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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성展 / JEONGZIKSEONG / 正直性 / painting   2008_1205 ▶ 2008_1219

정직성_200803_캔버스에 유채_130×194cm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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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8_1205_금요일_06:00pm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전시

관람시간 / 10:00am~06:00pm

김진혜 갤러리_Kim.jinhye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149번지 2,3층 Tel. +82.2.725.6751 www.kimjinhyegallery.com

Invisible system-보이지 않는 질서 ● 여기 거대한 천 한 장이 있다.여러 색 실로 화려하게 수놓아 진 이 천은 넓고 거대하며 매끄럽게 보이지만, 돋보기로 들여다보는 순간 씨줄과 날줄이 좌우로, 위아래로 얽혀있는 모양새가 뚜렷하다. 수백 수천의 실타래에서 뽑아져 나온 각각의 실들은 저마다 정해져 있는 길을 따라 움직이며 넓은 천으로 직조된다. 천이 직조되는 원리는 간단하다. 씨줄과 날줄이 한 번씩 교차하는 과정을 여러 번 거치면서 선은 작은 면이 되고, 작은 면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어느 새 한 장의 넓은 천이 되어 있다. '실을 교차시키면 큰 천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사람은 '하나의 실을 한 번씩만 교차시켰을 때 가장 이상적인 천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방식이 자연스럽게 천을 만드는 왕도가 되었다. 질서다.

정직성_200810_캔버스에 유채_100×100cm_2008 정직성_200811_캔버스에 유채_100×100cm_2008

정직성의 작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미지에서, 천이 직조되는 과정과 같은 질서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틀림없이 도시의 어느 공간을 재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재현한 이미지들은 실제 도시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어쩌면 도시의 흔한 풍경을 가져다 해체하고 다시 중첩시켜 캔버스에 옮긴 이미지에서 질서를 발견한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 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 사실 근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검붉은 적벽돌 색과 더불어 이 '눈에 띄는 무질서 함'은 정직성의 작품에 흔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점점 언덕으로 밀려 올라가, 평지에서는 제 몸 뉘일 공간을 찾을 수 없는 도시 서민들과 그들이 살고 있는 동네에 대한 향수를, 시장 자유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발생한 사회 구조적 문제를 고발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작가라는 오해가 바로 그것이다. 주택 이미지가 여기저기 겹치고 쌓인 작업에서 다큐멘터리적인 고발정신과 사라져 가는 풍경에 대한 향수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정직성의 작품을 한 방향에서만 바라보려는 시각에는 동의할 수 없다. 어쩌면 그 오해가 도시 풍경을 새롭게 혹은 다르게 바라보려는 작가의 노력을 폄훼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정직성_200816_캔버스에 유채_100×100cm_2008 정직성_200817_캔버스에 유채_100×100cm_2008

을지로를 걷다 보면 인도 양 옆을 가득 메운 공구들과 박스 더미를 만나게 된다. 걷는 사람들에게는 쌓여있는 모양새가 하도 제각각이라 제대로 관리나 할 수 있을까 싶지만, 정작 물건 주인들은 아슬아슬하게 쌓여있는 물건들을 간단히 내리고, 쌓는다. 엉망진창으로 쌓여 있는 것 같아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쌓고 내리는 규칙들이 분명 있는 것이다. 잡동사니들이 너저분하게 널려있는 책상 위에서 남들은 눈치 채지 못할 규칙과 질서를 발견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나름의 규칙과 질서에 따라 사용자에게 특화된 가장 효율적인 배치 상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정직성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실제 이미지의 해체와 중첩은 가장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현실을 보여줄 수 있는 도구가 된다. 근작에서 재현의 대상이 되는 도시의 실제 풍경은 단순히 살기 위해 빈 공간을 메우고, 건물을 세우는 동안 준법과 불법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만들어 졌을 공산이 크다. 외줄타기를 하는 도시 서민들이 만들어 낸 풍경이 곧 지금 우리가 지나치며 바라보는 도시의 일면일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이 줄타기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사회적인 문제에서 찾는 것이 타당하지만, 정직성의 작품은 단순히 문제에 대한 비판을 넘어 사회 구조와 그들의 삶의 양태가 만들어낸 형태에 좀 더 집중한다. 지난함과 고단함으로 점철된 도시 서민들의 삶이 사회 구조적인 문제들을 만날 때, 그 문제들에 적응하거나 피해가기 위해 만들어 낸 삶의 방식이 바로 지금 도시의 풍경이라는 것이다.

정직성_200802_캔버스에 유채_130×194cm_2008

그들은 이리저리 꼬이고 갈라진 골목 사이로 서로의 삶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생활의 공간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외부에서 그 풍경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에는 어쩌면 무질서하며 부조리한 풍경일지언정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풍경이야말로 매우 정당하며 규칙적인, '내가 만든 풍경'이 된다. 결국 낡은 연립주택과 다세대 주택의 중첩된 이미지들은 곧 도시 서민들이 갖고 있는, 켜켜이 쌓인 나름의 삶의 방식과 구조화 된 풍경이 작가의 상상력을 만나 재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 정직성의 작업은 바로 이 지점에서 가치를 얻게 된다. 오랜 시간 지속된, 보이지 않는 규칙과 질서가 만들어 낸 풍경을 감성적인 시선을 거두고 그 안에 걸어 들어가 바라보는 과정을 통해, 이제까지 도시 이미지를 재단하던 호불호와 가치판단의 잣대를 내려놓고, 중첩된 삶이 만들어 낸 이 기묘한 질서를 발견하고 기록하며 재해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직성_200804_캔버스에 유채_194×260cm_2008

그러므로 정직성의 이번 개인전 제목인 '기계'는 매우 적절하다. 어쩌면 직관적으로 자신의 작업을 대중 앞에 내보일 수 있는 가장 좋은 제목일 수도 있다. 가장 능률적인 움직임을 위해 가장 효율적이고 적합한 위치에서 움직이고 있는 기계의 작은 부품들이 만들어 낸 기계적 질서를 다시 도시의 풍경으로 돌아와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과 그들이 만든 풍경으로 대입시켜도 별반 차이를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제목에 손을 들어주고 싶은 또 다른 이유는, 꼭 그것이 도시의 풍경이 아니더라도 오랫동안 지속되어 구조화 된 삶의 모습이 드러나는 소재라면 어느 것이든 질서와 당위가 만들어 낸 풍경에 대한 정직성의 작가적 호기심과 관심과 어우러져 새로운 작업으로 탄생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 함성언

Vol.20081205e | 정직성展 / JEONGZIKSEONG / 正直性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