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t there

조용준展 / CHOYONGJOON / 趙容浚 / photography   2008_1010 ▶︎ 2008_1023

조용준_symtoms#3_잉크젯 프린트_50×75cm_2008

초대일시_2008_1010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01:00pm~06:00pm

대안공간 건희 ALTERNATIVE SPACE GEONHI 서울 종로구 종로 6가 43-3번지 Tel. +82.2.554.7332 www.geonhi.com

이미지는 각자의 경험과 삶의 방식에 따라 보는 관점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심지어 사물의 표면에 드러나는 기술적 요소에 대해서도 엇갈린 분석을 가질 때가 있다. 무엇도 정확히 규정지어 말하기에는 세상은 너무 단순하지 않다. 그리고 규정하는 것에 대한 자신감도 없다. 대상은 말을 하고 있지만 무관심하게 그냥 흘려듣거나 우리 주위를 마냥 떠다니고만 있다.

조용준_symtoms#10_잉크젯 프린트_50×75cm_2008

여기 이미지들을 주워 모으고 만들고 세웠다. 순간적인 찰라에서 지속적인 관찰까지, 나를 붙잡는 이미지에서부터 내가 만드는 이미지까지, 흘러 다니는 많은 이미지들을 엮어 프레임에 가두었다. 무엇을 정확히 말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냥 부유하는 여러 의미들 중의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자기가 원하든 원하지 않던 사진은 이미 말하고 있으니까.

조용준_symtoms#11_잉크젯 프린트_50×75cm_2008

이 사진들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존재들은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만으로 해석할 수 없는 초월적 분위기를 드러낸다. 특히 사진으로 존재가 구체적으로 재현될 경우 더욱 그러하다. 같은 사물도 나의 상태에 따라 달라 보이고 나의 경험에 따라 달라 보인다. 반대로 내가 그대로 있어도 사물에 반사되는 빛에 따라, 계절에 따라, 시간에 따라 또 달라 보인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의미를 붙잡으려고 흉내만 낼 뿐이다.

조용준_red ball#3_잉크젯 프린트_80×120cm_2008
조용준_red ball#2_잉크젯 프린트_75×50cm_2008

얼마 전 인터넷에서 본 뉴스는 학습된 상황이 이미지를 어떻게 다르게 인식할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해 주었다. 주차장에 세워둔 어떤 한 사람의 차가 지속적으로 파손이 일어나는 일이 발생했다. 참다못한 차주인은 몰래 카메라를 설치하였는데 며칠 후 마침내 차를 파손한 사람을 붙잡을 수 있었다. 그 사람을 붙잡아 차를 파손한 이유를 물었더니 어이없게도 차번호가 6666이었다는 이유였다. 특정 종교에 빠져 그 숫자에 대한 광적인 싫음이 그 사건을 일으켰던 것이었다. 그 뉴스를 접하고 난 후 한참 지나고 나서 운전을 하려는데 계기판에 6666이라는 숫자가 보였다. 갑자기 많은 생각이 떠오르며 단순하게 와 닿지 않는 그 숫자에 한참동안 앉아있었다. 내가 그 뉴스를 몰랐다면, 내가 그 숫자의 의미를 몰랐다면, 아마 그 순간의 이미지는 아마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조용준_shadow boxing_잉크젯 프린트_75×50cm_2008

이미지는 세상을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나를 들여다보는 것이 오히려 더 정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비슷한 해석을 한다면 비슷하게 삶을 산 것이다. 그래서 전시된 사진은 두 가지 면에서 나에게 의미를 가진다. 내가 느꼈던 대상의 이미지를 관객이 같이 공유할 수 있는지, 내가 만드는 이미지가 제목처럼 전달될 수 있는지. 롤랑 바르트가 말한 것처럼 저자보다 관객의 해석에 따라 텍스트의 의미는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고 했다. 만약 그 의미를 나처럼 느꼈다면 당신은 나와 비슷한 삶의 경험을 한 것이리라... ■ 조용준

Vol.20081010a | 조용준展 / CHOYONGJOON / 趙容浚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