畵具畵(화구화)

한슬展 / painting   2008_1021 ▶︎ 2008_1030

한슬_색연필,풍경0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0×120cm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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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동원화랑 DONGWON GALLERY 대구시 중구 봉산동 223-16번지 Tel. +82.53.423.1300 www.idongwon.co.kr

사물예찬, 사물들이 열어 놓은 페티시적 전망 ● 페티시즘, 물신. 물신을 뜻하는 페티시는 원래 이성이 소지한 물건이나 이에 대한 욕망을 의미한다. 그 물건은 그냥 물건이 아니라 이성의 존재를 환기시켜주는 물건이며, 욕망을 부르는 물건이며, 따라서 예사롭지 않은 물건이며, 물신으로 둔갑하고 숭배되는 물건이다. 이처럼 성적욕망이나 이에 따른 심리적 현상을 의미하던 물신은 그러나 사회가 급속하게 자본주의화하면서 보편적인 개념을 획득하기에 이른다. 욕망을 부르는 물건이나 유혹하는 오브제가 소비가 미덕으로 종용되는 자본주의 시대를 대변하고 견인하는 핵심 화두로 등극한 것이다. 그리고 주지하다시피 그 화두에 적극적으로 반응한 것이 팝아트고, 팝아트를 동시대적인 문법으로 재생한 것이 누보팝이며 네오팝이다. 한슬의 그림은 그 이면에 욕망이 투사된 사물(이를테면 여타의 소비재나 특히 소위 명품과 같은)을 주제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로써 일종의 사물의 초상화로 정의할 만한 경향성을 예시해준다는 점에서 이런 네오팝의 경향성과 통한다. 특히 그의 그림에 나타난 감각적이고 현란한 색채대비는 이런 해석을 뒷받침해준다.

한슬_연필,풍경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0×120cm_2008

처음에 그는 말 그대로 사물의 단독 초상화를 떠올리게 하는 유형의 그림들을 보여준다. 립스틱이나 콤팩트 같은 화장품들, 하이힐이나 지갑과 같은 소지품들, 케이크나 피클과 같은 먹거리들을 소재로 취해와 이를 평면 위에 거대한 크기로 확대해 그린 것이다. 이 그림들에서 사물들은 단순한 사물 이상의 물신(성)을 획득하는데, 거대한 크기로 부풀려진 것이나 정면성을 강조한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정면성은 중심성이 강한 좌우대칭형 구도와 함께 보통의 대상에다 신성한 의미나 아우라를 부여하기 위한 미학적 장치로서 전통적인 종교화에서 그 전형화된 형식을 확인해볼 수 있다. 그 물신이 전통적인 도상학으로부터 사물로 옮아온 것이다. 이와 함께 일반적으로 사물은 다른 사물이나 배경과의 유기적이고 연속적인 관계와 더불어 지각되기 마련인데, 작가의 그림에서처럼 그 관계의 망으로부터 단절된 채 저 홀로 제시된 사물이 이런 물신(성)을 강화해준다. 그런가하면 특히 유리병이나 플라스틱 통에 담겨진 각종 피클을 소재로 한 일련의 그림들은 그 표면에 특정 회사의 로고나 상표가 그대로 붙어 있어서 이런 사물 초상화(사물의 물신을 극대화한)와 함께 자본주의 시대의 상품미학에 대한 논평을 함축하고 있기도 하다. 자본주의와 권력의 관계나 이를 지지하는 장치로서의 이미지의 정치학에 대한 논의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 이처럼 사물 자체의 즉물적 존재성에 천착한 작가는 이후 점차 그것들이 놓여진 배경으로 그 관심의 축이 옮아간다. 자본주의 시대의 신전 혹은 성소랄 수 있는 백화점과 쇼윈도에 진열된 사물들과, 이 사물들을 명품(물신)으로 둔갑시키는 미학적 장치들에 주목한 것이다. 이 일련의 그림들에서 작가는 종전의 그림들에서의 정면성의 법칙을 엄격하게 적용 대신, 상대적으로 더 역동적인 시점을 취해 일정한 변화를 유도한다. 일부 그림들의 경우, 시점을 조작해 사물이 왜곡돼 보이도록 의도한 것이다. 이를테면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부감법이나, 아래서 위로 올려다보는 앙각시점을 취해 그린 그림들은 특정 부위가 실제보다 더 커 보이거나 왜곡돼 보인다. 이로써 예컨대 쇼윈도에 전시된 구두 그림이 무슨 비행기 계류장을 보는 것 같은 의외의 전망을 열어 놓는 한편, 그림의 경계를 사물 초상화로부터 사물 풍경화로 부를 만한 지점에로까지 확장한다.

한슬_크레파스(어항)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5×150cm_2008
한슬_거울-색연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5×150cm_2008

이처럼 자기 외부와의 유기적이고 연속적인 관계의 망으로부터 단절된 채 클로즈업된 사물들이 그 자체를 조망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논리적으로만 그렇다. 정작 그림 속 사물들은 그 자체의 고유한 성질을 드러내고 강조하기보다는 오히려 낯설고 생경하고 이질적인 어떤 사물 혹은 대상 혹은 상황과 맞닥트린 것 같은 예기치 못한 비전을 열어 놓는다. 그리고 그 자체가 일종의 초현실적이고 비현실적인 비전 혹은 전망과도 통한다. ● 이런 페티시적 사물들이 열어 보이는 전망은 창틀을 배경으로 놓여진 사물들과 특히 거울 위에 놓여진 사물을 소재로 한 근작에서 극대화된다. 거울이 그 위에 놓여진 사물의 상을 실제와는 거꾸로 반영함으로써 실제 사물을 재현한 이미지와 사물의 반영된 상을 재현한 이미지가 서로 충돌하고 부닥치고 어우러지는 일종의 만화경 같은 시지각 현상을 예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거울의 자기반영성을 도입하고 이를 극대화한 이 일련의 그림들은 사물의 초상화와 관련하여 의미 있는 사실을 시사해준다. 거울은 알다시피 자기반성적인 과정과 관련이 깊은 만큼이나 자의식의 전형적인 메타포이기도 하다. 모든 거울은 말하자면 자의식의 도구며 증거인 것이다. 이로써 거울에 자기를 반영하는 사물들은 곧 자신의 자의식을 내비치는 사물들이다. ● 따지고 보면 물신화된 사물 자체가 이미 인간처럼 어떤 격(욕망)을 부여받은 사물이 아닌가. 따라서 물신화된 사물, 거울을 보는 사물, 자의식을 내비치는 사물 모두는 동격이다. 이로써 작가는 자본주의 시대에 물신으로 등극한 사물들이 진정한 주체인 인간을 밀어내고, 대신 그 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을 논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주지하다시피 물신은 다름 아닌 인간 자신의 욕망이 투사된 사물이며, 그런 사물은 도처에 있다. 인간이 욕망의 동물이라는 사실은 동시에 결여와 결핍의 동물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처럼 정작 인간 자신은 결여하고 있는 것을 가지고 있는 사물, 거울을 보는 사물, 자의식을 내비치는 사물, 어떤 격을 부여받은 사물이 바로 물신이다. ● 작가는 근작의 주제를 「colorful」이라고 부르는데, 대략 현란한, 장식적인, 욕망을 내비치거나 실현하는 사물의 본성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색채현상 이상의 색채들의 향연을, 사물들의 향연을, 그 욕망의 무분별한 분출과 실현을 암시한다. 이로써 이 일련의 그림들은 색채와 욕망과 거울의 본성이 서로를 견인하고 강화하는 자본주의 시대의 물신을 예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한슬_연필(컵)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0×120cm_2008
한슬_소프트파스텔(컵)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0×120cm_2008

모더니즘 서사, 회화 이후의 회화. 사물의 초상화라고는 했지만, 작가의 그림은 사실상 전통적인 정물화를 현대적인 문법에 맞춰 재해석하고 각색한 한 버전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소재로 치자면 평범할 수도 있는 이 그림들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작가 고유의 방법이다. 이를테면 화면에 테이프를 붙이고 색칠을 한 후 그 테이프를 도로 떼어내면 미세한 비정형의 자국이 생기는데, 아마도 작가의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말하자면 작가의 그림을 여타의 유사한 소재를 모티브로 그린 다른 여러 작가들의 그림과 구별시켜주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며 특징이지 싶다.

한슬_색연필,풍경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116.5cm_2008

작가의 그림은 말하자면 평면적으로 처리된 바탕화면 위에 사물 등의 모티브를 중첩시켜놓은 것 같은 인상을 준다. 한편으로 작가의 그림에서의 평면성은 다만 바탕화면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 보다는 작가의 그림을 더 결정적이게 하는 특징적인 요인으로서, 사물에 해당하는 부분 즉 모티브를 찬찬히 뜯어보면 붓으로 그려진 것이라기보다는 자잘한 색면들의 조합으로써 사물의 형태가 재구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사물의 디테일을 묘사하는 대신, 이를 평면(색면)으로 대체한 것이다. 이로써 작가의 그림에서 입체를 묘사한 일루전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즉 철저하게 평면적인, 밋밋한 평면들의 조합으로써 재구조화되어져 있는 것이다. 등가를 이루고 있는 색면들, 그리고 그 색면들의 조합이 일구어낸 사물의 이미지가 모더니즘 서사의 평면성을 떠올려준다. 그러면서도 사물의 실체를 알아볼 수 있는 구상적 재현이 적용된 것이다. 이처럼 평면성과 일루전을 동시에 함축하고 있는 그림들에서 회화와 관련한 전통적인 문법인 재현의 논리를 거부하면서 재차 불러들이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이렇게 불러들인 재현은 처음에 거부한 재현과 같지 않다는 점에서 작가의 그림은 회화 이후의 회화의 전망을 향해 열려있는 것이다. ● 이처럼 작가의 그림에선 페티시즘(물신)과 모더니즘 서사(평면성)가 중층화돼 있으며, 이로써 단순히 전통적인 정물화를 재해석하는 정도를 넘어 (이보다는 더 본질적인) 재현회화의 또 다른 한 가능성을 예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 고충환

Vol.20081020d | 한슬展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