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기억, 6.25

류해윤展 / RYUHAEYOON / 柳海潤 / painting   2008_1227 ▶ 2009_0105 / 월요일 휴관

류해윤_1953年 6.25 비극 (休戰 同族의 光山)_종이에 아크릴채색_70×130.5cm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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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성미산 마을극장 서울 마포구 성산동 249-10번지 Tel. +82.11.9291.0161 blog.yahoo.com/ryujangbok

류해윤 화백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보니 - 류해윤 화백은 늘 "기억"에서 출발한다. ● 화가는 당연히 그림으로 말한다. 내가 만일 시인이라면 몇 줄의 시로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해보겠고, 음악가라면 노랫가락을 빌릴 것이다. 그런데 나는 화가도 시인도 음악가도 아니다. 그저 한 사람의 역사가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류해운 화백의 훌륭한 그림들도 그림으로 바라보지를 못한다. 나는 그의 그림들을 내가 좋아하는 옛날 이야기보따리로 밖에 다루지 못한다. 소중한 과거의 기억이 갈무리된 기록들, 말하자면 기억의 보물창고로서 류화백의 그림을 대하게 된다. ● 류화백의 그림은 양적으로도 풍부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소재도 퍽 다양하다. 인물이면 인물, 풍경이면 풍경, 정물이면 또 정물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 대부분은 과거와 관련이 있다. 더욱 정확히 말해, 류화백의 그림은 개인적인 기억이든, 집단적인 기억이든 아무튼 "기억"에서 출발한 것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나는 생각한다. ● 가령 풍경화 한 장을 그리더라도 류화백은 직접 사생을 나가기보다 자신이 어린 시절에 보고 들은 것을 회상하며 거기서 일단 그림을 시작하는 것 같다. 이런 느낌을 주는 그림 몇 가지를 손꼽아보자. 어린 시절의 추억을 회상한 것이 명백한 「고향마을 초가집」(2005)과 「베 짜는 아낙네」(2000)를 비롯해, 「한우」(1999), 「한우목장」(1999), 「자연의 토종닭」(1999) 등 일일이 셀 수 없이 많다. ● 어떨 때는 그가 자신의 직접적인 기억과는 아무 관련이 없어 뵈는 그림을 그릴 때도 있다. 평생 한 번 가본 적도 없는 금강산을 류화백은 잘도 그려낸다. 금강산 그림은 「가을의 금강산 만물상」(그림 003)을 비롯해 수십 장이나 된다. 이처럼 거듭거듭 그가 금강산 그림을 그린 사실을 과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것은 물론 류화백 개인의 취향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사회가 "강제한" 부분도 없지 않다. ● 예로부터 한국에서는 한국 사람이라면 마땅히 금강산을 자랑스러워해야 하고, 자발적으로 좋아해야 한다는 일종의 사회적 강압이 작용하고 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속말도 있지만, 일상적인 식사와도 굳이 선후를 다퉈야할 정도로 금강산의 아름다움은 절대적인 것이다. 금강산은 물론 실제로도 아름답겠지만, 설사 그렇지 못하더라도 절대적인 미로 인정받아야 된다. 이것이 한국사회의 강제된 통념이다. 따라서 류화백 역시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외면할 수 없다. 그는 하다못해 신문에 난 자그만 사진을 토대로 해서라도 민족의 아름다운 자랑거리 금강산을 묘사해야 된다. 금강산의 아름다움에 대한 사회적 강박은 금수강산으로까지 확대 전이된다. ● 젊은 시절 대한민국의 군인으로서 태극기 앞에 "자랑스러운 한국인"임을 되풀이해서 맹세했을 류화백이다. 그래서 그는 아름다운 금강산을 화폭에 담아야 한다. 나아가 조국산천이라면 어디든 그의 붓끝에서 금수강산으로 피어나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그의 풍경화는 어느 것이나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온통 꽃밭이 펼쳐진다. 빽빽한 솔숲조차 붉은 꽃방석을 뚫고 느타리버섯마냥 솟아 있다.(그림 008) ● 실은 류화백이 형상화한 금수강산과 금강산도 집단의 기억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것은 화백 개인의 기억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이라는 대규모 집단의 기억이다. 여기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한 가지 중요한 지점이 있다. 기억이란, 그것이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선택적이란 사실이다. 요컨대, 우리들 인간은 기억하고 싶은 것만을 기억하며, 엄밀히 말해 그것은 사실일 수도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이미 우리의 기억이 되어버린 이상 사실성 여부는 오히려 부수적이다. 기억은 합리적인 이유로 부정될 수 없는 절대권위를 가진다.

류해윤_6.25 이후 1.4의 비극_종이에 아크릴채색_54.4×78.3cm_2000

그 기억의 근저에 우리의 "고향"이 있다. ● 류해윤 화백의 이야기보따리에는 고향 풍경이 있다. 거기에는 산과 들과 강물이 있고, 농사를 짓고 글을 읽는 사람들에 관한 추억이 흐른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그의 그림을 보노라면, 고향 마을과 고택은 물론 서민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고 했다.(박수호, 오마이뉴스, 2006년1월7일자) 고향 풍경은 아마도 류화백의 그림 중에서 절반이상일 것이다. 그는 경상남도 어느 농촌마을 출신인데, 이미 젊은 시절 고향을 등지고 서울로 이주했다. 고향에 대한 강렬한 향수는 이러한 그의 개인사를 반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 과거의 기억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화백은 고심했을 것이다. 그는 결국 한 가지 표현방식을 채택했다. 우선 기억의 창고를 뒤져 일정한 주제를 골라내고, 그와 관련이 있는 기억의 다양한 파편들을 화폭에 군데군데 적당히 늘어놓는 것이다. 이를테면, 기억을 전면에 걸쳐 줄줄이 배열하는 집중방식이다. 여기서 류화백 나름의 개성적인 서사구도가 탄생한다. ● 「625 동란에 피란민덜」이란 그림이 바로 전형적이다. 이 그림을 보고 난 어떤 사람의 감상평을 인용해보자. "위 그림은 저 멀리 나무 하나도 없는 산을 배경으로 피난민들을 빼곡이[히] 실은 열차가 가고 있고, 화면 앞쪽으로 손수레에 가재도구를 싣고 피난 가는 일가족을 그리고 있다. 그때까지 누구나 입던 한복에다 아기를 업고, 보따리를 이고, 수레를 밀고 간다. 수레에는 또 아기들이 서너 명 실려 있다. 황소 위에는 할머니가 타고 있다. 누렁이도 함께 따라나섰다. 화면은 검은 회색이다. 암울한 느낌이 지배한다. 이 한 장에 6.25전쟁의 본질이 녹아들어있다. 우리가 잊었던 피난행렬, 아마도 할아버지가 스무 살 전후에 겪었을 그 전쟁의 아픈 기억을 이만큼 작은 그림 한 장에 다양하게 담은 작품이 있을까?"(http://blog.naver.com/sunonthetree/110000847367) ● 과연 평자의 말 그대로다. 6.25를 직접 겪은 사람들은 이 그림을 바라보면, 옛 기억이 절로 떠오른다고 말했다. 기차를 지붕까지 허옇게 뒤덮은 흰옷의 물결이며, 남부여대의 피난길이 생생히 묘사되어 있다. 이고, 지고, 수레를 끄는 피란의 행렬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그림 010) 하지만 사실은 6.25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게도 이 그림은 실감이 난다. 이런 피란행렬은 사진과 영상자료를 통해 이미 세대를 막론하고 한국국민 모두가 공유하는 공동의 기억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 과거의 기억에 비교적 충실해 뵈는 그림이 한 둘은 아니다. 평론가 김홍희가 지적했듯이, 옛 동네의 실제 풍경이라든가 역사적 사건을 사실적로 재현한 그림이 적지 않다. 화백이 살던 집을 그리고 거기에 부부의 초상화를 추가한 「부부내외」(2000)라든지, 터널을 지나가는 구식 「증기기관차」(2000), 신혼여행을 마치고 고향 다리를 건너는 「신혼의 젊은 부부」(1999), 6.25 때 인민군이 마을을 점령하고 주민을 강제동원해 일을 시킨 사정을 묘사한 「6.25 낙동강 강변전투고지에 야전병원」(1999) 등은 화백 자신의 직접적인 기억과 체험을 기록한 것이다. 류화백이 실감나게 묘사한 기억 가운데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도 있지만, 대개는 고향 마을 공동의 기억이 더욱 큰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농사일과 명절 및 마을잔치가 그의 기억에서 가장 중요해 보인다. 평론가들이 "풍속풍경화"라고 분류한 그림들 말이다. ● 추수와 타작 풍경을 그린 「가을걷이」(1999)도 있고, 명절의 풍습을 담은 「구정」, 「대보럼날」(2004)도 눈길을 끈다. 온가족이 모여 제사 지낸 다음에 음식을 나눠먹는 「제사엄식」(2005)이라든지, 단오날 남녀노소가 어울려 노는 「조선시대 어민과 농민이 함께 모여 5월 단오절을 마자 흥겨운 노리잔치」(2005) 등의 풍경도 볼만하다. ● 마지막에 소개한 「... 단오절마자 흥겨운 노리잔치」를 관람하고 나서 어떤 시민은 다음과 같은 감상평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려놓았다. "소리 나는 대로 적느라고 우리의 표준 맞춤법 규칙에 맞지 않는 표기가 시사하는 대로 그림은 그야말로 편하다. 시골의 남정네들이 경치가 좋은 곳에 평상을 펴놓고 앉아서 막걸리를 마시며 노는 그림이다. 인물들의 크기는 일정하지 않고 멋대로이다. 때로는 어설프게 보이기도 한다. 얼굴은 크게 다르지 않고 조금 비슷비슷하지만 잔을 들어 권하고 마시고 안주를 먹고 담배를 피우고 장구를 치고 춤을 추는 등 자세는 다양하다. 화면 오른쪽으로는 일하는 주모들이 뭔가를 열심히 자르고 끓인다. 일부러 이[예]쁘게 그리려 애쓰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그림을 보면 편안해진다. 우리들의 본래의 모습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http://blog.naver.com/sunonthetree/110000847367) ● 류화백의 고향풍경은 누구에게나 친근하고 평안한 느낌을 준다. 그는 관객을 조금도 의식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자신의 개인적인 기억만을 화폭에 옮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개인의 울타리를 훌쩍 넘어선 기억이다. 그의 고향은 우리의 고향이며, 그의 상처는 상당부분 우리의 상처이다. 그가 지극히 개인적이라 생각하는 부분까지도 실은 공유된 기억일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런 점에서 그의 고향은 이미 우리들이 기억해내고 싶은 과거의 고향, 현재로서는 이미 상실된 지 오래인 고향이다. 화백의 그림은 한국인 모두의 추억담인 것이다.

류해윤_6.25-낙동강 강변전투고치에 야전병원_종이에 아크릴채색_37.6×53cm_1999

젠더의식으로 채플린 효과를 내다. ● 위에서 인용한 감상평에는 보이지 않으나, 사실 그 그림에는 성적 차별이 당연시 되어 있다. 단오날 그림에서 여성은 단지 시중을 드는 하찮은 존재로 묘사되어 있다. 성차별적 관습에 대해 류화백이 과연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는 당장에 뭐라 단언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의 그림을 살펴보면, 그는 성차별을 당연한 사회질서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나아가 자연계의 법칙으로 인식한 것도 같다. ● 그는 남성성을 뾰족함으로 표현한다. 남성의 원초적인 성징이 그러한 때문이다. 가령 금강산을 재현한 어느 그림에서 산도 뾰족, 소나무들도 뾰족, 능선 따라 늘어선 바위들도 뾰족하게 처리했다.(그림 002) 류화백에게 성적 구별 내지 차별은 도무지 피할 수 없는 것으로서 인간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의 현상이다. ● 「봄 소풍」(그림 004)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봄꽃이 만개한 신록의 동산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봄놀이를 즐기고 있는 풍경이다. 이 그림에서도 남성과 여성의 역할은 극명하게 분할된다. 남자는 남자끼리 밥상을 받고, 여자는 여자끼리 먹는다. 놀이판이라고는 해도 취흥에 겨워 두둥실 춤을 추는 것은 남성들뿐이다. 같은 노인이라도 여성들은 부끄러워하며 남성들의 춤을 바라본다. 놀이판에서 멀리 떨어진 산등성 위로 불쑥 솟아 오른 다섯 개의 봉우리는 기암이다. 춘흥에 겨운 할아버지들의 성적 욕망을 상징한다. 그 산 아래 노인들이 벌인 놀이판을 에워싼 더북한 솔숲은 여성적이다. 할머니들의 절개와 순종적 미덕을 형상화한 것이다. 바로 그러한 놀이 장소를 휘감고 조용히 흘러가는 냇물은 여성인 것이며, 그 물결을 막아서며 흐름을 옥죄거나 군데군데 돌출적으로 삽입된 바위들은 남성이 틀림없다. 류화백은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진 봄 소풍을 소재삼아 성적 구별과 차별을 중층적으로 이야기했다. ● 세상에는 남자가 할 일 따로 있고, 여자 할 일 따로 있다. 류화백은 그림을 통해 이러한 자연의 법칙을 선포한다. 가령 그린 추수하는 풍경을 눈여겨보면(그림 013), 남성들은 논에서 가을걷이하고, 수확된 곡식을 지게로 운반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여성들은 방아 찧고, 곡식을 멍석에 널어 말리는 등, 성별에 따라 각기 종사하는 일이 엄연히 다르다. 이런 풍경은 물론 과거의 시골풍경으로 우리들에게도 익숙한 장면이다. 농촌사회의 관습에 뿌리를 둔 그림으로, 성별 못지않게 각자의 기능이 더욱 중시되는 현재의 농촌풍경에 비하면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 그가 재현한 또 다른 그림은 산골마을의 풍경이다. 여기서는 등장인물이 몽땅 여성들이다.(그림 012) 류화백은 이 그림에서 여성들이 정말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꼭 상기시켜주려고 작심이라도 한 것처럼, 키질하는 여성, 방아 찧는 여성, 개울에서 빨래하는 여성을 연달아 보여준다. 이 그림에서는 남성이 전적으로 부재하다. 이것은 물론 남녀유별을 명시적으로 설명하려는 류화백은 서술전략에 따른 것이 분명하다. 위에 설명한 몇 개의 그림에서 보듯, 그의 작품세계에는 성차별, 보다 정확히 말해 사회적 성으로서의 젠더 관념이 투철하다.

류해윤_6.25 때 부산발-서울행 12열차_종이에 아크릴채색_54.4×78.3cm_2006

어쩌면 류화백 자신은 여성이란 젠더를 의도적으로 차별한다는 의식이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실은 무의식적인 차별이야말로 정말 깊은 의미의 차별이다. 일반적으로 말해, 차별의 정도가 심하면 심할수록 차별한다는 의식자체가 소멸되고, 그것이 자연적 현상으로 환원되기 마련이다. 조선시대의 양반들이 그러했다. 나아가서 그것은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전근대사회의 보편적인 성격이기도 했다. 그 사회의 구성원들에게는 우주자체가 양성의 위계질서를 따라 구성된 것으로 인식되었다. 양성 간의 위계적 차이와 그것을 넘어선 조화가 우주만물의 타당한 원리로 간주되었다. 화백 역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 그는 사군자를 그릴 때조차 양성의 조화를 깊이 추구한다. 류화백이 그린 매화도를 자세히 분석해 보자(그림 016). 우선 거기에는 수백 년 묵은 매화 등걸이 보인다. 홍매와 백매, 황매가 어우러진 매화나무다. 그 가지에 참새 두 쌍이 자리를 튼다. 먼저 자리를 잡은 임을 쫓아 날라드는 한 마리 참새가 있다. 가지런히 벋은 매화가지 두 개가 있고, 거기 앉은 두 마리의 참새가 퍽 다정하다. 특히 건너편 나뭇가지에 자리 잡은 짝을 바라보는 참새의 시선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이 그림은 남녀의 조화, 꽃처럼 아름다운 그들의 사랑을 찬미한 것이다. ● 화백은 남성의 기능에 관한 전통적인 관념을 절대 불변의 원리로 인정한다. 그래서 그는 근육미로 상징되는 우월한 남성성을 포기하지 못한다. 「육체미」(2001)를 보면, 화백의 연로한 친구들이 근력을 자랑한다. 그들은 운동팬츠 또는 속옷 차림 등 반나체의 모습으로 운동에 열중한다. 해부학적으로 보면 상당히 부자연스런 자세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활기찬 남성임을 자랑하는 그들의 과장된 자의식이 너무도 뚜렷이 부각되어 있어, 웃음을 참기 어렵다. ● 풍경도 그렇지만 류화백의 인물화는 훨씬 더 해학적이다. 특히 그 해학성은 그림에 등장하는 남성들의 부자연스러운 표정이나 태도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그들 남성은 한결같이 지나치게 진지하고 근엄하고 성실하다. 이것은 류화백이 남성성을 표현하는 사실상 고정된 방식이다. 그래서 그림 속의 남성들은 더욱 어색하고 생경한 느낌을 더해 준다. 그러나 이러한 젠더의식이 반드시 말살되어야할 요소는 아니다. 설사 류화백이 의도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그의 왜곡된 남성들은 서사를 대단히 낯설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그리하여 보는 이가 꾹 참지 못하고 웃음 짓게 만들어버린다. 그의 젠더 관념이 구시대적 단순 소박함을 넘어 해학의 미학으로 전이되고 만 것은 기적에 가깝지 않은가. 나는 류화백의 젠더의식에 찰리 채플린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류해윤_6.25사변이후 농촌을 시찰하는 국군장성과 추수하는 농민_종이에 아크릴채색_78×114cm_2006

그 기억은 원형에 대한 환상을 강박한다. ● 류화백이 재현한 이야기들은 과거의 사실을 원형대로 복원한 것이 아니다. 그가 형상화한 과거는 사실이 아니라, 본질적인 원형이다. 그의 작품 활동에 수원지 역할을 하는 고향 역시 예외가 아니다. 화백이 그려낸 고향은 과거에도 없었고, 현재도 없으며, 미래에도 존재할 수 없는 어떤 현상이다. 이선영은 이를 가리켜 "환원불가능성을 드러내는 어떤 순수한 과거"라고 지적했다. ● 달리 말하면, 그의 그림에 보이는 고향 풍경은 일종의 선험적 과거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존재한 과거가 결코 아니다. 들뢰즈의 말을 빌면, "순수과거"에 해당한다. 그의 그림 앞에서면 누구라도 과거의 향기, 고향의 회상에 빠진다. 류화백의 그림 속에는 우리 모두가 그리워하는 고향의 이상화된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 그가 들려주는 고향이야기는 사실 말해 하나의 환상이다. 이선영은 이 점을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설명한다. "특히 고향 땅으로 대변되는, 지금 여기를 벗어난 유토피아적인 시공간으로의 급격한 이동이 특징적이다. 그곳은 오곡이 누렇게 익어가는 들판에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고, 초원 위에는 소떼가 노닐며, 맑은 시냇가에는 처녀들이 옹기종기 앉아 빨래를 하는 곳이다. 거기에서는 양떼를 보살피는 목자 예수와 푸른초원 위의 누렁소들이 서로 부딛힘 없이 자연스럽게 공존한다. 아무런 슬픈 일도 없던 것 같은 그곳은, 추억이 그러하듯 좋은 기억으로만 채워져 있다. 그것은 기억이기는 하지만, 경험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기 보다는 반쯤은 허구적인 것과 뒤섞여 있는데, 이것이 그의 그림을 기억, 꿈, 무의식과 유사한 것이 되게 한다." ●「밭갈이」(그림 005)도 또한 마찬가지다. 화백은 이 그림을 통해 자신의 고향 마을을 찾아온 봄날을 이야기한다. 그의 고향은 늘 그렇듯이 멀리 다섯 개의 거암이 산봉우리를 이루며 에워싸고 있다. 마을 앞 벌판에는 논농사를 준비하는 두 사나이가 보인다. 그들의 어깨는 튼실해 믿음직스럽기 그지없다. 쟁기를 맨 소도, 써레를 끌고 가는 소 역시 건장하기 이를 데 없다. 마침 논가에는 두 마리의 개가 반대쪽을 바라보며 컹컹 짖는다. 춘곤이 달아나는 순간이다. 시골의 적막이 싹 가시고 봄의 활력이 솟아난다. 이처럼 류화백의 시골은 결코 지루해지지 않고, 배고프지도 않으며, 늘 명랑한 시골이다. 도무지 불의와 불평등과 불법적인 행위와는 무관한 유토피아다. ● 화백이 기억하는 한, 농민은 위대하다. 농업은 해볼 만한 직업이 틀림없다. 그가 사는 전원에는 언제나 강물이 도도하게 흐르고, 씩씩한 솔숲이 있으며, 잘 가꿔진 논밭이 있다. (그림 006) 살진 암소도 농촌에 대한 기억을 늘 새롭게 한다.(그림 007) 때로 황소도 등장하지만 그 우람한 네 다리 사이를 기웃거리는 시골 닭들도 건강하기 짝이 없다.(그림 015) 풍성한 가을 타작도 류화백의 고향이야기에서 빠질 수 없다.(그림 013)

류해윤_6.25비극-국군과 인민군이 팔공산에서 치열한 전투_종이에 아크릴채색_49.8×66.5cm_2008

아름답기만 한 화백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이다. 개울을 사이에 두고 마을의 좌우, 위아래로 초가집이 적당히 자리 잡은 곳. 지붕 위로는 박 넝쿨이 무성하거나 빨간 고추가 아름답게 널려져 있다. 멀리 마을이 끝나는 곳에 기암절벽이 웅장한 높은 산줄기가 솟아있고, 골짜기마다 넉넉한 물줄기가 휘감아 도는 조용한 마을이다.(그림 014) ● 그가 환상을 즐긴다는 사실은 어느 작품에나 등장하는 흐드러진 꽃밭에 가장 여실히 표현되어 있다. 이런 작품도 있다.(그림 001) 어느 가을 벌판에 예수처럼 보이는 한 사나이가 양치기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가 서 있는 들판에는 노란 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다. 그 벌판 너머로 멀리 강물이 유유히 흐른다. ● 화백의 고향들판에는 언제나 노란 꽃이 활짝 펴 있다. 상식적으로 보면, 응당 논 또는 밭이어야할 들판에 꽃이 가득하다. 노란 유채꽃이다. 유채라면 제주도가 가장 유명하지만 류화백의 그림에 등장하는 유채꽃밭은 내륙에 있다. 허옇게 기염을 토하며 달려가는 기차가 이를 증명한다.(그림 006) 이런 봄꽃 풍경은 사실적인 현상과는 딴판이다. 그것은 화백의 내면에 고이 갈무리된 채 개화되지 못한 진실이다. 현실세계의 고난과 궁핍을 초월하고 싶은 바람이 노란 유채꽃으로 형상화된 것이다. ● 직접적으로 말해, 이러한 고향 이야기는 류화백이 지어낸 이야기다. 환상이다. 그는 현실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이야기, 일생동안 한 번도 실현될 수 없는 "희망사항"을 그림으로 재현한다. 그에게 그림이란 대리만족을 선사하는 값진 도구다. ● 그의 희망사항은 적어도 두 가지로 범주화될 만하다. 그 하나는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풍경으로, 또 하나는 화백 자신이 등장하는 초상화에서다. 그는 자신의 자화상을 비교적 많이 그린다. 가족의 초상화도 적지 않다. 친구들과 함께 찍은 단체사진을 방불케 하는 인물화도 여러 개가 있다. ● 그의 자화상에는 환상이 자연스레 개입되고 있다. 한 번도 타보지 못한 말 위에 의젓이 올라탄 「자화상」(2000)이 있는가 하면, 이상화된 마을 풍경을 배경으로 삼은 「들판의 자화상」(2000)도 있다. 마도로스가 되어 파이프 담배를 문 채 캔버스에 붓질을 하는 또 다른 「자화상」(2000)도 흥미롭다. ● 정말 압권인 것은 그들 부부의 모습을 꿈꾼 것이다. 운전면허도 없는 화백 부부지만, 그림 속의 그들은 빨간 스포츠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나간다. 그는 줄무늬 넥타이를 맨 정장차림으로 오른쪽에 앉아 있으며, 그의 아내는 이 멋진 자동차를 직접 운전한다.(「나들이」 2000) 그림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그려야만 되는 것이 아니다. 문학도 음악도 역시 그러하다. 류화백은 예술의 이러한 특성을 십분 즐긴다. 그래서 무명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농부 모습의 「삼형제」(2001)를 말하기도 하고, 뭐든 망설일 필요가 없다. 예술은 그에게 무한한 자유를 선사한다. ● 요컨대 그의 이야기보따리는 기억에서 출발하지만 결코 기억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그의 과거는 아쉬움을 가정법의 형태로 담은 환상적 과거다. 사실과 상상과 환상이 결합된 세계인 것이다. 그의 과거는 이미 지나간 과거로되, 현재의 열망을 담고 있는 현재형 과거, 언젠가 미래에 실현되기를 소망하는 미래형 과거다. ● 류화백의 그림에 보이는 특징을 김홍희는 다소 복잡한 언어로 정리한 적이 있다. "그의 그림이 양식적으로 원시성을 표출한다면, 내용적으로는 환상성을 함의한다고 볼 수 있다. 환상성이란 현재와 과거,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가 애매모호한, 아니 그 경계에 있는 비고정적인 상태에서 생성되는 판타지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든다는 어원(phan, fan)에서 비롯된 이 판타지는 거울이미지와 실제이미지 사이의 분열, 이중성, 위험, 그리고 그에 대한 위반적 매혹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 매혹은 결핍에 대한 욕망으로 분출되며, 대리만족, 보상심리의 맥락에서 통합된 현실을 갈망하며 부재와 상실로 경험되는 것을 추구한다. 환상이란 결국 말할 수 없는, 말해질 수 없는 트라우마를 건드리고, 지배적 문화질서로부터 은폐된 무질서, 무의식을 이야기하는 비언어적 언어, 유령적 언어로 풀이될 수 있다." (김홍희) ● 요컨대 류화백의 그림은 과거의 기억에서 출발하지만 결과적으로 시간과 공간의 질서를 완전히 파괴한다. 그림으로 형상화된 그의 고향 이야기는 현재와 과거 및 현재,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무색케 한다. 특히 사생을 토대로 삼아야 마땅할 것 같은 풍경화에서조차 이러한 경계의 혼효가 무시로 되풀이 된다. 류화백의 아들 류장복 화백은 이러한 풍경화를 "무릉도원"이라 부른다. 그러나 김홍희는 아버지 류해운 화백의 모든 그림이 환상적 무릉도원을 지향한다고 선포한다. 이것은 과연 타당한 지적이다. 그의 그림은 보는 사람에게 환상을 강요한다. 그것도 인간의 삶과 자연의 아름다움에 관한 원형을 강박한다.

류해윤_1953年 8月초순경 경남 합천군 대량면에서_종이에 아크릴채색_49.5×65.5cm_2008

기억의 이름으로 선포된 무릉도원의 실체는 바로 이것. ● 인간과 자연을 바라보는 류화백의 관점은 특별하다. 얼핏 보면 20세기 후반에 유행한 민중화가의 시선과 유사하다. 색채의 강렬함과 구도의 단순함, 어딘지 민화풍이 도드라지는 점이 모두 그러하다. 하지만 류화백의 그림은 민중화로 불린 특정한 미술사조와는 뚜렷이 구별된다. 우선 류화백의 그림은 지식층이 민중을 내려다보며 애써 찾아낸 대안적 성격의 발명품이 아니다. 화가가 자기 아닌 다른 누군가를 대변하기 위한 예술이 결코 아니다. 류화백은 오롯이 자기 자신을 위해 자기방식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뿐이다. 그는 그림이라는 재현작업을 통해 자신의 "무릉도원"을 찾아 나선 일종의 구도자요, 순례자다. ● 나는 감히 그가 꿈꾸는 무릉도원이 전통문화의 정수를 나름대로 종합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류화백은 아마도 선비의 정신세계를 절실히 추구하는 것 같다. 그는 선비들의 이상세계에 도달하기를 꿈꾼다. 어느 그림에서 보듯, 그의 유토피아에는 오직 남성들만이 살고 있다. 그들은 어느 산사의 다리 위에서 연못 속을 노니는 물고기 떼를 조용히 들여다본다. 깊은 산속에 위치한 절간인데도 주인노릇 해야 할 스님들은 오간 데 없다. 오직 선비들만이 고요를 즐긴다.(그림 011) ● 유교적 도덕률을 중시하는 류화백이지만, 그의 내면은 민담에 내포된 전통적 세계관의 영향을 받고 있다.(그림 009) 저녁 해가 하늘 한쪽 귀퉁이를 붉게 물들인다. 그럴 때쯤 호랑이 한 마리가 하얀 이를 드러낸 채 익살스럽게 웃으며 바위 위에 버티고 있다. 산신일 것이다. 정적이 감도는 푸른 솔숲과 노을빛에 타오르는 호랑이의 대조는 밤과 낮의 교대를 알리는 신호일 것이다. 세상을 다스리는 권력의 주체가 인간에서 자연으로 바뀌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 호랑이를 소재로 한 류화백의 그림은 유독 키치가 심하다. 「먹이를 쫒는 호랑이」(1999)와 강아지를 물고 가는 「호랑이」(1999) 등, 그는 호랑이 그림을 연달아 그린다. 한국의 근원적인 문화에 대한 갈망을 표현한 것이리라. 샤머니즘이라 불리는 태고의 한국문화에 도달하고 싶은 소망이 그의 호랑이 그림에서 느껴진다. ● 불교라고 해서 류화백이 사양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작품에는 불교의 진리가 녹아 있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두 사람, 가는 이와 되 오는 이는 다름 아닌 한 사람이다.(그림 008) 모이면 흩어지고, 헤어지면 다시 만나기 마련인 인과율因果律을 표현한 것이다. 어떤 그림에서는 서로 정반대 방향을 바라보며 짖는 개가 등장한다. 이것도 실은 그 개가 그 개다.(그림 005) 다만 정지된 화면 속에 시간의 흐름을 담고자 하는 류화백의 의지가 한 마리의 개를 둘로 쪼갠 것이다. 하나는 여럿이 되고, 여럿은 하나로 돌아가는 불교의 이치를 담은 이야기다. ● 내가 보기에, 류화백은 결함투성이인 현실에 비추어 도저히 이르지 못할 미래 즉, 미래의 불확실성에 도전하기 위해서 과거를 선택했다. 과거란 가장 튼튼한 기억의 인위적 구성물이다. 그것은 불완전하고 불안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현재나 미래와는 반대로 이미 지나간 시간이다. 누구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으므로 과거의 질서는 불가역적이지만, 선택적이고 주관적 기억의 조작을 통해 확고한 내적 평화가 약속된 희망의 땅이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류화백은 기억의 씨를 희망의 대지 위에 뿌렸다. 그것은 곧 유불선으로 통칭되는 이 땅의 전통이기도 하다. ■ 백승종

Vol.20081226g | 류해윤展 / RYUHAEYOON / 柳海潤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