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정물/일상

전영근展 / JUNYOUNGGEUN / 全榮根 / painting   2008_1022 ▶︎ 2008_1028

전영근_여행_캔버스에 유채_162×130.3cm_2008

초대일시_2008_1022_수요일_05:00pm

후원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0:30am~06:30pm

노암갤러리_NOAM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133번지 Tel. +82.2.720.2235 www.noamgallery.com

그의 작품은 느슨함, 익숙함, 그러나 우연적이고 우발적인 만남의 연속인 일상의 예측할 수 없는 곤혹스러움이라는 불균형과의 아슬아슬 하지만 따뜻한 동거를 보여준다. ● 정물을 그리거나 그것이 주가 된 그림은 보는 이를 편안하고 어렵지 않게 한다. 누구나 가까이 하기 쉽고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어 대중들이 좋아한다. 작가들 역시 실내 작업이 용이하고 새로운 조형적 시도를 해 볼 수 있는 분야라 다들 적지 않은 자신의 정물화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즈음의 작품들을 보면 외형은 풍경이고 추상작업이고 설치이지만 그 실은 실내에서 가능한 정물화의 맥락을 크게 넘어서지 못하는 특징들을 보여준다. 실내라는 공간이 일상의 전부이거나 그것을 지향하는 세태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실내 혹은 자신이 거주하는 공간의 폐쇄성과 은밀성이 함께 하면서 자신만의 유토피아로 꾸미려는 욕망과 맞닿아 있다. 승용차에 갖은 설비를 갖추거나 핸드폰에 옷을 입히고 치장을 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누빌 수 있는 공간은 더 넓어졌지만 우리가 느끼는 공간은 점점 축소되고 사밀화私密化 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전영근_여행_캔버스에 유채_72.7×91cm_2008

전영근의 작품을 보면서 나는 새로운 정물화의 가능성을 본다. 그리고 이 작품들이 공간과 인간의 삶을 정물화 하는 것에 대해 말을 걸고 있다는 힘겨움을 느낀다. 그의 작업에서 기명절지나 책가도 같은 전통민화를 연상하게 되는 것도 이런 인상과 다르지 않다. 민화는 서민적 삶과 염원을 담은 것이다, 일상의 혼란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독특한 대응방법이다. 책가도 같은 점잔을 빼는 투는 아니지만 책상을 사이에 둔 실내의 잡다한 물건들을 소재로 다루는 시선이나 그것들을 집적하는 방법에서 한 작가의 미묘한 감성을 만나게 된다. 같은 소재의 반복, 같은 구도와 색채, 구성력이 가지는 애착이랄까 아니면 그런 반복성에 개의치 않는 도도함이랄까 절실함 같은 것이다. 항상 새롭게, 새로운 시도에 강압적인 압박을 보이는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에 무관한 듯한 태도가 일상을 읽어내는 어딘가 다른 시선을 만나게 한다.

◁ 전영근_정물1_캔버스에 유채_162×130.3cm_2008 ▷ 전영근_정물2_캔버스에 유채_162×130.3cm_2008

주전자, 신발, 우산, 라디오, 의자, 수건, 책, 컵, 휴지, 핸드폰, 컴퓨터, 자판, 둥글게 말린 종이, 종이 백, 티브이, 시계, 볼펜, 침낭, 고무튜브, 꽃, 복숭아, 그리고 이것들과 더불어 낚시도구를 함께 실은 트렁크가 열린 자동자 등이 반복해서 그의 작품에 나타난다. 그의 시선은 거의 이것들에 한정되어 있다. 그리고 이 물건들은 닥치는 대로 한 공간에 쌓아올려져 있다. 밀착된 공간 안에서 물건들은 서로의 예각을 보이면서 서로에 기대고 서로를 밀어내면서 자신의 자리를 불안하게 차지하고 서있다. 그러나 배열 없는 무작정한 집적에도 불구하고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하면서 화면을 이룬다. 때로 이것들을 작은 승용차에 모두 싣고 떠나려 한다. 일상의 도구들로 포화상태가 된 자동차의 형용은 또 무엇일까. ● 이런 장면은 그리 심각한 것도 아니고 심각한 장면을 연출하는 것도 아니다, 흔히 보는 것들이라 예사롭다. 사실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상세히 묘사된 것은 어디에도 없고 알만한 형태와 색채로 거칠게 처리되어 있다. 익숙함이 주는 무표정에 가깝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자세히 그려보지 못했던 것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느슨하고 감동 없이 바라보듯 한 색채와 형태감이다. 친절하지도 않고 무심하지도 않으면서 그려야 것들을 그려 보이는 정도이다. 아무렇게 쌓아올린 복잡하고 두서 없는 형태와 그들이 만들어 내는 운동들에 비해 색채와 형태감은 대조적일 정도로 무디고 밋밋하다. 그리고 이들 일상의 장면에 인물이 보이지 않아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장면을 바라보게 한다. 친숙함에도 불구하고 보는 이와 공간을 분리시키고 있다. 보는 이나 작가는 언제나 화면 안에 있기보다 그것들을 보고 있다. 적당한 거리에 있는 타자이기 때문에 겨우 불안한 동거의 이 집적들이 심각해 보이지 않는 것일까. 일상의 구체성을 위해서 그곳에 인물이 들어서 있다면, 인물과 소재들이 동일시 되고 있다면 이 장면은 삼류의 자탄과 궁핍의 서술이 되고 말 것이다. 이 상투적 서사를 피하면서 개인이 아니라 우리가 처한, 우리가 바라보는 일상의 시선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민화 같은 해학, 일상의 고단함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여유 있는 시선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미학적 거리라 해둘까, 아니면 불균형을 균형으로 보아내는 여유로움이라할까.

전영근_정물_캔버스에 유채_91×72.7cm_2007

그의 구성은 이들 소재들을 한 화면에 쑤셔 넣듯 화면 중앙으로 모아놓는데 있다. 캔버스 외곽선에서 안으로 조금씩의 공간들 남기고 중앙에 집중시킨 소재들은 투명한 비닐 백에 넣은 듯 잘 들여다보일 뿐 아니라 한 공간에 억지로 구겨 넣은 듯 좌충우돌의 모양새를 드러낸다. 말하자면 정물화의 시점, 하나의 시점에 의해 잡다한 물건들이 통일감을 갖고 화면에 놓인 것이 아니라 이것저것, 여기저기 아무렇게 쌓여 각자의 소실점은 있데 전체를 통일하는 하나의 초점을 갖지 않은 정물화가 된 것이다. 사물의 중첩으로 겨우 거리를 생성하지만 거리라기보다 사물간의 인력이나 척력으로 기울기나 방향의 다툼이 더 뚜렷하게 드러나는 사태이다. 이런 면에서 그는 기존 정물화의 논법을 벗어나 있고, 중첩에 의해 사물간의 수직적 체계를 무너뜨리고 사물들 간의 관계를 수평적으로 만든다. 등가의 힘에 의한 주체 없는 화면 구성은 일상의 느슨함과 반복으로 진부하고 지루하지만 언제나 대상 자신이 사건의 중심이 되게 한다. 지루한 반복 사이에서 일상의 척력과 인력을 보아내고 그들 사이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이다. ● 중심 초점이 없는 화면은 구상화이면서 화면을 추상처럼 전면화 되어버리게 한다. 화면 전체로 힘을 분산하고 분배하지 않으면서 등장하는 대상 전체는 중심으로 모이는, 서로를 밀쳐내고, 밀고 들면서 바깥으로 튕겨내지 않고 안으로 모으는 독특한 힘의 관계를 형성한다. 화면 중심에 넓게 자리 잡은 소재들의 집적 상태가 캔버스와 대상의 단조로운 구성을 보여준다면, 중앙에 자리 잡은 사물들은 그 잡다함과 무초첨의 집적으로 대상들 간에 복잡한 운동감을 형성한다. 그러나 이 복잡다기한 힘의 형태들이 단순한 소재와 구성의 단조로움을, 덜 묘사된 형태들을 감당하고 효과를 증폭시켜 준다. 게다가 이들 사물들의 복잡한 운동을 조정하고 견제하는 것에 눈을 돌려보게 한다.

전영근_TV_캔버스에 유채_130.3×162cm_2007

화면에는 언제나 주전자와 우산이 등장한다. 주전자는 대부분 주둥이가 바깥으로 향하고 있어 둥근 원형의 힘이 바깥으로 급하게 빠져나간다. 중심의 중요한 힘이 외부로 향함으로 일순 힘의 균형이 무너진다. 그러나 주전자 주둥이의 꼭지가 아래로 조금 꺾여 예각을 무디게 함으로 외부로 향하는 힘은 다시 내부로 수렴되고 만다. 그리고 우산대 역시 항상 등장하는 소재이고, 중심에서 밖으로 불쑥 나와 있다. 우산대의 가는 댓살들이 힘을 밖으로 유인하고 전체의 움직임을 흩어놓으려는 순간, 우산대의 안으로 굽은 손잡이의 방향이 힘을 안으로 되몰아 넣어준다. 이 두개의 장치는 힘의 복잡함과 무방향의 혼란을 언제나 잡아주고 단순함에서 다양한 힘의 역할을 드러내어 작품 자체의 생동감을 이끌어낸다. 의도적이고 엉뚱한 이 만남은 그의 작품을 불안한 동거에 균형을 만들어주고 작품 전체를 정지와 생동감이란 다양성을 확보하게 해준다.

전영근_여행1_캔버스에 유채_72.7×60.6cm_2008

그가 다루는 대상/정물/일상은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은, 너무 친숙해서 보는 이의 시선에 모두가 잡힌 것 같다. 게다가 그의 정물은 외부 빛의 방향과 무관한, 객관적 현실의 묘사이기보다 자신의 시선이 머무는 인상에 가깝다. 이런저런 사물들의 다각적 힘의 방향을 부딪치게 해서 더 요란하게 요동시키려 하면서도 내부로 힘의 방향을 모아서 전체의 균형을 잡은 것은 마치 아크로바트의 아슬아슬한 묘기를 보는 듯하다. 화면 속의 어디 한군데라도 허술하면 금방이라도 전체의 균형이 무너지고 말 것 같은 긴장이야말로 그의 독특한 구성력이다. 이 구성력은 사물의 비원근법적 병치와 중첩을 통해 다양하게 대상의 힘과 공간을 내보이는 단순한 조형의 문제가 아니라 일상을 보는 우리의 시선에 생경한 안목을 제공한다. ● 투명한 비닐 백 속에 구겨 넣은 물건들은 우리의 시선을 피해갈 수 없다. 그것은 자신이 일상을 통어하는 문이다. 현실을 장악하는 자기 통어의 메타포이다. 원근법 없이 사물 개개를 읽어내고 그들 간의 힘의 균형을 잡는 것은 바로 그의 작품이 폐쇄적 공간에 자신을 가두고 자족하는 현대인에게 세계에 갇혀 있을 수 없는 의미의 적극성을 보여준다. 대상이 차지한 공간의 우발적인 힘의 관계에서 화면을 구성해 내는 균형의식이야 말로 느슨하고 지루한, 상투적인 일상과 동거하는 따뜻함일 것이다. ■ 강선학

Vol.20081022d | 전영근展 / JUNYOUNGGEUN / 全榮根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