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진규 木版리도그래프

천진규展 / CHUNJINKYOO / 千眞圭 / printing   2008_1022 ▶︎ 2008_1028

천진규_A kite of image_木版리도그래프_120×240cm_2008

초대일시_2008_1022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아트 스페이스_GANAART SPACE 서울 종로구 관훈동 119번지 2층 Tel. +82.2.734.1333 www.ganaart.com

"몰입과 흔적의 신드롬" ● 판에 새긴 효과에서 이미지를 얻는 판화가에게 '흔적'은 스스로를 잊어버리는 망아의 체험과 대상에 대한 의식적 이해가 합류되는 특별한 지점이다. 판을 만드는 과정과 그것을 찍는 시간적 흐름, 최종의 종이로 그 흔적을 걷어 올리는 반복의 과정을 두고 판화가가 정교한 계획을 의식적으로 수행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나, 장 뒤뷔페와 같은 현대 판화가는 "판화가에게 최종의 이미지는 반복적으로 돌아오는 의식의 산물이 아니라, 오히려 외부의 시간을 침식하는 격렬한 노동과 심리적 기제는 무의식의 소산"이라고 표현했다. 판화 작업과 무의식을 연결하는 것은 기계적 프로세스를 지닌 판화의 작업 행위가 의식을 벗어난 어떤 몰입을 요구한다는 점을 상기하면 보다 이해가 빠를 것이다. 그리고 나는 '판화가'와 작업 행위를 불안한자의식과 연결하는 점에서 차세대 판화가로서 천진규의 판화작업을 해석한다.

천진규_공존하는법2_木版리도그래프_120×588cm_2008
천진규_무제_석판_60×80cm
천진규_時-공간의 이미지_木版리도그래프_80×360cm_2008

93년에 홍익대학교 판화과를 졸업하고, 2005년 일본 다마미술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천진규의 판화는 조형적 완성도와 표현주의 판화의 특질이 물씬 풍긴다. 그의 판화는 지금의 젊은 판화 작가들이 보여주는 팝아트적 발랄함과 달리, 장중함과 깊이, 존재감에 대한 본질적 탐구가 강렬하게 보인다. 판화 작품은 표현적 정서라고 말할 수 있는 점에서 탁월하다. 작품 안의 형상들은 굴절된 인간상에 탁월했던 프란시스 베이컨의 차가움과 장 뒤뷔페의 순진함이 초현실주의적으로 뒤섞여 어떤 힘과 통증에 의해 폭발해 버린 실존감을 자아낸다. 그의 표현은 우울하고 무거운 톤의 층위를 뚫고 나온 강렬한 충동의 에너지를 느끼게 한다. 현실적 의미를 포획하는 것이 불가능 한, 비정형적 형태들은 뒤틀어지고 불규칙한 흔적들로 남아 원생미술에서 얻을 수 있는 거친 질감과 과감한 큐비즘적 해체를 보여준다. 이 같은 해독 불가능한 기호와 형상의 뒤섞임을 자의식과 연결한다면, 여기에는 사물의 척도로서 휴머니즘에 기댄 인간의 긍지와 문화에 대한 신뢰를 포기하고, 그것에 대한 회의로부터 출발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자의식은 그의 「자화상」에서 더더욱 분명하다. 그는 인간 의식을 분절된 뇌의 물질적 단면으로 극단화하여 냉정하게 제시하지만 오히려 「아프리카 이야기」의 동물상에서는 인간적인 정서라 할 만한 슬픔으로 분열된 의식을 통합한다.

천진규_전설1_목판_10.5×98cm_2008
천진규_흔적_木版리도그래프_160×60cm_2008
천진규_CHUN_木版리도그래프_32×60cm_2008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공통적이게도 무력한 의식과정과 세계를 해체하는 불안한 자의식을 창조적 에너지로 선보이는 작품들이 제시되었다. 화면은 이러한 정신의 분열 과정에서 토해진 유비물로 자연과 문명, 조각난 몸, 언어를 보여준다. 이 점에서 그에게 '조형'이란 무의식적 충동의 에너지들이 사투를 걸고, 의식적 모방과 재현을 공격하는 것 일 게다. 그에게 화면은 끊임없이 외부를 향해 생성되는 충동의 실현과 실패가 욕동 하는 곳으로, 그것을 다시 세우는 것이 창조이며 세계이다. 그에게 판화 작업은 강렬한 파토스적 충동이 자동적으로 옮겨지는 기제라고 하겠다. 판을 깎고 새기고 찍어내는 작업 행위 그 자체가 바깥세계를 둘러싼 외피를 태우는 점화 장치가 되어 파괴하고 세우는 구축 과정으로 전환된다. 우리에게도 이것은 마찬가지이다. 의미의 층위가 실패해도, 삶에 그 자체에 녹아든 이 같은 에너지 분출은 우리의 신체로부터 혹은 외부로부터 인각된 어떤 상들의 그림자를 계속해서 솟구치게 하는 리듬을 생산한다. 주기적으로 엄습해오는 이러한 리듬과 충동이 판화가 천진규의 작업 이유라면, 그의 판화는 우리의 불안한 자의식과 신체적 몰입에 녹아든 존재적 정서를 풀어 헤친다. 그는 작품을 둘러싼 언어적 해석에 기대지 않으며, 디지털 프린트와 회화적 위상 사이에 고민하는 판화적 가치나 형식에 고민하지 않는다. 판화 그대로의 작업, 그 자체에 몰두한 증상 그대로. 겉으로만 아름다운 미의 위상이 파괴된 힘 있는 판화가 반갑기 그지없다. ■ 심희정

Vol.20081022c | 천진규展 / CHUNJINKYOO / 千眞圭 / pr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