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無

이기남展 / LEEKEENAM / 李奇南 / painting   2008_1029 ▶︎ 2008_1130

이기남_나·無_캔버스에 유채_162×112cm_2008

2008_1029 ▶︎ 2008_1104 초대일시_2008_1029_수요일_06:30pm 관람시간 / 10:30am~07:00pm

갤러리 올 서울 종로구 안국동 1번지 Tel. +82.2.720.0054

2008_1105 ▶︎ 2008_1130 관람시간 / 08:30am~07:00pm

봄 갤러리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1번지 경희의료원 Tel. +82.2.958.8033

나무! 이기남의 또 다른 성찰 ● '그리기'란 物象을 조형 언어로 번역하는 일이다. '그린다'는 행위는 모두에게 똑 같은 일이겠지만, 그 방법과 내용 그리고 얻어지는 결론은 사람이 다르듯 천차만별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조형 예술은 인류가 걸어 온 시간만큼이나 질긴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시간의 경과에 따라 축적된 번역물은 세계에 대한 사람들의 수만 가지 생각들의 집합체인 셈이다. ● 작가는 언제나 물상에 대한 자신의 번역물이 그 생각들의 집합체 가운데서도 새롭고 또 유익한 것이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과거 어느 누구도 시도해 보지 않은 무언가를 제시하기 위해서 애를 쓰는데, 이 과정에서 수반되는 고통은 산고(産苦)에 비할 만하다. 한 사람의 진정한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겪어야 하고 거쳐야 하며, 버려야 하고 또 넘어야 할 일들이 산처럼 쌓여 있다. ● 통과의례를 거행하듯이 겸허히 물상 하나하나에 대한 외양과 내용을 파악하여야 하고, 그 개념들을 정리하여야 하며, 그로부터 고양된 숱한 감흥들을 정제시켜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선험자들의 경험을 공유하여야 하며, 그것들의 한계를 파악하여야 함은 물론이고 새로운 대안까지도 제시하여야 한다. 그 일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만, 절대 다수의 수용자들은 야속하게도 그것을 향유하고자 한다.

이기남_나·無_캔버스에 유채_100×80cm_2008
이기남_나·無_캔버스에 유채_72×91cm_2008
이기남_나·無_캔버스에 유채_130×194cm_2008

작가 이기남이 최근에 몰입하고 있는 주제는 나무이다. 그가 화면 속에서 형상화한 것은 신화 속의 우주목(宇宙木)을 비롯하여, 뭇 신과 샤먼들이 오르내리던 신간(神竿)이나, 마을 앞의 오래된 당산나무, 어린 시절 마음을 들뜨게 하였던 운동장의 만국기 깃대, 뜰 안의 감나무 그리고 무심결에 시선이 닿았던 숱한 나무들의 이미지가 여러 겹 중첩되어 있다. ● 그 나무들은 거센 폭풍우와 세찬 눈보라를 견디며, 스스로 삼계(三界)를 체현(體現)하여 우주목이 되었고, 숲을 이루었으며, 온갖 생명체의 자양분과 서식처가 되었다. 또한 그것은 베어져 목재가 되었으며, 땔감이 되었고, 심지어는 인간의 마지막 안식처가 되어 주검과 함께 흙으로 환원되기도 하였다. 그가 나무를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이와 같이 나무를 통해서 발현된 유형무형의 의미소와 인류의 정신 및 물질문화에 대한 성찰 때문일 것이다. ● 그의 화면은 단색으로 처리된 바탕과 몇 개의 굵기가 다른 선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선들은 나무의 줄기와 가지로 탈바꿈된다. 그리기의 방법은 덧칠하기(palimpsest)와 긁기(scratch)이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나무를 원래의 공간에서 분리하였으며, 제3의 공간으로 유도하였고, 그 구조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하였다. 뿐만 아니라 껍질 속에 응축된 그의 구성분자까지도 해부하여 화면 밖으로 이끌어내고자 하였다. ● 여기에서 '분리'라 함은 나무를 선택하여 보는 일이었으며, 그 구조의 재해석은 줄기와 가지들의 상관관계 및 그 생물학적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와 맞닿아 있다. 그 이해에 수십 번의 되풀이되는 덧칠하기와 긁기가 더하여져 마침내 그가 꿈꾸었던 나무의 이미지가 구현된 것이다. 그리하여 형태를 갖춘 나무의 상은 마치 신체에서 동맥과 모세혈관처럼 화면의 구석구석을 하나의 망으로 통합하고 있다. 이 순간, 그의 나무는 질료의 성질을 뛰어넘어 위와 아래, 중심과 좌우가 하나의 주파수로 소통되는 세계로 바뀌는 것이다.

이기남_나·無_캔버스에 유채_145×112cm_2008
이기남_나·無_캔버스에 유채_145×112cm_2008
이기남_나·無_캔버스에 유채_162×112cm_2008

작가가 즐겨 쓰는 긁기와 덧칠하기는 성질상 상호 모순되지만, 그 이질성은 서로 병치되면서 껍질과 속살로 용해되고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긁기'는 본능적인 행위인데, 그것의 전제조건은 가려움이고, 수반되는 것은 공교롭게도 치유와 상처의 이율배반적인 모순성이다. 긁음은 가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위이지만, 긁힘을 당함으로써 자국 또는 상처가 생기게 되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사람들은 이 과정에서 또 다른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다. ● 나무가 껍질 속에 수관이나 나이테 그리고 수액 따위를 감추고 있듯, 그의 화면 속에는 시간들이 축적되어 있고, 숱한 생각과 사연들이 뒤얽히어 있다. 시간에 의해 과거가 망각되듯이 이전에 떠올린 숱한 사상(事象)들이 덧칠되어 시각 속에서 사라져 가지만, 긁기에 의해서 그 이미지의 단편들이 다시 화면의 전면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몸짓을 통해서 나무가 갖는 의미소의 총화를 새롭게 환기시키고자 하였다. ● 작가 이기남이 번역한 나무는 이제 이기남의 나무로 재창조되었다. 뭇 나무들이 그랬듯이 그의 나무도 자라서 숲이 되고 새가 날아들며, 메아리가 여운을 남기는 근원이 되기를 희망한다. 또한 우주목이 그렇듯이 이질적인 세계를 이어주고 닫힌 세계를 열어주는 소통의 다리가 되길 희망한다. ■ 장석호

Vol.20081028b | 이기남展 / LEEKEENAM / 李奇南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