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아展 / KIMJOOAH / 金柱峨 / photography   2008_1216 ▶ 2009_0105

김주아_00:00:00_잉크젯 프린트_101×76cm_2004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08:00am~10:00pm

GS 더스트릿 갤러리 GS THE STREET GALLERY 서울 강남구 역삼동 GS타워 679-1번지 1층 로비갤러리 Tel.+82.2.2005.1181 www.gstower.co.kr

사진과 일회성에 관하여 On the ephemerality of photography ● 이 여인의 사진에는, 힐의 사진예술을 말해주는 증언 속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그 어떤 것, 다시 말해 한때 살았지만, 오늘날에도 생생하게 살아남아 결코 「예술」 속에는 완전히 병합되기를 꺼려하면서 여인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끈질기게 묻고 있는, 그래서 도저히 침묵시켜 버릴 수도 없는 그 어떤것이 그대로 남아있다. - 발터 벤야민 우연한 배경 속에 새빨간 천 한조각이 흐르듯 나부낀다. 그 외에 사진은 아무것도 우리에게 알려주려 하지 않는다. 알려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느낌 조차도 전달하지 않으려는 듯, 김주아의 사진은 우리에게 철저히 무심할 뿐이다. ● 그 사진들 속에서 우리는 에드워드 웨스턴의 피망과 같은 세밀한 디테일도, 아우구스트 잔더의 인물과 같은 명철한 분류도 발견할 수 없다. 초창기 사진 이론가들이 제시한 어떠한 미학적 관점도, 혹은 기술적 체계도 이 사진들은 보여주려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사진들이 픽토리얼리즘 사진처럼 전통적 예술의 주제와 스토리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현대 개념 예술의 주제인 사회적, 미학적 통찰로 판단하기에도 애매하긴 마찬가지다. ●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사진을 대했을때, 큰 혼란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과연 이러한 사진은 왜 찍힌 것일까? 작가가 이러한 작업을 행하고 있을때 그가 질문한 것은 사진에 대한 어떠한 성질일까? 또 이러한, 엄연히 만들어졌고 우리앞에 작품으로서 제시된 사진들은 과연 사진에 대한 무엇을 증명해 주는가?

김주아_00:00:00_잉크젯 프린트_88×130cm_2004

발터 벤야민이 사진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이와같은 범주적 혼란을 느끼고 있었는지 모른다. 데이비드 옥타비우스 힐이 찍은 무명의 초상 사진들을 보면서 그는 거부할 수 없는 질문들이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엄연히 존재했었고, 그렇게 사진으로 각인되어 자신 앞에 보이고 있는 초상 사진의 주인공은, 기계적 재현의 특징인 현실감과 존재감을 보는 이에게 과시한다. 그 현실감은 마치 트라우마적인 현실처럼, 이해될 수 없고 표현될 수 없지만 거부조차 할 수 없는 그야말로 무의식의 심연속에서 보는 이에게 호소하고 보는 이를 떠나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김주아_00:00:00_잉크젯 프린트_101×76cm_2004

이렇게 한 장의 사진이 언제나 보는 이의 지금 이순간 속으로 침투할 수 있다고 하면, 그 사진이 가진 시간은 찰나이면서 동시에 무한이기도 하지 않을까. 과거의 특정한 어느날 노광 되었다고 하는 물리적 사실로서 사진 속에 함께 각인된 순간이기도 하면서, 보는이가 언제 꺼내 들더라도 그 현재의 시간에 실재처럼 투영되는 그러한 사진의 특성. 그것을 가지고, 앙드레 바쟁은 미이라에 비교하였다.

김주아_00:00:00_잉크젯 프린트_101×76cm×3_2008

특히 시간과 관련해 생각해볼 때, 사진의 잇점은 언제나 시간을 찰나적으로 정지시킬 수 있는 능력에 있어왔다. 사진이 발명된 후 끊임없이 이루어진 기술 발달의 결과로, 카메라와 감광체의 성능은 흔히 얼마나 빠른 셔터를 사용할 수 있나와 얼마나 적은 빛을 효율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가로 판단이 되어왔다. ● 에티엔 쥘 마레나 이드워드 무이브리지의 사진에서 그러했듯, 사진의 놀라운 시간 분해 능력은 인간이 세상을 느끼는 감각의 확장을 가져왔고,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까지도 인간은 충분히 '느낄 수 있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빠르게 달리는 말의 자세를 '알고 있고' 물총새의 빠른 날개짓의 모습도 '알고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는,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수준을 뛰어넘어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무심코 머리속으로 말을 달리게 할 때조차 그것이 사진이 보여준 자세 그대로 달려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기계적 수단을 통한 감각의 확장은 한편으로 사진의 무의식성과 실제성에 대한 근거가 되어왔다.

김주아_00:00:00_잉크젯 프린트_101×76cm_2008
김주아_00:00:00_잉크젯 프린트_101×76×2cm_2008

그런데 정지된 시간의 사진으로 인해, 우리가 알고 느끼는 말의 움직임의 모습은 온통 전과는 다른 모습이 되어버렸다. 요컨데, 그렇게 사진 위에 또 하나의 시간 층이 덧입혀진 것이다. 인간의 기억이나 체화된 무의식 속에서 재생되는 사진적 이미지는, 인간적 감각의 시간이 덧입혀져 이제 무명의 초상화와 같이 '현재'이기를 무한히 반복하는, 미이라나 좀비로 육화된 시간의 대상물이 되는 것이다. ● 문득 김주아의 사진 속에 등장하는 저 빨간 천의 나부낌이 낯설게 느껴진다. 우연적이고, 평범하고, 또 일상적으로 보이는 배경 공간 위를 스치듯 흐르고 있는 저 빨간 대상은, 배경 속에도, 아니면 사진의 감상자의 시공간 속에도 존재하지 않는, 존재에 대한 부정의 징표로 보이는 것이다. 마치 사진이, 과거 촬영되었던 순간에만도, 감상자의 현재 시간에만도 속하지 않는 것처럼, 김주아의 사진 속 빨간색의 대상은 정박하지 않는 4차원의 물체처럼, 혹은 블랙홀 너머의 특이점 처럼 세상 속에 현존하되 세상과 분리된 이상한 대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 강한 빨강색의 현존을 통해서 오히려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그러한 자가당착의 대상, 일탈의 대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 그런 일탈은 아마도 사진이었기에, 사진 속에 있는 대상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예술도 기술도 아닌 대상으로서의 사진, 과거도 현재도 아닌 사진의 시간, 그리고 순간도 영원도 아닌 사진의 시공간 속에서, 알 수 없는 빨간 수건이 우리를 사로잡는다. 중요한건 우리가 저 빨간 수건에서 눈을 뗄 수 없다는 점이 아닐까. ■ 이홍관

Vol.20081224f | 김주아展 / KIMJOOAH / 金柱峨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