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비장애인이 함께 즐기는 08크리스마스 미술파티   책임기획_주현영   2008_1220 ▶ 2008_1227

초대일시_2008_1220_토요일_06:00pm

참여작가 곽현진_김계선_김도명_김동현_김소희_김윤숙_김형희_문은주_박명선 박소희_오화진_유진숙_이수욱_이원주_임기옥_조혜영_최진섭_최형우

주최_한국문화예술위원회 후원_기획재정부복권위원회

구로아트밸리 갤러리 GUROARTSVALLEY GALLERY 서울 구로구 의사당길 12(구로동 101번지) Tel. +82.2.2029.1700~1 www.guroartsvalley.or.kr

크리스마스 미술파티를 준비하며... ● 세상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 촘촘히 연결된 네트워크와 통신 수단의 발달로 거리의 한계가 없어지면서 먼 곳의 개념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 이제 먼 곳은 지도상의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라 통신 여건이 좋지 않아 연결되기 힘든 곳이 되었다. 어떻게 언제 다 가보나 싶게 넓기만 했던 세계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손가락 끝으로 불러 올 수 있는 경험의 차원으로 축소된 것이다. ● 네트워크란 것이 고마울 때가 있었다. 일하기가 수월해진 것은 물론이고 멀리 떨어져 있는 지인들과의 거리가 좁혀진 것도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네트워크가 덫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지점이 촘촘해질수록 덫은 더 강한 힘으로 세계를 옭아맨다. 빠져나갈 수 없는 힘으로 세계를 움직인다. 가끔은 거미줄에 걸린 먹이 같다는 생각이 들만큼 그 덫의 조이는 힘은 세고 위협적이다. 그래서 주위를 넓게 바라보지 못하고 자기 안에 갇혀서 숨 막히게 살아가며 타인과의 소통 부재로 불안과 소외감이 밀려오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 시대 현대인들의 모습이다.

김형희_사랑을 꿈꾸며 2_MDF에 유채_60.5×24cm_2006 김계선_하나되는 세상_화선지에 채색_95×95cm_2008

좁아지는 세상을 살아가려면 예전과는 다른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순식간에 달라지는 게임의 법칙을 순발력 있게 익혀야 하고 덫을 이용하되 걸리지는 않도록 날렵하게 움직이면서 자기 호흡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물리적인 세계가 좁아질수록 정신세계는 더 크게 키워서 전체 세계의 크기는 작아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여기에 매개체가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문화예술이다. 숨 한 번 크게 들이쉬고 마음에 휴식을 제공하여 옆 사람을 바라보게 하는 여유로움을 이끄는 문화예술은 진정으로 사람과 사람을 소통시킬 수 있는 큰 힘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현대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이것은 그 기능이 점차 다양해지고 높아만 간다. 이러한 문화예술의 비전을 보았기에 미술을 기획하는 사람으로서 미술로 사회통합을 이뤄보고자 하는 것이다. ● 사람 객체에서 조금 더 크게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분류해 보았다. '크리스마스 미술파티 展'은 사회에서 소위 말하는 장애인, 비장애인 작가들이 '크리스마스'를 모티브로 함께 만나서 파티를 즐기는 데까지 목적을 둔다. 새로운 미학적 이론을 구축하고 예술 모델을 제시할 의도는 전혀 없다. 사회가 다르다고 구분지은 사람들끼리 미술작품으로 만나서 우리가 얼마나 다른지, 뭐가 다른지 찾아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서로간의 벽을 허물고 통합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는 데에 의의가 있다. 서로 너무 달라서 이해해야 하는 부분이 정말 많을 수도 있고, 어쩌면 허물 벽이 아예 없을 수도 있다.

김도명_항아리(귀향)_포장용골판지, 흙, 씨앗_가변설치_2007_부분 임기옥_수림수목화_76×91cm_2008
김윤숙_미니장승과 함께 메롱크리스마스_설치_쪽동백나무_2008 박명선_쉬는 나무(Resting Tree)_캔버스에 유채, 홀로그램_60×80cm_2008

생각해보면 인간의 가능성이 이렇게 크게 열려 있는 시대도 없었던 것 같다. 도구적 인간의 정점을 넘어 상상적 인간으로 도약하는 시점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덫을 뚫고 덫을 빠져나와 새로운 내면의 통합된 세계를 만들어내는 인간... 마치 장애인, 비장애인, 남녀노소 모두가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면 마음이 설레이고 따뜻한 사랑을 찾고 싶은, 다같이 공감할 수 있는 느낌처럼 말이다. ●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내면세계에서도 만날 수 있게 되기를 꿈꾸며... 메리크리스마스. ■ 주현영

김소희_Tree in winter 눈사람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0×30cm_2008 오화진_My own recipe 1_종이에 과슈, 아크릴채색_55×46cm_2007
문은주_Together2_캔버스에 혼합재료_53×45.5cm_2008 최진섭_자화상_유채_65.1×53cm_2008

장애인, 비장애인이 함께 즐기는 08크리스마스 미술파티 ● 전시장이란 장소는 눈이 있어야 들어와서 즐길 수 있는 장소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시장은 은연중 눈 먼자들을 소외시킨다. 그러나 우리 눈이란 것은 매우 의심쩍은 감각기관이다. 눈은 착각을 일으키고 속기 쉬우며 오염되기에도 용이하다. 아울러 눈은 문화적, 교육적 훈육의 결과로서 자리한다. 보는 일은 학습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아이들이 보는 것과 어른들이 보는 것은 다르며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 역시 다르다. 본다는 것은 문화적, 심리적, 지적인 것들과 관계 맺는 매우 다층적이고 복잡한 일임에 분명하다. 아득한 시간대에 최초의 생명체가 발아하던 저 깊은 바다 속, 해저에 있던 원생 세포 중 햇살이 그립고 수면 위 세상이 궁금한 세포가 위로 불거져 튀어 올라온 것이 나중에 인간의 눈이 되었다고 한다. 눈은 그만큼 호기심도 많고 욕망도 컸던 감각기관인가 보다. 그래서 우리 몸 맨 위쪽에 붙어있다. 욕망에 쉽게 노출된 눈은 유혹에 약하며 뇌와 가장 가까이 위치한 관계로 생각과 감정과 연결되는 직접적인 통로가 되는 한편 인간이 외부와 접하는 최초의 경계다. 눈은 자신의 온 몸을 그 앞으로 활시위처럼 당겨놓고 세상을 향해 겨냥되어 있다. 눈을 뜨면 세계가 있고 감으면 세계는 사라진다. '눈 밖에 나는 일'은 끔찍한 일이다. 사실 이미지를 보고 즐긴다는 것은 전적으로 망막에 호소하는 일이다.

박소희_suspens(e)_머리카락_가변설치_2008 김동현_B-47호(나는 사색할 수 있으며, 나는 금식할 수 있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70cm_2008
최형우_던져봐!!-즐거운 주사위_혼합매체_90×120×70cm_2008 조혜영_꽃_캔버스에 유채_23.9×19cm_2008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이미지를 보고 느낀다는 것이 꼭 망막의 문제냐 하면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실은 망막이 아니라 온 몸으로 만나고 접하는 것이다. 그 몸에는 망막만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감각기관이 있고 그 외에 수많은 신경과 기억 등이 동시에 복합적인 작용을 통해 몸 밖의 것을 받아들이고 그로인해 느끼는 것이 가능하다. 눈이 없다고 해서 미술작품을 접하는 것이 전적으로 불가능하냐면 그렇지만은 않다. 조각은 촉각적으로 감지하고 감상할 수도 있다. 시각장애인들이 만든 입체작품이 전시되고 그것을 즐거이 만지고 애무하면서 감상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혹은 전시장 전체를 암흑으로 만들고 벽면에 작품을 가설해서 공간에 들어온 이들이 오로지 그 벽을 쓰다듬고 매만지면서, 전시장 전체를 몸으로 감지하면서 감상이 이루어지도록 의도한 전시도 기억난다. 그런가하면 신체적 장애가 있는 이들이 그리고 만들고 찍은 작품들이 전시된 경우도 빈번하다. 작가로 활동하는 이들 중 시각이 불편하거나 팔과 다리가 부재한 이들도 적지 않다. 그들은 자신들의 장애를 이기고 건강하고 멀쩡한 몸을 지닌 작가들 못지않은 작품을 생산해내는 경우도 적지 않고 나아가 그 신체적 장애나 불편함에서 나오는, 그로인해 사물과 세상을 보고 받아들이는 지점이 다른 이들과 조금은 다르고 특별한 시각에서 해석한 작품들을 특이하고 매력적으로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다. 사실 작업은 한 개인이 지닌 상처(트라우마)와 기억, 그의 몸의 조건 속에서 발아되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모종의 장애는 미술행위를 하는데 있어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들 모두는 어딘가 조금씩 불편하고 약간의 병들을 몇 개씩 지니고 살고 있고 또한 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는 무척 모호하기도 하다.

곽현진_하늘을 향하여(to the sky)_캔버스에 유채_116.7×91cm_2000 유진숙_위로 7291_연탄재, 아크릴채색, 혼합재료_2008

그러나 기존에 대부분의 미술전시와 전시장은 정상인이라고 여겨지는 대상을 상정하고 이루어져왔다. 하얗게 표백된 듯한 전시장 벽면에 밝은 조명이 비추고 그 아래 시각에 호소하는 강렬한 이미지, 물질들이 스펙타클하게 연출된 것이 보편적이다. 이른바 한결같은 망막중심주의적인 미술들이다. 아울러 작가들 역시 망막에 호소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거나 신체적 이상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감상하도록 만들어낸다. 반면 전시장 바닥에 엎드려서 벽과 바닥의 사이에 부착된 작은 오브제, 조각들을 감상하게 하는 전시연출도 있고 기계적인 눈(돋보기)에 의존해 전시장 곳곳에 은닉되듯 설치된 작은 입체물을 탐사하게 해는 전시가 있는가 하면 눈이 아니라 후각에 의존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전시도 있다. 그런 경우는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며 전시장을 걸어다닐 수 있는 다리가 달린 사람만이 관객으로 설정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구상하고 연출하는 전시의 형태를 좀 더 다른 차원에서 고려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전시장에는 정상인이라고 여겨지는 이들만이 출입하고 감상하고 즐기는 곳이 아니라 누구나 올 수 있고 와야 하고 여기에는 신체적 장애가 잇는 이들도 당연히 포함된다. 이들에게 전시를 관람하고 향유할 수 있는 기화를 주는 동시에 즐거이 전시에 참여할 수 있는 배려랄까, 관심과 이해가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원주_손에 손잡고_혼합재료_100×100×100cm_2004 이수욱_밝은미소_나무_40×28cm_2008

『장애인. 비장애인이 함께 즐기는 08크리스마스 미술파티』전에는 장애인작가 9명과 비장애인 작가9인이 참여해서 만든 전시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이들은 크리스마스를 맞아 조그마한 행사를 공동으로 마련했다. 현재 미술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 9인과 장애인 작가 9인이 일정한 시간동안 워크숍을 통해 모아진 컨셉으로 각기 작품을 제작했다. 각자 자신들의 미술관, 그동안의 작업을 바탕으로 '크리스마스파티'에 어울릴만한 이미지들을 만들어낸 것이다. 전시 자체가 파티가 되고 작품들은 눈부시게 반짝이는 선물이 되어 전시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동안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전시를 열거나 전시기획을 마련한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몸이 조금은 불편해서 물질을 다루는 데, 다양한 도구를 사용하는데 어려움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작품 하는데 있어 결정적인 결격사유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서로 간에 작품에 대해 논의하고 정보를 주고받고 자신들의 미술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함께 할 수 있는, 관심을 공유할 수 있는 컨셉을 다듬어나가는 중에 자연스레 전시아이템이 나오고 다시 이를 어떻게 시각화, 연출해낼 것인가를 두고 고민한 결과가 이번 전시에 고스란히 담겨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개별적인 작품을 떠나 이들이 함께 전시를 마련해나갔다는 사실이 무척 중요해 보인다. 이들의 만남은 기존 전시의 관행이나 미술작품의 감상과 이해의 조건들을 새삼 반성하게 하고 아울러 우리 미술계가 보여주는 차별과 배제의 틀을 어떻게 횡단해나가느냐 하는 만만치 않은 문제의 일단을 시도해나가는 의미있는 행보라고도 보여진다. ■ 박영택

Vol.20081222f | 장애인, 비장애인이 함께 즐기는 08크리스마스 미술파티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