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투우장의 미노타우로스 1, 다이달로스의 일생 2

박진호展 / PARKJINO / 朴璡鎬 / mixed media   2009_0409 ▶︎ 2009_0420

박진호_Minotaur01_혼합재료_90×60cm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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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The Labyrinth-Minotaur in the Arena 1, Life of Daedalus 2.展

관람시간 / 11:00am~07:00pm

문화일보 갤러리_MUNHWA GALLERY 서울 중구 충정로 1가 68번지 Tel. +82.2.3701.5757 gallery.munhwa.co.kr

투우장의 미노타우로스1. 투우 ● 2007년 7월 어느 일요일, 아비뇽 인근의 투우장 샤또 흐나르. 나와 장 미셀 빵상, 그리고 내 아내 칼리 아이든은 촬영을 위해 그곳에 있었다. 투우에 관한 장 미셀의 비디오 다큐멘터리 작업인 '21세기의 초상'의 보충 촬영을 위한 것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내 생애 최초의 투우를 보았다. 장 미셀이 내게 부탁한 일은 투우의 움직임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는 것이었지만, 그 임무가 아니었더라도 나는 투우에서 눈을 뗄 수 없었을 것이다.

박진호_Minotaur-White_혼합재료_90×60cm_2009

2. 이카로스 ● 투우장을 방문했을 때, 나는 이카로스에 관한 작업을 하고 있었다. 태양을 넘어 날아가려다 실패한 이카로스가 만약 달을 목표로 삼았다면 어땠을까 상상하는 연작 드로잉이었다. 그래선지, 투우를 보고 있노라니 미노타우로스가 생각났다. 그리고, 이카로스, 미노타우로스, 미궁, 투우장... 이 모든 것들이 같은 줄기에서 나온 것이고, 그것들을 연결 짓는 것은 다이달로스라는 것을 다시 알게 되었다.

박진호_Minotaur in the Arena No22_혼합재료_90×60cm_2009

3. 다이달로스의 일생 ● 다이달로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명장, 혹은 조각가의 대명사로 통한다. 다이달로스가 만든 것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미궁이다. 미노스가 미노타우로스를 가두기 위해 다이달로스에게 명령해 만들었다는 그 미궁. 다이달로스가 아들 이카로스와 날개를 만들어 달고 달아난 바로 그 미궁이다. 애초에 이상한 애욕에 빠진 파시파에를 도와 미노타우로스가 세상에 태어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도 다이달로스였고, 테세우스를 도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는 데 일조한 것도 다이달로스였다. 다이달로스는 조각가이자 발명가였고, 무엇보다도 인간이었다. 그는 늘 중간에 있었다. 태양과 바다의 중간, 신과 짐승의 중간. 그는 그렇게 항상 살아남았다. 나는 다이달로스에 대한 이야기가 하고 싶어졌다. 3부로 이루어진 다이달로스의 인생에 대한 계획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제3부 '달 아래 이카로스'는 유명한 이카로스 신화를 차용한 이미지와 사운드와 설치를 포함한 연작이다. 이 작업은 2008년 6월 갤러리 헛에서 개인전의 형태로 발표하였다. 제1부 '다이달로스와 목각 암소'는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다. 이 작업을 끝으로 일단 다이달로스의 일생에 관한 3부작을 마무리 지을 생각이다. 제2부 '투우장의 미노타우로스'는 미궁에 갇힌 미노타우로스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러 온 테세우스에 대한 이야기다. 이 글은 이 작업을 소개하고 설명하기 위한 글이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할 작품에서 다룬 주제는 첫째, 미궁. 둘째, 미궁에 갇힌 미노타우로스. 셋째, 미노타우로스에게 바쳐진 13인의 제물이다. 4. 미노타우로스와 미궁 ● 그 여름, 그 날, 내가 투우장에서 본 것이 미노타우로스인지 뭔지 이제는 모르겠다. 다만, 나는 '죽지 않고서는 벗어날 수 없는 곳에 갇힌 어떤 것' 을 봤고, 투우가 지닌 압도적인 아름다움은 그것을 신화에 비견하게 했다. 투우의 아름다움과 잔혹함, 비장함과 야만에 대한 글을 계속 써내려가고 싶지만, 지금은 참아야 한다. 지금은 미노타우로스와 미궁에 대해 먼저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노타우로스는 잘 알려진 대로 소의 머리를 가진 사람. 괴물이다. 황소로 변한 제우스와 에우로파 사이에서 난 미노스의 아들이자, 바다에서 온 흰 숫소와 파시파에와의 사이에서 난 괴물이 미노타우로스다. 오래 생각하지 않더라도 이 괴물은 힘, 관능 등의 욕망을 상징한다. 이 괴물이 있는 곳이 미궁이다. 미궁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밖으로 나가는 문을 찾을 수 없도록 길(通路)이 만들어진 건물로, 그리스의 전설에 나오는 '라비린토스'가 그 기원인데, 동물이나 인간의 학습 능력을 실험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고 한다. 미궁의 기원이라는 라비린토스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자료를 찾아보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라비린토스에서는 길을 잃으려야 잃을 수가 없는 것이다!

미로와 미궁

5. 미로와 미궁 ● 미로와 미궁은 사전에서도 비슷한 말로 표기되어 있을 정도로 언어적으로는 구별 없이 사용하지만, 실제의 미로와 미궁은 완전히 다르게 생겼다. 미로는 여러 개의 막다른 골목을 포함한 두 개 이상의 길이 서로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고, 미궁은 하나의 통로로 만들어진 복잡하게 구부러진 길이다. 짧게 말하면, 미로는 여러 갈래 길이고, 미궁은 한 줄기 길이다. 미로는 사람을 헤매게 하려고 만든 곳이고, 미궁은 사람을 몰아넣는 곳이다. 미로는 놀이 도구로, 미궁은 종교 의식이나 명상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미로였다면 괴물은 갇혀 있었다는 것이고, 미궁이었다면 갇혀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괴물이 갇힌 곳이 미로인가 미궁인가 하는 것은 그래서 내게 매우 중요했다.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 미로였다면 그곳에서 벌어진 일은 광기에 휩싸인 채, 길을 잃고 헤매는 미로 속의 괴물과 괴물에 바쳐진 사람들의 숨박꼭질일 테지만, 미궁이었다면 아마도 달랐을 것이다. 미궁의 중심에는 비틀어진 욕망의 총화라고 할 수 있는 괴물이 있고, 미궁에 든 사람은 미궁을 따라 이리저리 빙글빙글 돌며, 저도 모르게 괴물에 한 발씩 다가서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멀리, 구불구불 돌아가는 동안 제물은 의지를 잃고 체념한 채로 괴물 앞에 서게 되는 것이 아닐까? 테세우스가 붉은 실을 허리에 묶고 들어간 것은 길을 잃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잃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그곳이 미궁이었다고 생각한다. 후일담이지만, 달아난 다이달로스를 잡으려 미노스가 낸 현상 퀴즈는 '소라고둥에 실 꿰기'였다. 정답은 이 글의 끝에 있다. 6. 거울과 그림자 ● 거울이나 그림자를 보는 것은 자기 자신을 대면하는 것이다. 거울은 마주 보는 것이고, 그림자는 등을 보는 것이다. 거울을 볼 때는 빛을 향해 얼굴을 들지만, 그림자를 볼 때는 빛에서 눈을 돌린다. 그림을 그리거나 본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대면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림 중에는 거울에 가까운 그림이 있고, 그림자에 가까운 그림이 있다. 내가 지금 그리는 그림은 그림자에 가까운 것일까, 거울에 가까운 것일까? 미노타우로스가 있는 곳이 미궁이라면- 복잡하게 구부러진 마음의 행로와 아마도 그 중심에 있을 존재에 대한 것을 그린 그림이라면- 그것은 거울에 가까운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박진호_Spot 07_디지털 프린트_12.4×12.6cm_2009

7.원심력과 구심력 ● '투우장의 미노타우로스' 시리즈도 '달 아래 이카로스'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욕망이 주제다. 이카로스가 비상과 추락에 대한 동경과 욕망에 대한 이야기라면, 미노타우로스는 소유와 지배에 관한 이야기이고 욕망의 작동 원리에 관한 이야기다. 이 작업을 하는 동안 내 머릿속에서는 거대한 바윗돌 하나가 동아줄에 매달려 윙윙 돌고 있었다. 욕망이 마음속에 가득 들어차면 마음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게 마련이다. 바라는 만큼 커지고 커지는 만큼 무거워지고 무거워지는 만큼 힘을 주고 힘주는 만큼 더 빨리 돌아가는 돌덩어리 같은 것. 지금 당장 멈추지 않으면 아무도 다치지 않고 이것을 내려놓기란 가당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 미련한 짓을 멈추지 못하는 것이다. 몸 어디 하나 고장 나 삐끗거리기 시작하고서야 비로소 제가 어리석었음을 깨닫고, 그 여름 그 날 그 자리를 다시 바라보니, 이제 그곳은 소도 어디 가고 없는 그저 텅 빈 경기장이더라는 이야기.

박진호_Spot 16_디지털 프린트_13×18cm_2009

8.제물 ● 이제 사실을 털어놓을 때가 된 것 같다. 이 전시는 미노타우로스나 투우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리스 신화도 다이달로스도 관계없다. 언제부턴가 나는 내가 무엇을 그리는지도 모르고, 그저 선을 긋고 점을 찍는 내 손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바라보면서 생각한다. 나는 도대체 뭘 그리고 있는 건가? 달리 이름 붙여 부를 말이 없어서 처음에 그리려고 작정한 것들의 이름을 - 미노타우로스니 뭐니 해가며 그리고는 있지만- 누군가 정색을 하고 물어보면 마땅히 할 말이 없다. 그렇게 멍하니 한참 그림을 그리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그것은 소가 아니라 욕망이었거나, 미로가 아니라 미궁이었다는 것을 알아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그림은 끝난다. 내가 제물이라 부르며 한참을 그린 13명의 여자들이 어느 날 '모듈'이 되어버린 것도 이런 식이었다. 그림이 끝났다.

박진호_Module-010_혼합재료_140×60cm_2009 박진호_Module-023_혼합재료_140×60cm_2009

9.모듈 ● 구구 팔십일 년 내내 일곱에 일곱, 열 네 명씩 바치던 제물이 열 셋이 된 건 테세우스가 남자면서 여자로 미궁에 들면서였다. 막다른 골목을 질주하는 것들의 숫자는 여기도 저기도 열 셋이라는 것이 참 공교롭기도 하다. 그것들이 저마다 '모듈'이거나 '모듈'의 집합이라는 것을 안 것은, 다시 말하거니와 문득 알아버린 것이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대신 빙 돌려 설명하자면... 머릿속에 맴도는 영상이 하나 있는데, 그건... '한가로이 퍼져 나가는 무언가의 파편들'이다. 나는 이 이미지가 매우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한다. 파괴는 더 이상 공포가 아니며, 비산하는 파편들이 서로 긴밀히 교신한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 0.내 안에 비친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그동안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었다. 나는 길을 찾기 위한 단서를 모으고 있었다. 그 단서들은 대체로 뜬금없는 사건들이거나, 가끔은 곤혹스러운 풍경이었고, 아주 가끔은 끔찍한 것들이었다. 요컨대, 모두 내가 싫어하는 것들이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궁금해졌다. 어째서 나는 내가 싫어하는 것에서 눈을 뗄 수 없었을까? 그것이 내 그림자이기 때문일까? ● 00. 다이달로스 약전 - 아테네 왕족인 다이달로스는 그 뛰어난 솜씨에 여신 아테네의 후원까지 더해져 발명가로서 명성을 떨쳤지만, 조카가 컴파스를 발명하자 조카를 신전 위에서 밀어 떨어뜨려 죽였다. 그는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아테네에서 추방되어 떠돌다 크레타에 정착하였다. 크레타의 왕 미노스는 형제들과 왕위를 다툴 당시, 왕위가 자신의 천부적 권리라며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징표로 바다에서 한 마리의 숫소를 보내 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면 그는 제물로 그 숫소를 포세이돈에게 바치겠다고 약속했다. 소원대로 숫소가 나타났지만, 그는 숫소가 너무 탐이 나 자신의 소유로 해 버리고 포세이돈의 제단에는 다른 소를 바쳤다. 이를 알게 된 포세이돈은 미노스를 골탕 먹이기 위해 왕비에게 숫소에 대한 욕정을 품게 하였고, 왕비는 왕이 전쟁터에 나가 있는 동안 다이달로스에게 나무로 내부가 텅 빈 암소를 만들게 하였다. 왕비는 숫소를 유혹했고, 숫소는 가짜 소를 암소로 오인하여 왕비의 욕정을 채워주고 만다. 전쟁을 끝내고 돌아온 왕 미노스는 왕비의 임신을 알고 기뻐하지만, 태어난 것은 반인반수의 괴물이었다. 미노스는 경악했고, 왕비는 비난을 받았다. 왕은 이 반인반수의 괴물을 미노타우로스라 이름 짓고, 다이달로스를 불러 한 번 들어가면 다시 나올 수 없는 미궁(Labyrinth)을 짓게 하여 미노타우로스를 그곳에 가두었다. ● 다이달로스가 설계한 미궁은 구조가 매우 교묘하여 들어가면 다시는 나올 수 없었다. 괴물은 미궁 속에 살며 제물로 바쳐진 소녀들을 잡아먹고 살았다.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는 무의미한 살육을 끝내기로 결심하고 아버지인 에게 왕에게 자신이 조공으로 갈 것을 부탁했다. 조공을 실은 배가 도착하자 미노스의 딸 아드리아네는 그를 보고 반해버렸다. 그를 살리고 싶은 공주는 다이달로스에게 방법을 물어본다. 다이달로스는 실타래를 주고, 테세우스는 아드리아네가 준 칼로 미노타우로스를 처치하고 미리 풀어 놓은 실을 따라 미궁을 탈출한다. 비록, 반인반수의 괴물이지만 자식을 살해당한 미노스 왕은 화가 나서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들 이카로스를 미궁에 가둬버린 후 입구를 폐쇄한다. 일부에서는 왕비와 다이달로스가 바람을 피웠다고도 전해지고 있다. ● 다이달로스는 여러 날을 헤매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새의 깃털을 모아 큰 날개를 만들어 자신과 아카루스의 몸에 완성된 날개를 밀랍으로 붙인 후 이카로스에게는 다음과 같이 충고하였다. "바다와 태양의 중간을 날아야 한다. 너무 높이 날아오르지 마라. 너무 높이 날면 태양의 열기에 네 날개의 밀랍이 녹아서 떨어지고 만다. 그러나 너무 낮게 날지도 마라. 너무 낮게 날면 파도가 날개를 적실 거다." 하지만, 미궁을 탈출한 후 하늘을 난다는 사실에 마음이 들뜬 이카로스는 태양을 향해 자꾸 높이 날아 올랐다. 결국 이카로스는 날개가 녹아내려 떨어져 죽는다. 다이달로스는 끝까지 중간을 유지하여 시실리아까지 날아가 목숨을 건진다. ● 미노스는 다이달로스를 잡기 위해 거액의 현상금을 걸고 '소라고둥에 실 꿰기' 라는 문제를 낸다. 다이달로스의 답은 '개미 허리에 실을 묶어 소라고둥에 넣어 세워둔다' 이었다. 잡으러 온 미노스를 함정에 빠트려 죽이고 난 뒤 다이달로스는 행방을 감췄다. ■ 박진호

Vol.20090409a | 박진호展 / PARKJINO / 朴璡鎬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