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TEMISM

임병중展 / IMBYOUNGJUNG / 任炳重 / printing   2008_1015 ▶︎ 2008_1021

임병중_TOTEMISM_목판_140×500cm_2008

초대일시_2008_1015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09:30am~06:30pm

갤러리 라이트_gallery LIGHT 서울 종로구 인사동 147번지 미림아트 2, 3층 Tel. +82.02.725.0040

노동과 시간의 흔적을 판각하다 : 임병중의 판화 ● 필자는 가끔 '의미 있는 형식'이라는 미술비평가 클라이브 벨(Clive Bell)이 고안한 현대미술의 한 개념을 곁에 두고 작품을 본다. 독창적 형상성이나 불가능해 보이는 기술적 완성도와 같은 것들은 그런 와중에 부차적인 것이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형식이, 그것이 고난이도를 가진 것이건 혹은 단순한 것이건 간에, 현 작품에서 얼마나 가치와 의미를 획득하고 있는가가 관심의 대상이고, 또한 이것이 작품이란 총체성을 위해 실질적으로 기여하는가가 판단기준이 된다. 이런 까다로운 평가방식에 대해 임병중의 작품은 하자가 없다. ● 작가는 문명 이전의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 듯 한 이미지를 화면에 담는다. 선사시대의 암벽화나 삼국시대 고분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자연의 야만과 폭력 속에 선사의 인간들이 겨우 의지했던 종교성은 이와 비슷한 이미지들을 남겼다. 잘난 우리가 부르는 그 토템은 자연 속에 인간이 체득한 최초의 신앙이고, 삶의 전부였을 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현대의 미술이 삶과 유리되었던 것과는 반대로 그들이 바위를 긁거나 동물의 피를 묻혀 그렸던 이미지들은 그들의 삶과 동일하게 절박한 소망과 생존성을 담고 있다고 보겠다. 작가가 작업에 임하는 태도는 그와 비슷하다. 여유 있게 문화나 철학을 논하며, 유희적인 예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처절하게 투쟁하는 자세로서 그는 예술을 대하는 것 같다. 아니 그렇다. 이것이 작품의 형식을 말해 줄 첫 번째 단락이 된다. ● 여기서 그는 판화장르가 보유한 형식적 특징을 자신의 태도와 조형의식에 정확하게 반영한다. 원시인들이 생존의 절박함으로 암벽에 선을 새기고 형상을 넣었다면, 그는 판 위에 같은 방식으로 찍혀질 이미지의 원상을 각인해 나간다. 분석하면 할수록, 그의 작법은 그런 유사성을 더욱 많이 보여주고, 더 나아가 이것이 얼마나 현대적으로 해석되어질 수 있는가 하는 긍정적인 가능성마저 느끼게 해준다. 그가 취한 방식은 판화의 형식장르 중에서도 가장 단순하다고 할 목판화이다. 그러나 결과로 나온 에디션은 그것이 목판화라는 사실을 부정하게 만들 정도다. 임병중의 손은 판이 지닐만한 거의 모든 효과를 가져다 주었다. 때론 프레스의 고압 속에서 응집된 요철이, 때론 프로타주로 문질러 얻은 것과 같은 전사적인 질감에서 거친 돌 판을 가른 칼자국도 군데군데서 발견되고, 뭉쳐진 기름덩이와 같은 색 면도 만져질 것만 같이 고스란하다. 필자의 궁금한 시선에 작가는 겸손하게 자신이 창안한 방법인 "소멸 점층법"을 설명해 주었다.

임병중_TOTEMISM_목판_65×95cm_2008
임병중_TOTEMISM_판넬에 혼합재료_35×90cm_2008
임병중_TOTEMISM_목판_65×95cm_2008

목판 위에 판각을 가하는 기초적인 작업에서 판의 부분을 없애가면서 점층적으로 이미지의 강도를 높여가는 방식은 이미 알려져 있는 방식이다. 이 과정을 통해 찍혀진 1차 프린트는 다시한번 같은 판에 첨가된 다른 이미지들과 중첩되며, 이러한 과정은 재차 반복되면서 에디션의 내밀한 구조를 완성한다. 작가는 여기서 돌이나 흙가루와 같은 자연재료를 첨가하기도 하고, 잉크와 기름의 양을 세심하게 조절하면서 톤의 깊이와 농후를 조절하며, 다른 성질의 안료를 적절하게 올려놓아 화면의 색감을 조율한다. 그리고 이 간단한 묘사로는 설명하지 못할 복잡한 과정이 하나의 완성된 화면을 만들어낸다. 가능한 모든 실험적인 정신과 수없는 반복을 수행하는 작가의 성실성은 작품에서 그대로 전사되어 나타난다. 작품은 이제 예술적 가치를 논하기 전에 작가의 실제적인 노동현장과 가치를 먼저 보여주고, 그 곳에 잠재된 태고의 신앙과도 같은 혹은 원시적인 예술의지를 보여준다. 여기서부터 논의될 모든 화두와 논제가 파생된다. 즉, 역사성 그리고 시간성 그리고 재현과 전이와 같은 개념들은 이 의지 속에 당연히 부속되어야만 하는 것들이며, 이 당연성은 그 형식이 작품이라는 결론에 거대한 토대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대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것을 현대미술이 잃어버린 미덕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임병중_TOTEMISM_목판_140×100cm_2008
임병중_TOTEMISM_판넬에 혼합재료_65×95cm_2008
임병중_TOTEMISM_목판_65×95cm_2008

기념비적인 역사성도 임병중의 작품의 특징이라고 하겠다. 언급했던 형식에 부연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작품의 실제적인 크기이다. 판화라 부르기에 큰 화면은 일단 보는 눈을 압도한다. 판화의 포맷과 크기는 여러 가지 면에서 제약을 받는다. 현대의 다양한 기술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판화의 한계는 크기에 있었다. 작가는 우선 이 크기의 한계를 넘었다. 하지만 작품의 진면목은 크기가 아니라, 오히려 작품 전체에 균등하게 나타나는 정교한 손길이다. 임병중의 판화를 바라보면, 어디 하나 버릴 곳이 없을 정도로, 전체가 하나처럼 균질적이다. 이러한 성격은 어떤 중심을 상정하고, 위계적인 구성을 요구하는 서구의 조형의식이 아니라, 보편성과 만물평등의 사상이 깃든 태고의 조형성을 이어받은 것처럼 정의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 모든 사변적인 언사보다 필자에게 더 설득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의 그림이 토템의 시대에, 그 처절한 생존의 시대에도 이러한 이미지를 남길 수 있었던 조형에 대한 순수한 의지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 그가 수행했던 복잡다단한 판화기법이 현대성에 기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에 대한 정직하고 순한 수용정신인 토템의 행태와 유사하다고 느끼는 이는 단지 필자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된다. ● 임병중의 판화는 선사시대와 고대의 이미지를 차용한다. 하지만 이 차용은 단순히 주제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전시된 이미지는 오히려 그 형식과 불가분한 관계를 형성한다. 이 관계 속에서 즉 주제와 형식이 의미의 무게 추를 당기며 긴장시킨다. 이 사이에서 우리는 작가의 노동과 선사시대 토템의 주술이 하나의 리듬으로 울리는 것을 들을 수 있다. 그리고 판화의 흔적이 구축하는 시간은 역사의 생명을 관통하는 서사로서 하나의 교향곡을 들려준다. ■ 김정락

Vol.20081014b | 임병중展 / IMBYOUNGJUNG / 任炳重 / pr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