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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화展 / HWANGEUNHWA / 黃恩和 / painting   2009_0401 ▶︎ 2009_0410

황은화_Quality Tim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나무_161.3×130cm_2009

작가와의 만남_2009_0401_수요일_05:00pm

자인제노 기획초대전

후원_한국문화예술위원회_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11:00am~07:00pm

갤러리 자인제노_GALLERY ZEINXENO 서울 종로구 창성동 130-5번지 Tel. +82.2.737.5751 zeinxeno.mbillust.co.kr

황은화-시각적이고 심리적인 왜상을 주는 화면 ● 단색으로 균질하게 마감된 캔버스 피부위로 일정한 선들이 지나가면서 공간, 벽과 의자나 시계, 컵과 같은 일상의 사물을 암시해준다. 얇고 가늘게 그어진 선은 다분히 그래픽 적이고 디자인적이다. 내부는 소멸되고 오로지 외부를 암시하는 윤곽선만이 특정 사물을 지시한다. 그것은 기호에 다름 아니다. 이 기호는 단지 선에 불과하지만 그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화면 밖에 실재하는 의자나 시계, 컵에 대한 경험과 기억을 자극하는 매개로 기능한다. 인식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우리의 지각과 연상작용을 건드리는 선인 셈이다. 동시에 그 평면 위에 안착된 선은 입체적인, 3차원의 공간을 순간 착시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은 납작한 색 면, 모노크롬한 화면의 피부 위에 얹혀져 있는 가는 선에 불과하다. 실제와 환영 사이에서 유동하는 선으로서 보는 이의 욕망에 따라 가변적인, 생성적인 이미지가 되고 있다. 그것은 어느 특정한 범주로 제한되거나 규정하기 어려운 무척 애매한 그림, 화면공간이다. 2차원과 3차원이 동시에 공존하고 이미지와 실제가 한 자리에 있으며 캔버스 내부로 국한되는 동시에 그 밖(전시장 외벽)으로 연장되어 펴져나가는, 한계 없는 그런 작업인 셈이다. 아울러 벽 위에 돌출된 또 다른 벽(화면)의 내부는 회화와 조각, 그림과 부조(입체)가 동시에 공존하며 보는 이의 시선과 방향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시각의 왜상(anamorphosis)을 불러 일으킨다. 평면 안에 묻혀있는 선들을 보는 순간 실재 튀어나와 돌출된 부위가 보여주는 입체성은 돌연 잠기고 이내 의자나 시계, 컵의 한 부위에 나무를 깍아 붙여 놓은 부위에 주목하는 순간 납작한 선들은 슬그머니 사리진다. 화면 앞에 고정된 시선의 방향을 상정하는, 그러니까 이른바 정면성의 법칙에서 슬쩍 벗어나 자유로이 화면 주변을 소요하면서 이리저리 훑어나가는 시선에 의해 주어진 화면은 다양하게 보여지고 읽히며 지각된다. 그것은 작가라는 주체에 의해 통어되거나 규정되기 보다는 보는 이(타자)의 참여에 의해서 가변적이고 생성적인 그 무엇이 된다.

황은화_기둥에 대한 경의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나무_124×200cm×3_2008~2009
황은화_Chair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나무_161.3×130cm_2009

근작은 단호한 색면으로 덮인 캔버스 안에 시계, 의자 또는 공간의 한 부분이 그려져 있다. 어디까지가 벽이고 바닥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단일한 색채는 그런 구분을 무화시킨다. 작가는 자신의 이상적인 스튜디오를 동경하면서 자신의 작업공간이 생긴다면 그 벽을 어떻게 칠할 것인가를 상상했다고 한다. 그렇게 벽을 칠하고자 하는 욕망이 지금 같은 단색의 화면공간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간 안에 놓여지는 일상적 사물들을 재현했다. 우선 의자와 시계가 그것이다. 의자는 자신의 몸을 받혀주는 실용적 도구이며 작업실에서 가장 필요한 가구이다. 육체의 피로를 풀어주고 일의 능률을 올려주는 동시에 안락한 휴식을 제공해주는 지지대이기도 하다. 그런 맥락에서 시계 역시 유사하다. 시계란 삶을 규정하는 시간을 지시하는 기계인 동시에 여러 심리적인 느낌을 유발하는 기제이기도 하다. 아울러 그 시계가 지시하는 시간은 작가 본인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라고 한다. 그것은 또한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지극히 편안하게 느끼는 시간이자 특별한 시간을 암시한다. 예를 들어 직장의 보편적 퇴근시간인 6시가 그것이다. 반면 작가 자신은 오후 4시에서 6시 사이가 심리적으로 가장 차분해지고 지극히 센스티브해지는 시간이어서 그 시간을 알리는 시침과 분침을 그려넣고 있다. 작가가 그려놓은/부분적으로 입체성에 의해 돌출한 의자와 시계 역시 보는 각도와 시점에 따라 변화되는 모습으로 제작되었다.

황은화_Quality Tim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나무_116.7×90.9cm_2009
황은화_Studio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나무_116.7×90.9cm_2009

캔버스는 그것이 걸리는 실제 벽과 동일시되어 있다. 따라서 캔버스는 벽으로 연장된다. 동시에 캔버스 안에 또 다른 캔버스/ 그림이 서식한다. 그림 안에 그림이 있고 벽이 있으며 벽은 그림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작가의 작업 컨셉트는 "공간과 작업이 어떻게 어우러질 것인가"이다. 따라서 그림은 주어진 공간과 유기적 관계 속에서 서로 관여하고 간섭한다. 어느 한쪽으로, 일방적으로 수렴되지 않고 그 둘이 길항하고 긴장감 있게 조응한다. 작가는 전시 공간 안에 화면/캔버스라는 인위적 공간을 개입시켜 일종의 사건을 만든다. 이 착시와 트릭으로 연출된 흥미로운 사건은 아주 새롭지는 않지만 그림, 화면과 관련된 근원적인 내용을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한편 기존 그림의 상투성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부분이 있다. 알다시피 현대미술은 주어진 화면을 통해 새로운 공간을 형성하는 일이자 물리적인 법칙에 의해 규정되는, 존재하는 실세계의 공간과는 다른 조형적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그것은 현실계를 벗어난 또 다른 세계와 공간을 꿈꾸고 가능하게 해주는 일이기도 하다. 미술은 그렇게 해서 새로운 공간, 세계를 보여준다. 인식케한다. 그것은 단지 눈에 보이고 망막에만 호소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로인해 고정된 가치나 상식, 강요된 관점이 아닌 새로운 시간과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시각의 전환과 인식의 제안이 나의 주된 관심사"라고 말한다.

황은화_Cup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나무_38.3×45.6cm_2009
황은화_ Chair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나무_90×72.8 cm_2009 / ▷부분

작가의 그림은 이것이기도하고 저것이기도 한, 가변성과 유동적인 모호함 사이에서 존재한다. 수 십번의 붓질로 이루어진 단색의 화면은 그 자체로 엄격한 색 면 추상을 연상시킨다. 그것은 마치 실제 벽을 칠하는 것처럼 도포되었다. 화면(캔버스)가 벽에 걸리는 순간 전시장의 흰 벽, 화이트큐브에 레드와 그린 색상으로 절여진 또 다른 벽이 가설되고 그 벽에 선들이 지나가면서 공간에 주름을 잡고 3차원의 세계를 유연하게 구부리면서 왜곡시킨다. 이 얇은 평면에는 그 만큼이나 얇은 선만이 어떤 사물을 지시하고 있다. 그 사물의 일부는 부분적으로 입체물/부조가 되어 돌출되어 있다. 그것은 회화와 입체/저 부조 사이에서 흔들린다. 그림의 내부나 피부에 속해있지 않고 그로부터 분리되어 입체가 되었다. 동시에 그 입체는 다시 화면 내부로 수렴된다. 따라서 회화와 조각 사이에서 진동한다. 캔버스 평면에 속한 그림의 일부인 동시에 그로부터 일정한 높이를 갖고 튀어 올라온 조각/부조이다. 나로서는 화면에 그려진 사물의 가장 튀어나와 보이는(우리 눈의 한계로 인해 그렇게 돌출되어 보이는, 착시로 인해 평면/선들이 순간적으로 입체로 다가온다), 꼭지점처럼 튀어 나와 보이는 바로 그 부분을 입체화시킨 전략이 흥미롭다. 그것은 환영과 실제사이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라인으로 암시된 사물을 보는 순간 관자들은 정신적 활력을 통해 머릿속에서 실제 사물을 떠올릴 수 있다. 이때 부분적으로 튀어나온 부위는 그러한 연상을 더욱 강하게 자극한다. 동시에 환영을 실제의 사물로 되돌려주는 셈이다. 아울러 그 한 부위가 돌출되어 다가옴으로서 즐거운 환영의 체험과 함께 기묘한 심리적 자극, 일종의 '포비아' 같은 것도 던져준다. 평면의 한 부위가 부풀어올라 순간 보는 이를 찌른다. 알 수 없는 당혹감이 생긴다. 나로서는 이 같은 타자의 유희와 체험을 적극 끌어들이는 전략이 흥미롭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사물을 다양한 각도로 보게 하거나 보는 이에 따라 혹은 시선의 각도에 따라 다양한 변주를 거듭하는, 이차원과 삼차원이 한 화면에서 교차하고 평면과 입체, 그림과 실제사이에서 몇 겹으로 흔들리고 있는 그 지점에서가 아니라 앞서 언급한 타자의 시선과 심리적 경험을 유인해 내는 바로 그 작은 지점에서 빛을 낸다. 박영택

Vol.20090404c | 황은화展 / HWANGEUNHWA / 黃恩和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