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들

김보중_박진화_이흥덕_최진욱展   2008_1206 ▶ 2008_1221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08_1206_토요일_04:00pm

책임기획 / 김보라_박응주_박지민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1:00am~05:00pm / 월요일 휴관

헤이리 문화공간 마음등불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76-42 (법흥리 1652-471번지) Tel. +82.(0)31.948.1253 www.heyri.net

자본에 의해 모든 것이 획일화되는 신자유주의 시대, 끝없이 다양한 이미지가 출몰하는 이 스펙터클의 사회 속에서 그림이란 무엇이고,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바로 이 물음에서 전시에 대한 구상은 시작되었다. 이러한 질문과 더불어 이번 전시는 소위 미술계의 허리 세대에 해당하는 중견화가에 주목한다. 가볍고 감각적인 그림, 기괴함과 자폐성의 그림이 양산되고 있는 현황 속에서 표면적인 작품의 반대항에 위치한 '진지함'의 작가를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1980년대와 1990년대를 지나온 그들의 그림에 대한 생각, 지금의 입장을 작품을 비롯해서, 글과 말로 확인한다. 2008년 한국 땅에 발붙이고 내려앉아, '지금, 여기'와 긴밀하게 관계를 맺은 이미지를 표현해내는 작가들, 화력 20여년의 예술가들에게서 이를테면 세상과 나에 대한 균형잡힌 눈, 완급조절과 같은 성숙함의 미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서이다.

김보중_신목-가을_장지에 아크릴채색, 콘테_200×210cm_2006
김보중_숲을 달리다_캔버스에 유채_145.5×112.2cm_2007

물론 이 전시에 참여한 4명의 작가만이 대표적인 모범적 표본작가들이라고 확언할 수 없으며, 작가 선정은 선택적이고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들을 묶어주는 외적 공통점은 20년 넘게 꾸준히 그림 작업을 해 온 50대의 작가들이라는 것, 형상위주의 작업을 하고 있다는 정도이다. 따라서, 이들은 그림이라는 공통 화두만을 공유할 뿐, 각자의 관심에 따라 서로 다른 톤의 목소리를 낸다. 어떤 이는 창작자로서 그림과 대면하는 순간, 개인적 층위에 보다 더 주목하고, 어떤 이는 의당 역사, 사회적 맥락에서 그림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각자의 입장과 견해차는 짤막한 대화 속에서도 드러났다. 이를테면, 4명의 참여 작가가 모인 자리에서 제시된 사진과 그림이란 주제에 대해서도 다양한 관점이 존재했다.

박진화_밤하늘_캔버스에 유채_230×450cm_2008
박진화_자화상_캔버스에 유채_162×130cm_2008

작업 성격상 사진을 보고 그릴 수밖에 없다며 두 눈으로 여러 면을 보면서 그리는 것과 고정된 눈으로 포착된 것을 가지고 그 속에서 느낌을 끌어내는 것 중 후자가 훨씬 어렵다고 말하는 작가가 있는가하면, 사진을 보고 그리는 순간 아예 붓이 나가지 않는다는 작가도 있고, 꼴라주 방식으로 사진을 화면에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작가도 있다. ●『입장들』展은 그림에 대한 이러한 각각의 견해 차이를 그대로 드러내려 한다. 인류학의 공간근접학(Proxemics)에서 말하는 바대로, 대화를 위해 적절한 거리와 간격을 유지하는 것이다. 따라서, 비유하자면『입장들』展은 2008년 한국이라는 같은 배경 속에 4명의 작가가 각자의 스타일로 서 있는 하나의 그룹 초상화이지 않을까 싶다. 그들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 있다. 다시 말해서 네 작가가 발붙이고 서 있는 각기 다른 현재의 지점은 일정한 간격을 가지고 있는 상태로 제시된다.

이흥덕_붉은 집_캔버스에 유채_130×130cm_2006
이흥덕_노란 비_캔버스에 유채_260×388cm_2008

김보중 작가가 숲과 나무 등 자연풍경과 결합한 인간 형상을 통해 생명의 문제에 천착하고 있다면, 박진화 작가는 시대사회적 '처지' 속에서 화가로서의 사명감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관찰자적 시점에서 카페, 지하철, 신도시 등 우리 사회 속 공간을 배경으로 여러 파편화된 내러티브를 조합하여 강렬한 색채로 표현한 이흥덕 작가가 있다면, 회화조건에 대한 탐구에서 개념, 생태로 확장해가면서 주제를 갖는 새로운 그림 작업을 펼치기 시작한 최진욱 작가가 있다. ● 이렇게 각자가 서로 다른 입장을 피력하고 있음에도, 과연 이들을 규합하는 지점이 있을까? 작가 인터뷰 중에 발견한 점은 각기 다른 빛깔의 그림과 글, 말에서 묘하게 겹치는 무언가가 엿보였다는 것이다.

최진욱_나의 생명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00×200cm_2004
최진욱_폭포가는 길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_162×112cm_2008

그것은 그들이 모두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그림, 생명력이 있는 그림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며 붓은 오로지 자기 자신만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음을 절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림을 위해 그림을 부정하는 과정을 얘기하고 있으며 환상과 환영으로서의 그림, 그림을 둘러싼 예술적 신비화에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을 만나면서 감각과 개념 사이에서 중심을 잡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기도 하고, 움직임과 흔들림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그리고, 디지털 영상문화의 시대에도 살아있음의 감각을 확인시켜준다는 면에서 그림은 그 확고한 존재의미를 획득하고 있었다. ● 인간은 결국 누구든 자기가 발붙이고 있는 자신의 입장에 서서 사고하고 판단한다. 그러나 동시에, 어떤 주제에 대해 자기가 서있는 위치에서 바라보는 관점, 명확한 입장을 드러내기란 결코 녹록한 일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전시를 위해 그림과 말, 혹은 글로 자신의 입장을 밝혀준 작가들께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 ■ 입장들

Vol.20081208h | 입장들展

@ 통의동 보안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