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미아_홍인숙

2008_1028 ▶︎ 2008_1111

최미아_기원으로부터-복합관계10_에칭, 드라이포인트, 스텐실_90×60cm_2003

초대일시_2008_1028_화요일_06:30pm

최미아, 홍인숙 초대전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잔트_GALLERY JANT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174-1번지 분당더샾스타파크 쇼핑몰 F-01호 Tel. +82.31.783.7931

감정이란 단위를 비정형적인 세포로 표현하는 판화작가 최미아의 이번 초대전은 작가가 생각하는 감정들의 성질을 가장 자연스럽게 풀어내면서 관객과 소통하는 전시가 될 것이다. 개별적이고 자유로의 그녀의 세포들은 부드러운 음영과 함께 어두운 모노톤의 색조에서 가벼운 무게를 담아낸다. 단순한 시각적 형상들은 오히려 관객으로 하여금 다양한 해석과 공감을 얻어내기에 충분하다. 이와 함께 열리는 판화작가 홍인숙의 초대전은 세월과 사람을 거치며 '점점 동그래지는 얼굴'로 변한 지금 이순간의 작가를 대변한다. 팝적인 요소와 함께 키치적 요소에 유머까지 담아낸 그녀의 작품에서 우리는 점점 동그래져 가는 얼굴의 그녀작품의 만큼 마음의 여유를 담을 수 있는 전시가 될 것이다. ■ 갤러리 잔트

최미아_복합관계-계단이 있는 정물_에칭, 드라이포인트, 스텐실_60×90cm_2003
최미아_복합적 관계3_에칭, 드라이포인트, 스텐실_22×14.5cm_2003

최미아 ● 감정의 혼돈과 자유 그리고 그들의 복합관계 ● 미아의 평면작업에서 우리는 뭉글뭉글한 비정형적 형태들을 볼 수 있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이는 인간의 감정들이 생물체의 기본적 구성단위인 '세포'로 축소되어 가시화된 형상이다. 즉 그녀는 자신과 타자의 감정들을 주체와 객체의 뚜렷한 구별 없이 하나의 단위로 최소화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또한 여러 감정을 세포와 같은 유기적 형질로 표현함으로써 그들이 갖는 생명성에 시각적 에너지를 부여하고 있다. 화면이라는 공간 안에서 이들은 '중심 없는' 순차적 구조에 놓이거나 무질서하게 얽혀진 복잡한 구조에 위치한다. ● 작가가 만들어낸 감정세포들은 대부분 옅은 색조의 공간에서 어두운 색과 부드러운 음영을 띠고 있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단단한 화석처럼 고정되어 있는 것, 파랑 색과 검은 색을 통하여 위로 들어 올려지는 것 그리고 희미한 회색조를 띠며 조용히 아래로 침잠 되어지는 것 등, 인간 감정의 크고 작은 무게와 소모적, 지속적 희망을 상징하는 이질적 감정단위들이 구체적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더욱이 이들은 단순한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제 각기 개별적이고 또한 자유롭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하나의 공간 속에 수많은 감정들이 동시에 혼재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 이와 같은 상황에서 작가는 여러 감정들을 돌아다니며 그들과 대화나누기를 시도하고 있다. 그의 말을 다시 빌리자면, 경험에서 드러나는 자신과 타자들의 '감정일기' 혹은 '소설' 쓰기가 그것이다.

최미아_복합적 관계2_에칭, 드라이포인트, 스텐실_22×14.5cm_2003

그녀가 이렇게 감정과 감정 사이의 이동행위를 반복하면서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은 가늘고 긴 선들로 화면공간에 보여진다. 이 감정경로들은 서로 만나고 교차하거나 혹은 평행선을 그리며 감정의 다른 장소로 이동한다. 또한 거기에는 하나의 관계만이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특별한 감정에서 출발하여 여러 감정들로 흩어지기도 역으로 또 다른 감정으로 모여들기도 한다. 작가가 서술하는 감정이야기는 이렇게 시공간을 아우르며 얽히고 성긴 그물구조 안에 존재하며 그 다변적 성격을 드러낸다. 오늘의 어떤 것은 지난 시간의 버거운 흔적으로, 어제의 다른 어떤 것은 새로운 시간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으로 읽혀지기도 한다. ● 그의 '감정소설 쓰기'는 화면이라는 추상적 공간에 단순한 시각적 형상들로 되어있다. 여러 감정으로 상징되는 살아있는 세포들과 그들을 이어주는 금속성의 연결 끈들이 작가 자신을 포함한 인간감정의 복잡한 구조를 서술하는 언어의 전부이다. 이와 같이 그 의미가 응축된 간결한 형상언어들은 우리에게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일반 언어와 달리 이들은 우리를 경직된 사고의 선형적 틀 속에 가두기보다는 자유로운 상상의 공간으로 이끌고 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작가와 마찬가지로- 파랑, 검정 혹은 푸른 기가 도는 몇 몇 가지의 구체적 형상과 미동의 기운이 느껴지는 많은 감정형상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자신의 또 다른 감정을 투영하고 그 다중적 실체를 발견하게 된다. ■ 김숙경

홍인숙_점점동그래지는얼굴_한지에 혼합재료_120×145cm_2008
홍인숙_점점동그래지는얼굴_한지에 혼합재료_120×145cm_2008
홍인숙_명랑한고통_한지에 혼합재료_120×150cm_2008

홍인숙 ● 판화작가 홍인숙의 여섯 번째 개인전은 세월과 사람을 거치며 '점점 동그래지는 얼굴'로 변한 지금 이순간의 작가를 대변한다. ● 즉 작가는 변하의 순간, 그 찰나는 고통이지만 달라지는 거이 행복이고 긍정이라면 기꺼이 명랑한 고통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 단호박 수프를 먹다 사발 밑바닥을 보며 노오란 달을 품은 산수를 떠올리고 참새를 보며 '참 사이 됨' , '참 사이 ㅅ ㅏ ㅣ'라고 말하는 이 사람에게 애초부터 결심이나 작정같은 단어는 없다. 얼핏 만화같은 느낌의 그림또한 아버지의 낡은 책에서 발견한 자신의 어린시절 낙서를 따라 그리다보니 그렇게 된 것일 뿐 어떤 의도는 없다. 알록달록한 색깔 또한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자꾸 이유를 묻기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단청을 보고 자란 덕이 아닌가 싶다고 말하는 홍인숙. 무심한듯 "이제 힘들다고 말하는 건 그런거 가타요"라고 툭 내뱉는 그는 사회가 분류해 놓은 어떤 범주에 속하는 대신 무리지어 놓길 좋아하는 세상에 새로운 경우의 수를 만들어 간다. ● 홍인숙의 그림은 언뜻 쉽게 다가오지만 , 행간의 의미를 찾아낸 독자라면 자신의 경험을 투사하는 순간 오만가지 이야기로 변주되는 , 사람 사는 모습의 기본 틀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홍인숙의 이야기는 개인을 넘어 동시대 사람들의 이야기로 스며든다. 사적인 것이 사회적인 것이 되고 동시에 역사적인 것이 되는 방법에는 '사실의 기록'이라는 방식만이 존재하는 것 같지만, 종종 말로 다하지 못하는 것들은 이렇듯 예술작품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 홍인숙의 그림은 유물, 골동품, 혹은 흔한 물건들 따위로 간단히 분류할 수 없는 작고 소소한 가치에 주목한다. 작가주의에 대한 무조건적이고 획일적인 열정대신 그는 엉뚱하고 새로운 방향에서 예술을 선보인다. 홍인숙의 그림을 보다보면 독자들은 거대한 성역처럼 여기던 예술의 답답한 틀 대신 즐거운 확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 홍인숙「명랑한 고통」

Vol.20081028g | 최미아_홍인숙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