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여지도 Project 세 번째-서해안

박홍순展 / PARKHONGSOON / 朴弘淳 / photography   2008_1213 ▶ 2009_0221

ⓒ 박홍순_서해안-태안군 안면도 꽃지해수욕장,S Korea 젤라틴 실버 프린트, 흑백 인화_50.5×105.5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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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8_1213_토요일_05:00pm

후원_서울문화재단_한국문화예술진흥회

관람시간 / 평일_10:00am~07:00pm / 주말,공휴일_11:00am~06:30pm

한미사진미술관 The Museum of Photography, Seoul 서울 송파구 방이동 45번지 한미타워 20층 Tel. +82.2.418.1315 photomuseum.or.kr

고독하고 육중한 박홍순의 거대서사 ● 예술가 개인의 소소한 사변을 담아내는 일이 새로운 흐름을 형성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소소함이 사소한 것의 재발견과는 달리 지루한 혼잣말을 반복하는 것으로 변질했다는 것이 최근 비평계의 진단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 현대미술계를 지배해온 일상담론의 미망은 미시서사의 섬세함에 도달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일상담론을 가장한 의사-일상성이 예술가의 자기체험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결여한 채 상투적인 신변기록에도 못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담론이 지배하는 현대미술의 가벼움에 비해서 거대서사의 장중한 무게는 발걸음이 더디지만 세월을 더해가면서 가속도를 붙인다. 박홍순이 그런 경우이다. 그는 지난 10여 년 동안 굵은 행보를 이어왔다.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는 한 걸음씩 더 크게 성큼성큼 내딛으며 거대서사의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 ● 생태자연의 거대한 풍경 속에서 인공의 흔적을 담아내는 박홍순의 작업은 비판적 지식이다. 그것은 한순간 짧게 쓰일 보도사진이 아니라 수십년을 두고 쌓여서 우리 시대의 이 땅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장중한 기록이다. 그의 거대서사는 묵직한 중량감을 가지고 있다. 그는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예술이라는 비판적 지식 생산의 방식으로 사회에 참여한다. 그의 성장기와 청년기는 한국사회의 그 어느 시대 못지않게 급격한 사회변동의 에너지로 가득 찬 시기였다. 하여 그의 감성과 의식 속에는 사회를 바라보는 명징한 관점이 자리 잡고 있는데, 박홍순 자신의 말을 빌자면, 그가 백두대간에서 한강을 거쳐 서해를 찍고 다닌 것은 이 땅에서 태어난 사람으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이 땅은 한국사회의 거대한 행위자 주체들이 침입해서 조작과 훼손을 일삼고 있는 그 땅이다. 그 땅의 면면을 돌아보고 기록하는 일이 그가 선택한 이 시대에 우리사회를 만나는 방법이다.

ⓒ 박홍순_서해안-강화군 황산도 01, S Korea_젤라틴 실버 프린트, 흑백 인화_50.5×105.5cm_2008
ⓒ 박홍순_서해안-서산 부남호, S Korea_젤라틴 실버 프린트, 흑백 인화_74×98cm_2005

강원도 원주에서 나고 자란 그는 문학을 전공한 사람답게 서정성과 서사성을 동시에 꿰뚫는 작업으로 시간과 공간의 동시성을 회복하는 데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생태자연의 거대한 풍경 속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인간의 흔적들을 들춰낸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문제의 지점을 찾아가 순발력 있게 고발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관념적인 자연을 부르짖거나 전략적인 계몽의 서사를 남발하지 않는다. 자신의 보폭을 벗어나는 큰 목소리를 내기 보다는 매우 냉정하고 차분한 시선으로 현실을 재발견하게 한다. 그의 발걸음은 고독하다. 카메라를 든 많은 사람들이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 곳, 화려한 예술상품 생산에 주력하는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지 않는 곳을 찾아가기 때문이다. ● 1997년부터 백두대간을 담아서 사진집을 낸 것이 1999년의 일이다. 이어서 몇 해 전에는 한강을 주제로 한 연작으로 개인전을 열었다. 마흔을 넘어서부터 그는 서해안을 오가기 시작했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다양한 표정의 땅과 물을 만나게 해주었다. 길 떠난 사람이 부딪히는 새로운 장면과 상황들을 카메라에 담는 일은 그 자체로 기록이며 새로운 발견이자 세계에 대한 성찰이다. 애초의 계획에 따라 움직이다가도 예측을 빗겨나는 또 다른 결과를 만나고 우연성에 이끌려 계획과는 전혀 다른 경로를 탐험하기도 하는 것이 여행의 묘미이다. 박홍순은 생태자연과의 만남을 위해 늘 길을 떠나곤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서도 인간 또는 사회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담아냈다. ● 뒤로 물러나 멀찍이서 느긋하게 바라보는 박홍순의 시선은 백두대간 곳곳을 파헤친 문명의 개발 논리를 낱낱이 드러낸다. 측광을 받아 극단적인 콘트라스트를 보이는 채석장의 부서진 바위 조각들, 마치 거대한 대지미술처럼 속살을 드러낸 도로공사의 절곡면, 아스라이 뒤로 물러서는 산맥의 흐름을 도도하게 바라보며 산하를 지배하는 산꼭대기 관측소와 철조망과 헬기 착륙장. 박홍순은 백두대간의 구석구석에서 발견한 이 모든 장면들은 모종의 상황을 포착하고 있다.

ⓒ 박홍순_서해안-안산시 대부도,S Korea_젤라틴 실버 프린트, 흑백 인화_74×98cm_2007

야만적인 상황을 매우 극적이면서도 담담한 시선으로 포착하는 박홍순의 렌즈는 매우 안정적인 어법을 구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지극히 불안한 서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 한강을 거쳐 서해안으로 나아간 박홍순의 시선은 여전히 안정적이면서 동시에 불안하다. 갯벌을 붉게 물들이는 함초 밭을 뿌연 단색으로 눌러주는가 하면, 갯벌 위를 지나간 자동차 바퀴자국의 거대한 드로잉을 회화적 분위기로 재현하기도 한다. 갯벌 위에서 스러져가는 목조 설치 작품들의 비장한 상황들이 있는가 하면, 그림 같은 갈대의 서정이 흐르기도 한다. 연한 톤으로 지긋이 눌러준 모래사장 위로 바람과 사람이 공동 제작한 흐릿한 선들이 아스라이 멀어져간다. 갯벌을 가로질러 섬으로 이어지는 철골 탑의 긴 행렬은 자연의 거대함을 압도하는 역설의 숭고를 낳는다. 생태자연의 스스로 그러함과 인공의 조악한 다스림이 공존하는 역설적인 상황. 이것이 박홍순 카메라가 고행에 가까운 작업 과정을 거치면서 만난 장면이자 상황이다. ● 하늘과 땅이 교차하는 거대한 풍경 가운데서 인공의 흔적을 발견하는 일은 생태자연에 인공적인 흔적을 가미한 인간의 행위를 드러내는 비판적 성찰의 시각으로부터 출발한다. 따라서 박홍순의 렌즈는 생태자연을 겨누고 있으면서 동시에 현대사회의 야만성을 겨냥하고 있다. 새만금 갯벌을 인공댐으로 막은 초대형 간척사업은 한국 현대사에 있어 씻을 수 없는 오류로 남을 것이다. 박홍순은 이 심난한 현장을 드나들며 최병수의 설치작품을 담았다. 나무 위에 새를 올리는 대신 짱뚱어를 깍아 올리고 어선을 하늘 방향으로 곤두세운 솟대 작품들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점점 황폐지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그는 점점 육지로 변해가는 그곳 갯벌의 현실을 착잡하게 목격하고 있다.

ⓒ 박홍순_서해안-강화군 황산도 02, S Korea_젤라틴 실버 프린트, 흑백 인화_50.5×105.5cm_2007

예술가가 자신의 스타일을 구축하는 과정은 지속성에 달려있다. 그는 오랫동안 축적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화면을 구획하고 빛을 빨아들이는 자신의 어법을 만들어왔다. 박홍순의 프레임 속에는 역광을 포착함으로써 얻어지는 강한 콘트라스트가 존재한다. 최저의 어두움과 최고의 밝음이 한 화면 안에 공존하는 극단적인 명암의 대비는 그의 스타일을 구축하는 가장 큰 특징이다. 아날로그 작업에 의존하는 일 또한 박홍순 스타일의 결정 요소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디지털과 아날로그 작업을 병행하지만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일관된 맥락을 형성하는 흐름은 아날로그이다. 디지털 프린트가 일반화한 지금, 그는 다시 대형 프린트 작업을 위해 어두운 암실에서 한줄기 빛을 좇아 긴 시간 작업에 매달린다. ● 그의 풍경 사진들 가운데는 하늘과 땅을 절반으로 가르는 수평구조의 작품들이 많다. 특히 서해바다를 담은 근작들이 그렇다. 수평선과 소실점이 정중앙으로 모인 작품들이 많다는 점에서 그의 시선이 원근법적인 시선에 충실한 다큐멘터리로부터 출발한다는 점을 추론할 수 있다. 그는 생태자연의 컬러풀한 표정들을 흑백으로 환원한다. 그가 평면위에 옮겨진 색채의 세계를 회피하는 이유는 매우 사실적인 표현방법을 쓰되 그것을 절제미 속에서 실행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는 형상을 옮겨 오고 색채도 재현하는 사진의 왜곡을 조금이라도 덜어내기 위해서 흑백사진만을 전시장에 제시한다. ● 박홍순 카메라 워크의 매력은 밀착이 아니라 이탈에 있다. 그는 항상 멀리서 느긋하게 바라본다. 예를 들자면 서해안 기름유출 사건의 현장에서 여느 사진가들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박홍순의 시선을 확인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진가들은 기름때를 닦아 내기에 여념이 없는 자원봉사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카메라를 바짝 들이댄다. 반면에 박홍순은 그 현장에서 한참 뒤로 물러나 거대한 생태자연의 풍경 속에서 꼬물거리는 인간 존재의 행위 장면을 포착한다. 태안군 학암포에서 기름유출 사건이라는 대재앙을 맞아 갯벌을 갈아엎은 장면을 포착한 작품은 마치 대지미술의 현장을 담은 것 같은 역설을 감지할 수 있다. 사건의 현장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멀찌감치 뒤로 물러나는 것이다.

ⓒ 박홍순_서해안-군산시 비응도, S Korea_젤라틴 실버 프린트, 흑백 인화_28×57.5cm_2006
ⓒ 박홍순_서해안-변산반도 격포,S Korea_젤라틴 실버 프린트, 흑백 인화_43×54.5cm_2006

그는 예술가 주체와 세계 사이를 매개하는 카메라 렌즈의 시선으로 장소와 상황이라는 실재의 면면을 흡착한다. 그의 사진은 몸으로 찍는 사진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발로 찍은 사진이다. 드넓은 갯벌이 펼쳐진 서해안 곳곳을 누빈 박홍순의 순례는 강화도에서부터 안산과 변산, 태안을 거쳐 진도에까지 이른다. 그는 대자연의 숭고함과 인공의 사악함이 맞물리는 서해안의 시공간을 무던히도 드나들었다. 아무도 가라고 하지 않은 그 길을 걸어가는 일. 이것이 박홍순이 선택한 예술의 길이다. 그 장소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포착하는 일은 사진의 현장성에 대한 강박, 그러니까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해야 한다는 집착으로 직결할 수도 있다. 그는 다르다. 그가 장소성과 상황은 포착하는 발걸음은 언제나 한결같이 느리고 길기 때문이다. ● 분명 그의 작업은 생태적 가치를 옹호하는 환경운동의 맥락과 동행한다. 그러나 그는 사회참여적인 운동의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가 만든 사진 작업의 결과물은 전시장 전시뿐만 아니라 단행본 출판과 정간물, 그리고 인터넷 매체 등을 통해서 증폭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지금 당장 목전에 닥친 즉발적인 효과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만큼 긴 호흡으로 자신이 발 디딘 땅 전체를 담아내겠다는 원대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얘기다. 그에게는 예술생산의 필연성이라는 맥락이 있다. 그로서도 아프리카나 아메리카와 같은 거대한 대륙을 향한 동경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로부터, 더 좁게는 자기 자신의 체험과 내적 필연성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예술에 대한 진지하고도 성찰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 박홍순의 고독한 순례에는 예술영역에 팽배한 식민주의 시각을 넘어서겠다는 구상이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다. 탈식민주의 관점의 첫출발로 그는 백두대간을 담기 시작했고, 한강을 거쳐 서해로 나아갔다. 조만간 그는 남해바다로 갈 계획이라고 한다. 몇 년 내에 끝나지 않을 긴 프로젝트도 구상중이다. 비무장지대를 담는 일이다. 지난 10년을 돌아보며 다시 새로운 10년을 내다볼 줄 아는 긴 호흡의 예술가 박홍순의 프로젝트이다. 그의 스케일 큰 구상이 일단락을 이룰 때까지 그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고독한 발걸음에 정비례하는 예술의 길을 걸을 것이다. 예술은 대중의 기호취미를 충족시키는 일이 아니라 소수자의 새로운 합의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이라는 것. 예술의 대사회적인 역할에 관한 질문에 대해 박홍순의 작업이 들려주는 해답이다. ■ 김준기

Vol.20081213a | 박홍순展 / PARKHONGSOON / 朴弘淳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