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의 묘사_External description

하이경展 / HAYIKYOUNG / 河利炅 / painting   2009_0107 ▶︎ 2009_0113

하이경_Red shoes_캔버스에 유채_45×60.5cm_2008

초대일시_2009_0107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이즈_GALLERY IS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0-5번지 Tel. +82.2.736.6669 www.galleryis.com

오랫동안 알고 지내왔던 사람에게 가장 좋은 점은 시시콜콜 속마음을 얘기 안 해도 통하는 뭔가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알고 있다고 단정하느라 그 사람의 행보에 무심한 경우가 있는 것 같다. '늘 저런 사람이야' 라고 단정했는데 어느 날 '나 원래는 이런 사람이야' 라고 낯빛을 바꾸기라도 하면 당혹스럽고 한편으로는 배신감마저 들것이다. ● 꽤 오랫동안 하이경은 결혼하고 살림하고 아이 둘을 키우며 늘 그 속에서 재미를 느끼고 행복해 왔던 것 같다. 그녀의 이미지가 생활에 묻혀 성실하게 가정을 꾸리는 전형적인 주부 이미지로 고착될 만큼 오래 말이다. 어느 날, 그녀가 개인전을 해야 한다고 말했을 때도 한 때 전도유망한 미대 졸업생의 막연한 희망이거나 아니면 '이번엔 어떤 브랜드의 붙박이장을 안방에 들여 놔야겠어' 하는 전화 속 푸념들로 섞어 버렸다. ● 어제는 그녀의 그림들을 처음 보았다. 언제 그렇게 많이 그렸는지 미처 놀라기 전에 그녀가 오랫동안 작업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림 하나하나 농익은 색과 유화의 두터운 맛 그리고 예의 그녀의 세련된 색감에 나는 당혹스러움을 지나 배신감에 다다를 정도였다. 그동안 내게 보여 왔던 그 해맑은 미소가 무색한 진지하고 고단한 작업의 노력들이 속속 배여 있기 때문이었다.

하이경_Dress-up_캔버스에 유채_53×72.7cm_2008

한 순간 내 머릿속은 빠르게 그녀의 작업 알리바이를 쫓고 있었다. 대학 때 보았던 세련된 패턴 작업들에서부터 언젠가 들었던 그녀 아버지의 직업에 이르기까지 작품 앞에서 추론에 추론을 거듭했다. 거의 15년 만에 하는 첫 개인전이 사뭇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작품의 소재는 그녀의 아파트에서 보이는 정물이나 소지품, 소파, 문, 꽃 등이었다.이제는 트렌드가 되어버린 것 같은 일상적인 소재들이다. 그 소재들은 패턴과 어우러져 세련되고 보기에 더 없이 근사한 화면을 이루고 있었다.

하이경_그 곳으로 가는 통로-연작 시리즈 中_캔버스에 유채, 혼합재료_25×25cm_2008
하이경_그 곳으로 가는 통로-연작 시리즈 中_캔버스에 유채, 혼합재료_25×25cm_2008
하이경_Have a seat pleas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혼합재료_45.5×53cm_2008

눈에 띄는 것이 있다면 그녀가 대학 때에도 그렸던 패턴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원근으로 대상을 쫒던 시선이 패턴으로 채워진 단면에서 딱 멈추면서 원근에 의한 재현과 색면 추상의 혼재를 느끼게 된다. 주제가 되는 대상물들은 정확한 사실묘사라기 보다는 뒷 배경이 되는 패턴과 대립되어 자연스럽게 앞으로 떠밀리고, 때로는 패턴에 묻혀 주제물을 애써서 찾아야 한다. 패턴이 주제물을 살리거나 묻히게 한다. 그녀는 일련의 패턴 그림들을 그리면서 일상적이고 소소한 화면의 주제물들은 날실과 씨실과 같이 우리 삶을 단단히 채워주기도 하지만 패턴 속의 작은 점처럼 그 의미가 허무함을 얘기 하는 것 같다. 일상성에서 보여지는 화려한 듯한 삶의 쾌락 그 너머의 진정성을 찾으려고 하는 듯 하다.

하이경_Pink-rose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 혼합재료_53×36cm,53×53cm_2008

한동안 미술계에서 주된 담론이 되었던 특정 이즘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다양한 양식의 그림들과 특히 젊은 작가들의 진출이 돋보이면서 그동안 입 밖에 내기 힘들었던 작품가격이나 시장이 대신하고 있는 것 같다. 우려되는 이야기지만 그녀의 그림도 그런 줄서기의 하나로 폄하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염려이전에 오히려 낙관적 전망을 감히 해본다. 아직도 얼떨떨한 이미지의 배신 속에서 슬며시 강한 예술가로서의 의지를 보았기 때문이다.

하이경_PM5:30_캔버스에 유채_72.7×91cm_2008

그녀의 최근작 「PM5:30」속의 반쯤 열려진 회색 문이 어쩐지 밝은 기운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라면 너무 뜬금없는 것일까? 전작들이 없는 명작은 없는 것처럼 이번 전시가 그녀에겐 새로움에의 도전이다. 오래된 친구에게서 받는 이런 신선한 변신이 스산한 계절을 한결 산뜻하게 만드는 것 같아 아낌없는 격려와 박수를 보내고 싶다. ■ 박상희

Vol.20090107c | 하이경展 / HAYIKYOUNG / 河利炅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