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방 -"세 가지 징후"

이자연展 / LEEJAYEON / 李自連 / sculpture.installation   2008_1209 ▶ 2008_1221 / 월요일 휴관

이자연_그녀의 방-"세 가지 징후"_라텍스, 스티로폼, 석고, 합성수지, 콘테_가변설치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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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CHEOUNGJU ART STUDIO 충북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 2098번지 제2전시실 Tel. +82.43.299.2161~3 www.cjartstudio.com

경계 선상의 싸움, 또는 유희 ● 'L양의 초상'(1회 개인전), '그녀'(2회), '그녀의 방'(3회) 등,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3회에 걸친 전시 제목은 작가 자신을 작품의 주제로 삼고 있음을 알려 준다. 스스로 서 있지 못할 만큼 거대하게 확장된 육체나 주인 비위를 맞추려 애쓰는 개로 비하된 그녀, 식충식물과 벌레, 그리고 괴물 등이 우글거리는 공간은 기괴한 정서를 자아내며, 자학적이면서도 자기분석적인,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자기치유를 향하는 여정이다. L양, 또는 그녀로 지칭되는 서사의 주인공은 정체성 확보를 위한 적절한 한계를 과도하게 넘어서거나 침범 당한다. 이자연의 작품은 이 불안한 경계선들을 넘나드는 과정이다. 최근 작품에서 육체적 경계는 은유적인 사물들로 가득 차 있는 공간으로 확장된다. 이 단계에서 관객은 단지 형상을 보고 읽는 것이 아니라, 그 내부로 들어갈 수 있도록 연출된다.

이자연_그녀의 방-"세 가지 징후"_라텍스, 스티로폼, 석고, 합성수지, 콘테_가변설치_2008

이 심리적 공간은 바로 '그녀의 방'이며, 무의식적 사물들이 명멸하는 장소이다. 꿈은 의식의 감시가 느슨해지는 일상적인 경험 중의 하나로, 이자연의 작품의 주요 원천이 된다. ● 작업실 벽면에 붙은 거대한 패널은 꿈에 나타난 사물과 인물들을 투사하는 스크린이다. 피 흘리는 소녀, 투시력 있는 장님 등은 작가가 깊숙이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분신 같은 캐릭터이고, 어느 장소에나 떼 지어 등장하는 벌레들이나 공격적인 괴물은 자신을 위협하는 공포의 대상이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에 떨고 있는 어린 소녀, 보이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미술의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장님은 연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자아의 일부가 투사된 것이다. 반면 거대한 괴물은 자아를 억압하는 거대한 편집증적인 이미지에, 이합집산 하며 변태하는 작은 벌레들은 자신을 내부로부터 갉아 먹는 듯 한 분열증적인 이미지에 가깝다. 그것들은 모두 자아의 안팎에서 출몰하는 이질적 타자들이다. 육체적, 심리적 대상들을 모아놓은 방은 자신을 보호해주면서도 가두어 놓는 양면성을 가지며, 심리적 드라마가 펼쳐지는 무대가 된다. 거대한 패널 앞에 설치된 검은 그물망은 뜬금없이 출몰하는 무의식의 바다에서 무엇인가를 건져내려는 장치이다. ● 그물은 그다지 촘촘하지 않고 구멍이 나있거나 이리저리 꼬여있으며, 취약한 지지대에 걸쳐 있다. 그것으로는 작가가 건지고 싶은 것들을 모두 포획할 수 없을 것이며, 아주 큰 덩어리가 아니면 대부분 그냥 빠져 나갈 것 같다. 건져 올려진 몇 개의 사물이나 배경의 스크린에 고착된 기표들은 꿈처럼 띄엄띄엄 말하고 있을 뿐이며, 확실한 의미와 결합되지 못하고 떠돈다. 그물의 양 측면에는 삶에 유용한 양식이 되는 감자나 사과 등이 걸려 있다. 그러나 그것들의 싹이나 씨앗은 치명적인 독성을 내포한다. 중력의 힘을 받아 주렁주렁 걸린 덩어리들, 그리고 싹으로부터 여러 방향으로 뻗어 나가는 줄기들은 지상적 존재의 숙명인 끝이 없으면서 허무한 욕망을 압축한다. 유혹과 치명적인 위험을 암시하는 실물, 또는 오브제들은 이자연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의 양면성을 예시한다. 식물이면서도 동물성을 띄는 식충식물, 해바라기 같이 권력에 굴종하는 개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작품에 나타나는 광물질 느낌의 식물들-수분과 양분을 공급해주는 대지가 아니라, 스티로폼이나 시멘트 등 메마른 인공물에서 자라나며, 식물 고유의 광합성 색소가 제거되어 있는-도 그렇다.

이자연_그녀의 방-"세 가지 징후"_라텍스_가변설치_2008_부분
이자연_그녀의 방-"세 가지 징후"_마닐라 로프, 그물망_가변설치_2008
이자연_그녀의 방-"세 가지 징후"_합성수지, 혼합재료_가변설치_2008

이자연의 작품에서 여성의 성기를 닮은 식충식물 표면의 끈끈한 느낌의 물질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중간한 형상을 대변한다. 작가는 그것을 나를 삼켜버릴 것 같으면서도 자신 같은 이미지라고 말한다. 그것은 나와 나 아닌 것 사이를 가르는 경계를 넘나드는 것으로, 이자연의 초창기 작품부터 지속되는 그로테스크함이 경계 위반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밝혀준다. 인류학자 메리 더글라스는 경계를 위반하는 것, 즉 오염과 그것이 가지는 위험을 지적한 바 있다. 그녀에 의하면 오염은 우주의 구조이든 사회의 구조이든 구조의 윤곽이 명확히 않은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이며, 동시에 능력의 근원에 존재하는 것이다. 육체는 어떠한 유한의 체제도 표현할 수 있는 도형으로, 모든 상징체계의 기본적인 도식을 제공한다. 육체는 나 자신과 그 밖의 모든 것과의 경계이다. 다시 말해 육체의 경계는 위험하거나 불안정한 모든 경계를 상징할 수 있다. ● 이자연의 작품에서 여체 특유의 부드러운 곡선을 만들어 내는 지방질은 과도하게 넘쳐나서 끈끈한 액체가 되어 흘러내린다. 유혹적인 향기를 풍기는 꽃의 끈끈한 막은 외부의 것을 자신의 깊숙한 곳으로 끌어들인다. 이자연의 작품에서 지방덩어리와 식충식물이 자아와 관련된 이미지이다. 그것을 뒤덮고 있는 고체와 액체의 중간 상태의 점착성 물질은 육체의 한계를 가로지른다. 그것은 삶에의 과도한 의지를 표출하는 매혹적인 것이지만, 동시에 죽음을 예시하는 불길한 것으로 양면적 가치를 담고 있다. 메리 더글라스의 이론을 정신분석학적 차원에서 더 정교화 한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공포의 힘』에서, 양가적인 의미를 담는 이행 대상transitional object를 앱젝트abject라고 이론화 하였다. 그녀에 의하면 앱젝트란 '정체성, 체계,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 경계, 위치, 규칙을 무시하는 것'이다. 정확한 경계를 잃고 외계로 신체 기관이 쏟아져 나오는 이자연의 드로잉은 이행대상이 탈 중심화 된 주체decentered subject와도 관련 있음을 보여준다. ● 순수를 유지하기 위해 오염이란 개념이 만들어 지듯이, 앱젝트는 인간 생활과 문화가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 배제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역겨운 느낌을 주면서도 마음을 부추기고 홀리는 기묘함을 가진다. 정신분석학에 의하면 앱젝션을 초래하는 것은 청결이나 건강의 결핍이 아니라, 정체성, 조직, 질서를 방해하는 일이다. 또한 앱젝션은 극도로 강한 어떤 감정인데, 이 감정은 신체적이기도 하고 상징적이기도 하며, 외적인 위협일 뿐만 아니라 내적인 위협이다. 그것은 분리되고 싶지만 분리의 불가능함을 말한다. 경계 및 범주의 혼동이 빈번히 일어나며, 공포와 매혹을 동시에 야기하는 이자연의 작품은 사물이나 인물의 본질, 또는 중심이 아니라, 그것의 불확정성을 예시한다. 이자연은 가장자리에서 유희하면서 사회의 상징질서에 의해 구축된 주체의 경계를 의문시한다. 그녀의 작품에 나타나는 많은 이미지들이 주체와 그 변주를 보여주면서 트임과 열림, 복합이라는 형식을 내포한다. 그것은 주체 내부의 타자를 호출하는 장치들이다.

이자연_그녀의 방-"세 가지 징후"_검은 비닐_가변설치_2008
이자연_그녀의 방-"세 가지 징후"_백자토_가변설치_2008

경계 지대에서 주체는 사회로 진입하거나 타자로 배제된다. 가변적인 경계 위에서 이자연은 타자를 불러들여 안정된 정체성의 토대를 무너뜨린다. 타자는 고립된 주체에게 사투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타자는 이미 주체 내부에 있고, 그 주체의 본래적인 부분이다. 따라서 타자를 자신처럼 사랑하기보다는, 자기 내의 타자를 사랑한다. 자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논리가 성립된다. 작가가 고백하듯이, '자신을 사랑하는 서툰 감정'과 빈번하게 발생하는 자학적 이미지는 불가분의 것이다. 타자성은 여성 작가로서의 이자연의 작품을 읽는 또 다른 키워드가 된다. 크리스테바는 정체성 내에 존재하는 타자성에서 모성의 표상을 발견한다. 가령 모성은 주체와 객체로 깔끔하게 나누어지지 않는다. 모성은 내부 타자성의 구현이며 변화하는 정체성이라는 것이다. 예술적 언어처럼 모성은 정체성이 그 완전성을 잃지 않은 채 이질적인 타자를 포용한 경우를 말한다. ● 모성처럼 예술 역시 사회의 지배적 질서가 그어놓은 상징적 경계의 한계에 도전 한다. 사회의 상징적 질서는 앱젝트를 경계선 밖으로 내몰지만, 그것은 의식의 감시를 느슨하게 함으로서 금지와 금기, 구별을 용해시키는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킨다. 물론 그것은 또한 위기를 불러온다. 그러나 출산, 에로티시즘, 축제, 예술, 종교 등 인류가 가진 중요한 경험에서 위기와 카타르시스를 동시에 야기하지 않는 예는 드물다. 정상적 규범을 벗어난 일탈적 이미지로 가득한 이자연의 작품은 경계 위반의 체험에 기반을 둔다. 그것은 단지 기괴함을 위한 기괴함이 아니라, 상처받은 자아를 치유하기 위한 것이다. 치유는 마치 접종이나 샤먼의 방식처럼 동종요법으로 진행된다. 작가는 더 큰 폭력에 자신을 드러내고 위기에 노출시킴으로서 그 병에 깊이 빠져 든다. 터지는 고름처럼, 병의 심화와 그것이 야기하는 위기는 역설적으로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이로운 계기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 이선영

Vol.20081214h | 이자연展 / LEEJAYEON / 李自連 / sculpture.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