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치우(値遇)하다

안현곤展 / AHNHYUNGON / 安炫坤 / mixed media   2009_0130 ▶︎ 2009_0218 / 월요일 휴관

안현곤_한 밤에 비행하는 자전거_혼합재료_100×100cm_2008

초대일시_2009_0130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8:00pm / 월요일 휴관

샘터갤러리_SAMTOH GALLERY 서울 종로구 동숭동 1-115번지 샘터사옥 Tel. +82.2.3675.3737 www.isamtoh.com

낭만적 꿈에 부풀기에는 늦은 30대 후반, 작가는 브레멘의 거리를 걸으면서 잠시 유년시절의 추억이 떠올라 도시의 번잡함을 벗어나 전원의 한가로움과 휴식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에 잠긴다. 오두막 근처에서 잉잉거리는 벌소리, 귀뚜라미 우는 소리 등 전원적이고 평화로운 이미지가 느릿한 리듬과 어울려 서양판 귀거래사의 정서를 느끼게 한다. 이처럼 심상의 전경을 그리워 하며 그곳에서 안빈낙도 하겠다는 회화의 세게는 우리의 전통적 그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러한 전원적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마음속에 근원적으로 내재해 있는 것이다.

안현곤_CosmosII_혼합재료_100×100cm_2008
안현곤_Cosmos_혼합재료_100×100cm_2008

안현곤은 아주 먼 신화적이고 이야기적인 문학이나 자신의 심상전경을 유희적이고 메타 언어적인 표현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가이다. 그의 그림은 전원적이고 자연에 머물러 있지만 풍경화가 가지고 있는 전통으로 부터는 한없이 자유롭다. 다시 말해 풍경화를 그리지 않는 풍경 화가인 셈이다. 여기에서부터 안현곤 회화의 아이러니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연의 미적 재현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어떻게 우주 안에서 상호 작용을 하는지가 주된 관심의 대상이다.

안현곤_식물로부터의 연습_혼합재료_100×100cm_2008

그의 그림 속에는 많은 것들이 등장을 하게 되는데, 이를테면 시간의 흐름, 예측할 수 없는 상상, 가장 근원적인 선들, 과학적 질서, 은유적이고 비밀스런 기호, 사고와 시각의 체험, 사물에서 흐르는 에너지의 감지, 수수께끼와 호기심, 별자리와 우주의 움직임, 신비한 추리 등이다. 안현곤은 자신도 예측할 수 없는 전혀 실현 불가능한 작품계획을 만들고 실현해 가는 과정에서 우연과 유희, 은유적 요소를 양념으로서 첨가해 사용하기를 즐기는 작가같이 보인다. 그의 그림은 언뜻 보기에는 수학적 공식에 꿰맞추어진 듯 빈틈없이 계산적으로 보인다. 특히 '한 밤에 비행하는 자전거( Das Flugfahrrad)'를 보면 정말이지 가당치도 않는 우주 자전거 모형과 구조도가 나온다. 작가가 말하는 수학 공식과 같은 예술인 것이다. 비트루비우스적 인체비례를 완성시킨 네오나르도 다빈치의 철저한 인체해부학적 지식과, 수학적 계산법을 인체에 응용한 그의 예술이 문득 머리를 스치는 순간인 것이다. 그것에 비해 안현곤의 달 착륙 우주 자전거는 허술하기 그지없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자전거로 달에 갈 수 있단 말인가? 안현곤은 과학적 질서 안에 내재해 있는 임의성과 우연성에 주목을 한 것이다. 그는 그것들을 미술이라는 또는 '미적허용'의 안에서 유괘한 상상을 하였던 것이다. 전혀 상존할 수 없어 보이는 대립각 속에 은유가 있었던 것이다.

안현곤_식물로부터의 연습II_혼합재료_100×100cm_2008

또한 그의 그림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요소 중의 하나는 가장 근원적인 선들이다. 대부분의 그림에서 보이는 선들은 지극히 정제되고 절제된 형식으로 나타나는데, 그의 초기작품들이 질료에서 오는 체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는 것을 상기해 보면 다소 흥미롭다고 볼 수 있다. 작가는 자연의 재현을 수도 없이 하였을 것이다. 그러면서 계속하여 버리는, 뼈를 깎는 지난한 과정을 거듭한 후에 뼈가 앙상한 몰골과도 같은 나신으로 되돌아와 있는 것이다. 그의 그림은 대부분 단순한 색들을 사용하고 있다. 전통 회화에서는 회화적인 통일과 조화를 위하여 색조 자체를 화면 속에 녹여 조화시키기도 하였는데, 안현곤은 모든 색채를 혼합함으로서 색채의 미묘한 뉘앙스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가진 듯이 보인다. 그 결과 모든 색을 거의 모노크롬(Monochrome)에 가까운 중간색으로 화면 전체를 메우고 있다. 어쩌면 이것이 그가 바라는 자연과 인간을 따로 떼어놓고 보는 오만한 생각이 아닌 자연의 일부로써 인간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태도가 아닐까 생각 한다.

안현곤_부유하는 씨앗_혼합재료_100×100cm_2008

그의 그림에는 독일어로 된 수없이 많은 단어와 텍스트들이 등장을 한다. 그의 잠재의식 속에 머물러 있던 의식의 파편들을 꺼내놓는 신성한 의식과도 같은 행위이다. 그의 '버림의 미학' 에 비추어볼 때 일견 모순돼 보이는 이 방법론은, 그의 긴 독일 유학시절의 창작 활동과 깊이 연관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부유하는 씨앗」, 「한 밤에 비행하는 자전거」, 「식물로 부터의 연습」, 「부유하는 엉겅퀴」, 「Cosmos 상대성과 절대성 사이」 등의 작품 명제에서 보듯이 늘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존재의 나약함, 때로는 정체성의 부재를 실감하고 몸서리쳐야하는 심정을 텍스트로 구토하듯이 게워내야 하는 작가의 고뇌를 각인 하여 놓은 것이다.

안현곤_부유하는 씨앗II_혼합재료_100×100cm_2008

안현곤은 늘 행복과 안락함을, 속박되지 않는 움직임을, 순수한 인식 그리고 유쾌한 기쁨을 얻고자 노력 한다. 또한 완전히 다른 세계에 대한 꿈을 항상 가지고 있다. 본질적인 달콤함과 향기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현실의 근심 사이에서 갈등하기도 즐겨한다. 그의 이상은 유쾌한 합리성과 순수의 사이에서 자유자재로 떠도는 그런 것들이다. 하지만 그의 꿈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는 지극히도 낭만주의적 인간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 이종호

Vol.20090130e | 안현곤展 / AHNHYUNGON / 安炫坤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