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혼 combative spirit

김기룡展 / KIMKIRYONG / 金起龍 / painting   2008_1211 ▶ 2008_1217

김기룡_COMBATIVE SPIRIT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0.9×53cm_2008

초대일시_2008_1211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8:00pm

인천신세계갤러리 INCHEON SHINSEGAE GALLERY 인천시 남구 관교동 15번지 신세계백화점 테마관1층 Tel. +82.32.430.1157 department.shinsegae.com/store/main/gallery

실험적 화면에서 들어나는 싸움소의 내밀한 기상 ● 김기룡의 그림을 보면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화면이 작가를 닮았고 대상도 작가를 닮았다. 과묵함에 가려있는 웅혼한 힘과 격정이 그러하고 이를 제어하는 분별력이 그러하다. 김기룡은 소를 그린다. 소는 농경민족인 우리에게 각별한 동물이지만 작가가 이점에 주목해서 소를 선택한 것 같지는 않고, 이의 외연과 내포가 회화적 모티브로 적정하기 때문에 선택한 것일 게다. 그것은 외모가 풍기는 강인함과 부드러움, 그리고 내면에 잠재된 투혼과 너그러움 같은 것이다.

김기룡_COMBATIVE SPIRIT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0.9×53cm_2008

실험을 통한 소통의 모색 ● 이러한 면은 현대회화가 지니고 있는 특성과도 부합된다. 오늘날의 회화는 단순히 '그린 것(drawing)'이라는 점보다는 현대문명의 정신적 · 물질적인 여러 요소들이 파편적으로 결합된 각축장이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에는 격정과 제어, 물질과 비물질, 역동과 고요, 파격과 순응이 공존한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최근 김기룡의 회화적 변신에 상당한 공감을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그는 얼마 전까지 대상의 표정이나 동작에 주안점을 두고 이의 긴장관계나 화면의 변주에 관심을 갖고 작업했다면 최근에는 매우 적극적인 화면처리로 현대회화의 다양한 가치와 문맥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작가의 예술적 성취와 표현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오늘날 작가는 모더니즘 시대의 산물인 절대적 표현주체는 아니지만 여전히 주체적으로 화면을 관장하고 이끌어가는 창작주체이기 때문이다.

김기룡_COMBATIVE SPIRIT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5.1×90.9cm_2008

이번 개인전에서 김기룡은 다양한 형식적 변주를 시도하고 있다. 우선 눈에 띠는 것이 현대회화가 이룬 다양한 형식적 성과들을 화면에 도입함으로써 물질적 풍부함과 언어적 해독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작가는 대립하는 소를 화면 중앙에 배치하여 화면에 일차적 긴장관계를 조성한 후 화면 하단에는 풍부한 물감의 변주를 주어 농도 짙은 격정화면을 구성한다. 반면에 화면 상단부는 화면변주가 없는 간결한 색조로 처리함으로써 주제를 부각시키면서 하단부와 또 다른 긴장감을 유발시킨다. 두 마리의 싸움소가 충돌하는 부분에는 이러한 긴장을 최고조로 충족시키는 선혈의 형상을 드리핑(dripping)함으로써 주제를 극대화시키게 되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대립의 절정을 표상하는 듯한 카타르시스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이러한 극적 쾌감은 이성적 지각이 아니라 관객의 경험과 소통구조에 따라 일정한 시점에 나온 의식의 충돌에 의한 것으로 우리의 본성과 연결되는 지각이다. 말하자면 전체적으로 긴장과 충돌로 연속되는 화면은 관찰자의 지식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관객의 경험으로 추체험 되는 다양한 해독가능성을 함의하게 되는 것이다.

김기룡_COMBATIVE SPIRIT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5.1×90.9cm_2008

한편 작가는 과거 지지대로만 사용하던 마천을 매재(媒材)로 사용함으로써 대상의 실재성을 고양하고 화면에 물질성을 부과하는 주목할 만한 실험을 전개하고 있다. 이는 이전에 물감으로 그린 소 보다 오히려 설득력을 구가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천의 질감이 대상의 피륙을 규정하는데 유용할 뿐 아니라 소의 해부학적 특성에 정통한 작가가 적절한 기술적 개입을 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작가는 표현효과의 극대화를 위하여 붙이거나(collage) 뿌리고(dripping) 또 그리거나(painting) 밀기(rolling)등 모더니즘적 형식실험을 망라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상의 명료한 형상을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그때그때의 현상이 실제로 무엇을 나타내며 거기에서 무엇이 부족한가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이에 작가는 자연에서 풍부한 빛의 반사가 있은 후 다시 형태를 모으듯이 형태의 모든 인상을 분산시킨 후 다시 명료한 시각적 인상을 얻을 수 있는 다양한 방법론을 타진해 온 것이다. 이를 통하여 작가는 모더니즘 회화가 방기(放棄)한 진정한 소통의 가능성을 되찾았을 뿐 아니라 모더니즘 회화가 성취한 다양한 표현적 가능성까지 취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기룡_COMBATIVE SPIRIT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8×91cm_2008

소의의미-투혼 ● 김기룡이 그린 소는 투우(鬪牛)이다. 작가는 이들의 형상과 속성, 그리고 내면의 모습을 표상하기 위하여 늘 소싸움장을 찾는다. 사실 이 장소는 소싸움을 매개로 인간의 속된 욕망이 들끓는 곳이다. 말하자면 인간의 욕망과 소의 본성이 각축을 벌이면서 연민과 탄성이 교차하는 영욕의 공간인 것이다. 그러나 그의 그림에서 욕망주체인 인간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단지 대리전을 치루는 소의 모습만 격정적으로 재현되어 있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소의 모습은 역사의 모진 고난을 극복해온 우리 민족의 이미지와 닮아있다. 선하면서도 격정적인 눈망울이 그렇고 불굴의 투지를 시사하는 듬직한 모습이 그렇다.

김기룡_COMBATIVE SPIRIT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7×162.2cm_2008

사실 농경민족인 우리는 늘 소와함께 살았다. 지칠 줄 모르는 끈기, 힘겨운 농사일에도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견실함, 사악함이라고는 전혀 없는 커다란 눈, 마침내는 죽어서 고기 한 점, 뼈 한 조각까지 오로지 인간을 위해 자신의 온몸을 던지는 소야말로 우리 민족이 가장 신뢰할 만한 동물로 부각시켜 왔다. 이렇게 농사와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소와 함께한 것을 유기축산이라고 했다. 농사를 짓고 생긴 볏짚이나 고구마순 등 부산물은 소의 먹이가 됐고 소의 배설물은 거름이 되어 다시 논밭으로 되돌려져 순환한 것을 말한다. 그러나 지금 이러한 풍정은 동화 속에서나 나오는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70년대부터 불어 닥친 산업화 바람으로 논갈이 밭갈이는 경운기가 맡고 소의 임무는 축사에서 살을 찌우거나 싸움판의 구경꺼리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김기룡_COMBATIVE SPIRIT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162.2cm_2008

군 제대 후 목장을 운영하여 이러한 소의 의미와 특성을 잘 아는 김기룡이 소 그림에 천착해온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김기룡이 그린 소는 건장하고 강인해 보이나 한편으로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하는, 일종의 비장미(悲壯美)마저 풍긴다. 아마도 작가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싸움을 강요당하는 소의 투혼을 표상함으로써 인간계의 폭력본성과 그릇된 욕망을 환기하고자 했는지 모른다. ■ 이경모

Vol.20081214c | 김기룡展 / KIMKIRYONG / 金起龍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