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gural Portrayal

최연우展 / CHAAYOUNWOO   2008_1023 ▶︎ 2008_1105 / 일요일 휴관

최연우_Figural portrayal_2007

초대일시_2008_1023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9:00pm / 토요일_10:00~05: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보다_GALLERY BODA 서울 서초구 서초동 1461-1번지 한라기산빌딩 2층 Tel. +82.2.3474.0013 www.bodaphoto.co.kr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주로 브라질의 밀림지대, 멕시코의 변두리, 미 서부의 사막지대와 같은 미개발지가 대상이다. 나에게 있어서의 여행은 내가 일고 있는 지식이나 사물의 질서즉 하나의 체계로 발전된 것(the developed)을 '버리는'(enveloping) 목적을 지닌다. 버림으로써 고급예술에서나 찾을 수 있었던 역능(jouissance)을 미개발(the undeveloped) 즉 야만에서 다시 만난다는 뜻이다. 폴 고갱의 야만으로의 탈주를 생각해 보면 된다. 여행과 야만은 길들여진 세계나 시각으로부터의 탈주로서 일종의 자기부정이다. ● 자기부정은 미개해 보이는 새로운 세계의 사물의 질서를 내가 속한 세계의 사물의 질서에 강제로 편입시키지 않는, 하찮아 보일지라도 모든 존재자를 존재자로 인정해주는 성숙하고 유연한 재유(在宥)의 사고, 생태론적 사고다. ● 사람은 닮고자 욕망함으로써 성장한다. 지식에 우선하여 타자의 태도와 언어를 흉내 냄으로써 배운다. 즉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배운다. 아버지가 아버지다워야 하고 선생이 선생다워야 하는 소이연이다. 그 흉내 냄, 즉 본뜨고자함을 likeness라고 하자. 자기부정은 그 같은 타자-흉내로부터 출발한다.

최연우_Barabara_74×27inch_2007
최연우_Untitled_2007

따라서 내가 미개를 여행함은 야만을 흉내 내고자 함(likeness)이다. 그 흉내는 문화(文禍)로 인해 잃어버린 느낌과 떨림의 원초성, 직감(intuition)의 역능성이 무엇인지 가르쳐 준다. 나는 그들의 민예작업을 흉내 냄으로써 문명에서는 오래전에 잃어버린 단순노동과 같은 성격을 지닌 반복적 행위로서의 예술작업에서 오히려 충만함(mindfullness)을 되돌려 받는다. 우리는 미개 속에 오히려 문명에서 보다 더한 삶의 진정성과 질서, 인간으로서의 품위가 있음을 알 필요가 있다. 나는 서구/비서구, 남자/여자, 미/추, 예술/비예술, 논리/ 비논리, 필연/우연 등과 같은 이분법적인 것에 대하여 그 무차별(in-differentiated)한 세상을 그린다. 세상의 지식이나 사물에서 가치론에 따른 서열이나 차별이 없을 수 없지만 예술의 역능성은 지속적으로 그 같은 서열을 소멸시키는 행위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속의 가치론이 고개를 들면 나는 지체 없이 다시 미개로 떠난다. ● 이 같은 정체성을 갖게 되면서 나는 예술을 천재의 무로부터의 창조라는 낭만주의적 예술관을 동경하지 않는다, 나에게 예술행위란 단지 끝없는 타자와의 상호간섭(mutual interference)이다. 질 들뢰즈의 말대로 "하나의 수련이며 불가피한 실험"이다. "그것은 당신이 실험을 도모하는 순간 이미 만들어져 있지만 당신이 그 실험을 도모하지 않는 한 그것은 세상에 없다. 그것은 확실하지 않다. 혹은 그것은 끔찍할 수도 있다. 그것은 욕망일 뿐 아니라 비욕망이다. 그것은 개념이 아니며 실천들의 집합이다. 그것은 하나의 극한이다." 그런 까닭에 내 작품은 비록 사실적으로 보일지라도 또 매카닉하게 보일지라도 기지(旣知)의 예술개념이나 안전한 영토 안에서 그 영토를 재현하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야만(野蠻)을 내 방법론으로 전유(appropriation)했다고 할 만큼 단정한 이미지와 달리 비합리적 과정의 연속이다. 전유 즉 흉내내기로부터 시작된 작업은 주변의 인물이나 사물들의 이미지를 재현하는 일이지만 '손'(bodiliness)이 재료의 특수한 재질과 만나면, 또 '그리움'이 추가되면, 또 '놀이충동'이 작업에 파고들면 의도했던 작업수행은 극한적 카오스상태로 돌입된다. 그 결과 예상치 않았던 이미지가 본래의 이미지에 부가된다는 점에서 일종의 예술적 돌연변이(mutation)이다. 그 만큼 내 작업은 비재현적이다.

최연우_Kaya lauhala_34×34inch_2006
최연우_Kim C Bara_75×45inch_2008
최연우_yoo kwan soon_56×45inch_2008

따라서 재현의 문맥과 비재현의 문맥의 이율배반적 兩價性, 그것이 내 작품의 의미이며 근간이라고 할 수 있다. ● 나는 문화와 마찬가지로 예술도 역사주의 시대와 달리 오늘날은 그 내용이나 실천이 동일성(Idebtity)보다는 다름(differences)에 기초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그 다름이 서구주의에 반발하여 "무엇인들 어떠리(anything goes)" 식의 경박함과 무질서함, 혹은 그 반대명제로서의 예술적 국수주의나 이데올로기를 예술의 전부인양 표제화시키거나 특정스타일로 고착시켜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주지하는 대로 근대미술은 스타일의 미술사이다 그렇다면 탈근대미술에서는 스타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당연하련마는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 따라서 나에게 있어서 비재현은 어떤 새로운 이데올로기나 예술적 개념이 아니라 사물이나 예술을 둘러싼 이분법을 대신하여 사물들 사이의 수많은 섬세한 다름의 세계를 직각적으로 보고자 다짐하는 성숙한 태도에 대한 언명이다. ● 다소 장황하지만 이런 배경에서 내 작품이 읽혀졌으면 한다. ■ 최연우

Vol.20081023e | 최연우展 / CHAAYOUNW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