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동도원_花童徒圓

송지인展 / SONGJEEIN / 宋之仁 / sculpture   2008_1224 ▶ 2009_0104 / 신정 휴관

송지인_母慈_모자-어미 사랑_합성수지_150×110×90cm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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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신정 휴관

큐브스페이스_CUBE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 37번지 수도약국 2층 Tel. +82.2.720.7910

화동도원(花童徒園) - 서사가 생성되는 유희의 공간 ● 신화(Mith)라는 말은 이야기를 뜻하는 그리스어 'mythos'로부터 유래한다. 올림푸스 신들의 세계는 그리스인들의 상상력의 산물인 동시에 그리스인들의 삶 그 자체였다. 신화 속에서 이야기되는 세계의 생성과정은 실제로 세계가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관한 그리스인들의 철학을 담고 있다. 다양한 올림푸스 신들이 보여주는 각각의 성격과 이야기는 그리스인들이 바라보는 모순적인 자신들의 모습이자 다양한 삶의 모습인 것이다. 또한 자연속의 바람이나 초목 등을 상징하는 여러 정령들은 그리스인들의 직접 느끼고 그 속에 살아온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이야기로 옮긴 것이다. 그와 동시에 그리스인들은 이야기를 통해 그 자체로 즐기고 인생의 고단함에 대한 위로를 받아왔다. 우리나라에 오래전부터 전해오던 민담이나 설화, 전래동화 등 또한 우리 선조의 삶의 고단함과 세계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각과 지혜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이렇듯 고대부터 이야기와 삶은 본래부터 깊은 관련을 맺어 왔으며 지금까지도 직접적으로 본질적인 삶과 연결되는 문제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파편적인 이미지들의 난립 속에 진정한 이야기가 사라져버렸다. 텔레비전이고 닌텐도며 플레이 스테이션 등 모두가 우리에게 생각할 순간을 주지 않고, 그 즉시의 반응과 직접적이고도 감각적인 쾌락만이 중요하다고 강요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는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기보다는 눈앞을 메워오는 이미지들에 압도된 채로 수동적으로 즐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송지인의 문제의식이 출발하게 된다. 송지인은 오늘날의 문제를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힘의 상실로 보았고 작가가 문제의식을 던진 부분은 바로 시작(詩作, Dichtung)의 문제로 소급될 수 있다.

송지인_花遊戱_화유희-꽃놀이_합성수지_100×120×90cm_2008

물론 이것은 시의 이야기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창작이라는 넓은 관점을 수용한다.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힘이란 단순히 문학적 서술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 안에서 놀이하면서 동시에 이야기를 구성하는 힘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다양한 정신적인 고통들을 치유해주는 힘, 이것이 오늘날 되살려내야 할 이야기의 진정한 힘이다. 그리고 이렇게 사라져버린 서사의 힘을 되살리고 진정한 이야기를 산출하는 힘이 바로 상상력이다. ● '화동도원(花童徒園)'은 바로 작가 자신의 상상력이 펼쳐지고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공간이다. '화동(花童)들이 무리지어 노는 동산'이라는 의미의 '화동도원'은 순수하고 천진한 화동들이 뛰노는 모습이 마치 무릉도원을 연상시킨다. 이곳은 아무나 접근할 수 없는 곳으로 우리는 복숭아 잎 뒤에 숨어 두 송이의 국화꽃 머리를 가진 이 벌거벗은 어린 아기들의 유쾌한 이야기를 훔쳐본다. 작가는 단편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의 서사를 만들고자 하였다. 따라서 개별적인 완결을 가졌던 이전 형식을 벗어나 화동들의 세계를 전면으로 이끌어내었다. 서로서로 어울리는 세계에서 사건이 일어나고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무엇보다 '화동도원'에서는 화동들의 모체에 해당되는 존재가 등장한다. 이것은 기원과 관계의 문제로 화동들이 이 세상에 어떻게 왔는가, 모체와 화동들이 어떤 관계 맺기를 하고 있는가라는 이야기를 발생시킨다. 존재가 어디로부터 왔는가 하는 기원의 문제가 모든 것의 시작이며 곧 이야기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이 가상의 세계는 우리의 정신이 마음껏 유희하도록 마련된 공간인 동시에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는 하나의 놀이터인 것이다.

송지인_胡蝶弄_호접롱-나비놀이_합성수지_각 77×139×65cm_2008

관객들이 화동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즐겁게 꿈꾸도록 하고 나아가 스스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작가가 이 세계를 보듬어 안은 이유인 것이다. ● 그렇다면 송지인은 어떠한 방식으로 관객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관객을 자극하는가. 작가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매우 우회적인 방법을 통해 자신의 의도를 드러낸다. 신화가 세상에 대한 유비(類比, Analogy)와 상징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작가가 이제까지 창조한 세상에는 다양한 의미를 함축한 새로운 종들의 인-물(人-物)들이 가득하다. 이러한 인-물들은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대상들이 어느 순간 갑자기 낯설게 다가오게끔 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작가는 이것을 인간과 여타의 동-식물사이의 이종교배를 통한, 한 번 또는 그 이상의 비틀기를 통해 성취했다. 이러한 방법은 우리들이 흔히 무의식적으로 수행해 버리는 의인화와 미세하게 차이가 있다. 의인화가 대상을 더욱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면 작가의 의인화는 처음에는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 문득 더욱 낯선 느낌을 주어 뒤로 물러서게 한다.

송지인_魚問花童_어문화동-물고기가 꽃아해에게 묻다._합성수지_50×100×100cm_2008

다시 말하면 관습과 단순한 삶의 패턴에 젖어 생각의 회로를 차단해버린 우리에게 이 기묘한 생명체들은 미세한 균열을 일으키고 나아가 우리의 의식을 도발시키고 전복시키는 기폭제가 되는 것이다. ● 전작에서 송지인의 작품들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생생하고도 화려한 색감들과 광택이 나는 매끄러운 표면을 가졌다. 에메랄드빛 머리칼과 눈동자, 핑크와 보라, 파랑색의 꽃 얼굴, 색색으로 칠해진 말 등은 모두 반짝반짝 윤기가 돈다. 마치 돌연변이와 같은 다양한 이 생명체들은 순간적으로 귀엽게 느껴지고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이런 부분에서 송지인의 작품은 키치적인가 하는 물음을 묻게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색감의 사용과 표면의 매끄러움은 오히려 이들의 친근함을 순간적으로 더욱 끌어올림과 동시에 밀쳐버리는 역할을 수행하는 전략인 것이다. 처음 봤을 때 귀엽고 깜찍한 인-물들이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히려 그 표면의 매끄러움에 멈칫하고 한 발 물러서게 하는, 그래서 어떤 기묘한 틈새를 발견하게 한다. ●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화동'들을 중심으로 더 진전한다.

송지인_花童飛行_화동비행-날으는 꽃아해_합성수지_160×120×58cm_2008

흔히 보얗고 포동포동한 어린 아가의 몸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귀여운지, 꽃은 또한 얼마나 우리를 순수한 아름다움의 세계로 불러들이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두 대상이 하나의 형상으로 결합되는 곳에서 우리는 친숙하면서도 낯선, 그러한 기묘한 느낌을 동시에 받게 되는 것이다. 이전까지 그의 낯설게 하기가 다양한 것들의 결합과 화려한 색감을 통한 발랄한 도발이었다면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좀 더 차분해지고 좀 더 부드러운 어조로 말은 건네고 있다. 코팅을 한한 듯 광택은 그대로이지만 색감은 훨씬 담담해졌다. 전작에서 신화의 세계가 강렬한 색채로 구성되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신선의 세계가 수묵담채기법을 통해 그려졌다. 꽃잎과 꽃대의 미세한 차이를 통해 수줍기도 하고 장난기어리기도 한 것만 같은 두 꽃의 표정과 벌거벗은 부드러운 살빛의 신체는 직접적으로 다가와 우리를 자극하지는 않지만 은연중에 기묘한 감각에 사로잡히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묘한 감각이 일으키는 균열을 통해 굳어져버린 뇌를 뚫고 상상력이 샘솟아 오르기를 그는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송지인_鶴首苦待_학수고대_합성수지_95×37×20cm_2008

작가의 이번 전시가 더욱 차별화되는 것은 그가 차용한 불교적 도상들에 있다. 작가는 이 도상들을 감추어두고 있는데, 꽃을 들고 있거나 새를 얹고 있는 화동들의 손동작들은 부처님의 다양한 수인에서 비롯되었으며 화동과 모체의 주름진 모양은 부처의 형상에서 나타나는 주름 모양과 유사하다. 작가는 이러한 도상들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가? 이는 앞서 언급했던 동양적 설화나 민담, 노장사상의 세계관이 드러나는 '무릉도원' 등과 관련지을 수 있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의 토대를 잊고 세계 속에 살고 있다. 작가는 우리들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이끌어내고자 했다. 이전의 작품들이 마치 세계 누구나가 신화처럼 받아들이는 그리스의 신화적인 세계에 연결되어 있는 반면 이번 작품들은 눈을 돌려 우리 자신이 뿌리내리고 있는 바탕을 내려다보고 그 깊이를 받아들이고 있다. 여기서 불교적 도상들의 정확한 의미해석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송지인_鳥眷庇_조권비-새 돌보기_합성수지_54×26×25cm_2008

오히려 보다 다양한 문화들을 인정하고 결합함으로써, 그 모든 다양성을 포괄하는 이야기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 작가가 이를 통해 의도한 바일 것이다. ● 이 전시에서 화동들은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며 즐기고 이를 관객에게 전달하고 있다. 여기서 화동들이 관객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건네고 있는지,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했는지도 의미를 갖지만 그 이상으로 우리들에게, 즉 관객들에게서 촉발되는 감정과 이야기가 중요하게 된다. 이렇게 작가의 상상력이 탄생시킨 세계가 관객의 상상력을 뒤흔들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다시금 그것이 작가에게 전해지는 과정 전체가 의미 있다. 그리고 이러한 순환체계를 통해 의미가 더해지고 풍부해지는 것이 진정 작가가 원하는 바일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수영할 수 있는 독자에 대해 이야기했다. 작가가 던지는 의미의 섬들, 그 사이를 스스로의 힘으로 헤엄쳐 건너며 자신만의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어 내는 관객을 기다리며 송지인의 '화동'들은 재잘거리고 심술부리고 뛰논다. ■ 김태은

Vol.20081231d | 송지인展 / SONGJEEIN / 宋之仁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