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w-Crevice

강윤정展 / KANGYOONJEONG / 姜玧庭 / installation   2008_1223 ▶ 2009_0125

강윤정_Draw-Crevice_Cut Papers_가변설치_2008

작가와의 만남_2008_1225_목요일_06:30pm

기획공모 선정작가『2008 유리상자-아트스타』 Ver.6

주최_봉산문화회관

갤러리 토크_2009_0108_목요일_06:30pm

관람시간 / 24시간 관람 가능

봉산문화회관 BONGSAN CULTURAL CENTER 대구시 중구 봉산문화거리 133번지 2층 Tel. +82.53.661.3081~2 www.bongsanart.org

봉산문화회관에서 주최하는「2008유리상자-아트스타」 아티스트 기획공모 선정 작가展은 설치, 영상미술을 포함한 동시대미술계 스타미술가와 만남에 주목합니다. 2006년부터 자체기획으로 시행하고 있는 「유리상자 Glass Box」프로그램은 4개의 유리벽면으로 구성된 아트스페이스 내부를 들여다보는 장소 특성적인 전시방식으로 시민들의 예술 향유 기회를 넓히고, 열정적이고 참신한 예술가들에게는 특별한 미술창작지원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습니다. ● 올해 아티스트공모 전시의 주제이기도 한 '스타★미술가와 만남'은 미술이 지닌 '공공성'에 주목하고 미술가의 공익적인 태도와 역할들을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며, 이는 미술가의 공공성이 다수의 관심과 지지자를 확보하면서 대중적 '스타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 2008년 기획공모선정작 중, 여섯 번째 전시인「2008유리상자-아트스타」Ver.6展은 회화를 전공한 강윤정(1977년생) 작가의 설치작품 『Draw-Crevice』展을 소개합니다. 『Draw-Crevice』展은 사무용으로 사용하는 얇은 종이를 여러 장 포갰을 때 그 단면과 단면 사이의 틈에서 보이는 아주 단순하지만 예민한 톤의 변화들을 시각적 작업 소재로 선택하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작가는 틈의 아름다움, 틈을 통한 자신의 재발견 등을 메시지로 하며, 작업들은 '틈' 개념의 구축과 그 시각적 재생의 과정들입니다. ● 주로 수천 장의 종이 단면과 그 사이의 틈으로 이루어진 판 형태의 시각적 그림으로 제시하며, 이번 전시 설정은 높이 7미터의 천정, 사방이 유리 벽체로 구성된 유리상자 전시 공간 바닥에 수천 개의 세로 틈이 보이는 종이 판형(높이42cm×두께2cm×길이50cm)을 90여개 정도 세우고, 그 묶음체의 윗면이 자유로운 곡선을 그리도록 배치하였습니다. 그리고 세로 틈을 좌우로 연속적으로 이은 환형 묶음체(높이42cm×두께2cm×지름 177cm)를 바닥에서 1.3m정도 띄워서 공중에 매달아 또 다른 틈의 이미지를 재구성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설정들은 작가가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하여 재구성한 세상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그 모습은 작가가 알고 있는, 또는 그리고 있는 세상의 작가적 투영일 것입니다. ● 이번 유리상자展에 설치된 작가의 작업에서 우리는 "삶의 목적은 자기 발견이며, 삶은 자기를 재창조하는 과정일 수 있다. 나의 '틈'은 자기 발견을 위한 여백, 비움, 불확정, 가능성 등으로 불리는 그릇이다."라는 작가 의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아마도 '틈'이 자기 발견을 위한 그릇이란 점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 작가 강윤정은 세상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종이와 종이 단면 사이의 '틈'을 그리고, 그 세워진 틈들의 묶음체와 묶음체 사이에 다시 또 다른 '틈'을 만들어냅니다. 미로 같기도 한 지상의 수많은 세상 모습을 틈과 틈 묶음체로 그려낸 것입니다. 이번 설치작업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지상과 천상을 구분하여 설정하고 그 사이의 '틈'을 그려내는 듯합니다. 틈들을 이은 연속체로 둥근 환을 만들어 영원의 천상을 상징하고 지상과의 틈을 그려냄으로써 우리가 생각하는 세상의 모습을 좀 더 잘 그려내려 합니다. 그리고 작가는 '틈'으로 정의되는 세상의 모습을 통하여 자신이 그러하듯이 관객 스스로도 자신을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 정종구

강윤정_Draw-Crevice_Cut Papers_가변설치_2008

Draw - Crevice ●회화적 개념으로 말하자면, '틈'이라는 것은 Painting 되어 화면을 채우는 부분에 반대되는 여백이 공간으로 확장되어진 개념일 수 있다. 회화에서 여백의 역할이 Painting을 부각시켜주며 조형적으로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을 한다면, 공간에서는 구획 지어진 닫힌 공간을 숨 쉬게 하고 열린 공간으로 만들어 소통할 수 있게 하는 여백이 '틈'이라는 것이다. '틈'은 문이나 창과 같이 드나드는 기능적 역할이 아닌,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원자 구성요소의 하나인 Quark간의 사이일 수도 있고, 벽의 Crack이나 문틈으로도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틈'이라는 것은 공간으로 인식되지 않을 정도로 사소한 틈일 뿐이지만 한정 지어진 공간이 외부세계와 혹은 또 다른 한정 지어진 공간과 언제나 소통의 가능성을 열어 놓을 수 있는 숨통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 강윤정

강윤정_Draw-Crevice_Cut Papers_각 42×58cm 두께 2cm_2008

틈 : 없음이 가리키는 현존의 질서 ● 나는 올해 초 강윤정 이란 작가를 대면하기 꽤나 이전에 그녀의 작품을 먼저 접했다. 그때 나는 작품을 감상하면서 작가의 모습과 성향을 상상했다. 그런데 직접 본 그녀의 인상은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 거의 흡사했다. 물론 나는 이 말을 본인에게 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한 눈에 꿰뚫어 보는 것처럼 행세하는 것 앞에서 유쾌해 할 이는 그리 없을 것 같아서였다. 그녀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다른 한 편으로 생각하면, 강윤정이 그녀의 작품에 자기 정체성을 그만큼 잘 담아두었기에, 우둔한 내 눈으로도 그 점을 발견했다는 논리가 만들어진다. 강윤정이 벌이는 작업은 작품을 통해 그녀의 모습을 짐작하게 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특별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것은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을 포괄하는 삶이 가진 일반적인 태도이다. ● 강윤정은 우리가 언뜻 생각할 때 예술적인 기교가 그다지 들어가지 않은 비예술적 행위에서 작업의 실마리를 따온다. 그녀의 작업은 종이를 여러 장 쌓아 붙이는 일에서 시작한다. 대부분의 미술은 그 출발을 종이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작가는 종이 위에 선을 긋거나 색을 칠하지 않고, 종이 그 자체의 부피감을 작품으로 나타낸다. 따지고 보면, 나무의 변형인 종이는 텍스트를 기록하는 수단으로만 쓰이지 않는다. 종이는 예컨대 방한과 방풍 기능, 또는 물건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쓰임새도 가진다. 종이로 만든 이 얇은 안내책자 또한 작품 전시를 돕는 보조 역할이 아닌가. 작가는 종이 더미가 가진 물성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강윤정_Draw-Crevice_Cut Papers_가변설치_2008

그런데 그 물성이 문제다. 종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변색되는 성질을 운명적으로 지닌다. 물론 작가가 쓰는 종이는 가령 프린트 용지처럼 변질에 대한 저항성을 상당히 갖춘 재료로 선택된 것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종이는 종이일 뿐이다. 종이는 쇠가 아니고 돌이 아니다. 그것은 곧잘 찢어지고, 더럽혀지기 쉽고, 바래지기 쉬운 '만만함'을 타고났다. 그렇다고 강윤정의 작업이 그것처럼 만만한 것은 아니다. 이는 돌을 깎아내고, 쇳덩이를 용접해서 갖다 붙이는 일만큼 근력을 소모하는 일은 아니지만, 상당한 수고와 함께 무엇보다도 인내심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작업이 작가의 퍼스낼러티를 결정했는지, 아니면 거꾸로 작가 성향이 이런 작품을 산출했는지 단정 지어서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작가와 작품 양쪽 모두는 결벽증이란 말을 써도 맥락이 이해될 정도로 꼼꼼하다. ● 작가가 굳이 종이를 써서 번거로움을 더한 까닭은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틈 때문일 것이란 생각도 적지 않다. 작가는 틈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그녀의 작품을 얼핏 보면 목재나 합성수지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을 종이답게 드러내는 것은 틈이다. 틈은 부재(不在)하는 상태다.

강윤정_White space_Cut Papers_50×42×2cm_2007

하지만 그것은 또한 존재하는 것이다. 있음과 없음 사이에서 무한한 논리적 순환의 역설(paradox)을 만들어내는 틈을 존재자로 볼 것인지, 무(無)로 볼 것인지 확정내리는 것은 쉽지 않다. 현상학적 세계관에서, 그리고 강윤정의 예술론에서 그 틈은 존재자가 맞다. 때로 아무 것도 없는 영(0) 그 자체가 명백한 맥락이 되곤 한다. 종교에서 욕망을 완전히 떨쳐낸 득도의 경지, 경제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이 한 푼도 없는 재정적 상황, 과학에서 통계확률이 영 퍼센트인 가설 검증, 사랑에서 연인으로부터 답장을 받지 못한 소외 상태 등은 각각의 상황 모두가 티끌만큼이라도 존재하는, 소수 0.1과 완전히 다른 맥락이다. 틈은 비율만을 따질 때에는 보잘 것 없는 부분을 점유하지만, 그것이 있고 없고는 전혀 다른 상황이 된다. ● 강윤정에게 틈은 어떤 의미인가. 이미 작가는 '틈'이라는 낱말을 예전부터 즐겨 사용해왔다. '틈', 파열음 ㅌ으로 시작되어 입술이 모두 닫히는 ㅁ으로 맺어지는 이 발음은 처음에 세게 갈라지고 터지다가 결국은 메워지는 완결체이다. '틈'이 가진 기표와 기의는 이처럼 일치하지 않으며, 스스로 논리적인 틈을 드러낸다. 순백의 종이가 그녀의 겹겹이 쌓인 의식 구성체를 표현하는 모형이라면 틈은 무의식으로 통하는 징후가 된다. 이와 달리, 종이가 작가 개인을 둘러 싼 시간과 공간의 기록 수단이라면, 그 합리적인 기술(description)로부터 비껴난 예술적 표현이 틈으로 상징될 수도 있다.

강윤정_Draw-Crevice_Cut Papers_가변설치_2008

작가가 매달리는 작업은 이미 말과 글이라는 논리적인 체계로 풀어낸 틈을 얼마나 적실하게, 또 우아하게 재구성하여 보여줄 수 있을지 실험하는 행위이다.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지적처럼, 사물과 그것을 가리키는 말은 항상 정확히 일치할 수 없다. 그 자체가 틈이다. 작가는 그 틈의 인식을 표현하려고 한다. 역설은 그 기획을 빈틈없이 재현하려는 데에서 발생한다. ● 강윤정은 주로 직선의 중첩을 완성해왔지만, 이번에는 곡선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2차원 개념에서 차원 하나를 보태어 또 다른 틈의 세계가 구현된 셈이다. 당연히, 이 틈은 계획된 것이지만 좀더 세상에 관대하게 통로를 열어두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틈이 가진 아름다움을 느끼고, 틈을 통하여 우리 자신을 다시 발견한다. 깐깐한 직선의 배열만을 봐온 나로서는 그녀의 새로운 시도에서 일종의 유머도 발견한다. 그녀의 확고한 의식 속에 용인된 틈이 공간을 만들어 웅크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강윤정_Draw-Crevice_Cut Papers_가변설치_2008

나는 그 공간이 책의 은유라는 사실도 뒤늦게 발견했다. 아무 것도 쓰이지 않은 책, 그것은 책이 아니거나, 쓸모없는 책이다. 그렇지만 유용한 텍스트로 채워진 책 또한 읽히지 않으면 그것은 쓸모없는 책이거나 더 이상 책이 아니다. ● 애당초 쓸모없는 책과 다를 바 없는 이 종이 더미는 예술 행위로든 비예술적인 일상 행위로든 익숙한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예술과 비예술의 양쪽으로부터 모두 타자로 취급받으며 주변으로 밀려난다. 이 현대 미술의 탁월함은 바로 여기서 생긴다. 틈에는 중심이 없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결핍을 투정부리듯 나타내고 있으며, 그러면서도 꽉 차있는 다른 무언가를 기다리며 언제라도 자리를 양보할 준비가 되어 있다. 작가는 종이가 가진 직사각형의 일정한 형태에 구속받으면서도, 결코 확정되어 구속받지 않으려는 틈을 드러내고 그 속으로 우리의 자아를 끝없이 스며들어가게끔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 윤규홍

Vol.20081223h | 강윤정展 / KANGYOONJEONG / 姜玧庭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