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마을 보고서

조경란展 / CHOKYUNGRAN / 趙京蘭 / installation   2008_1003 ▶︎ 2008_1016

조경란_땅 그림 Land scape_디지털 프린트_56×83cm_2008

초대일시_2008_1003_금요일_06:00pm

후원_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빔_GALLERY BIIM 서울 종로구 화동 39번지 Tel. +82.2.723.8574 www.biim.net

'열매마을 보고서'는 신도시를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본 작가 자신의 꿈과 욕망, 도취, 자기애와 그것을 끊임없이 와해시키는 균열과 틈새에 관한 실존적 보고서이다. 작가가 '열매마을'이라는 신도시 아파트 단지에서 가정주부, 주민, 혹은 백수로 살면서 신도시가 대변하는 근대의 문제를 몸소 체험해가는 과정을, 사진 등의 기록물과 작가의 주변에서 항상 접하게 되는 전단, 광고지, 폐품 등의 재료들로 이루어진 설치로 구현한다. 이러한 작가의 시도는, 외부인의 입장에서 거리를 두고 사람들을 관찰하지만 어느새 신도시 주민의 일원으로서 관찰의 대상에 포획되는 시선의 부조리함을 내포한다. ● 근대의 매끈한 표면을 위해 종종 가려지고 추방되는 뒷면-찌꺼기, 쓰레기, 슬럼 등-은 근대가 책임져야 할 사생아이며 더 나아가 근대를 보완하고 넘어서는 가치의 영역이다. 작가는 속도, 자본, 개발, 고효율 등 근대적 가치로 버무려진 신도시 삶에서 이러한 균열적 징후를 발견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약자와 자연세계, 대지와의 접촉, 회귀와 같은 비-근대적 가치를 발굴해내고자 한다. 이는 근대의 부산물이 생성해내는 산수풍경(경작된 산수, 2008, 綠川圖, 2008), 끊임없이 붕괴되는 완벽한 일상에의 꿈 (땅 그림, 2008, 브리젠 힐스, 2008) 등 다양한 경로로 나타난다.

조경란_땅 그림 Land scape_디지털 프린트_51×83cm_2008

땅 그림 ● 아파트 분양 광고 전단을 구긴 후 촬영한 사진 시리즈. 전단을 구김으로써 이미지를 물리적 차원으로 전복시키고 이미지에 투사된 욕망의 허구성을 폭로한다. 푸른 숲과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한 유토피아는 한 순간의 무차별적 붕괴, 지각변동으로 총체적 파국의 디스토피아로 전락한다. 사진을 찍는 과정을 통해 구겨진 종이의 실제 굴곡과 원래의 이미지가 함께 납작한 표면으로 수렴되면서 종이의 굴곡은 곧 이미지 속 마을의 지세地勢와 겹쳐진다. 관람자는 납작한 표면 저편에 존재하는, 시공마저 모호해진 어떤 세계의 암울한 풍경과 함께 '그들' 혹은 자신의 난파된 꿈을 들여다보게 된다. 이와 같이 이 작품은 견고해 보이는 근대적 체계, 시스템의 허구성, 허약성, 근대의 수면 아래에 잠재하는 야만성을 상징적으로 혹은 매우 실제적으로 드러낸다.

조경란_경작된 산수 Cultivated landscape_전단지_가변크기_2008

경작된 산수 ● 일간지에 삽입된 매일의 전단을 벽에 부착함으로써 그 날의 풍경화를 만드는 작품. 전단 위의 각종 풍경들은 최소 비용, 최대 이윤을 위해 편집실이라는 인큐베이터에서 배양되고 가공된 이미지들이다. 여기에는 풍경마저 사유화, 계량화, 자본화하는 서구의 제국주의적, 자본주의적 사고가 고스란히 반영되어있다. 이렇게 프레임화된 각각의 '프레임-풍경'을 하나의 화면에 나열하는 순간 그들은 선험적 위계가 주어지지 않은 미결정의 상태에 놓이게 된다. 프레임과 프레임 '사이'는 근대적 질서를 가로지르는 틈새로서 글의 행간이나 만화의 칸새처럼 사유화의 근거지로서 기능한다. 시선은 수십 개의 프레임-풍경 사이에서 머물고 미끄러지기를 반복하고 신체는 시선을 따라 미로와 같은 풍경 속을 소요하게 된다. 작가는 이렇게 풀과 나무, 물과 바위 대신 매일의 상품과 사건들로 이루어진 동시대 산수풍경과 그에 대한 독법을 함께 제시한다.

조경란_綠川圖 Picture of green waterfall_전단지_가변크기_2008

綠川圖 ● 전단을 실제 장소에 일정한 방식으로 부착하여 물화시키는 행위를 통해 전단에 잠재되어있던 이미지와, 이미지에 담긴 의도하지 않은 메시지 읽기를 시도하는 작품. 근대의 부산물 속에 내재하는 산수풍경 읽기와 감상.

조경란_근린산수 Neighboring landscape_디지털 프린트_30×44cm_2008

근린산수 ● 매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수거를 위해 모아놓은 재활용 폐지 더미를 촬영한 사진 시리즈. 이 작품은 백주대낮 우리 눈앞에 맞닥뜨리게 되는 근대의 뒷면에 대한, 그리고 쌓기라는 행위를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신축 유연한 산수풍경에 대한 기록이다.

조경란_근린산수-브리젠힐스 Neighboring landscape-Brizenhills_재활용 폐지, 레터링_가변크기_2008
조경란_근린산수-브리젠힐스 Neighboring landscape-Brizenhills_재활용 폐지, 레터링_가변크기_2008

근린산수-브리젠힐스 ● 재활용 폐지를 쌓고 육아, 살림 등을 다루는 인터넷 카페에서 사용되고 있는 닉네임을 조사하여 폐지의 표면에 부착한 작품. 인터넷 카페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발견되는, 왠지 모르게 비슷비슷한 닉네임들은 사람들의 가치와 사고의 획일화를 보여주는 증거로서 공포감마저 일으킨다. 욕망은 상상력을 상실하고 서로를 복제하고 집단화 되어간다. 최고급 타운하우스 브리젠힐스는 집단화된 욕망의 구현체로서 '지금, 여기'를 부정하고 '언젠가는, 그 곳'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강박증과 신경증적 집착을 만들어내지만, 현실에서 '그 곳'은 늘 먼 미래의 가능성으로만 주어지며 유예된다. 작품 브리젠힐스는 서로를 밟으며 오르는 '그들'의 집단화된 욕망으로 이루어진 실체 없는 언덕으로, '그들'의 모습을 통해 본 작가 자신의 질펀한 꿈과 욕망, 도취, 자기애와, 그것을 끊임없이 미끄러뜨리고 와해시키는 균열과 틈새를 드러낸다. ■ 조경란

Vol.20081009i | 조경란展 / CHOKYUNGRAN / 趙京蘭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