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풍경

이선희展 / LEESEONHEE / 李善姬 / painting   2008_1106 ▶︎ 2008_1112

이선희_붉은 봄날_캔버스에 유채_130.3×130.3cm_2008

초대일시_2008_1106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롯데갤러리 대전점 LOTTE GALLERY DAEJEON STORE 대전시 서구 괴정동 423-1번지 롯데백화점 8층 Tel. +82.42.601.2827~8 www.lotteshopping.com

"행복한 풍경"에게- ● 발견과 상상은 서로 이웃한다. 상상은 인간에게 담겨진 하나의 삶이다. 이미지나 가치관에는 유형과 무형이 있듯 삶에도 그러하다. 시각은 연속적이지 않다. 그래서 영상을 만들어 시각의 전후를 붙여 주고 있다.

이선희_자연을 채우다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08

TV는 1초에 60장인 영상을 전달한다. 그러나 요즘 진화된 TV는 이 60장 각각의 영상 사이에 내부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으로 만든 영상을 삽입해 초당 120장의 영상을 화면에 보여준다. 빠른 움직임이 있는 영상은 초당 구현할 수 있는 영상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선명하게 화면을 표현할 수 있다. 영화는 24프레임을 이용하고 있고 일반 공중파 방송이나 애니메이션은 30프레임을 사용하는데, 프레임의 차이에 따라 영상을 시청하는 이들은 확연히 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영화를 30프레임으로 보게 되면 일반 드라마를 보는 듯 느낌을 갖게 되고, 드라마를 24프레임으로 보면 영화 같은 느낌이 든다. 이는 시각의 분절형태를 시간으로 환원하는 동영상에 관한 일이다. 얼마만큼 우리의 시각에 포착하는 분량을 그대로 제현 할까에 대한 노력인 셈이다. 반면 그림은 영원한 1프레임을 자랑한다.

이선희_고향집의 마지막 봄_캔버스에 유채_72.7×90.9cm_2007

눈에 보이는 상(像)들을 우리는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많은 경우도 있고 얼마지 나지 않아 소멸되는 경우도 있다. 모두를 기억한다면 정신을 힘들게 할 것이다. 유독 떠오르는 상들이 반복될 때 그 증상에 따라 분열증세도 나타날 것이다. 그래서 일정양의 분량만 저장하는 우리의 두뇌를 사랑하자. ● 이러한 이야기를 앞세우는 것은 이선희 화면을 "분절分節적 풍경 고르기" 라고 지칭하고 싶어서이다. 우리의 시선도 카메라 같이 모든 것을 동시에 보지만 뇌리에는 전부를 떠올리지 않는다. 일테면 풀풀 꽃잎 날리는 벚나무를 볼 때 꽃이 먼저 보이고 나무가 보인다. 그 밑을 지나는 개미나 벌레는 아예 본 기억조차 없다. 이러한 현상이 우리의 시선이다. 이선희의 작품에는 화면의 구조가 작가의 시선에 선택된 필요한 것들만 남겨놓는다. 파노라마로 보이는 현상을 선택, 분절하여 재구성한 풍경이 된다. 언뜻 보면 낯설지 않다. 그러나 관찰하면 낯설다. 현실적이지만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림의 매력은 이런 곳에 있다.

이선희_창문너머I_캔버스에 유채_130.3×130.3cm_2008

시간은 정지되지 않기 때문에 이미지를 정지시켜 저 너머로 가는 또 다른 공간을 생성한다. 풍경은 '심신을 쉬게 하는 편안한 공간인 집' 이다. 그녀의 작업노트와 같이 "화려하거나 넓지는 않지만 그 속에서 편안하게 일을 하거나 쉴 수 있는 공간" 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자연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소소한 정겨움을 주는 공간을 바라보는 시각은 독특한 화면공간을 창출하는 에너지인 것이다. 매일 마주치는 공간, 그 안에서 펼쳐지는 일상의 모습, 이런 것에 시각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행복한 풍경 만들기" 이다. 결국 그녀는 그림 그리는 일이 즐겁고 행복하다는 것이다. 집안의 구조, 오가는 건물들의 출입구, 오르내리는 계단, 건물 밖 정원의 나무, 담 너머로 보이는 벚꽃나무, 길과 길 사이의 작은 잔디정원, 이 모두는 그녀의 행복한 그물에 포착되고 다시 조합된다.

이선희_창문너머III_캔버스에 유채_97×30cm_2008

겉으로 묘사한 캔버스의 껍질skin은 내면과 연계한다. 바로크의 거장들이 그렸던 유화들의 반들거리는 껍질들은 시대의 사유와 알레고리를 포함한 그것이다. 바우하우스에서 텍스추어texture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가졌었고 현대미술이라는 것에 이 문제를 직접 들고 나온 예가 많지만 이는 소재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본다' 는 이 시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직접적인 내용의 이미지가 더 많이 사용되고 그 감각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러한 추세에 이선희가 선택한 이미지는 정적이다. 하지만 그 공간을 배회하는 시선의 동선은 고요하지만은 않다. 조용히 걷거나 우두커니 서 주어진 공간의 공기를 호흡하듯 시선은 화면 구석구석을 살핀다. 따라서 피부의 모양새는 껍질로서의 피부가 아니라 이미지로서의 장력이 된다. 노랑 빛이, 붉은 벽돌이, 녹색의 나무들이, 밝은 꽃들이 그녀만의 합리적인 행복감에 의한 이상향과 실물구조에서 오는 현실의 이상향 사이에 어우러진다. 때로는 실내가 밖이 되고 밖이 실내가 되어 백일홍이 잔디밭 카펫에 옮겨지고, 정원의 잔디는 노란 장판이 되어 마당에 깔려있다. 만들어 논 조형물은 배경에 보이는 건물들 속으로 연접하여 이면과 저면 사이를 오간다.

이선희_톡톡터지는 순간_캔버스에 유채_90.9×72.7cm_2008

오가는 논지는 확연하다. 시선을 준 이쪽 공간이 저쪽과 만남을 기대하고 있다. 이것은 관람자의 시선을 유도하며 화면에 머물게 하는 장치이다. 저 벽 너머에는 어느 공간이 자리하고 있을까를 기대하며 다가선 길과 그 길의 끝마무리를 하는 계단은 충분한 시선의 길잡이를 한다. 그러나 서툰 추측은 하지 말자. 그 곳은 어렵지도 낯설지도 않은 그녀가 있는 공간이다. ● 이쯤 되면 우리는 눈치가 있어야한다. 지각과 시각은 시간적인 차이와 결절이 있다는 것을... 그녀가 그린 공간이 그 지점인 것을... 가슴에 다가오는 작품은 감상자의 시선이 썰물과 같이 쉬 빠져나가지 않고 소용돌이치는 물처럼 작품에 시선이 오래 머물러야한다. 지속적으로 생각하게 하거나 감동이 있으면 더욱 좋다. 그러나 뜨거운 감정적 메아리도 있듯 서늘한 이지적 맞춤형의 공간구성도 있다. 또한 양자의 경계에 있는 경우도 있다.

이선희_팝콘이 날리는 봄날II_캔버스에 유채_24.2×33.3cm_2008

이선희의 작품에는 이러한 경계성이 존재한다. 이지적 선택에 의한 공간구성에 따뜻한 사물들과 식물들에 대한 시선을 남겨놓았다. 건물의 요모조모로 구성된 분절은 시선을 오래 머물게 하고 따뜻한 소재들은 구성에 의한 경직을 풀어주게 한다. 그것이 좋은 점이다. 그러나 아직 어디에선가 연계되거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아쉬운 점도 있다. 이러한 점은 지속적인 추구에 의해 벗겨질 것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제 David Hockney도 내려놓고 그 주변도 슬그머니 보내고 자신의 유영지에서 건강하고 아름답게 노랑, 주황, 녹색과 파랑의 벽과 하늘, 그리고 땅이, 계단이 더욱 그녀의 시선에서 신선하게 탈바꿈이 되어 우리에게 다가오기를 많이 기대해보자. ■ 이순구

Vol.20081019e | 이선희展 / LEESEONHEE / 李善姬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