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 1_그녀가 되다

Single 1_Woman in the Big League   백지순展 / BEKJISOON / 白智舜 / photography   2008_1210 ▶︎ 2008_1223

백지순_은강_General Manager, Kay_아카이벌피그먼트 프린트_52×78cm_2008

초대일시_2008_1210_수요일_05:00pm

기획_갤러리 아트비트 후원_경기문화재단_㈜바이텍씨엔지

관람시간 / 월~목요일_10:00am~07:00pm / 금~일요일_11:00am~06:00pm

아트비트갤러리_ARTBIT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156번지 성보빌딩 301호 Tel. +82.2.722.8749 www.artbit.kr

2007년 12월 27일, 40대 미혼녀에게 '어머니'라고 불렀다가 뺨을 맞는 사건이 발생했다. R씨는 옷 가게 점원이 미혼인 자신에게 어머니라고 부른 것에 화가 나 손찌검을 했다고 한다. 그 R씨의 마음은 단지 R씨만의 것이 아니었고, 그런 일은 단지 품위를 지키기 위하여 차마 실행에 옮기지 못한 일이었다. 결혼을 선택해야만 사회적 지위가 보장되던 전통사회의 관성에 이끌려 결혼을 위한 결혼을 선택하지 않았던 싱글우먼들은 단지 운명적인 인연을 만나지 못해 결혼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삶이라는 게 끊임없는 선택으로 점철되어 있다면 그녀들은 존재의 방식에 있어서 자기 자신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선택한 결과로 얻은 것이 그녀의 직업이다. 값싼 임금 때문에 여성이 사회적 노동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을 기화로 여성의 직업 영역은 점차 확대되어 간다. 싱글우먼은 밖으로는 부계사회의 기득권을 가진 남성과 경쟁해야 하며, 안으로는 존재방식에서 오는 고독을 다스려야 한다. 인간이 살기에 척박한 환경인 라다크에서는 한 집에서 한 명은 승려가 되어야 한다. 그들은 독신을 지키며 사회적으로는 존경을 받는다. 한편 한국의 싱글우먼의 상당수가 이 사회의 소중한 인력이다. 사랑을 담보한 채 자기 일에 헌신적인 소중한 일꾼인 것이다. 사회적 존경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그녀들의 이름으로 불릴 수 있기를 희망한다. ■ 백지순

백지순_은영_Scrip Writer, Eunyoung_아카이벌피그먼트 프린트_52×78cm_2006

정글에서 둥지를 트는 법 ● 여자로서의 삶은 스스로 여자임을 깨닫는 순간에 시작된다. 계기가 무엇이든 일단 자각이 이루어지면 세상의 온갖 여성성에 대한 규범들이 의미를 지니게 된다. 미소 지은 얼굴로 다소곳하게 말하는 법이나 치마를 입고 다리를 모으는 법과 같이 소소한 과제들을 익히면서 사회적 규범을 수용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러한 행동양식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규범에 쉽게 동화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갈등 또한 만만치 않다. 모든 인간은 시시때때로 주어진 기준에 나를 맞출 것이냐 거꾸로 기준에 맞서 고단한 싸움을 할 것이냐를 두고 갈등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규범을 수용하는 것 뿐 아니라 자신만의 규범을 만들어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무엇이 나를 기쁘게 하는 일인지,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려면 어떤 삶의 방식을 택해야 하는지, 그 결과 나는 정말로 행복한지. 나를 둘러 싼 집단이 아닌 '나'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 쉼 없이 이어지는 것이다.

백지순_선화_Designer, Sunwha_아카이벌피그먼트 프린트_52×78cm_2007

그간 아시아의 모계 사회와 한국의 종부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온 백지순의 신작 『그녀가 되다』는 한국의 지금, 혼자 사는 여자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해체되는 결혼제도나 변화하는 가족 개념에 대한 재조명이 될 수도 있겠고, 이런 설명이 다소 진부하다면 여성성을 뛰어넘은 인간성에 대한 탐구라고 해도 좋겠다. 우리는 분명 주어진 성별로서의 여성의 의미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엄마들은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로 아들보단 딸을 선호하고, 남학생들은 여학생과의 성적 경쟁에서 불리해질까봐 남녀 공학을 피하고, 한참 일할 나이의 성인들에겐 골드 미스 신드롬이 불고 있으며, 황혼 이혼은 주체적인 행복을 찾아 나선 할머니들을 만족시키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국적이나 나이, 성별, 직업 같은 항목들을 동원하지 않고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백지순의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한국인으로 성년기를 맞아 생산적인 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여성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할 독립된 인간이다.

백지순_영미_Analyst, Youngmi_아카이벌피그먼트 프린트_52×78cm_2007

이번 작업이 백지순의 이전 관심사와 차별화되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등장인물들의 개별성일 것이다. 이들은 집단으로 묶이길 거부하고 지극히 개별화된 삶의 방식을 택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눈길은 다른 사람들과 교차되지 않는다. 자신의 눈에만 들어올 무언가를 탐색하며 허공에 머물러 있다. 구지 말하자면 그들의 시선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다기보다는 차라리 스스로를 향해 있는 듯하다. 타인과 공유하는 공간에서 허공을 바라보는 행동은 이들이 한 장소에 함께 있는 누구와도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시선의 불연속성으로 인해 그들은 섬이 되는 것이며, 당연히 이것은 시선의 주체인 주인공들의 자의적 선택의 결과이다. 하지만 이러한 자의성, 즉 주체적 선택은 때론 사회적 고립감을 불러일으켜서 충만한 인생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듯 보인다.

백지순_문현_Analyst, Moonsun_아카이벌피그먼트 프린트_52×78cm_2008

충만성의 결여는 심리적 거리로부터 온다. 그녀 자신도 싱글의 삶을 고집하고 있는 사진가 백지순은 모든 작품에서 대상 인물과 일정한 심리적 거리를 유지한다. 이는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는 주인공 싱글들의 고립감으로 이어진다. 작가는 자신이 다루는 인물들의 일하는 곳이나 주거 공간을 촬영 장소로 택함으로써 그들이 각자 자신이 선택한 삶의 방식과 역할을 어떻게 일구어 나가고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배경에 많은 설명 요소들이 포함되고 주인공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어진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은 사진을 찍은 사람이나 혹은 사진을 보는 사람 쪽으로 다가오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위치에 고정된 것이다. 또한 심드렁한 듯 태연한 듯 무표정한 얼굴은 혼자 일구어가는 삶의 정서적 진동이 매우 적음을 드러낸다. 표정은 말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한 도구이다. 혼잣말이 흔치 않듯이 홀로 지내며 다양한 표정을 지을 일은 없다. 그들의 무표정은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삶을 거부하는 주장이기도 하며 동시에 그로 인해 짊어지게 된 삶의 무게에 대한 감내이기도 하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백지순이 지적하는 우리 시대의 여성 싱글들의 삶이 지닌 이면의 불안정성으로 해석될 수 있다. 작가는 안락한 주택가를 등지고 험난한 정글에서 자신만의 둥지를 트느라 고군분투하는 그녀들의 내밀한 갈등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백지순_미경_Photographer, Mikyung_아카이벌피그먼트 프린트_52×78cm_2008
백지순_경희_Drama writer, Kyunghee_ 아카이벌피그먼트 프린트_52×78cm_2008

백지순의 사진은 질문이다. 전반적으로 자연스러운 색감으로 표현된 사진 속 배경은 어떠한 꾸밈이나 환상도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없는 현실 그 자체로 보인다. 하지만 이것 역시 백지순이 끄집어 낸 현실의 단면이며 감상자들에게 전하는 생각의 단서들이다. 이 모든 것들이 그녀에게는 어쩌면 힘겨운 자기 고백일 수도 있겠다. 여성성이 지배하는 사회를 기록하고, 사회를 지탱하는 여성성의 위대함에 대해 힘주어 말하던 것에서 다분히 개인적이고 정서적인 문제로 치부될 수 있는 이슈로 이행하게 된 것은 아마도 이러한 질문이 드러나는 양상만 다를 뿐 많은 이들에게 공통된 삶의 과제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늘 한국의 골드미스들은 결혼과 양육이라는 커다란 숙제로부터 비껴서 있는 대신 안으로는 고립감이나 침체감을 다스려야 하며 밖으로는 사회적 편견과 호기심에 맞서야 한다. 표준적 생활방식을 거부한 댓가는 그만큼 혹독하다. 그녀들은 가정을 꾸리는 대신 자신의 일을 통해서 성인기의 중요한 과제인 친밀감과 생산성을 얻고자 하지만 이것을 그저 개별화된 취향이나 욕구, 혹은 신념으로 이해해줄 만큼 세상이 너그럽지 않은 것이다. 이 대목에서 백지순 특유의 정의감이 빛을 발한다. 그녀들의 삶이 미완의 반쪽짜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충만한 인생일 순 없는지, 그리고 남들과 공유되지 않는 자신만의 선택으로 온전히 행복해질 순 없는 것인지를 세상에 힘주어 묻고 있는 것이다. ■ 신수진

Vol.20081211g | 백지순展 / BEKJISOON / 白智舜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