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하고 담백한 조형의 심미특질

김문순展 / KIMMOONSOON / 金文順 / painting   2008_1217 ▶ 2008_1223

김문순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갤러리 아카 서울_GALLERY AKA SEOUL 서울 종로구 낙원동 283-38번지 Tel. +82.2.739.4311

동양회화 조형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단연 수묵일 것이다. 유구한 발전과정을 거쳐 풍부한 조형적 경험을 축적한 수묵은 그 자체가 동양회화 전통의 실체를 이루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수묵의 위상이 예전과 같지 못한 것은 바로 전통성과 현대성의 연계에 있어 일정한 괴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는 단순히 한 두 마디의 말로 정의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는 아닐 것이지만, 적어도 오늘의 수묵이 일정한 질곡의 상황에 놓여 있음은 공히 공감하는 부분일 것이다. 더불어 전통적인 수묵을 통한 새로운 활로의 개척 역시 대단히 난망한 상황이라는 것이 솔직한 현실일 것이다. 이러한 상황인식은 수묵을 비롯한 전통 자체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이해를 촉발케 되었으며, 이는 이른바 현대 한국화의 새로운 표정으로 표출되게 되었다.

김문순

새로운 한국화의 표정은 일단 재료에 대한 개방과 분방한 해석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지필묵 중심의 전통적인 심미관과 조형체계의 근본적인 변환을 드러내는 것으로, 오늘의 한국화를 규정짓는 특징적인 현상 중 하나라 할 것이다. 작가 김문순의 작업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그 시발과 전개 방향을 살펴 볼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 작업은 전형적인 실경산수의 그것이었다. 활달한 운필과 그윽한 수묵의 기운이 어우러지는 정치한 화면은 작가의 작업을 규정짓는 특징적인 것으로, 이는 전통적인 심미관과 감상체계를 충실하게 반영한 원칙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근작들에 나타나는 새로운 조형들은 이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 가히 괄목할만한 파격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다. 작가의 신작들에는 예의 그윽한 수묵의 기운이나 운필의 흔적들은 보이지 않고 있다. 새로운 작업들은 그리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공예적인 기능과 조형성이 두드러지는 것이다. 그것은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구축되는 것이며, 읽어냄을 통해 비로소 그 함의를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일차적으로 보는 것을 통해 특정한 정서와 감상을 전달해주는 것이다.

김문순

실경산수에 매진하였던 작가가 굳이 이러한 파격적인 변신과 변모를 추구한 것은 역시 수묵이 지니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에 대한 절실한 체험과 조형에 대한 본능적인 욕구가 작용한 것이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신작들은 마치 이러한 과정들을 반영하듯이 일정한 단계와 순서를 두고 변화의 양태를 구체화 시켜 나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상대적으로 초기의 작업들에 해당하는 작품들은 여전히 채색과 표현이라는 부분에 일정한 관심을 보이고 있으나, 이러한 경향은 작업의 전개에 따라 점차 배제되고 탈색되어 결국 순수한 조형으로 드러나게 된다. 그것은 바로 한지, 혹은 종이죽이라는 특정한 재료와 작가의 직접적인 만남으로 형상화되는 새로운 조형의 세계라 할 것이다.

김문순

작가의 신작들은 수많은 작업의 흔적들로 점철된 것이다. 그것은 마치 화면 전체에 작가의 지문을 찍는 것과 같은 노동의 수고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꽃과 나비와 같은 절제된 특징적인 대상들을 바탕으로 다양한 화면을 구축해 나아가는 작가의 작업은 일단 특정한 형상의 표현이나 주제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작업 과정에서 파생되는 무수한 우연의 효과들을 고스란히 화면에 수렴해 냄으로써 파생되는 또 다른 심미감의 발현이라 할 것이다. 이는 공예적이고 기능적인 것을 전제로 하지만, 그 궁극적인 내용은 바로 수공에 의한 무수한 무작위의 분방함일 것이며, 이는 결국 손에 의한 조형이라는 작업 방식에서 기인하는 특징적인 것이기도 하다. 필묵의 기능성과 풍부한 표현력을 대신한 손에 의한 표현은 당연히 둔탁하고 거칠게 마련이다. 그것은 유려한 선의 현란한 표현을 보장하거나 화려하고 장식적인 색채미를 담보하지 않는다. 오히려 질박하고 둔중하며 은근하다. 이는 전통적인 동양회화의 심미관이나 감상관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는 또 다른 심미 특질의 표현이다. 작가가 이미 지필묵을 기조로 한 전통적인 표현에 일정기간 천착했던 것을 상기한다면, 작가는 분명 이에서 벗어난 새로운 조형을 지향하고 있음이 여실하다. 더불어 이러한 새로운 조형은 특정한 법칙이나 규율을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의식 속에 내재되어 있는 근본적이고 본능적인 것에 의지하고 있음이 역력하다. 이는 바로 작가 자신에 대한 솔직한 접근이자 자신의 손에 의해 이루어지는 원초적인 조형에 대한 긍정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김문순

다식판의 문양을 응용하거나 전통적인 소재와 공간 표현을 차용한 것 등을 염두에 둔다면 작가는 분명 한국적인 것, 혹은 전통적인 것을 작업의 시발로 삼고 있음이 여실하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한 전형의 재현이나 답습이 아니라 이를 차용하여 새로운 조형을 구축해 보고자 함이 역력하다. 특정한 기법이나 양식을 고집하지 않기에 작가의 작업은 분방하며, 특정한 가치를 강요하지 않기에 작가가 차용한 이미지들은 보다 자유롭게 조형의 한 요소로서 그 기능을 발휘한다. 소박하고 담백한 화면과 여유로운 공간의 구성, 그리고 인위적으로 가공되어지지 않은 풋풋한 조형은 무작위적이고 비기교적이며 비정형적인 것으로, 이는 한국미의 특질이라 일컬어지는 내용들과 그 괘를 일정부분 같이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것이기도 하다. ● 전통적인 지필묵에 의한 실경산수에서 탈피한 작가의 새로운 변신은 일단 긍정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그것이 한국미의 특질과 연계되어 거론될 수 있음은 앞으로 작가의 작업이 보다 폭넓은 조형의 여지를 확보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적어도 작가의 작업은 이미 새로운 지경에 들어서고 있으며, 미지의 새로운 공간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만약 작가가 이를 보다 깊이 자각하고 구체화할 수 있다면 그 경계는 사뭇 달라질 것이다. 소재의 편협성을 극복하고 공간 운용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경영, 그리고 여전히 일정부분 잔존하고 있는 형상 표현에 대한 부담감을 떨쳐 버리는 것은 당면한 과제라 할 것이다. 작가의 분발과 다음 성과를 기대해 본다. ■ 김상철

Vol.20081219d | 김문순展 / KIMMOONSOON / 金文順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