 sky, cloud, wind, birds, flying, meeting여섯 단어를 나열해 놓음으로써 사진을 함축적으로 묘사하였다._ 등을 선보인 바 있다. 또한 최근의 신문 작업 중에도 평면이 아닌 부서진 조각들은 접시에 담아두거나 메를로퐁티의 「의미와 무의미」를 비롯한 책의 낱장들의 모서리를 긁어 그것들을 아크릴 박스 안에 세워 펼쳐놓음으로써 읽을 수 없는 책을 전시한 설치작업 등을 간간이 행해왔다. 이렇듯 최병소는 그간의 단색조 회화 작가라는 단편적인 평가와는 달리 분명 실험미술에 한 발을 딛고 있음에 틀림없다. ● 그러나 최병소가 오랜 시간 몰두해 온 작업은 신문이라는 평면의 오브제를 엄청난 작가적 노동을 통해 새로운 화면으로 변모시키는 그 결과물이 분명 '회화'의 정의에 속하는 것이었으며, 그것은 외견상 단색이고 물성이 강조되며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화면을 중성화하는 70년대 단색조 회화와의 공통점이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특히 계속해서 "연필"을 사선으로 "긋는" 재료와 행위의 측면에서 그의 회화는 단색조 회화의 대표격인 박서보의 묘법과 부분적인 유사점이 있으나, 그와 근원이 다름 - 실험미술과 앵포르멜 - 은 물론 방법과 개념상 상이하다. 화선지를 붙인 캔버스에 유백색의 물감을 칠하고 그것이 채 마르기 전에 그 위에 연필로 사선을 긋고 그것을 다시 물감으로 덮고 다시 선을 긋는 반복적 행위로 완성되는 박서보의 묘법에서 연필선은 어디까지나 물감을 긁어내거나 밀어내기 위해 사용되는 보조도구 - 손가락, 나무, 쇠붙이 등과 유사한 - 에 가까웠다면, 최병소의 신문작업에서 연필(볼펜)선은 화면을 전면화하는 유일한 도구이다. 또한 물감 위에 연필이나 다른 도구가 지나간 자리가 남음으로써 행위의 방향성과 궤적을 드러내는 박서보의 묘법에 비해, 표면을 긁고 누르다가 물질이 한계에 달하여 파괴되는 지점까지 볼펜과 연필로 전체 화면에 선을 긋는 최병소의 작업은 결국 행위의 흔적을 남기지 않고 표면 전체를 균질하게 만드는 바 그야말로 행위와 물성의 일체를 보다 잘 보여준다. 이렇듯 일정 부분에서 최병소의 작업은 70년대 단색조 회화의 맥락 안에서 다른 작품들과 비교될 수 있지만 온전히 단색조 회화의 분류 안에 있을 수는 없다. 그것은 그의 신문작업이 1960-70년대 오브제와 설치, 해프닝과 영화 등 다양한 시도를 행한 소수의 실험미술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결국 '회화'라는 결과물로 귀착되어 온전히 그 안에 머무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유다.

최병소_Untitled, 신문지, 흑연_55×39.5cm_2005

일생을 통해 지속되는 애매성의 예술 ● 이렇듯 최병소의 작업은 애매하다. 그 자신이 밝히고 있듯 그의 회화는 "그리기인 동시에 지우기이고, 채우기인 동시에 비우기이며, 의미이자 무의미이다." 선을 그리지만 그것은 결국 글자를 지우는 일이고, 선을 채우는 동안 작가 자신과 본래의 물질은 비워지며, 신문의 글자를 지움으로서 의미를 무화(無化) 하지만 그것은 애초에 아무것도 없었던 무의미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최병소의 "애매성의 예술"은 지지체와 안료, 과정과 갤과물, 개념과 노동, 오브제와 회화, 일상과 예술, 실험미술과 단색조 회화 등 미술의 역사에서 양립할 수 없었던 독립된 항들 사이를 오가며 그 경계를 흐려왔다. 그러나 그 안에는 그만의 뚜렷한 논리가 내재되어 있었다. 그것은 "작가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작업을 찾아내야 하며 작품이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신문지의 지질이 바뀜에 따라 화면의 물성도 달라지고, 완성된 회화를 잘라 봉투를 만든 뒤 그 위에 길게 접은 회화의 조각들을 붙여 입체를 만들기도 하며, 신문(용)지를 콘크리트 바닥에 놓고 흑연덩어리로 문질러 화면을 완성하기도 하고, 네모 반듯한 신문지가 아닌 잘라지고 구겨진 까만 조각들을 그러모아 바닥에 설치하기도 하는 등 조금씩 그가 할 수 있는 만큼만의 시도를 하면서 그의 "애매성의 예술"은 지속되고 있다. 그것은 또 그렇게 앞으로도 그의 삶과 하나되어 지속될 것이다. ■ 신혜영

Vol.20081007i | 최병소展 / CHOIBYUNGSO / 崔秉昭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