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RTRAIT OF HORSE

이광호展 / LEEKWANGHO / 李光晧 / photography   2009_0415 ▶︎ 2009_0421

이광호_PORTRAIT OF HORSE 1-Jeju_잉크젯 프린트_106×80cm_2009

초대일시_2009_0415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아트 스페이스_GANAART SPACE 서울 종로구 관훈동 119번지 3층 Tel. +82.2.734.1333 www.insaartcenter.com

포즈 없는 신체 또는 시선 없는 눈 ● 이광호의 사진들은, 장르를 나누자면, 초상사진이다. 하지만 그의 사진 프레임 안에 들어 있는 건 사람의 모습들이 아니다. 그건 말들의 모습이다. 이광호의 사진들은 말하자면 말들의 초상 사진이다. 초상사진의 장르는 본래 사람을 위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동물을 사람 찍듯 찍을 수는 없다. 동물의 모습을 포착하는 일에는 사람에 대해서 그렇게 하는 일과는 다른 특별한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이광호의 말 사진들이 정면 사진만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음은 아마도 그러한 어려움의 흔적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인물사진의 장르를 차용하면서 이광호는 무슨 이유로 굳이 동물, 더 자세히 말들의 모습을 프레임 안에 담으려고 하는 것일까? 그건 사람의 모습으로는 전할 수 없는 그 어떤 특별한 메시지가 말의 모습들을 통해서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 특별한 메시지는 무엇이고 또 어떻게 읽힐 수 있는 것일까?

이광호_PORTRAIT OF HORSE 2-Jeju_잉크젯 프린트_106×80cm_2008
이광호_PORTRAIT OF HORSE 3-Jeju_잉크젯 프린트_80×106cm_2009

내가 보기에 이광호의 말 사진들 안에 내포된 메시지는 세 층위에서 읽힐 수 있다. 우선 정보적 층위가 있다. 사진은 그 완벽한 아날로그 이미지를 통해서 프레임 안에 오브제로 포착된 대상들에 대한 다양한 객관적 정보들을 제공할 수 있다. 이광호의 말 사진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프레임 공간 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재현되는 말들의 모습을 통해서 대도시 일상 속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어 낯설어진 말들에 관해 여러 가지 흥미로운 사실적 정보들을 수집할 수 있다. 예컨대 개개 말들이 보여주는 정면과 측면의 얼굴들을 응시하면서 새삼 말의 얼굴에 대한 관상학적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서 있거나 달리는 말들의 골격과 근육구조를 관찰하면서 말의 신체에 대한 해부학적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만일 말의 계보학에 대해서 전문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프레임 안에 포착된 개개 말들의 남다른 특성을 단초로 삼아 그 말의 족보를 추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광호_PORTRAIT OF HORSE 4-Jeju_잉크젯 프린트_106×80cm_2008
이광호_PORTRAIT OF HORSE 5-Jeju_잉크젯 프린트_106×80cm_2008

다음으로 상징적 층위의 메시지가 있다. 이광호의 말 사진들은 대부분 정지 초상들이 아니다. 그의 말들은 거의 모두가 자연 풍경을 배경으로 삼아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말들을 응시하는 보는 이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사실적 층위에서 상징적 층위로 옮겨가게 되는 건 다름 아닌 말들의 그러한 역동적 포즈와 자연 풍경성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경우, 우리가 이광호의 말들로부터 받아들이게 되는 상징성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잘 알려진 말의 신화적 상징성이다. 희랍 신화 속의 페가수스 이래로 말은 그 타고 난 힘과 속도 그리고 아름다움 때문에 신화적 상상력의 가장 사랑받는 동물이었다. 하지만 말의 신화적 상징성이 희랍 신화에서 끝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상징성은 오늘날 기술 문명적 상징성으로 몸을 바꾸어 우리의 상상 세계를 여전히 지배하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 예컨대 '페가수스처럼 힘 있고 빠르고 우아하게!'라는 벤트리 자동차의 유명한 광고 헤드라인은 말의 신화적 상징성이 자동차의 기술 문명적 상상력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지니는 것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 하나 이광호의 말 사진들이 불러일으키는 상징성은 성적 상징성이다. 특히 말 신체의 일부분을 절편하여 근접 포착한 사진 이미지들은 말 신체의 육감적 볼륨과 선정적인 선으로 시선을 자극하면서 우리가 타자의 신체에 대해서 은밀하게 품고 있는 성적 판타지가 사실은 말의 성적 상징성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임을 새삼 깨닫게 만든다.

이광호_PORTRAIT OF HORSE 6-Jeju_잉크젯 프린트_80×106cm_2008
이광호_PORTRAIT OF HORSE 7-Sicily ,Italy_잉크젯 프린트_80×106cm_2007

마지막으로 무의식적 층위의 메시지가 있다. 이광호의 말 사진들 안에서 보는 이에게 (혹은 적어도 나에게) 모르는 사이 무의식의 눈을 뜨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두 가지다. 하나는 프레임 안에 고정된 말들의 '포즈 없는 신체'이다. 말들은 포즈를 취하지 않는다, 아니 말들은 포즈를 알지 못한다. 아마도 이광호의 렌즈를 가장 힘들게 했을지도 모르는 이 타고난 말들의 포즈 없는 신체는 그러나 보는 이에게 인물 사진 속에서는 찾을 수 없는 그 어떤 신체, 말하자면 아직 자기를 드러낼줄 모르는 어린이만이 보여주는 신체, 우리 모두가 그 언젠가 함께 있었으나 이제는 두 번 다시 찾을 수 없도록 잃어버린 신체와의 만남을 경험하게 만든다. 다른 하나는 말들의 '시선 없는 눈'이다. 이광호의 사진들 안에서 말들은 정면을 향해 보는 이를 응시하기도 하고 측면으로 돌아서 시선을 피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두 사진들 사이에 시선의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광호의 말들은, 그것이 정면 사진이든 측면 사진이든, 사실은 하나의 눈만을 지니고 있다. 보지만 보지 않는 눈, 아무리 응시해도 대답하지 않는 눈, 사람의 눈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말들의 이 시선 없는 눈은, 그러나 오래 응시하면, 한 없이 순진무구하고 결백해서 거울처럼 보는 이를 응시한다. 그런데 그 시선 없는 거울의 눈 안에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건 무엇일까? 인간은 본래 '선한 동물'이었다고, 아도르노는 말한다. 이광호의 프레임 안에서 묵묵히 응시하는 말들의 시선 없는 동공 안에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건 다름 아닌 그 선한 동물, 우리가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우리들 자신의 모습은 아닐까? ■ 김진영

Vol.20090413e | 이광호展 / LEEKWANGHO / 李光晧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