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선색선 線線色線

김혜련_류승환_배석빈展   2009_0404 ▶︎ 2009_0426 / 월요일 휴관

김혜련_on the road_종이에 잉크_145×274cm_2009

초대일시_2009_0404_토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터치아트_GALLERY TOUCHART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1652-235번지 예술마을 헤이리 ㈜터치아트 Tel. +82.31.949.9435 www.gallerytouchart.com

갤러리 터치아트에서는 오는 4월 4일부터 26일까지 작가 김혜련, 류승환, 배석빈의『선선색선(線線色線)』展이 열린다. 이미 현대미술에 있어서 독자적인 작업방식으로 가치를 지니게 된 드로잉 작업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선을 통한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작업으로 인하여 작가 특유의 다양한 감수성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 김혜련은 제주도 풍경을 담은 그 여름, 길 위에서, 숲 속 시리즈의 2009년 최근 드로잉 작업 18점을 선보인다. 그 간 드로잉과 유화작업을 넘나들며 사물의 구상적 형태로부터 작가의 내면세계를 표현해 왔던 김혜련은 이번 전시작들을 통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제주의 모습이 낯설고 생경하게 다가오는 새로운 경험을 안겨준다. ● 류승환의 작업은 집요하다. 책상에 꼬박 앉아 10m의 긴 두루마리 안에 0.3mm의 가는 펜을 이용하여 그림을 그린다. 하루 작업량은 약 10x40cm정도로 작업실에서 얻어지는 이미지, 책과 잡초정원, 창밖의 하늘, 작가와 함께 살아온 참개구리와 십자매를 모티브로 진행되는 작업은 하루의 기록임과 동시에 작가의 의식과 무의식을 유기적으로 표현하는 재창조의 공간이다. ● 배석빈은 아크릴과 수채화, 과슈 등의 다양한 재료를 이용하여 색색의 선과 형태가 조합된 종이작업을 선보인다. 마치 어린아이의 낙서를 대하는 듯한 배석빈의 그림은 "예술작품이란 그것이 회화든 조각이든 건축이든 혹은 음악이든 그것을 읽는 방식이 작품 안에 자율적으로 새로이 형성되는 것임을 확인하게 된다"는 작가의 말처럼 모호함 속에 하나의 이야기를 가진 작품으로 발전하여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 갤러리 터치아트

김혜련_the_summer1_종이에 잉크_90×120cm_2009
김혜련_in_the_forest2_종이에 잉크_90×120cm_2009
△류승환_Life_Cycle_Series_종이에 펜_40×550cm_2009 / ▽부분
△류승환_Life_Cycle_Series_종이에 펜, 먹_41×456cm_2007 / ▽부분
△류승환_Life_Cycle_Series_종이에 펜_40×460cm_2004 / ▽부분
배석빈_Heavy_rain_종이에 과슈_200×140cm_2006
배석빈_The road already I have been_종이에 과슈_75×105cm_2006
배석빈_Permanence_종이에 수채_200×140cm_2001

선에 대한 나의 생각-선선색선(線線色線) ● 화가라는 말은 실험적인 작가들에겐 시대에 뒤떨어진, 고리타분한, 현대미술을 모르는 아마추어 같은 느낌을 준다. 마치 베레모를 쓰고 파이프를 물고 이젤 앞에 있으면 그럴듯한 작가처럼 보이던 시대가 더 이상 아닌 것처럼 말이다. 지금이야 평면작업이라는 멋진 용어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용어를 수입해 사용하는 우리 처지에서 붓으로 무엇인가를 그리는 사람을 화가 말고 무어라 지칭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용어를 기꺼이 좋아한다. 왜냐하면 나는 단지 붓으로 종이든 캔버스든 무언가를 그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 연필을 들든지 붓을 들든지 손가락으로 직접 그리든지 간에 그림을 그리려면 재료의 특성을 파악하고, 아니 재료의 특성에 자신을 전적으로 맡기고 그 결을 대해야 한다. 그런데 그림을 그릴 때 그리는 자, 곧 나는 움직인다. 손은 물론 눈조차 정지시키고 그리지는 않는다. 대상을 관찰할 때 이러한 움직임은 특히 집요해지는데 허무맹랑한 이야기 같겠지만 만약 시선에 선긋기가 가능하다면 그림 그릴 때의 허공은 수많은 선들로 채워질 것이다. 사물바라보기 또는 생각하기라는, 시간성이 개입되는, 그리하여 전에 없었던 공간을 만들어 내는, 마술 같은 것이 그림인 것이다. ● 선묘라고 해야 할 지, 소묘라고 해야 할 지, 데생이라는 용어보다는 무언인가를 끄집어내 준다는 의미에서 드로잉이 더 현대적으로 풀이되는 것 같지만 어차피 사물의 외관을 완벽하게 재현한다는 것은 미학 이론상 불가능하니 현대미술의 포괄성을 생각한다면 이 용어가 그래도 가장 적절하겠다 ; 나의 정신에 비쳐진, 세계와 나의 짧은 만남, 그것을 선으로 표현한 것. 색채가 느슨한 그림, 완성도가 없는 것 같은 그림, 선에 대한 특별한 자각, 별자리를 긋는 기쁨, 편집증 같은 메아리, 때로는 격하게 때로는 담담하게 대상에 대한 느낌을 전하는 선들. ● 점이 모여 선을 이룬다는 것은 칸딘스키의 분석이지만 그래픽에서처럼 시각적으로만 구별되는 색상이 아닌 한, 회화에서의 색은, 그 채색은 선을 통해 이루어진다. 짧든 길든 간에 선들, 선들이 모여 채색이 되는 것이다. 선의 구성단위인 점은 개념적 영역에서나 가능했지, 실제적인 그림, 회화에서의 점은 그것이 아무리 작아도 하나의 납작한 면적이 된다. 선, 선긋기는 매우 원초적인 예술행위로, 시간을 싣고, 움직임을 싣고, 공간을 이동시킨 흔적이다. 재료의 결을 타고, 자신의 불완전함을 잊고, 창작의 욕망까지 버릴 수 있는 행위, 나에게 있어 그림들은 확실히 선선색선(線線色線)이다. ■ 김혜련

Vol.20090404d | 선선색선 線線色線-김혜련_류승환_배석빈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