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그늘로 길을 내며 바람을 부른다

장용림展 / JANGYONGRIM / 張容林 / painting   2008_1008 ▶︎ 2008_1014

장용림_개망초-바람의 안부를 물으며_한지에 석채, 분채_112×145.5cm_2007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09:30am~06:30pm

갤러리 라이트_gallery LIGHT 서울 종로구 인사동 147번지 광주시립미술관 분관 Tel. +82.2.725.0040

꽃은 그늘로 길을 내며 바람을 부른다. ● 벚꽃이 환하게 필 때면 차마 그 벚꽃나무 밑을 지나갈 수가 없어서 그 꽃 다 지고 난 후에 그 나무 밑을 지나갔다는 어느 시인처럼 가끔은 꽃을 바라보는 일도 꽃에게 다가가는 일도 꽃을 경험하게 되는 일도 얼마나 조심스러운 일인지 알게된다. 그러한 꽃그늘 아래서는 누구나 자신의 마음과 자신의 생각을 꽃피우듯 가지런하게 다듬게 된다. 그 가지런해진 마음과 다듬어진 생각이 꽃빛으로 물들어가고 꽃들의 숨결을 들으며 그 호흡으로 한참을 머무르게 됨은 어찌할 수 없는 꽃에 대한 경험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장용림_인동초Ⅱ-바람을 기다리며_한지에 분채_60.6×91cm_2008
장용림_구절초-바람의 인사_한지에 석채, 분채_65×91cm_2007
장용림_동백-바람이 지난 후_한지에 석채, 분채_108×230cm_2008

떨어지기 위해 시들기 위해 아슬아슬하게 현기증 나도록 매달려 있는 꽃들의 그 가벼운 흔들림은 언제나 위태로움으로 인해 오히려 눈부시기만 하다. 시들기 직전 꽃들의 마지막 한 호흡에서 느껴지는 향기의 애잔함과 마르고 말라 바람끝에서 스스로 바람이 되어 흩어지는 그 하염없음이 때로는 생의 숙연함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어쩌면 꽃의 완성은 피는 것이 아니라 지는 것에 있는지도 모른다. 꽃은 바람을 불러 바람을 만나고 바람이란 바람에 맨가슴 비비며 바람을 경험하고 가장 낮은 곳에 떨어지고 날림으로서 꽃은 비로소 자신이 마음을 두었던 그 자리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낮은 곳에서의 바라봄에서 다시 꽃은 완성되는 것이다. 동백처럼 꽃잎하나 흐트러짐 없이 정갈한 스러짐을 위한 마지막 몸짓으로 떨어져 내림도 처연하도록 아름다운 꽃의 완성이 될 수 있고, 매화그늘에 일렁이는 달빛의 부서짐처럼 꽃잎이 하르르 날리는 것 또한 서늘한 꽃의 완성이 될 수 있다. 삼월이면 물분홍빛으로 물들어가는 진달래꽃, 그 꽃이 화전이라는 이름으로 꽃언전리에 지극한 마음을 담아 다시 피었다가 음식으로 져 내리는 것 또한 꽃의 완성이며 복사꽃 환한 꽃그늘에서 지나는 바람마저도 꽃이되어 흐름도 꽃의 완성이라고 생각한다. 절벽에 핀 꽃을 꺾어와서 수로부인에게 꽃을 전한 헌화가 속 노인처럼, 때로는 꽃이 마음을 대신해서 누군가에게 전해지고 그 마음 또한 꽃속에 스며 또다른 꽃의 완성으로 피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꽃의 시작과 꽃의 완성은 바람으로 인해 피고 바람으로 하여 지게되는 것이다. 꽃에게 있어 바람은 언제나 첫바람이듯, 그 꽃의 완성에는 언제나 바람을 배경으로 하고있다. 꽃이 피는 것과 지는 것의 거리 그 한순간에도 어김없이 바람이 불고 스스로가 제 사랑을 긍정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바람은 자신이 꽃들에게 얼마나 극진히 자신을 베풀려고 하는지... 그것은 바람을 부르고 바람을 기다리고 바람을 경험한 꽃들의 꽃빛에서 그 그늘에서 그 흔들림에서 느낄 수가 있다.

장용림_진달래Ⅱ-바람에게_한지에 석채, 분채_163×112cm_2008
장용림_비비추-바람이 바람으로 풀리듯_한지에 분채_45×61cm_2008
장용림_등꽃-보랏빛 바람 그늘에서_한지에 석채, 분채_45×61cm_2006

꽃들은 온통 자신의 그 꽃빛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바람 또한 꽃을 피워내고 져내리게 함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그러한 꽃그늘 아래서 그리고 그 바람 아래에서는 누구나 한번쯤 자신의 그림자에 매혹당할 수밖에 없다. 또한 그 꽃그늘 아래서는 운명처럼 누구나 꽃이되고 바람이 되기도 한다. 그게 바로 비스듬히 기울어가는 사랑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 스스로 기울어지지 않고 비워낼 수 없듯 내 그림속 자잘한 꽃들의 채워짐이 소란하지 않고 고요하디 고요한 침묵으로 기울어 가길 소망한다. 언젠가는 꽃이 가득한 그림속에도 바람이 지나고 그늘이 흐르고 그 바람에 하나씩 하나씩 꽃이 날리고 비워진 자리에 그 만큼의 여백이 내 그림속 뜰이 기울어 가고 비워져 가리라 믿는다. ● 천천히 내 그림자가 흔들리고 비스듬히 기울어 간다. 멀지않은 곳에서 바람이 시작된 모양이다. ■ 장용림

Vol.20081008g | 장용림展 / JANGYONGRIM / 張容林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