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ver-ending story-일상, 상상, 이야기

정재원展 / JUNGJAEWON / 鄭宰瑗 / painting   2009_0415 ▶︎ 2009_0430 / 일요일 휴관

정재원_토끼라고 생각해봐-나라 요시토모의 그림을 너무 봤나봐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7×91cm_2007

초대일시_2009_0416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무이_GALLERY MUI 서울 서초구 서초동 1658-14번지 무이빌딩 1층 Tel. +82.2.587.6123 cafe.naver.com/gallarymui

2003년 첫 개인전 이후로 계속 주제로 삼고 있는 것이 'Never-ending story', 즉 '끝나지 않는 이야기' 이다. 내 안에 있는 수많은 이미지들이 하는 이야기를 하나로 묶기 위해 이 단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그것은 내러티브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누구나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모티브로서 존재한다.

정재원_머리가 넘 무거워-돌을 얹은 것처럼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7×91cm_2006

나의 작업은 '일상', '상상', '이야기' 세 가지 단어로 요약된다. 매일 매일의 일상 속에서 나를 통해 상상하게 되는 의인화된 동물들이나 변형된 인간들, 그들이 거하는 가상된 공간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가게 되고, 관객은 자신들의 상상을 시작하게 된다. 이미지는 또 다른 이미지를 불러일으키고, 그 이미지를 통한 나의 상상은 관객의 상상을 유도하며 그것이 또다시 개별적 이미지로 재생하는 "끝나지 않는 이야기"가 된다.

정재원_딴따라 원숭이-서커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30cm_2008

'Never-ending story'의 이미지들은 그리스 신화 '판도라의 상자' 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제우스는 판도라에게 조그만 상자를 건네주면서 절대로 열어봐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판도라는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호기심을 견디지 못하여 뚜껑을 열었고, 그 순간 그때까지 없었던 온갖 재앙과 질병이 쏟아져 나와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고 한다.) 이야기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나에게 재미있는 천지창조 이야기처럼 새로운 것들이 생성하고,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이 생겨나는 유토피아적 창조의 공간으로 해석되었다. 내 마음대로 창조된 그림 속에는 항상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인간이라기엔 동물의 캐릭터화 된 형상을 가지고 있으며, 동물이라기엔 만화 주인공들처럼 인간화 되어있다. 그들은 인성을 가지고 있으며 표정과 행동을 통해 보는 이와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들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이미지'들이며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드는 요소로써, 우리를 투영하고 있으며 그것을 통해 보는 이의 상상과 조우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소통'의 수단이다.

정재원_나방왕자 팔을 펼치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7×91cm_2009

내가 그리는 이미지들은 어디에선가 본 듯한 익숙한 모습이나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배경이 있어도 그들은 뚜렷이 어디에 있는 것도 아니며, 사람형상 같기도 하고 동물 같기도 하지만 그 무엇도 아닌 정체성이 없는 것들이다. 실재적이지 않은 형체를 통해 자기를 감추고 사회성이 '결핍'된 채, 정체성과 목표를 요구하는 이 사회에서 부유하는 존재들이다. 그것은 '나'일 수도 있고, '관객'일 수도 있고, 아무도 아닐 수도 있다. 사실 나는 그것들이 무엇인지 모른다.

정재원_죽자사자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4×33cm_2009

남미의 시인 '네루다'에게 '시란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을 때 "나는 시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아 시를 쓴다."고 했던 것처럼 내 그림이 말하려는 바를 알 수 없지만 계속 그리다 보면 내 그림이 말하려는 바를 알 수 있을 것 같아 그림을 계속 그리게 된다. 즉 '존재의 소멸에 대한 두려움'과 같은 것이다. 존 바르트(John Barth)가 말한 '이야기 하는 것을 생명과 같이 여김에 오는 공포', 즉, '세헤라자드(Scheherazade) 의 공포'처럼 계속 그리지 않으면 내가 무엇 때문에 그리는지, 무엇을 그리는지, 영원히 알 수 없고, 그리기를 그만 두면 더 이상 아무 존재도 아니게 될 것이란 두려움과 같은 것이다.

정재원_호숫가의 토끼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2×41cm_2008
정재원_불타는 숭례문을 바라보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3×24cm_2008

'그린다'는 행위로써 내가 하는 수많은 생각과 이미지가 하나의 구체적인 형상으로 드러나고, 그것을 '보는 행위'로써 "자기가 보는 것 속에서 자기의 보는 능력의 '이면'을 인식할 수 있다. 내 몸은 보는 자기를 보고, 만지는 자기를 느끼고, 자기 눈에 보이고, 자기 손에 느껴진다."고 말한 메를로-퐁티처럼 그것은 내가 존재함을 의미하며, 내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스스로 인지하게 되는 과정을 통해 소멸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 정재원

Vol.20090413f | 정재원展 / JUNGJAEWON / 鄭宰瑗 / painting