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현교展 / CHAEHYUNGYO / 蔡賢嬌 / painting   2008_1222 ▶ 2009_0110 / 일요일 휴관

채현교_나는 어디로 가고 있다._종이에 수채_51×35cm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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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8_1222_월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무이_GALLERY MUI 서울 서초구 서초동 1658-14번지 무이빌딩 1층 Tel. +82.2.587.6123 cafe.naver.com/gallarymui

물 속의 물고기처럼 (Comme un poisson dans l'eau) - 채현교 전시회에 부쳐 ● 전시회를 꽤나 열심히 보러다니던 대학 시절, 일요일 아침이면 인사동 입구에서부터 사간동에 이르기까지 한 바퀴 돌며 구석구석 숨겨져있던 갤러리까지, 놓치지 않고 꼼꼼히 전시를 보며 마음을 채우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에 맞춰 수 없이 쌓이는 전시회 리플렛과 카탈로그들. 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날 때마다 남겨둘 것들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버릴 수 밖에 없었고, 수 많은 전시회를 또 다시 관람하며 여전히 카탈로그를 쌓고 버리기를 반복하는 과정이 이어졌다. 그 시간 속에서 오래도록 버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간직할 수 밖에 없었던 카달로그, 그리고 머리속을 떠나지 않던 전시, 바로 채현교 씨의 전시회였다. ● 카달로그가 대단히 크고 고급스런 것이어서도 아니고, 결코 그 전시가 웅장하고 화려한 것이어서도 아니었다. 관훈 갤러리 일층의 작은 공간에 들어섰을 때, 현실과는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 들어온 듯한 신비함이 펼쳐졌고, 메모지 용지만큼 작은 사이즈의 수첩같은 카탈로그는 다시 그 (신비한) 세계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와도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채현교_나는 어디로 가고 있다._종이에 수채_51×35cm_2008

조그마한 귀여운 물고기들이 유영하는 화면은 동화속의 한 장면처럼 아름다웠고, 담채화의 순수함과 자연스러운 농담은 회화성을 충분히 살리고 있었다. 그림을 보는 순간 관객은 먼저 바닷 속의 여행자가 된다. 한번도 직접 가보지 못했다 하여도 색색의 산호들이 출렁이고 투명한 해파리가 있다는 아름다운 푸른 바닷속 장면들은 실제로 본 것 이상으로 황홀하게 우리의 눈과 마음을 현혹한다. 관객은 또한 작가의 입장이 되어 그림을 그렸을 순간의 즐거움을 떠올려 보게 된다. 파레트 위에서 둥글게 붓질을 하며 물감을 섞을 때의 설레임, 종이 위에 물감이 스며들 때의 고요함, 스며든 물감의 농담 사이사이로 조심스레 보다 짙은 색의 물감으로 명암을 넣을 때의 짜릿함! ● 게다가 1990년대 중반, 당시의 전시장 풍경은 어두운 무채색 계열에 두꺼운 마티에르가 강렬한 회화 작품이나, 구상적 민중 미술의 흔적들, 혹은 각종 다양한 오브제들을 이용한 개념적인 설치 작품이나, 아예 세련된 색깔에 단순한 라인이 돋보이는 감각적인 미니멀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기에, '담백한 수채화로 그려진 바닷속 풍경화' 작품들은 낯설면서도, 신기하고 독특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채현교_나는 어디로 가고 있다._종이에 수채_61×46cm_2008

부드럽지만 은근하게 보는 이를 매혹하는 아름다운 작품들 앞에서 시대정신이나 주제의 경중을 따지는 것은 오히려 융통성없는 어리석음으로 보일 일이었다. 아름다움을 느끼고,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도 모르는 채 한참동안 화면의 구석구석을 응시하며 작품을 감상할 때, 작가 선생님이 다가와서 카탈로그를 건네주셨다. '판매용' 카탈로그를 거저 받은 것 만으로도 신나는 학생 시절이기도 했지만, 작품 이미지를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기뻤다. 모두들 잠든 조용한 밤 혼자만의 시간이 돌아오면, 카탈로그를 펼쳐보며 다시 전시장 공간으로, 작품 속의 신비한 세계로 빠져드는 것 같은 아련함이 오래도록 마음 속에 남아있었다.

채현교_나는 어디로 가고 있다._종이에 수채_61×46cm_2008
채현교_나는 어디로 가고 있다._종이에 수채_117×90cm_2008

이후 작가의 이름조차 희미해질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이 작품을 보게 된 것은 우연히 친구의 홈페이지에서였다.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스타일에 바다 풍경이라는 독특한 주제까지, 의심할 여지없이 '그 때 그 작가'라는 확신과 예전의 감흥이 떠올랐다. 알고보니 미술 애호가이신 친구 아버지께서 그녀의 작품을 높이 사 예전부터 컬렉션을 해 오셨고, 나아가 전시 카탈로그에 글도 써 주셨던 것이었다. 그렇게 다시 작품을 만나게 되고, 이번에는 친구 덕분에 작가와 직접 인사도 하게 되면서 좀 더 가까운 입장에서 작품을 느낄 수 있었다. 한 때는 '거침없이 하이킥' 이라는 텔레비젼 드라마에 작품이 등장하게 되어, 마치 아는 사람이 텔레비젼에 나온 것처럼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 작품에 대해서나 자기 자신을 소개할 때에도 작가는 늘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보다 적극적으로 활동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자책하는 듯한 변명을 앞세우지만, 작가의 마음은 그 누구보다도 뜨겁게 그림을 사랑했고, 손으로는 비록 다른 것을 하고 있었어도 눈으로는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듯 보인다. 작가로서의 전문성은 밖으로 내세울만한 화려한 경력이나 타인의 요구에 민첩하게 대처하는 노련함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채현교_나는 어디로 가고 있다._종이에 수채_50×50cm_2008

아름다운 것을 편견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순수한 눈을 지키고, 세파나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자기 스타일을 고집할 수 있는 확신 속에서, 또 다른 타입의 작가정신을 확인하게 된다. ●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신작들은 다시금 붓을 잡고 조금씩 그려낸 시간의 축적물들이다. 바다속 이미지를 영속적인 주제로 삼기로 결심하였을 때, 동물도감 등을 참고하며 자세하게 물고기를 묘사하는 연습을 해 보았던 때도 있었지만 다시금 본래의 스타일대로 편안하면서도 심플한 이미지를 되찾게 되었다고 한다. 어떤 이미지를 그릴 지 계획하기 보다는, 느낌이 왔을때 비로소 작은 색점을 찍는 것으로 화면을 시작하여, 작가의 감성과 직관의 힘에 의지하여 화면이 그 스스로 이미지를 찾아나가도록 두는 여유 혹은 기다림, 그 속에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발현되는 것이다.

채현교_나는 어디로 가고 있다._종이에 수채_51×35cm_2008

이제 '채현교 = 물고기 그림 / 바다속 수채화' 라는 등식이 어색하지 않다. 꼭 물고기가 등장해서가 아니라, 오랜 시간동안 공들여 하나의 독자적인 장르를 쌓아온 그녀의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물 만난 고기처럼' 이라는 한국 속담 혹은 'Comme un poisson dans l'eau (물 속의 물고기처럼)' 라는 프랑스어 숙어가 떠오른다. 제 자리를 찾아 편안하게 실력을 발휘하는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결코 물 밖으로 벗어나지 않고 흐르는 물의 순리대로 헤엄치는 건강한 물고기처럼, 작가 역시 삶과 예술이라는 두 가지 과제 속에서 물 위로 튀어 오르거나 수압을 넘어 지하로 가라앉지도 않은 채, 생생하게, 즐겁게, '아름다움'을 전달하고 있다. ■ 김영애

Vol.20081225d | 채현교展 / CHAEHYUNGYO / 蔡賢嬌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