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하네스 휘피展 / Johannes Huppi / painting   2008_1217 ▶ 2008_1230

요하네스 휘피_kleiner kuss_판넬에 유채_13×18cm_1998

초대일시_2008_1217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고도_GALLERY GODO 서울 종로구 수송동 12번지 Tel. +82.2.720.2223 www.gallerygodo.com

개념의 생소함, 우리와는 다른 속도인 느림, 보헤미안 같은 낭만, 극도로 존중되는 개인주의, 이해 불가능한 시대의 반영, 다소 낮 설은 유럽 각 지역적 특성화된 전통의 반영 등등이 우리가 유럽 컨템포러리 미술을 접할 때 겪는 불편하고 어려운 문제들입니다. ● 이런 우리와의 간극을 단 한 번에 해소할 작가가 요하네스 휘피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주위에서 발견되는 일상적인 소재로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시각을, 어려운 것들을 쉽게 풀어내며, 구상적인 것이 추상성을 발휘하는 놀라운 경험을 안겨주며, 주관적인 것이 보편적인 경험으로 공유되고, 회화적인 것이 무엇 인가에 대한 의문이 해소되며, 낭만은 아직도 우리에게 유효하며, 말할 수 없는 감동이 한 재능 있는 한 작가의 작품에 의해 성취됨을 목격할 것입니다. ● 갤러리고도가 2008년을 마무리하는 전시로 기획되는『요하네스 휘피』展은 이 겨울을 따뜻하게 하는 작은 선물입니다. ■ 김순협

요하네스 휘피_Badende_판넬에 유채_25.5×21.5cm_2008
요하네스 휘피_Frau im Wasser_판넬에 유채_27.5×22cm_2007

요하네스 휘피 ● 요하네스 휘피가 회화를 시작했던 1990년대에 회화는 떠들썩한 비디오 앞에 시선을 빼앗기고 사진은 뜨거운 감자처럼 만연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뭐랄까: -아방가르드라는- 20세기에서 모던은 10년 단위 템포를 따르는 동안, 이미 있었던 것 외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미리 깨달은 예술가들이 있었다. 큐비즘의 창시자인 피카소가 이 부류에 속하고, 1920/21년에 웅장한 구상회화로서 다시 사실주의 영역으로 돌아섰다. 인간: 인간존재가 중심에 섰다. ● 평론가들은 예술에서 새로운 것이 더 이상 없음을 한탄한다. 그들은 오늘날의 문화가 오락이나 즐거움 또는 아름다움으로 이해되는 것이라는 의견이다. (헤닝 리히터,「문화에서의 안락함」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인 신문 2006.5.6) ● 물론 이 새로움은 20세기의 양식사적 현상에 연관된다. 사실은 이 새로움은 30년 전 미술사적 아방가르드 이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돌아올 수 없는 시간(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 흐르고)-그 뒤 단지 밀도와 권위만이 의미를 갖는다.

요하네스 휘피_Handy_판넬에 유채_24×30cm_2003
요하네스 휘피_Handy2_판넬에 유채_30×37.5cm_2008

이를 엄밀히 1913년 그림들로 발튼이 그려냈고, 요하네스 휘피가 정확히 그려냈다. 회화적이고 감성적인 몰두는 미술사의 탁상공론을 몰아냈다. 두 가지 요점 중 하나는, 이전에 이미 없었던 것은 없다는 말은 개혁(혁신)적인 상황을 철저히 배제한다. 왜냐면 모든 예술가는 먼저 그가 걸었던 길을 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어떤 예술이든 기억에서 나온다. 그러나 예술가는 과거로 되돌아가지는 않는다. ● 그는 이것들을 현재로 가져온다. 현재에 관한 사고와 의식적인 자신의 연구로부터 생생하게 그려진 과거는 예술과 회화의 욕구를 위한 청사진이 된다. 요하네스 휘피의 작품들은 단지 욕구(열정)의 표출만이 아니다. 이들은 우리가 다만 육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형과 색으로 농축되어 생성된 열정들이다. 항상 다시 헤아릴 수 없는 애정으로 변성하는 열정이다. 항상 남성을 배려하는 여인이다. 옷 입은 마돈나일지 모른다. 게다가 순결하다. 서빙하는 그녀는 맥주나 음식을 나른다. 그리고 여성 같은 형상이 짐승을 어깨위에 걸친다. 이 여인은 한잔의 레드 아니면 화이트와인과 함께 접시 위에 놓은 요하네스의 머리를 건네준다. ● 여성의 힘은 남자들에게 있어 공명의 방 같은 것이다. 이것은 스스로를 망가뜨릴 수 있는 하나의 우울함이다. 짧게 요약하면, 남자들에게 있어서 어머니는 근원이고 여성들은 우리의 운명이다. ■ 진 크리스토프 암만

요하네스 휘피_Stilleben1_나무에 유채_34×33cm_2008
요하네스 휘피_Stilleben2_나무에 유채_34×33cm_2008

Johannes Huppi ● Erinnern wir uns, dass man in den neunziger Jahren, als Johannes Huppi zu malen begann, vor lauter Videos, die Kunst aus den Augen verlor und die Fotografie wie ein Flachenbrand um sich griff. ● Was soll ich sagen: Wahrend die Moderne im 20. Jahrhundert in Zehnjahresschritten - sprich Avantgarden - das Tempo diktierte, gab es Kunstler, die fruh erkannten, dass es nichts gibt, was es nicht schon gegeben hatte. Picasso, der Verrater am Kubismus, gehort zu ihnen. Mit seinen großartigen Figurenbildern, von 1920/21, betrat er wieder den Boden der Realitat. Im Vordergrund stand der Mensch: Das Menschsein. ● Kritiker beklagen, dass es das Neue in der Kunst nicht mehr gibt, sie sind der Meinung, dass Kultur heute als Ablenkung, Unterhaltung, Reiz aufzufassen ist "(Henning Ritter,「Behagen in der Kultur」, 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 6.Mai 2006). ● Sie beziehen jedoch dieses Neue auf die stilgeschichtlichen Phanomene des 20. Jahrhunderts. Wenn es in der Tat, dieses Neue nach dem Ende der historischen Avantgarden vor dreißig Jahren nicht mehr gibt - fugit irreparibile tempus (es flieht unwiederbringlich die Zeit) - dann zahlt nur noch Intensitat und Authentizitat. ● Das genau zeichnet Valloton aus in dem Gemaldre von 1913. Und das genau zeichnet Johannes Huppi aus. Die malerische, emotionale Hingabe wischt die kunstgeschichtlichen Verweise vom Tisch. ● Zwei Punkte. Erstens: die Aussage, dass es nichts gibt, was es nicht schon gegeben hatte, schliesst das innovative Moment keineswegs aus. Denn jeder Kunstler muss zuerst den Weg schaffen, den er beschreitet. ● Zweitens: Jede Kunst kommt aus der Erinnerung. Aber ein Kunstler geht nicht in die Vergangenheit zuruck. ● Er holt sie in die Gegenwart. In der Erforschung des Selbst aus einem Bewusstsein und Denken von Gegenwart wird vergegenwartigte Vergangenheit zur Blaupause fur das Begehren der Kunst und Malerei im Besonderen. ● Die Bilder von Johannes Huppi drucken eben nicht Begehren aus. ● Sie sind Form und Farbe gewordenes Begehren in einer Verdichtung, die wir nur korperlich erfahren konnen. Ein Begehren, das auch immer wieder in eine immense Zartlichkeit mutiert. Stets ist es die Frau, in deren Obhut sich der Mann begibt. ● Ein Begehren, das auch immer wieder in eine immense Zartlichkeit mutiert. Stets ist es die Frau, in deren Obhut sich der Mann begibt. Als ware sie eine Mantelmadonna. Jedoch: unbefleckt ist sie nicht! Die Serviererinnen bringen das Bier oder das Essen, so, wie die weiblichen Figuren die Tiere auf den Armen tragen. ● Sie Serviererinnen prasentieren aber auch das Haupt des Johannes" auf einem Teller, zusammen mit einem Glas Rot- oder Weißwein. ● - Die Macht des Weiblichen ist wie der Resonanzraum in uns, die wir Manner sind. Es ist eine Melancholie, die fahig ist, sich selbst zu unterminieren. ● Um es auf eine Kurzformel zu brngen: Fur uns Manner sind die Mutter die Erdung und die Frauen unser Schicksal. ■ JEAN-CHRISTOPHE AMMANN

Vol.20081219f | 요하네스 휘피展 / Johannes Huppi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