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유사분열_Vivid of 'Fractal'

김도한展 / KIMDOHAN / 金都漢 / photography   2008_1020 ▶︎ 2008_1025 / 일요일 휴관

김도한_'Fractal 002'_젤라틴 실버프린트_19×19inch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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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8_1020_월요일_06:00pm

관람시간 / 월~금요일_09:30am~08:00pm / 토요일_09:30am~07: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이룸_GALLERY ILLUM 서울 중구 충무로 2가 51-13번지 2층 Tel. +82.2.2263.0405 www.galleryillum.co.kr

자기 증식의 세계 ● 포토샵에서 두 개 이상의 레이어를 겹쳐보거나, 서로 각기 다른 이미지에서 일부분만을 이용해서 이미지를 섞어 보는 것, 두 개의 서로 다른 필름을 겹쳐서 인화해 보는 것... 등등. 이 기법들의 갈 가야 할 길은 선명하다. 사실을 재현하거나, 사물의 존재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이미 포기 한 것이다. 대신에 다른 무엇을 얻으려고 한다. 그것은 심미적 가치로서, 전통적 의미의 사진 영역은 아니다. 이미 충분히 계산되고 의도 된 제작 방식이다. 그러니 그게 무엇이지 알면 일차적으로 사진은 쉽게 읽혀진다. 그 의도가 얼마나 새롭고 창의적이냐에 따라 가치 평가가 뒤 따르게 된다. ● 김도한의 사진(?)은 정직하게 촬영 된 두 개의 서로 다른 필름을 사용한다. 필름 작업과 암실에서 진행 된 실버 프린트라는 작업공정이 신선했다. 이것이 벌써 오래 된 옛 방식처럼 느껴지니 참 변화가 빠른 세상이다.

김도한_'Fractal 003'_젤라틴 실버프린트_19×19inch_2008

살펴보자. 첫째 필름은 젊은 사람의 벗은 몸을 찍은 사진이다. 주로 여자이지만 남자도 눈에 띈다. 스튜디오에서 촬영 된 몸은 조명과 포즈로 보아서 충분히 촬영자의 의도가 실린 것을 알겠다. 특히 몸 중에서 두 가지가 유독 강조 되어있다. 젓 가슴과 손과 팔이다. 서로 다르지만 유사하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우선 주목하자. ● 둘째 필름은 여러 가지 식물을 근접하여 찍은 것이다. 식물의 종류나 이름은 그렇게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나뭇잎의 모양, 줄기의 구조나 잎맥을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첫 번째 몸 이미지 보다는 두 번째 필름에서 사진가의 의도를 발견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다음 단계는 두 종류의 필름을 확대기의 유리 캐리어에 넣고 인화를 하는 것이다. 어느 필름과 어느 필름을 겹쳐 보일까 결정하는 것은 그의 작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최종 이미지의 성패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연히 만든 이미지는 있을 수 없다. 두 개의 네거티브를 겹치기 위해 필름을 고를 때, 이미 사진가의 속내가 투영되기 때문이다. 누가 어설픈 이미지를 위해 인화지를 소모하겠는가? 그러니까 확대하고 있는 이미지는 필연적이다.

김도한_'Fractal 009'_젤라틴 실버프린트_19×19inch_2008

김도한의 이미지 층위를 보면 아래 부분이 인체이고 윗부분이 식물이다. 몸이 마치 식물을 위한, 아무 것도 그려지지 않은 그림판 역할을 한다. 벗은 몸 위에 옷 대신에 식물 이미지를 입고 있는 셈이다. ● 이런 경우 어떤 사람들은 인체 위에 직접 페인팅을 하기도 한다. 후지 히데키 같은 일본 작가가 대표적이다. 몸의 일부분만 한다면, 그것이 문신이 될 것이고, 이것은 개인적 취향이 문제이지 예술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직접적인 방법은 아니어도 사진에서도 벗은 몸 위에 돌, 벽 같은 광물질을 겹치는 작업은 종종 본다. 제일 쉬운 방법은 프로젝트를 투사해서 찍는 방법이다. 두 가지 서로 다른 이미지를 충돌 시켜서, 제3의 이미지를 얻는 방법은 여럿 있다. 그러나 어떤 방법을 사용해도 가야 할 목적지는 분명하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단순한 재미인가? 사회적 발언이나 정치적 목적인가? 초현실주의 같은 미적 범주에 종속하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이제 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미학적 이념이나 가치의 제시인가? 이런 의문과 질문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김도한_'Fractal 012'_젤라틴 실버프린트_19×19inch_2008

그가 두 개의 필름을 이용해서 만든 사진이 새로운 표현기법은 아니다. 그러나 최종 인화의 품질을 위해서라면 필름의 농도는 중요하다. 이 부분은 촬영과 현상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밝기와, 입자, 피사체의 디테일을 드러내는 정도는 사진가 개인의 의도이고 취향이기 때문이다. 사진은 디테일을 드러낸다기보다 감추는 쪽을 택하고 있고, 어두운 느낌의 사진이 많이 보인다. 제1회 개인전에서도 그랬다. 무엇을 미세하게 확인하는 것보다는 전체적인 느낌을 중요시하는 것이다. ● 다음은 의미부분이다. '그래서 뭔데?'에 대한 답이다. 벗은 몸에 프린트 된 식물 이미지가 답을 준다. 몸의 일부분에 정교하게 프린트 된 식물 속에서 어떤 단서를 잡을 수 있다. 인체와 겹쳐진 이미지 속에 동일한 패턴의 잎맥들이 보인다. 마? ?반복적 이미지를 보여주는 벽지 같다. 이처럼 유사 이미지가 크던 작던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구조를 프랙탈이라고 한다. 일종의 자기복제 구조이다. 처음의 어떤 것이 자기 복제를 시작해서 모두가 인식 할 정도로 충분한 개체수를 가졌을 때, 그것들은 나름대로 어떤 특성과 정체성을 드러낸다.

김도한_'Fractal 015'_젤라틴 실버프린트_19×19inch_2008

자연은 자기복제를 통해서 합목적성을 갖는다. 씨앗이 떨어져 자라고, 잎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다시 떨어지는, 생성과 소멸의 연속적 과정을 겪으면서 자기복제는 반복된다. 무생물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명징하게 들어나지 않는 어떤 규칙에 의해서 자기복제와 분열이 진행되고 있다. 단지 그 흐름 속에는 발견되는 원리는 자기유사성(self-similarity)과 반복되는 순환성(Recursiveness)이다. ● 작업은 여러 형태의 프랙탈 구조를 보여주는 식물을 사람의 몸에 프린트하여 인간 역시 프랙탈의 한 형태임을 보여준다. 볼 수 없는 사람의 피부의 세포나 혈관의 형태 등을 잎맥이나 줄기 등으로 옮겨 놓은 것은 일종의 은유다. ● 세상을 프랙탈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역사는 짧다. 1975년 수학자 만델보로트(Benoit Mandelbort)의 주장으로 처음 빛을 봤다. 이 이론에 근거하여 세상의 프랙탈을 찾아, 작업하는 사진가들이 있다. 거대한 풍경 속에서 자기 복제를 해나가는 또 다른 풍경을 찍는 빌 허스트(Bill Hirst)가 독보적이다.

김도한_'Fractal 016'_젤라틴 실버프린트_19×19inch_2008

김도한은 눈의 결정체를 보는 듯, 식물을 통해서 또 다른 미세한 프랙탈을 찾는다. 그리고 인간과 결합 시킨다. 자연이란 울타리 속에서 식물과 인간의 위계는 없다. 모든 것은 자연 속으로 흘러 들어가고 융합된다. 풍경 속에 하나의 점경(點景)으로 들어 온 인간이나, 식물과 인체를 하나로 보고, 서로를 삼투 시키려는 생각은 같은 뿌리의 소산이다. ● 작업은 동양의 자연관과 서구의 과학적 정밀함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 자신의 작업을 왜 해야 하는지, 어떤 결과를 내야 하는지를 작가는 알고 있다. 그의 미덕이다. 그러나 아쉬운 점 하나. 인화 된 사진을 보면서 뱀 꼬리 하나를 남겨 두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업양이 작업의 완성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하지 못하다는 느낌이다. 모든 것이 좋으면 좋겠지만, 어떤 이미지들은 아직은 거칠다. 첫 수저에 배부르겠는가? 그는 진화 중이다. 기다려보자. ■ 최건수

Vol.20081020a | 김도한展 / KIMDOHAN / 金都漢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