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시스(Catharsis)의 장

최상용展 / CHOISANGYONG / 崔相龍 / painting   2008_1223 ▶ 2008_1228

최상용_Untitled_캔버스에 유채_90.9×72.7cm_2008

초대일시_2008_1223_화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봉산문화회관 BONGSAN CULTURAL CENTER 대구시 중구 봉산문화거리 133번지 3전시실 Tel. +82.53.661.3081~2 www.bongsanart.org

최상용 선생은 정신과 전문의다. 그런 그가 20년이 넘는 화력을 가진 미술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가 않다. 어쩌면 화가인 최상용이 정신과 의사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더 많을 지도 모른다. 이렇듯 최상용은 의사이자 화가로 두 세계를 넘나들며 일상 속에서 매우 긴 호흡으로 틈틈이 그림을 그려 세 번째 개인전을 가진다. ● 그의 삶 속에서 느끼는 선입견과 갭은 화폭 속에서 조화롭게 하나로 용해되는 카타르시스의 장이되고 있다. 이 정화작용이라는 사건이 발생하는 장소에는 작가의 잠재된 삶의 일부와 삶의 경계선 밖 상상세계가 만나 조우한다. 그의 작품은 바로 그런 과정에서 이루어진 행위의 과정과 결과일 것이다. 캔버스 위를 유영하는 흔적, 의식과 무의식을 가르며 형성된 행위의 흔적들은 점과 선들이 겹쳐지고 또 포개지면서 시·공간의 경계 혹은 접점에서 만난다. 이처럼 최상용의 작업은 자신이 경험하는 삶의 세계와 그것을 넘어선 세계와의 조우를 통해 조형적 형태를 발견해 가는 과정이자 결과물인 카타르시스다. ● 이런 그의 작업 중에서 지난번 개인전이 자연의 일부인 나무라거나 꽃 등 정물에서 발견한 조형적인 형태와 색의 조화가 강조되었다면, 이번 전시작은 행위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흔적인 선적요소와 점을 통해 시·공간의 확장을 보여주고 있다. 이점은 그의 조형적인 세계가 어떤 구체적 사물의 형태를 넘어 추상화된 자연에 대한 상상력을 미적 감성으로 드러내는 방식으로 형상성을 벗어나 우선 몸으로 체득하고 있음이다.

최상용_Untitled_캔버스에 유채_116.8×91cm_2008

개인의 상상력이 시각적 요소로 드러나는 방식은 다양하다. 현대의 미술가는 일상 속에서 경험하고 또 머리로 이해 가능한 세계일지라도, 그것은 경험너머에 있을 그 어떤 세계에 대한 시각적 비전으로 그 자신만의 상상력을 통해 펼쳐 놓는다. 그렇게 펼쳐진 세계는 시공간을 초월한 새로운 차원의 세계가 되어 우리의 눈앞에 펼쳐진다. 최상용에게 있어서 새로운 세계에 대한 상상력과 창작의 고민은 그의 조형적 실험을 이루어가는 매우 중요한 동기로 작용한다. 그것은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는 방식을 통해서 알 수 있다. ● "우주의 바깥은 밝을까? 어두울까? 끝이 있을까? 영원하게 펼쳐져 있다면 영원이란 무엇일까? 우주의 경우와 같은 모습을 띈 다양한 벽은 우리들 주변 도처에 있다. 경계선 밖의 세상을 볼 수 있는 이런 특별한 기회가 우연히 아주 잠깐의 순간으로 우리에게 다가 올 수 있을까? 그런 기회가 온다면 이것을 요행히 알아 볼 수 있을까? 알아 볼 수 있는 길이란 무엇일까? 그림의 정수는 무엇일까? 그림을 그림답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2006)" 등등의 질문을 던지고 또 그 질문에 스스로 답하는 방식으로 뜨겁거나 차가운 정념을 어떤 형태와 행위를 통해 풀어간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미적반응을 순화해가는 일종의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정화작용이 캔버스 속에서 발산과 여과의 과정을 거치고 하나의 조형적 요소로 남겨진다. ● 무엇보다 그는 평소 정신분석학의 시각에서 작가의 창조성과 근원적인 아름다움이 갖는 요소에 관심을 가져 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미술은 문학이나 영화와는 다르게 말로 표현되기 전단계의 다듬어지지 않은 직관이나 느낌 혹은 아름다움의 표현이자, 여러 가지의 상징적 의미가 뒤섞인 하나의 정신현상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작업을 조형의 원형(archetype)을 들추는 작업에 비유한다. ● 이를테면 "나의 작업과정에서 우연의 요소는 아주 중요하여 매순간 선을 긋고 칠을 하고 지우고 더 강한 선을 긋고 없애고 뒤집고 하는 행위 중에, 우연은 계속 다가오며 이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작품의 특색과 모습이 드러난다. 한 사물을 계속 드로잉 한다는 것은 자유연상과 같아서 그 근본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주위는 많은 상징(symbol)들이 차 있는데, 식물의 원형, 동물의 원형, 인간의 원형... 등 이런 모든 것은 결국 하나의 불변의 원형으로 갈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2008)"고 말한다. 어쩌면 긴 시간 작업에 대한 고민이 안겨준 것은 지금의 결과물이기 보다는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느끼는 원형 혹은 그림다운 그림이라거나 그림의 정수 등등에 대한 본질물음에 대한 것이 아니었을까.

최상용_Untitled_캔버스에 유채_116.8×80.3cm_2008

그의 작업은 자아와 조우하는 카타르시스의 장이자 동시에 자아실현이라는 지점으로 확장되는 하나의 심리적 상태이자 그것이 이루어지는 장소로 나아간다. 이런 그의 고민과 성찰들이 드러나는 조형적 실험의 장소인 캔버스는 그가 '자기실현'을 이루는 곳이기도 하다. 아마도 최상용은 작가이기 전에 정신과 의사로서 융(Carl Gustav Jung)에 상당히 고무되어 있었을 것이고 또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 '자기실현'은 융에게 있어 의미 있는 요소다. 그것은 '자아'에 대한 매우 중요한 해석과도 연관되어 있다. 자아가 무의식의 바다 깊은 곳에 있는 자기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그 원형의 세계에서 나오는 진실한 목소리를 감지하는 것을 융은 자기실현의 역사라고 했다. 그렇기에 융에게 있어서 삶은 '자아가 자기를 발견하는 과정이고, 그 과정은 바다 위에서 출렁이는 파도와 같은 자아가 심연의 깊이를 가진 중심에 있는 자기를 찾아가는 여정'과도 같은 것이다. 그렇기에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심연을 향해 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상징과 신화의 언어를 상실한 현대는 분화된 의식으로 자아가 발전해가는 과정에서 자기를 버렸기에 그 길은 더욱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 그럼에도 이런 자기 상실의 시대에 최상용은 심연에 있는 자기의 마음을 끌어내는 과정을 그림을 통해 실현해 가고자 한다. 이런 자기실현의 과정은 융에 있어 개체화(individuation)의 과정이기도 하다. 개체화의 길은 개인무의식과 집단무의식 사이의 대화로 집단정신을 인정하면서도 집단과 자신의 삶의 목표를 구별해 가는 것이다. 융이 말하는 건강한 사람은 개체화의 과정에 성공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되어간다는 뜻으로, 모든 사람은 이런 개체화의 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자기답게 되는 것이며, 진정한 의미에서 건강한 모습이라고 한다. 이런 과정을 최상용은 무의식의 소리를 인식 속으로 가져와 그것이 말하는 것을 듣고 받아들이고 따르는 방식을 취한다. ● 그의 말을 빌면, "조형적 요소를 통해 발견하는 카타르시스는 지속적인 열정으로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섬세한 시각으로 지켜봄으로써 획득한다. 그냥 지나치기 쉬운 선이나 점에서도 그것만의 고유하고 섬세한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카타르시스적 요소는 현대미술에서 특히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시도로 나타나는데, 이는 새로운 세계를 드러내는 일종의 미적 발견이라는 중요성을 가진다.(2008)"

최상용_Untitled_캔버스에 유채_116.8×91cm_2008
최상용_Untitled_캔버스에 유채_116.8×91cm_2008

사람들은 이성과 논리를 통해 증명 가능한, 눈앞에 드러나는 어떤 구체적인 형상을 좋아한다. 그러나 융은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는 마치 광활한 우주체계와도 같은 신비한 무의식의 세계가 있기에 사람들에게 무의식에 귀를 기울이기를 바란다. 무의식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자기실현'은 인간의 목표고 올바른 인간 이해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인간은 진정한 자기를 발견했을 때에 비로소 삶의 가치를 느끼며 건강한 사람으로 설수 있다. 이것은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타자'에 대한 이해 역시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 어쩌면 미술은 작가의 무의식에 있는 요소를 의식세계로 드러내는 하나의 통로이자 자아와 타자가 만나는 장소일 것이다. 그렇기에 마음의 문을 열고 무의식과 직면하는 태도는 작가에게 요구되는 자세다. 최상용은 정신과 의사로서의 전문적인 지식을 미술이라는 시각적 비전을 통해 실천해가면서 카타르시스의 장을 열어놓고 있다. 그 장에는 자아실현을 넘어 나와 타자가 조우하는 공간이자 개인과 집단이 만나는 장소다. ● 칼 융이 인간의 무의식세계에도 마치 유전자와 같은 원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던 것처럼, 작가는 자연의 형태와 자신의 행위과정에서 발현되는 의식과 무의식의 껍질을 벗겨내는 작업을 통해 보편적 경험과 개인적 경험의 층을 시각화한다. 그의 작업에서 보여 지는 시각화는 자기실현 과정을 통해 자아와 타자간의 공통분모인 하나의 원형을 발견해 가는 작업이 아닐까. 작가는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화면에 남겨 놓느냐의 연속선상에서 그림 속의 화면이 만들어 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나와 너의 관계에서 진정한 대화가 일어 날 수 있는 것'이며, 결국 그림은 내가 화면에 표현되는 '존재의 발현'이라고 한다. 최상용에게 그림이란, 자기를 나타내는 양상이며 바람이자 희망으로 삶의 태도까지를 포함하는 것이다.

최상용_Untitled_캔버스에 유채_116.8×91cm_2008
최상용_Untitled_캔버스에 유채_116.8×91cm_2008

사람들이 자기실현 과정을 통해 공통분모인 원형을 발견할 때 타인과의 대화와 이해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인간을 이해함에 있어 개체의 특성을 인정함과 동시에 하나의 집합체로서 유기적인 대화의 지평을 열어놓은 칼 융의 이론을 최상용은 개인의 의식에 반영된 외부세계에 원형적 상징과 내부적 요인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균형을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을 통해 이루고자 했다. ● 이처럼 개체화에 접근하는 최상용의 작업은 자기의 특성을 파악하기위한 기본적인 단서가 되고 있다. 그것은 동시에 하나의 집합체와의 유기적인 대화를 열어가는 소통의 장이 되기도 한다. 개체와 집합체로서 유기적인 대화의 지평을 열어 놓았던 칼 융의 원형에 대한 작가적 통찰은 이번 개인전을 통해 한걸음 나아가고 있다. ● 그림은 '존재의 발현'이라고 말하는 작가의 이번 전시의 회화적 특성은 외부대상과 내부요인의 결합과 조화로 행위과정과 심리적 효과를 카타르시스의 장으로 통합시켜 놓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경험한 카타르시스가 개인적 자아와 집단적 자아를 넘어 하나의 소통의 장으로 거듭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 김옥렬

Vol.20081222c | 최상용展 / CHOISANGYONG / 崔相龍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