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스러운 룸펜을 위하여

지니아展 / Zinnia / mixed media   2008_1021 ▶︎ 2008_1029

지니아_오감도_디지털 프린트_18×130cm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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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8_1021_화요일_06:00pm

관람시간 / 01:00pm~09:00pm

벨벳 인큐베이터 VELVET INCUBATOR 서울 종로구 팔판동 123-3번지 Tel. +82.2.736.7023 www.velvet.or.kr

오감도_너희들의 이름은 사라졌다. 너는 첫 번째 아이요, 열세번째 아이다. 그 사이 열한명의 아이들이 열을 지어 행진하고, 곧 열명이 되었다. 구령소리는 점점 커지기 시작했고, 잠시 숨을 고른 뒤다시 오른발로 시작해서 왼발로 끝나는 행진이 계속되었다.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 나는 예술가다. 나는 노동의 찬가마저도 쾌락적으로 부르는 자다. 비지니스적 마인드를 갑옷처럼 휘감고, 대중적 취향으로 처절하게 무장하고 있어도 매일 숱하게 떨어져나가는 이 살얼음판에서 쾌락이 가득한 노동의 찬가로 인생을 끝마치고 싶어하는 나는 분명, 그저, 고급스러운 룸펜에 불과할 것이다. 이번에 발표할 작품은......그저. 언어다. 사회에 반응하는 내 안의 유기적 언어들. 자유롭게 생각하고, 자유롭게 몽상하고, 내 안에서 자연 발화되는 언어들. 그냥. 놀아본다.

지니아_지식인의 비애

현실 속에서 지식인은 윤리와 도덕을 강요 당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의 대부분은 누군가의 앞에 서서 끊임없이 지적 성찰을 이야기하고, 스스로 윤리적인 것을 가르치면서 비윤리적인 것을 성토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비윤리적인 교육자는 학생 앞에, 그리고 교단 앞에 설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비윤리적인 것을 그르다고 가르치고, 윤리적인 것을 옳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이기에, 스스로 비윤리적인 짓을 할 수 없는 울타리에 갇힌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 또한 인간이다. 자신의 숨겨진 욕망에 충실하고 싶을 때가 왜 없을 것인가. 이번 「지식인의 비애」라는 작품은 양아치적 끼를 가진 한 지식인 남자가 결국 자신의 숨겨진 본성을 거스르지 못하고 양아치가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그 동안 지식인으로 살아왔던 자신의 모습에서 허위와 가식을 벗겨나가는 과정을 그린 내용의 글이다. 그러나 이건 엄연히 내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캐릭터와 허구적 이야기일 뿐, 실제로 현실 속에서는 질타와 모욕과 뭇매만이 존재할 뿐이다. 아래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마광수 교수처럼.

지니아_ 광마를 위하여_잉크젯 프린트_100×70cm_2008

마광수. 어느 유명한 대학의 잘나가는 국문과 교수. 「지식인의 비애」에 나오는 남자처럼, 그는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못하고 시와 소설 등을 통해 현실 속에서 야한 여자에 대한 자신의 성적 환타지를 발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쉽게 자신의 욕망을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주류적 지식인의 입장에서 '가자, 장미여관으로'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라는 말로 자신의 성적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냈던 그가 '즐거운 사라'라는 소설을 쓰고서는 결국 동료 지식인과 사회와 여론의 몰매를 맞고 법정에서 만신창이가 되어 쓰러졌다. 법정에 섰던 그가 유난히 연약하고 애처롭게 보였던 것은 과연 나 뿐이었을까. ● 인간의 성적 욕망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질적 욕구지만, 결코 입 밖에 내놓을 수 없는 가장 내밀하고 비밀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그러한 욕구를 밖으로 꺼내 놓는다는 것은 각별한 의미를 지닐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자신의 성적 유토피아를 드러낸다는 것은 범죄와 마찬가지로 안녕과 질서를 유지시켜야 하는 사회 속에서 또 다른 금기 사항이기 때문이다. ● 우리 사회는 공인된 성만 존재할 수 있을 뿐, 실제로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또 다른 성은 존중 받지 못한다. 동성애는 어엿한 개인의 성적 취향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인정 받지 못하고, 트랜스젠더나 게이는 힐끗거리는 사람들의 눈초리에 주눅이 든다. 매춘은 사회 속에서 분명 필요악임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거세만 당한다. 심지어는 자신만의 성적 공상조차 세상에 드러내선 안된다. 그것은 곧 공인되고 질서정연한 집단적 체제에 반항하고,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는 것이며, 아나키스트가 생산될 수 있는 위험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 1990년대 자신의 내밀한 성적 유토피아를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발설했던 마광수 교수는 사회적 압력과 동료 지식인들의 질타와 혐오스런 눈초리에 힘입어 검찰에 구속되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성에 대한 인식이 자유로워졌다고는 하지만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뿌리깊은 유교주의는 성에 대한 이중적 잣대를 여전히, 질기게, 고수하고 있다. 마광수가, 장정일이, 이현세가, 미술인 부부가 시대를 달리하며 온갖 여론의 잣대에 올랐으며 뉴스거리로 등장했고, 예술이 머리 아픈 관료들은 그 맥락은 읽어보려 하지도 않은 채 무조건 옷만 벗으면 음란으로 치부한다. 예술은 권력 앞에 참으로 무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외설과 예술의 한 끗발 경계는 관객이 판단할 일이지, 관료가 판단할 일이 아닐 텐데도 말이다. ● 물론 그가 지금 이 시대에 '즐거운 사라'를 썼다면 구속이라는 극단적인 처방까지는 받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 그가 질타 받고 구속되었던 가장 큰 이유는, 윤리적이고 모범적이며 근엄해야 할 교수라는 주류적 지식인의 위치에서 고상함과 우아함과 아우라로 뒤덮인, 감히 고매한 문학을 들춰 업고 은유와 상징보다는 직설적이고 음란하고 천박하게 포르노 이야기를 써댔다는 사실에 있을 것이다. 만약에 그가 그러한 의무에서 보다 자유로운 평범한 일반인이었다면, 아니면 싸구려 같은 소설만 퍼대는 그저 그런 삼류 작가였다면 대수롭지 않은 포르노 소설로나 치부되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물론 인생도 고달프지 않았을 테고. 하지만 그는 어쨌건 교수라는 위치에 있었고,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소설이라는 가장 흡인력이 강한 매체를 이용해 그저 머릿속에서 봉인되어야 하는 자신만의 내밀한 성적 환상을 직설적으로 세상에 까발리고 말았다. 물론 그는 얻은 것도, 잃은 것도 있지만 아마 스스로는 잃은 것이 훨씬 많았다고 느끼리라 ● 그가 교수가 아니라 소설가였다면 그의 글들이 과연 그렇게 이슈가 되었을까. 물론 감옥에 잡혀 들어가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으로 망가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유명해지지도 않았을 테다. 사실 마광수는 교수보다는 예술가적인 기질이 더 많은 사람인 것 같은데....그가 교수가 아니라 예술가였다면 인생이 훨씬 더 행복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어쨌건 그렇게 좋아하는 야한 여자도 못 만나고, 그렇게 좋아하는 야한 섹스도 못하고, 나이만 들어가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느낌은 어떨까. 그는 자신의 연애하고 싶은 욕구를 글을 쓰면서, 그림을 그리면서 푼다고 했다. 그렇다면 프로이드가 말한 리비도의 예술적 승화를 그가 직접 실천하고 있다는 소린데...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해본다. 권력집단은 개인의 예술적 발언에 대한 자유를 마음대로 침범할 수 있는 것일까. 지식인에게 강요되는 엄격한 윤리의식과 의무감은 개인의 사적 영역을 초월하는 것일까. 마광수가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아니라 평범한 민초였다면, 그리고 그가 교수가 아니라 예술가였다면 그의 행위는 용납될 수 있었을까.

지니아_Just a Human Being 렘피카의 그림_55×43cm_2008
지니아_바람의 음모_잉크젯 프린트_100×70cm_2008

과도하게 숨겨진 욕망이나 욕정은 가끔씩 이렇게 무자비해진다. 권력에 대한 욕구를 채우지 못하는 자. 나약한 자존심을 스스로 세우지 못하는 자. 그들은 때로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짓밟으면서 얻는 쾌락에, 존재감에 중독된다.

지니아_열혈남아 프로젝트「Dis-play」_설치_100×379cm_2008_부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음성적 사업에서도 기업의 생존논리가 투철하다. 기업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상품을 홍보하는 것. 홍보란 자본가가 상품을 더 많이 판매하기 위해 소비자에게 자신의 상품을 알리는 행위이다. 그런데 참 신기하기도 하지. 매매춘은 불법인데, 성매매를 홍보하는 저 카드들은 온갖 차량에 수백장씩 뿌려져 있으니 말이다. ● 이 작업은 내가 늘 작업실을 오가면서 자동차들 창문에 무수히 꽂혀있던 성매매 카드를 한 장 뽑아보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우연찮게 모텔촌 한가운데 자리잡게 된 작업실 덕분에 나는 싫든 좋든 길을 오가면서 매일 이 카드들을 봐 야했는데, 호기심에 직접 뽑아 들고 자세히 살펴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 카드 속의 사진들과 홍보 카피들은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마치 현재 한국 남성들의 성에 관한 모든 지형도가 그 카드 속에 담겨 있는 듯 했다. 나는 그 카드 속에 담겨있는 이미지와 텍스트들을 분석해 보고 싶어졌다. ● 이 카드를 바라보면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남성들의 성적 욕망을 자극하는 여자들의 선정적인 몸짓과 풍만한 육체였고, 그런 여자들의 육체와 함께 자극적으로 쓰여진 카피와 최대한 눈에 잘 보이도록 강조한 핸드폰 번호였다. 그 카드 속에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남성들의 욕망을 가장 잘 불러일으키도록 고안된 몇몇의 정형화된 여성들의 섹시한 포즈가 있었고, 금지된 것을 욕망하는 남성들의 성적 환타지가 난무했으며, 늘 언제나 자신의 성적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여성이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듬으로서 선택권을 가지고자 하는 남성들의 권력의지적인 욕구를 실현시켜 주고 있었으며, 그 이면에는 이러한 남성들의 욕망을 이용해 인간의 성을 상품화시키는, 즉 돈이 된다면 무엇이든 매매행위를 하고자 하는 자본주의의 근본원리가 작동하고 있었다. 이 경제행위의 주체인 포주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여성의 성을 관리하고, 보다 많이 판매하고자 소비자의 취향과 욕망을 파악해 이를 자극하는 문구와 이미지로 홍보를 하고 있었다. 특히 여고생이나 여대생, 소녀 등 남성들의 성적 환타지에 주로 등장하면서 매춘과는 전혀 상관없는 여성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었는데, 이런 여성들은 현실 속에서는 남성과의 섹스가 금기시되어 있고 마음대로 돈을 주고 성을 살 수 있는 여성이 아니기 때문에 특히 금지된 것을 범한다는 가장 통속적이면서 자극적인 면모가 크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특히 순수하고 아름다운 여성임을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성을 매매하는 여성과는 거리가 먼, 오히려 더 풋풋하고 수줍음이 많고 청순한 외모와 분위기의 여성을 모델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 여성의 이미지 ● 사진 속의 여성의 이미지들은 남성들의 성적 취향에 따라 두가지로 분류되고 있었는데, 첫 번째 유형의 여성은 남성들의 성욕을 직접적으로 자극하는 부류로서, 섹시한 얼굴에 도발적인 자세, 육감적이고 볼륨있는 몸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섹스를 요구하는 창녀의 이미지였다. ● 두 번째 유형은 남성의 성적 환타지속에 등장하는 여성의 이미지로서, 예를 들면 여고생이나 소녀처럼 수줍음 많고 깨끗하고 맑고 순수하고 풋풋하고 싱그러운, 결코 성의 영역에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순결한 여성에 대한 이미지였다. ● 남성들은 순결한 여성과 관계를 가지고 싶어하는 환타지가 있는데, 이는 쾌락의 강도가 심리적 낙차에 의해 더욱 강렬해지기 때문인 것 같다. 이를테면 성관계를 가져서는 안되는 금지된 여성, 예를 들면 소녀들이나 여고생, 결혼한 여자와 관계를 가지는 것은 사회적 금기를 깨뜨리는 역할을 함으로서 남성들의 성적 환타지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이는 여자를 강간하는 강간 모티프와 더불어 포르노 영화의 가장 주된 소재로 쓰인다. ● 이런 여성의 이미지는 순결함 그 자체로 쓰일 때도 있었지만, 오히려 위의 카드에서 보는 것처럼 청순한 소녀 이미지에 남성을 유혹하는 제스쳐를 취함으로서 오히려 이율배반적으로 성적 강도를 높이는 전략을 쓰고 있기도 하다. 청순한 얼굴과 몸으로 '언제든 불러주세요. 2:1 가능해요. 묶은 끈은 손만 대면 풀어져요'라고 무언가를 갈구하는 듯한 저 아름다운 소녀를 보고 어떤 남자가 저 핸드폰 번호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청순함과 섹시함이 공존하고, 감추면서 드러내는 고도의 심리적인 성적 전략이 아닐 수 없다.

지니아_열혈남아 프로젝트「Dis-play」_2008_부분

포즈의 코드적 반복 ● 사실 이 이미지들에서 남성들의 성적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포즈의 영향도 크다.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가 소위 섹시하다고 말하는 여자들의 이미지를 살펴보면 대부분 특정한 포즈를 거의 같은 형태로 구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포즈들은 시대와 국가를 가리지 않고 섹시함을 불러일으키려고 하는 모든 여성의 포즈에서 발견된다. 이는 여성들이 타의에 의해, 혹은 자의적으로 성적 매력을 불러 일으키는 자세나 눈빛, 포즈들을 학습해 오고 있다는 뜻이 된다. ● 카메라가 발명되고, 사진을 찍게 되고, 인화지에 잠상을 붙잡을 수 있게 되면서부터 인간의 성적 욕망은 가장 먼저 상업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음성적으로 제작해서 유포시키는 포르노 사진들이 바로 그것이다. 여자의 알몸이나 성적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아름다운 여자들의 나체 사진을 보고 싶어하는 남성들의 욕망을 이용하여 여성의 성을 상품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명 핀업 걸이라 불리 우는 여성들 사진은 남성들이 자신을 보고 성적 흥분을 느끼도록 온갖 요염한 포즈와 섹시한 눈빛으로 유혹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이러한 남성들을 사로잡는 여성들의 몸짓과 행동, 포즈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그대로 학습되어 광고에 나오는 여성들부터 스스로 섹시한 포즈를 취하는 여성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비슷비슷한 포즈를 취하게 만들고 있다. 마릴린 먼로의 약간 벌린 듯한 입술과 몽환적인 눈빛은 21세기 한국의 섹시코드 이효리와 전지현의 눈빛과 포즈에서도 맞물리고, 졸리의 스모키한 눈화장과 볼륨감 있는 입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리고 성매매 출장마사지 카드 속에도 이러한 코드는 반복된다. ● 출장마사지를 빌미로 행해지고 있는 이 성매매들은 철저히 음성적이고, 핸드폰 번호 만으로만 연결될 수 있는 실체가 불명확한 존재들이다. 제품의 생산과 홍보, 판매에 따른 이익창출이라는 철저하게 자본주의 시스템에 기반을 두고 있는 이 새로운 포주시스템은 여자들을 상품으로 구비해 놓고 남성들에게 잠시 빌려주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사람들이 일반 물건을 렌탈할 때는 돌려줄 물건이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다루는데 반해, 여자를 빌릴 때는 소유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난폭하고 잔인하게 함부로 대하는 경향이 많은 것 같다. 이를 보면 소유의 개념이 물건에 따라 다르게 적용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소유의 개념 ● 일반적으로 '소유'라는 단어를 법률적 개념으로 살펴본다면, '물건을 전면적, 일반적으로 지배하는 일'이다. 무언가를 빌린다는 것은 그것이 전적으로 자신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처를 내거나 해를 입혔을 경우 빌려준 이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책임이 따른다. 그렇다면 성을 파는 여성은 어떤가. ● 여기서 여성은 렌탈 임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에게 분명 '전면적 지배가 가능한 소유'로 간주되고 있다. 성을 매매하는 여성은 돈을 주고 산 비디오 카메라가 아니다. 물건은 돈을 주고 사면 그 물건을 쓰던 버리던 구석에 처박아두건 아무도 상관할 수 없다. 그 물건에 대한 처우나 생명력은 전적으로 소유한 자에 달려 있다. 그런데 남성들은 여성을 돈으로 잠시 몇 시간 사면서도 그 여자에 대한 소유권을 갖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즉 내가 이 시간 동안은 여자를 돈을 주고 내 것으로 산 것으로 간주해서 여자를 전면적으로 지배하는 것이 스스로에게 당연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변태적인 짓도 서슴지 않고, 폭력을 행사하거나 괴롭히거나 상처를 내는 것에 대한 죄책감 같은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게다가 성을 파는 여성은 물건으로 취급되어 인격적으로 존중 받지 못하고 함부로 취급 당한다. 성을 파는 여성은 불법을 저지르고 있기 때문에 현실 속에서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한다. 때문에 손님이 거칠고 잔인하게 굴어도 어쩌지 못하는 것 같다. 몸에 상처가 나거나 뭔가 증거가 남지 않는 이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을 뿐더러, 성을 매매하는 여성 자신이 불법을 저지르고 있고, 그 여성들을 소유하고 있는 포주도 법의 영역에 있지 않기 때문에 그녀들을 보호해 줄 수 없으며, 특별히 다른 손님을 받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면 그리 개의치도 않는다. 이런 성매매를 한쪽에서는 불법이라고 때려잡고, 한쪽에서는 많이 이용해 달라고 홍보까지 하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홍보 방식 ● 사실 현대사회에서의 성 관련 산업은 막대한 이윤이 창출되는 거대 시장이다. 미디어나 출판, 성과 관련된 물품 등을 판매하거나 보여주는 것은 합법적인 사업이지만, 그 외에 직접 성을 사고 파는, 즉 인간의 성을 직접적으로 매매함으로써 이익을 창출하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여자를 사라고 버젓이 대낮에 홍보까지 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물론 이 카드를 통해 팔리고 있는 여성들은 성매매 사업을 하고 있는 사람의 중요한 생산수단이자 상품이자 이익을 창출해내는 물건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니 더 많이, 더 눈에 잘 띄게 팔 방법은 뭘까 궁리하고 모색하는 것은 당연지사. ● 그들이 자신의 상품을 홍보하는 방식을 살펴보자. 그들은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키기 위해 우리가 보통 포스터를 붙일 때의 방식을 이용하고 있다.. 포스터는 자신의 정보를 사람들에게 보다 강하게 인지시키기 위해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배치하는 형태를 가진다. 그들이 카드를 뿌리는 형식을 보면 성매매 여성들을 홍보하는 업주의 입장도 마찬가지임을 알 수 있다. 강하게 인지시킴과 동시에 여러 사람이 동시에 그 카드를 가져갈 수 있도록 차량에 똑같은 이미지의 사진을 한꺼번에 여러 장 꽂아놓는다. 벽면에 붙일 수는 없으니 차량에 꽂는 방식을 이용하게 되는데, 특히 빨간색 마티즈나 모닝처럼 외적으로 여성들이 탈만한 차량에는 꽂지 않으며, 외제차나 대형차로 갈수록 더 많은 카드가 꽂혀있다. ● 그들은 또한 일종의 매장의 디스플레이 방식을 취하고 있기도 하다. 대형 할인 마트에 가면 모든 상품이 여러 개 동시에 진열되어 있다. 이 카드 속의 여성들도 대형 마트의 상품들처럼 여성으로서의 인격체가 아닌 남성의 성적욕구를 해소시킬 수 있는 하나의 상품으로 존재함으로써 남성들에게 취사선택의 기회를 제공하는 리스트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생산수단의 소유 ●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상품을 소개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상품의 판매가 자본가의 이익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업들은 상품이 잘 판매될 수 있도록 광고와 홍보에 많은 신경을 쓰고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고 있다. 이런 자본주의 시스템은 성을 매매하는 포주에게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맑스가 자본가와 노동자를 구분할 때 '누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는가', 즉 생산수단의 소유에 따라 그 둘을 구분 지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성을 판매하는 자는 무엇을 기준으로 노동자와 자본가의 입장을 분류할 수 있을까. ● 자본가는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는 자다. 그 생산수단을 통해 노동자를 고용하고 상품을 만들어내고, 그 상품을 팔아 이익을 창출해내고, 잉여이윤으로 또 다른 생산수단에 투자를 해서 사업을 확장시켜 나간다. 그런데 성을 판매하는 자의 유일한 생산수단은 자신의 성을 팔아 줄 여성에게 있다. 그렇다면 자신의 성을 파는 여성은 이익을 창출해내는 생산수단을 스스로 소유하고 있는 셈이다. 여자가 포주에게 고용되어 있을 때 그 이윤은 포주와 나누어 갖는다. 그렇다면 여성이 포주에게 고용되지 않고 직접 자신의 성을 팔면 자본가와 노동자 계급을 둘 다 갖게 되는 것일까? 막상 쓰고 보니 좋은 가을날에 참 쓸데없는 생각한다는 소리도 들을 법 하다... 그런데 난 이런게 취미다. ■ 지니아

Vol.20081021g | 지니아展 / Zinnia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