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페메랄 이페메라 Ephemeral Ephemera

김아영展 / KIMAYOUNG / 金雅瑛 / photography   2008_1021 ▶︎ 2008_1103 / 일요일 휴관

김아영_"70FT 높이에서 투신한 남자 버스 지붕에 부딪히다2007.5.29" 내셔널 뉴스_ 디지털 프린트_120×160/76×100cm_2007~8

초대일시_2008_1021_화요일_05:00pm

관람시간 / 평일_10:00am~06:00pm / 토요일_10:00am~02:00pm / 일요일 휴관

스페이스 바바_SPACE VAVA 서울 강남구 신사동 514-1번지 포토피아 5층 Tel. +82.2.745.1644 www.spacevava.net

덧없는 이미지의 무대 : 김아영의 '숏컷'시차들 그녀가 지하철을 타고 가다 오늘의 뉴스로 빽빽한 신문에서 그 소식을 접했을 때, 전 KGB 스파이 알렉산더 리트비넨코는 런던의 호텔 바에서 차를 마시고 의문의 독살을 당해서,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죽음이 너무 이른 것일까? 아니면 그녀에게 전달된 '뉴스(news)'가 너무 늦은 것일까? 시간의 어긋남은 이것만이 아니다. 위 '스파이 음독 사건'은 2006년 11월 1일에 일어났고, 사건에 대한 '뉴스'는 며칠 후 신문에 실렸다. 하지만 뉴스를 읽은 그녀가 그 기사에 근거해 허구로 꾸민 '예술작품'의 제작 연도는 2007년이다. ● 그 문제의 예술작품은 현재 영국에 거주하면서 작업하고 있는 김아영의 사진한 점을 지칭하는 것으로, 위에서 말한 '그녀'는 곧 이 작가 김아영이고, 위의 사건들은 실제로 일어난 일들이다. 이하에서 나는 김아영의 「이페메랄 이페메라 Ephemeral Ephemera」 시리즈 사진 작품을 논할 것인데, 서두를 소설처럼 읽힐 수도 있을 이야기로 시작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김아영의 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사건들의 시차'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시차들이 만들어내는 작품의 비현실적이거나 아니면 극히 현실적이어서 모순으로 보이는 차원, 이질적이고 비밀스러운 분위기, 그리고 사건들의 시차를 시각이미지로 다뤄내는 작가의 방법론을 미리 조금 선보이기 위해, 나는 이를테면 레이먼드 카버(Raymond Carver)의 문체로 이 글을 시작해 본 것이다. ● 김아영은 우리가 매일 읽지만, 읽은 후 별 고민 없이 폐기해 버리는 신문이나 인터넷 뉴스가 "다양한 삶들의 유한성과 미디어의 소비적 특성을 여과 없이 발산"한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그녀는 자신이 살고 있는 영국과 고국인 한국의 그 하루살이 기사들, 뉴스들을 읽고, 그것을 '스크랩'하기 시작했다. 물론 앞서 시사했듯이, 작가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 덧없고 한시적인 기사들을 시각이미지 작품으로 만들어 비교적 긴 생명을 부여하고 있다.('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통속적 수사가 맞는다면.) 여기서 우리는 김아영 이왜 자기 작품에 「이페메랄 이페메라」라는, 결코 쉽지 않고 친숙하지도 않은 이름을 부여했는지 유추해야 한다. 영어 단어 'ephemera'는 '지극히 덧없는 것, 하루살이, 대수롭지 않은 사물'을 지칭하는 용어로, 'ephemeral'은 그 형용사이다. 따라서 같은 뜻의 형용사형과 명사형을 접속시킨 위 제목을 우리가 굳이 한글로 번역하자면 '덧없이 덧없는 것' 또는 슈렉을 흉내 내서 '겁나 덧없는 하루살이' 정도가 될 것이다. 요컨대 작가의 시리즈 작품 제목은 일단 자신이 다루는 소재, 즉 ⓐ시사·사건·사고, ⓑ그것을 사후(事後)에 전달하는 뉴스, ⓒ그 '뒤늦은 새로운 소식'을 일과적이고 소비적으로 읽는 행위, 이 ⓐⓑⓒ 소재들의 공통 속성 혹은 생리인 '덧없음'을 지시하고 있다고 읽어야 한다. ● 하지만 이쯤에서 다시 한 번 의미의 반전을 말해야겠는데, 사실 '이페메라'는 앞서의 뜻과 더불어 '쓰임이 다한 후 수집품이 되곤 하는 전단, 티켓 등의 자질구레한 종이 아이템들'을 지시한다. 인터넷 옥션 같은 데서 고가에 팔리는 '비틀즈 공연 포스터' 같은 것을 떠올리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김아영의 사진 또한 두 번째의 미의 '이페메랄 이페메라' 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요컨대 세간에 부박하게 떠도는 덧없는 것(뉴스 이페메라)은 '뉴스'로서의 용도를 다하거나 가치를 상실한 후, 김아영의 스크랩 목록에 포함되고, 그것을 원자재로 가상 상황을 연출해 찍은 작가의 사진 작품 속에서 새로운 삶(수집품 이페메라)을 살게 되는 것이다. '시차'는 이처럼 김아영이 현실의 일들을, 끊임없이 다른 층위의 삶으로, 다른 양태의 존재 형식(물리적 사건-텍스트 기사-허구적 사진)으로 이행시키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이자 장치이다. 그런 맥락에서 내가 이제까지 말한 '시차'는 실재와 재현 활동 간의 '시간 차'이기도 하지만 그 둘 사이의 이행 사이에 빚어지는 '의미의 간극'이기도 하다.

김아영_"독살된 스파이 미스테리 2006.11.1" CBSnews_디지털 프린트_120×160/76×100cm_2007
김아영_"연예인의 잇단 자살, 왜? 2007.02.10" 연합뉴스_디지털 프린트_120×160/76×100cm_2007
김아영_"대공습의 괴물이 일으킨 혼란 2007.5.15" 더 런던페이퍼_ 디지털 프린트_120×160/76×100cm_2007

포토몽타주 ● 과거에 실제 일어난 사건과 그것을 전달하는 기사와 또 이후 그 양자에다가 작가가 상상력과 이미지 조형능력을 부가하여 만든 작품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시차가 존재하는데,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러한 시차가 김아영의 작업에서 작품의 '내용'을 구성하는 역할만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시차를 김아영 작품의 형식과도 밀접한 상관성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페메랄 이페메라」 시리즈는 모두 일종의 '포토몽타주' 형식을 취한다. 서로 원천이 다른 여러 사진들의 부분을 조합(montage)하는 이 독특한 사진 형식은, 말 그대로 실재와 그것의 재현 사이에 본질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시간의 격차, 의미의 간극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면서 동시에 봉합하는 방법론적 형식인 것이다. ● 그러나 이때 내가 말하는 포토몽타주는, 이 형식으로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작가인 20세기 초중반 베를린 다다이스트 존 하트필드(John Heartfield)의 그것과 연속성을 갖는 동시에 김아영 작업만의 특이성 또한 포함한 의미에서이다. 하트필드가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말기와 히틀러의 나치 제국 시기 동안, 여러 장의 사진을 한 지면 위에서 몽타주하고, 거기에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텍스트를 다시 재구성한 포토몽타주는, 시각예술영역에서든 정치적 차원에서든 혁명적인 것이었다. 김아영의 시리즈사진은 이러한 하트필드의 포토몽타주 기법을 기본적으로 원용한 것 이지만, 그녀의 작품은 '평면' 위에서 '기성 사진들'이 헤쳐 모이는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작가는 이미 자신이 접한 미디어 기사에 입각해 과거 사건의 이미지를 유추하거나 연상하고, 다시 그 자신의 상상에 부합하는 현장을 헌팅 하여 사진으로 찍는다. 그리고 이렇게 직접 찍은, 그러나 분명히 실제 사건으로 보면 허구적 재현의 장소와 인물과 사물 이미지인 자기 사진들에서 요소요소를 포토몽타주 하여 가상 사건이 펼쳐지는 3차원 무대를 만든다. 그 무대를 최종적으로 사진 찍은 것이 작가의 「이페메랄 이페메라」이다. 정리하자면, 하트필드가 기성(ready-made) 사진을 몽타주하여 자기 고유의 정치적 메시지를 전한다면, 김아영은기성뉴스를콜렉션하여자기고유의사진을만든다. 또 후자의 포토몽타주는 처음부터 끝까지 평면 위에서 작업하는 전자와는 달리 평면(허구의 현장 사진)-입체(그 사진으로 몽타주한 무대)-평면(그 무대를 찍은 사진)으로 이동하면서 다(多)차원성을 획득한다. ● 가령 「이페메랄 이페메라」 시리즈 중 하나인 "북한을 핵 보유국 클럽에 가입시키거나 당장 폭격하라"라는 작품을 보자. 2006년 10월 11일자 영국 가디언(Guardian)지 인터넷 판은 이와 같은 헤드라인의 칼럼을 게재하며, 당시 전세계적 위협으로 떠오른 북한 핵무기 문제에 대한 처방을 제시했다. 이 칼럼에서 서구의 북한에 대한 시선을 읽어낸 김아영은 자신이 한번도 가본적 없는 북한에 대한 "호기심과 동시에 자국인으로서의 무력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가 보다시피 그 수집한 기사와 자신의 정서를 토대로 "북한을..."이라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화면 중앙을 원근법적 공간감으로 관통하는 도로 주변에, 일제 강점기 말기나 남한의 6-70년대를 환기시키는 시대착오적 점포들("골덴라사", "합동공업사" 따위)이 늘어서있는, 언뜻 보면 드라마세트장 같은 사진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사진에서 가장 명시적이고 결정적인 메시지 역할을 하는 이미지는 검은 하늘 위에 횡으로 걸린 '북한 선전화 플래카드'와 자갈밭 도로 위에 메다 꽂혀 있는 포탄 비슷한 '핵무기들'이다. 그 사물들은 사진 외부에 덧붙여진 표제(caption, 대표적으로 작품 제목)를 대변하는 이미지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이 사진 속에 아주 얕은 깊이, 그리 폭이 넓지는 않지만 확실히 존재하는 3차원 공간을 느끼도록 해 주는 매우 중요한 이미지 요소들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김아영이 최종적으로 전시작품으로 내놓은 사진들은 일종의 무대처럼 사진조각들로 구성된 3차원 모형공간을 찍은 것이다. 그 덕분에 마지막 결과물로서의 사진작품은 일정한 폭과 깊이의 환영을 보유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 모형의 공간감이 사진의 평면 위에서 재현되면서 발생한 2차원도 아니고 3차원도 아닌 환영(illusion)은, 또한 김아영 사진의 독특한 분위기, 그러니까 비현실적이면서도 상당히 객관적(objective)이고, 초현실적이면서 동시에 감각적으로 익숙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기여한다. 이를테면 그 분위기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길들여진 시선으로 바라보는 현실에서 감지하기에는 과장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토샵 프로그램 상에서 합성한다고 해서 간단히 얻어지는 일은 결코 없는, 그런 종류의 진실을 깔고 있다.

김아영_"템즈강에서 머리 없는 시체 발견 2007.4.21" BBC 뉴스_ 디지털 프린트_120×160/76×100cm_2007
김아영_"북한을 핵 보유국 클럽에 가입시키거나 당장 폭격하라 2006.10.11" 가디언 언리미티드_ 디지털 프린트_120×160/76×100cm_2007
김아영_"모래 욕조 속에서 발견된 영국인 교사 2007.3.28" 가디언 언리미티드_ 디지털 프린트_120×160/76×100cm_2008

숏컷의 이페메랄 이페메라 ● 서두에 잠깐 내가 흉내 낸 카버의 소설은 미국 사회, 평범한 가정의 일상에 만연해 있는 권태와 그 비슷한 양으로 잠재하고 있는 위기, 그리고 이런 모순들의 동거를 정확히 묘파한 문학예술로 평가 받는다. 그리고 이 지극히 미국적 삶의 작가(Author)가 쓴 단편들과 시를 각색하여 로버트 알트만(Robert Altman) 감독이 영화화한 「숏컷 Short Cuts」은 카버 문학의 특수성을 영상 메커니즘으로 뛰어나게 전이(轉移)시킨 또 다른 예술적 성과다. ● 그런데 왜 나는 갑자기 카버와 알트만의 문학과 영화에 대해 떠든 것일까? 그것들이 김아영의 「이페메랄 이페메라」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이 셋, 즉 카버의 문학, 알트만의 영화, 김아영의 사진은―이렇게 셋을 일직선 상에 늘어놓는다고 해서 서로 인과성이 있다거나 수평적 단순비교가 가능하다는 뜻은 아니다―내가 보기에 한지점에서 상관이 있을 뿐만아니라 비슷한 '의미의 성취'를 이루고 있다. 그 지점이란 이들이 예술적 의도 속에서 집요하게 관찰하는 곳이 '현실 바로 그 차원'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비슷한 의미의 성취란 이 셋이, 겉으로 견고하게 짜여 있는 현실 내부에 각자의 장치와 방법론을 이용하여 침투함으로써, 현실이 쓰고 있는 가면에 '짧은 상처'를 입히고, 우리가 현실의 진짜 면모에 접근할 수 있는 '지름길'을 낸다는 점이다. 우리가 내내 논했듯이, 김아영은 일상적으로 매일 쏟아지는 각종뉴스들을 '통해' 현실을 만나는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 그 뉴스들을 전달하는 매스미디어 자체는 현실의 일부이다. 그러므로 김아영의 관찰은 중개된(mediated) 현실 너머 그것을 포괄하는 현실까지 뻗어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동시에 그런 관찰을 통해 작가는, 러시아 스파이 독살 사건을 무대화한 작품이나 핵폭탄이 즐비하게 박혀있는 북한 시가지 풍경을 상상으로 구현한 작품에서 보듯, 정보성·객관성·중립성을 표방하는 언론의 기사들이 건드리지 않는 현실의 은폐된 부분에 작은 상처를 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감상자인 우리는 그 작은 상처들로 이루어진 무대, 즉 김아영의 「이페메랄 이페메라」 사진들을 보면서 현실의 내부를 관통하는 지름길로 들어선다. 이제야 밝히는 것이지만, '숏컷'은 '짦은 상처', '지름길', '영화에서 짧게 찍은 컷들'이라는 세 가지 의미를 갖고 있는데, 위에서 내가 이런저런 비유를 들었던 것은 사실 이런 의미들의 '숏컷'을 염두에 두고서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왜 이 사실을 밝히는가? 그것은 김아영의 사진이 영상이미지로서 '짧게 찍은 컷들의 몽타주'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어서이다. 동시에 결정적으로 이 작가의 시리즈 사진에 '숏컷의 이페메랄 이페메라'라는 이름을 부여하기 위해서이다. ■ 강수미

Vol.20081021a | 김아영展 / KIMAYOUNG / 金雅瑛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