木版遼東橫斷記

김억展 / KIMEOK / 金億 / printing   2008_1206 ▶ 2008_1224

김억_백암성과 태자하_한지에 목판화_100.5×67.5cm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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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8_1206_토요일_03:00pm

김내현화랑 KIMNAEHYUN ART GALLERY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내유동 136-58번지 Tel. +82.31.963.3262 www.kimnaehyun.org

김억의 木版遼東橫斷記 - 조형과 인식의 경계를 넘기 위한 苦鬪 ● 김억의 이번 『木版遼東橫斷記』전도 지난 번 수원 화성을 소재로 한 전시에 이어 프로젝트화 된 것이다. 수원화성을 소재로 한 지난 전시와, 이번의 요동 고구려 성곽을 중심으로 한 유적지에 이어, 다음엔 아마도 휴전선 이북을 탐사하여 남북과 만주지역을 목판화로 잇는 「木版북녘縱斷記」를 준비 할 것 같다. 경기도의 성곽으로부터 북한을 거쳐 요동과 북간도에 이르는 광활한 역사공간의 체험은 단지 안복(眼福)을 누리는 차원에 있지는 않다. 한 마디로 지리적인 공간탐사인 동시에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시간의 몽타쥬, 즉 사람 사는 이야기로서 역사와 인문지리를 펼치는 것이다. 그러나 종국에는 미술이 어떻게 우리네 삶이나 정서와 만나는지를 작품으로 증명하는 것이라 하겠다. ● 미술이란 늘 새로운 것을 찾고, 탐구하고, 불가능의 경계를 넘고자 하는 도전이다. 감성과 이성, 감각과 지각을 아우르고 또 지식과 경험을 통해 지금의 현실로부터 더욱 넓어진 정서적 세계를 지향한다. 이런 삶을 사는 작가에게는 불가능이 없다. 생각은 광활해지고 감각은 예민해 진다. 거기에 비례한 표현에의 욕망은 더 커지고, 만약 그 욕망을 진행하지 못하고 정지되어 있으면 안절부절하며 새로운 계획을 시도하고 저지른다. 못내 어려울 것만 같았던 작업들이 시간이 지나면 그 성패와는 상관없이 진척되어 있고, 성취하면 또다시 새로운 일을 벌이고... ● 김억의 이번 고구려 유적지를 답사한 목판화도 그런 인식의 폭을 넓히는 기회임과 동시에 지천명을 한참 지난 사내의 나이에 대한 무모한(?) 육체적 도전도 되는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분단국에서 자라고 교육받은 한계를 넘고자 한 점, 혹은 우리들의 인식 저편에 있던 북방의 과거 역사와 현재 그곳 풍경의 조응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그간 김억의 작업과정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진일보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 사실 50년대 이후 초등학교를 다녔던 세대들에게 휴전선 이북과, 다시 그 너머 압록강 북쪽은 호기심조차 차단된 곳이었다. 이념으로 인한 공간과 지리의 차단이 선사해 준 것은 결국 인식의 유폐였다. 사유 활동이 허락된 반쪽짜리 작은 섬으로의 유폐. 그래서 그저 그렇게 알고 있는 것들. ---살수대첩은 청천강, 천리장성, 우리나라에서 가장 추운 지방 중강진, 동양에서 가장 전기를 많이 생산하는 수력발전소 수풍 댐, 선죽교, 사군과 오진, 독립운동... 등.

김억_백두산 장백폭포_한지에 목판화_152.5×62cm_2008

오락 퀴즈 프로그램에나 적합한 이런 파편적인 단문답과 같은 암기가 과연 우리에게 얼마만큼의 세계를 이해하는 능력을 주었는지 의문이다. 미술은 이런 지식의 나열에서 단박에 일탈하는 기능이 있다. 현장에서 작가의 몸으로 체험하고, 감수성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종합해서 작업으로 옮긴다. 거기엔 천오백년을 건너뛰는 상상력과 감정과 생각의 크기가 작용한다. 김억의 요동횡단기도 결국 목판화로 표현되는 작가 내면의 울림이자 기록이다. 천리장성의 현장인 요동성(지금은 없어진), 건안성, 백암성을 거쳐서 백두산을 오르고, 다시 고구려의 첫 도읍지인 환인(桓仁)의 오녀산성·하고자성, 집안현(輯安縣)의 국내성·환도산성의 흔적과 태왕릉·장군총, 단동의 봉황산성, 대련을 돌았다. 버스로, 기차로, 택시로 무려 2.500Km에 이르는 공간이동을 하면서 과거와 현재, 역사와 현실, 그들과 우리, 풍경과 반성을 목판화에 담았다. 한 폭의 풍경화에서 이 많은 것들을 서술할 수는 당연히 없겠지만, 김억의 목판화들은 그런 모든 것들을 보고 느낀 핵심을 순수한 가슴으로, 서정이자 서사로 드러낸 것이다.

김억_국동대혈_한지에 목판화_151.5×62cm_2008

새롭고도 광대하고, 언어도 통하지 않은 그곳에서 어차피 작가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오감을 열고 자유롭게, 그리고 분리된 인식과 편견을 넘어서 공기처럼 느끼는 것 뿐 일게다. 이 간단없고 도저한 체험의 불편함이 결과물을 만들어낸 것은 무모할 정도로 이 기획을 밀어붙인 작가의 집념과 닫힌 인식의 경계를 넘어서려는 작업태도 때문이었다. ●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다. 하지만 상상과 이념을 감각적으로 실천하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어디 있으랴. 김억의 이번 전시에 필자가 목판화의 형식보다도 작업을 구축해 가는 과정에 더 큰 방점을 찍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작가 특유의 조형적 표현이 빚어내는 시각적 즐거움도 좋긴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 그 이상을 바란다면, 그건 호사다. 그럼에도 그 호사를 즐기고 싶다. 어쩔 수 없이 김억이란 작가에게 이런 기대로 부담을 줄 수 밖에 없다. 그것이 관객의 권리다.

김억_백암성_한지에 목판화_62×152.5cm_2008
김억_백암성과 망대_한지에 목판화_62×152.5cm_2008

이번 작업에서도 여전한 것은 김억 특유의 조형적 시선이다. 광활함을 표현할 땐 부감법(付勘法)을 가까운 풍경의 디테일을 드러낼 땐 땅에 선 낮은 시선을 유지한다. 전자는 관찰한 부분들을 상상에 근거해서 구조적으로 합성하고 엮어낸 다시점(多視點)으로 구성된다. 놀라운 것은 과거의 작품에서도 그렇지만 이 정교한 조립의 기술, 아니 조형능력이다. 산과 강, 평야, 건물, 호수 등 모든 것들이 별 오차 없이 펼쳐지고 거기에서 과거와 현재, 시간과 공간, 삶과 기운을 통합하는 풍경이 나타난다. ● 백암성을 다룬 두 작품을 보자. 푸른색과 붉은색 모노톤으로 처리된 작품들이다. 푸른색 작품의 「백암성」은 백암성을 아래에서 올려다 본 실사풍경이다. 백암성의 위용과 크기가 옆으로 길게 펼쳐진다. 작가의 눈은 마치 카메라의 그것과 같아 보인다. 그러나 이 작품의 시선도 사실은 카메라의 그것과 같지 않다. 그림에서만큼 성벽의 위용이 전체로, 그리고 높게 보이려면 작가는 적어도 수 백미터 밖에서 백암성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경사진 성벽앞 공터에서 더욱 낮은 곳에 있어야 이런 조망이 가능하다. 그런데 사실 그때 김억은 그 먼 곳까지 가기 어려웠다. 성벽 주위에서 관찰과 스케치를 했다. 당연히 이런 포커스는 나오기 어렵다. 김억은 자신의 스케치에서 더 멀리 더 낮게 부분들을 조립한 다시점으로 땅에서 본 시선으로 백암성의 사실성을 부각한다. ● 이에 비하면 버밀리언 계통의 붉은 색으로 처리한 「백암성과 망대」는 전형적인 부감법을 구사한 작품이다. 실제 관찰이 불가능하다. 시점과 시선들의 조립과 몽타주가 빚어 낸 것은 백암성의 발가벗은 나신이다. 푸른색의 백암성에 비하면 훨씬 더 큰 공간을 담았다. 내려다 본 시선만이 포착할 수 있는 시각적 장점이기에 가능했다. 화면의 변화도 꾸물거리듯 복잡하다. 푸른색에 비해 훨씬 다양한 감정들이 발생한다. 「金剛全圖」를 그린 겸재는 작은 화면에 금강산을 모두 담기위해 사물을 겹치며 공간을 축약하는 부감법을 구사했다. 오늘날의 건축에서 다분히 객관적으로 대상을 드러내기 위해 부감법을 사용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당연히 실질적 기능이 중요하다. 감성은 다음 문제였다. 김억은 바로 부감법의 이 딱딱함을 서정적인 감성을 담아내는 기제로 사용했다. 감정을 좀 더 강화시키는 역할을 이 부감법을 통해서 역으로 보여준 것이다.

김억_봉황성과 장대_한지에 목판화_32×130cm_2008
김억_봉황산성(오골성)_한지에 목판화_74×104cm_2008

백암성을 다룬 이 두 작품은 시점의 高와 低, 색상의 따뜻함과 차가움, 시선의 풍부함과 건조함을 대비시켜 보여준다. 같은 풍경에서 이런 다른 뉘앙스를 포착한 것은 전적으로 예민한 작가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작업에의 경도(傾度)가 선사하는 결과물이다. 풍경은 풍경일진대 풍경에서 무언가를 느낀다는 것은 결국 보는 사람의 문제일 것이다. 무엇을 보고자 하는가에 대한 의지 말이다. 요동에서 경치만 보려는 사람에게 풍경은 사람을, 그들의 삶의 모습을 거세시킨다. 반대로 거기에 사는, 살아왔던 사람들의 역사를 보고자 한다면 그 풍경에 내재된 삶들을 보려는 자신의 입장이 뚜렷이 투영될 것이다. 김억이 백암성이나 봉황성 뿐 아니라 드넓은 요동벌판에서 보고자 했던 것은 그곳의 역사성과 삶의 모습을 아우른 인문지리적인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보다 좀 더 광활한 그 공간에서 어떤 새로운 시각적, 조형적 지표를 탐구하는 것도 목적일 것이다. 김억 자신을, 지친 몸과 마음을, 작가정신을 여러 곳에서 부딪히며 얻고자 한 것은 바로 어떻게 세계와 대면할지에 대한 토대와 경계를 확장 시키려는 것이었을 게다. 이번 전시는 오십 중반의 이 작가에게 그런 목적을 향한 새로운 시작점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여전히 시도하고 저지르는 중에 있는..., 작가다. ■ 김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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