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산

신하정展 / SHINHAJUNG / 申荷姃 / painting   2009_0114 ▶ 2009_0123 / 월요일 휴관

신하정_기억의 잔상2_견에 채색, 석탄, 자연염색_130×95cm×세겹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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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9_0114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화~일요일_11:00am~6:00pm / 월요일 휴관

북촌미술관_BUKCHON ART MUSEUM 서울 종로구 가회동 170-4번지 청남문화원 Tel. +82.2.741.2296 www.bukchonartmuseum.com

마치 오래된 습관처럼우리 눈에 비치는 현실이 폐허라면, 그것을 냉철히 응시하고 묘사하는 것이 작가의 의무다._하인리히 뵐

신하정_가리개 너머2_견에 채색, 석탄, 자연염색_55×234cm×두겹_2009

기억이란 신기한 것이다. 그것은 우선 의식과 구별된다. 의식은 현재 경험된 것이자, 감각 이상의 것이자, 한번 걸러낸 것이다. 인간은 감각된 모든 것을 짊어지지 못한다. 그랬다가는 마치 원자로가 폭발하듯 정신이 붕괴되어 버린다. 괴로웠던 즐거웠던 모든 경험을 '현재'까지 같은 강도로 느낀다고 생각해 보라. 그것은 살아 있는 지옥이다. 기억은 오히려 무의식과 유사하다. 무의식은 말 그대로 의식되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경험된 모든 것이 의식되는 것은 아니지만 사라지는 것도 아니란 것이다. 그것은 켜켜이 쌓이고 쌓여서 정신의 어딘가에 숨죽이고, 언젠가 깨어날 채비를 한다. 문제는 그것이 주체의 통제를 받지 않는 것이다. '내'가 꺼내고 싶을 때 꺼내지는 것이 아니다. 마치 바다 밑에 잠긴 빙산 같아서, 보이진 않지만 의식된 것을 떠받치며 조종한다. 프로이트는 여기서 이 모든 것을 성에너지 리비도로 환원하여 설명하며, 일종의 인류학적인 근거를 제시하지만, 그것만이 설명하는 방법은 아니다. 인류학을 벗어나 인식론적 차원으로 확대하면, 훨씬 흥미로워진다. 바로 프루스트적인 '무의지적 기억'을 만나기 때문이다.

신하정_가리개 너머_견에 채색, 석탄, 자연염색_95×130cm

프루스트는 의지적 기억이 지나간 일들을 말해주지만 과거의 흔적을 보관하지 않는다고 역설적으로 말한다. 흘러간 과거는 '이지의 영역이나 그 이지의 영향권을 벗어나 어떤 하나의 구체적인 대상 속'에 존재한다. 누구든 집요하게 생각나지 않는 기억이 있을 것이다. 어렸을 적 기억일 수도, 어떤 사람일 수도, 어떤 장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음악을 듣든지, 사진을 정리하든지, 일기를 들춰보든지 등등, 우연한 기회로 기억은 활짝 열리며, 시제는 과거로 돌아간다. 사건이나 물건 하나 때문에 말이다. 기억은 정신에 있는 것이 아니다. 몸 안에, 몸과 접속된 물건에 새겨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 대상을 접촉할 수 있을지, 완전히 우연이다. 결국 기억은 의식의 음화(netatives)요, 몸은 기억의 담지자인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이론적 진단만은 아니다. 오늘날 인간의 정신은 기억과 의식으로 완전히 분열된 것은 아닐까. 그래서 항구적인 정신분열증에 시달리는 것은 아닐까. 과거와 현재에, 기억과 의식에, 한 쪽 발을 걸친 채로 말이다. 신하정의 작업이 그렇다. 거기서 그녀는 자신의 고향을 담고자 한다. 그녀가 겪었던 태백을, 검은 산을 스스로 말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그녀의 현재가 은밀히 담기며, 그녀의 과거를 교란한다.

신하정_환영_견에 채색, 석탄_102×180cm×두겹_2008

신하정의 『검은 산』展(2009)은 작년에 했던 『태백』展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그녀는 고향 태백을 응시한다. 태백의 과거풍경과 아이들의 모습이 여지 없이 나타난다. 역사적으로 태백은 탄광지대로 유명한 곳이다. 한때는 한국의 근대화를 자랑하는 상징으로 묘사됐고, 한때는 사북항쟁의 모습으로 굴곡진 한국의 현대사를 기록했다. 하지만 지금은 흔적조차 찾기 어려워졌고, 오히려 강원랜드 카지노로 유명한 곳이 되었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산업과 항쟁의 현장에서 카지노 도박장으로 변모한 모습이라니, 너무나 극적이다. 어쩌면, 이 기묘한 결합만큼 한국의 현대를 가감없이 보여주는 것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당연히 많은 사람이 그곳을 방문했고, 사진으로 평면으로 실감나게 담아냈다. 그런데 신하정은 무엇인가 석연치 않았던 것일까. 기존에 태백을 보던 방식과 달리 접근한다. 그녀의 작업을 찬찬히 살펴보라. 탄광지대를 묘사했지만, 비판적인 시선은 엿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낭만적이고 목가적인 풍경으로 보는 게 정확하다. 계곡을 봐도 그렇고, 나무를 봐도 그렇다. 검게 물든 것만 제거하면. 그곳에 등장하는 인물도 그 점을 강화한다. 웅크리고 있거나, 뛰고 있거나, 서성이는 그들은, 대부분 벌거벗은 아이의 모습이다. 아이들의 세계는 기본적으로 동화의 세계다. 무엇인가 생략되고 무엇인가 강조되는 탓에, 세상을 실상 그대로 담지 못한다. 결국 어렸을 적 눈에 비친 풍경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녀는 고착된 것이다. 자신과 태백의 과거에(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신하정의 작업을 비판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에도 그때의 현실을 애써 기억하는 태도며, 그것이 개인의 작업과 방식에 어떻게 투영되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신하정_가려진 시간 사이로_견에 채색, 석탄_72×78cm×두겹_2008

어쩌면 질료가 그녀의 세계를 보완할 지도 모르겠다. 알다시피 그녀는 탄을 직접 갈아서 검정색으로 활용한다. 이 때문에 자세히 보면 여느 검정색과 다른 질감이 형성된다. 게다가 비단천에 채색을 하므로, 여느 물감과 다르게 응겨붙는 형태를 보여준다. 태백의 풍경, 석탄의 질료. 의미로 본다면야 너무나 명확한 짝패가 아닐 수 없다. 문제는 그 질료가 생각만큼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것. 세 겹으로 덧대서 형성되는 환영 속에서 어디론가 흩어져 버린다. 여간해서 눈치채기 어려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어릴 적 기억만큼이나, 석탄이란 질료는 오늘날 너무 먼 당신처럼 느껴진다. 그러면 그림에 담긴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태백을 냉정히 그렸던 선배작가와 구별되고 싶다고 말한다. 바람은 실현됐을 것이다. 그녀가 말했던 대로, 외부에서 태백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살았던 사람으로서 응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까지 내부에 갇힌 것은 아닐까. 그래서 구체적인 '태백-현실'은 사라지고, 간직하고픈 추상적인 '태백-기억'만이 남은 것은 아닐까. 흥미로운 것은 오히려 「기억의 단상」과 「태백에 서다」에 나타난 형광빛 가득한 조명장치였다. 거기서 검정색 석탄은 어느 곳보다 희미하게 나타나며, 조명장치는 누르스름한 비단천과 강렬하게 대조된다. 마치 과거와 현재처럼 말이다.

신하정_기억의 잔상_견에 채색, 석탄, 자연염색_92×152cm×세겹_2008

예술가는 '기억을 의식해' 표현할 수밖에 없는 역설적인 존재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자신을 속일 가능성이, 자신이 속아넘어갈 공산이 크다. 그것은 축복일까 재앙일까. 냉철히 응시할 대상은 현실만이 아니다. 자신의 내면도 마찬가지다. 물론 몸에 새겨진 오래된 습관처럼, 태도가 단숨에 바뀌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림은 조금씩 '넌지시' 말하고 있지 않았을까. ■ 김상우

신하정_太白에 서다_견에 채색, 석탄, 자연염색_92×150cm×세겹_2008

Just like an old habit ● If the reality on our eyes is a ruin, it is the duty of an artist to gaze and describe it._Heinrich Boll ● Memory is uncanny. It is distinct from consciousness. Consciousness is about the present experience, about something more than senses, and about that is filtered. Human being cannot carry everything that is sensed. Otherwise our mentality will be collapsed. If we feel the same as all the past experiences about pleasure and sorrow until 'present moment', it is like the hell. Memory is rather similar to unconsciousness. Unconsciousness is about not being conscious. The important thing is that every experiences are neither being conscious nor disappear. They are piled up in layers within our mentality and wait to wake up someday. The problem is that they are not controled by the subject. I can not take them out whenever I like to. Just like the iceberg underneath the surface of water, the invisible existence holds and controls consciousness. At this point, Freud turned everything into the sexual energy libido and suggested its anthropological evidences. However, this is not the only explanation. When we break out the anthropology and expand our understanding towards to epistemology, it can be much more interesting. Because at this point we encounter with the "unreliable memory" of Proust. ● Proust emphasized that the reliable memory tells about the past but not keep its trace. Past is about "an intellectual territory, but it only exists within a concrete subject which lies outside of the intellectual territory". Everyone has memory that never can be reoperated. It is about childhood, a person or a place. However, when we listen to music, sort piles of old photos, open up diary, etc., our memory accidentally awaken and rewinds back to the past. It happens accidentally by an object or an occasion. Memory do not live in our mentality. It is carved within our body and the objects which is remembered by our body. Thus, memory is the negatives of our consciousness, and body is the receptor of our memory. This is not only theoretical diagnosis. Today, human mentality may be split by memory and consciousness. People are having the permanent schizopnrenia. We are not free from neither past, present, memory and consciousness. Works of SHIN Ha Jung can be read in this context. She still tries to live with her hometown. She likes to talk about her own experiences in Taebaek, about the black mountain. However, her present secretly sneaks around and intercepts her past. ● SHIN's 『Black Mountain」』(2009) is not much different with the 『Taebaek』of last year. She still gaze on her hometown, Taebaek. The landscape and children of the past Taebaek are appeared once again. Taebaek is famous for coal mine. It was the symbol of modernization in Korea once. In another time, there was the sore history of the Sabuk resistance. But now, there isn't a trace at all. Rather, the place is famous for the casino of Gangwon Land. It is a historical irony. There is a dramatical reverse that the place for industry and resistance transforming into the gambling casino. This strange combination probably shows the modern times of Korea without any addition nor subtraction. Of course, many people have visited the place, and found it with numbers of photographs and planes. However, SHIN seems not being comfortable with any of them. She approaches differently from the previous ways of seeing Taebaek. As I see her works slowly, she restrains any of the critical perspective by describing the mine area. Her landscape is rather romantic and idyll, including valleys and trees. By removing the black colours, figures within the frame emphasize her own perspective. They are mostly huddling, running, restless and naked children. Children's world is basis on the one in fairy tales. In the tales, there is lack of reality by omitting and emphasizing things. Her landscapes are not more or less about her childhood memory. She is stuck on herself and her past in Taebaek. (This is not a criticism on her works. I would like to emphasize on her attitude remembering the past reality and affirm the influence of one's past memory in works of art.) ● The substance materials for painting may amplify her world. She grinds coal to make black ink. Her black colours therefore create different texture from the others. The silk canvas glue the black ink in different way. Literally speaking, they become a perfect combination: landscape of Taebaek and coal ink. The problem is that the coal substance is not working clear enough. The black colour is spread out in three layers silk canvas and becomes an illusion. The layers are not easily seen. The coal substance, just like her childhood memory, lives in distance. Then, what is still remained in the canvas? Shin once mentioned about her will to be distinct from the others who have drawn Taebaek with a critical view point. And she made it. She gazes Taebaek as still living inside the village. She is almost captured within the area. This is why the concrete "Taebaek-reality" is disappeared and abstract "Taebaek-memory" is remained. Interestingly, there are fluorescent lightings in 「Phases of Memory」 and 「Standing in Taebaek」. In these works, black colour becomes vague, and the lighting contrasts strongly against the yellowish silk canvas. This is just like the contrast between past and present. ● Artists are the ironical existence who express the "conscious memory". It is likely to cheat themselves. Artists must gaze on reality as well as their inward. For Shin, Just like her old habit, it would be difficult to change the attitude at once. Paintings, however slowly began to talk about it. ■ KIMSANG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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